▲ 이지훈 경제부 차장대우
한 달 전 글로벌 증시 버블을 우려하는 글을 쓴 뒤 지인들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았다.

“펀드에 투자하고 있는데 언제 돈을 빼야 하느냐”는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사회에 펀드 투자가 본격 시작된 지 몇 년 안 되는데, 어느 새 많은 사람이 펀드 투자를 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세계 증시가 버블이라고 볼 만한 근거가 충분히 있다. 하지만 당장 꺼지지는 않을 것이다. 꺼지기 전의 불꽃이 더 밝다는 말도 있지 않나. 언제 꺼질지를 맞히는 것은 신(神)의 영역이다. 그러니 투자금액을 조금씩 줄여 나가면 어떻겠느냐.”

7일 뉴욕증시에 이어 8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가 급락하는 등 글로벌 증시의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두 가지 징후를 보면서 버블이 꺼지기까지 좀 더 시간이 갈 것이란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첫째, 미래에셋이 내놓은 ‘인사이트 펀드’ 열풍이다. 이 펀드는 발매 1주일 만에 3조원을 끌어들이는 기염을 토했다. 단기간에 단일 펀드에 이토록 많은 자금이 쏠리는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이 펀드가 어디에 투자하는지 뚜렷이 밝히지 않고, 돈이 되면 어디든 투자하는 고위험·고수익 성격을 갖고 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시중에 갈 데 없는 자금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부동산시장 부진이 이어지는 한 돈은 계속 주식과 펀드로 갈 것이다.

글로벌 시장으로 시야를 넓혀도 역시 과거 수년간 축적된 과잉 유동성이 넘실댄다. 이 엄청난 돈은 미국 경제와 달러 약세가 이어지는 한 신흥시장(이머징마켓) 증시를 계속 주목할 것이다.

둘째, 대선(大選)효과이다. 적어도 선거가 끝나기까지는 정부가 민생(民生)과 직결된 주가와 환율 등의 수치를 관리한다는 것이다. 사실이라기보다는 항간의 믿음에 가까운데, 최근 그 같은 믿음에 근거가 있다고 느낀 적이 있다.

얼마 전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900선을 위협했을 때였다. 수출 기업의 경쟁력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비상사태였다. 그런데 외환 전문가들에게 물어 보니 “큰 폭의 하락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유를 묻자 한결 같이 “선거를 앞둔 정부가 손 놓고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과연 당시 외환당국은 외환시장에 개입했으며 환율은 900선 위에서 비교적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징후는 단기적으론 호재이지만 장차 버블 붕괴의 파괴력을 더욱 키우는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경제에 공짜란 없고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환율을 방어하면 할수록 장차 오히려 주가 하락 폭은 커질 수 있다. 주가와 상극(相剋)관계인 금리 상승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환율을 방어하려면 정부는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여야 하고,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채권을 찍어야 한다. 시중에 채권이 많이 풀리면 채권값은 떨어지고 금리는 오르기 마련이다.

미래에셋의 ‘인사이트 펀드’에 아줌마 부대들이 몰려가는 것도 과거 ‘바이코리아 펀드’ 열풍을 연상시켜 불안하다. 대형 금융기관 간부 A씨는 “나쁘게 말하면 ‘묻지마 펀드’ 아니냐”면서 “묻지마 현상은 버블 말기의 대표적 징후”라고 우려했다.

앞으로 우리가 헤쳐 가야 할 재테크 전선은 그만큼 안개 속이다. 욕심을 좀 줄이고 늘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돈을 한 군데 ‘몰빵’ 하기보다 적절히 분산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이지훈 경제부 차장대우 jhl@chosun.com]
[☞ 모바일 조선일보 바로가기] [☞ 조선일보 구독하기]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미술시장이 산업으로 발돋움을 하고 있다. 가족경영을 기반으로 하는 화랑 중심의 전근대적 유통구조에 불과했던 한국 미술시장에 경매회사가 설립되고 아트펀드가 들어왔다. 시장 규모도 크게 확대되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하지만 시장 규모가 정확히 얼마인지를 알려주는 공식적인 통계는 없다. 어림잡아 올해 미술시장 규모를 4000억~5000억원으로 추정할 뿐이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는 경매 2000억원, 아트페어 245억원, 아트펀드 200억원, 공공미술 800억원, 박물관 정부 컬렉션 200억원, 상업화랑 600억원 등 올해 미술시장 총규모를 4045억원으로 추정한다.

분명한 것은 미술시장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빅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매는 지난해 비해 3~4배 이상, 아트페어는 1.5배 각각 늘어날 전망이다.

미술전문가들은 앞으로도 당분간 미술시장은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술시장의 잠재력 때문이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은 48조달러다. 블룸버그뉴스에 따르면 전 세계 미술시장 규모는 300억달러에 이른다. 세계 미술시장 규모를 GDP 비중으로 보면 약 0.062%가 된다. 이 같은 수치를 우리나라 경제에 응용해 보면 한국 미술시장 수준을 어림잡아 볼 수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GDP 규모는 8880억달러다. GDP에 대한 미술시장 평균 비중 0.062%를 적용해 보면 우리나라 미술시장은 평균적으로 5500억원 정도는 돼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나라 미술시장 규모는 2000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평균적인 수준에도 아직 못 미치고 있으며 세계 11위 경제국 위상에 맞으려면 평균 대비 2~3배 규모인 1조~1조5000억원은 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이런 계산법대로 하면 한국 미술시장이 올해 빅뱅을 한다고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을 받는다.

미술시장이 이처럼 빠르게 커지고 있음에도 믿을 만한 통계 하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정확한 통계가 없다 보니 미술시장에 대한 현황 파악도, 진단도 어렵다. 효율적인 정책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지나친 비관이 아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미술통계에 귀가 번쩍 뜨인 적이 있지만 믿기 어려운 구석이 많았다. 관세청은 크게 성장하는 국내 미술시장 특성을 감안했는지 지난 1일 친절하게 미술수입통계만을 따로 분리해 발표했다. 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미술수입 규모가 올해 들어 9월까지 4억6290만7000달러(42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10.6%나 늘었다. 9개월 동안 4200억원어치나 미술품을 수입했다면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9개월간 수입 규모가 전문가들이 나름대로 추정했던 전체 미술시장 규모보다 크니 혼동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내 작품이 전시를 위해 외국으로 나갔다 역수입되는 것을 제외하지 않고 그냥 발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통계 수집은 정부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금도 화랑에서 작가 작품가격을 물어보기가 민망할 때가 많다. '왜 그런 것까지 물어 보느냐'며 오히려 묻는 이를 멋쩍게 만든다. 화랑 매출액을 물어보기란 더더욱 어렵다. 화랑들이 작품 판매가격이나 매출액 밝히길 꺼리면서 정부 정책을 탓할 수 있을까. 미술경매회사의 경매낙찰액도 검증이 가능해야 공신력 있는 통계로 거듭날 수 있기는 마찬가지다. 자신들부터 투명하지 않으면서 시장 투명화나 공정거래를 요구할 수 있을까. 화랑과 경매회사들의 이중성이 바로 미술통계를 수집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중국이 처음부터 한국을 먼 발치 앞서 가는 분야가 있다면 바로 미술산업이다. 미술작품 1개는 웬만한 중소기업 연간 매출액과 맞먹는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작가 1명은 중소기업 CEO 1명보다 비중이 클 수도 있다. 투명한 시장, 공정한 시장은 작가가 커 갈 수 있는 텃밭이자 시장통계를 산출해 내는 토양이다. 정부와 화랑, 경매회사가 지금부터라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

[문화부 = 한배선 차장 doublesun@mk.co.kr]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달 25~26일 독일 베를린에선 세계적인 금융그룹 크레디트스위스(CS)가 주최한 'CS인베스트먼트 포럼'이 열렸다. 이 행사엔 유럽 각국에서 활동하는 프라이빗뱅킹 관계자들과 그들 고객들이 함께 참여했는데 유독 한 펀드가 큰 관심을 끌었다. 독일 부동산펀드로 최근 6년간 꾸준히 연 평균 17%대 수익률을 올린 상품이었다.

"그날 포럼에 있었던 PB들과 투자자들이 난리가 났어요. 정말 대단한 펀드라고. 환호성을 지르고 야단법석 수준이었다니까요." 당시 함께했던 한 한국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러나 우리끼린 킬킬대고 웃었죠.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연 100% 아니면 명함을 못 내미는데 17%에 저렇게 좋아하다니…."

요즘 국내 펀드투자자들은 정말 '미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 50% 수익률이 아니면 아예 쳐다보지 않을 뿐더러 수익률이나 운용방식 그 어떤 것 하나 검증되지 않은 펀드에 3조원 이상 돈을 넣는다. 투자한 지 3개월도 안 됐는데 손실이 났다고 바로 환매해버리기도 한다.

물론 이런 현상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국내 증시, 이머징증시, 글로벌 증시가 2004년부터 꾸준히 오르기 시작하면서 최근 3년간 펀드로 손실을 본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바로 이 과정에서 우리의 기대수익률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연 50%, 연 100%를 노리면서 펀드투자행태가 심각하게 왜곡돼 버렸다는 문제다. 급등주를 따라잡듯 중국펀드에 '몰빵'하는가 하면 주식단타처럼 펀드단타도 익숙해져 버렸다. 이젠 아무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주식시장은 등락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펀드투자의 기본은 그 태생적 한계를 인정하겠다는 합의에서 출발한다. 100년이 넘는 펀드역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연 17%를 맞춰준 펀드에 열광하는 건 결코 그들이 중국펀드를 몰라서가 아니다. 그 꾸준함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부 = 정철진 기자 ccjin@mk.co.kr]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내년부터 연간 5만달러까지 해외에 마음대로 송금할 수 있고 투자 목적으로 해외 부동산을 제한 없이 취득할 수 있다. 정부는 이번 외환제도 개선방안으로 외환거래 제도를 국제규범 정합성(global standard)에 맞춰 선진화를 앞당긴다는 취지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 넘치는 달러를 해외로 내보내 장기적으로 환율을 안정시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동안 경상수지 흑자와 은행권의 단기외화차입으로 2500억달러가 넘는 외화가 국내에 머물면서 원화 강세가 지속됐다. 환율 하락은 유가 상승과 함께 우리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외환거래 자유화를 통한 환율방어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하루 100억달러가 넘는 국내 외화거래 규모 중에서 해외송금액은 얼마 되지 않으며, 그동안 정부가 두 차례나 해외 부동산 취득한도를 확대하고 지난 6월에는 해외펀드 비과세 조치를 했음에도 원·달러 환율은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 대책이 없었다면 환율은 지금보다 더 떨어졌을지도 모르므로 결론을 내리기에는 성급하다.

그리고 해외 투자에 따른 손실 가능성과 외환거래 절차 간소화를 악용한 외화 밀반출이나 불법상속과 증여 등 외환자유화 확대의 부작용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감독기관이 거래내역을 면밀히 분석하고 사후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면 머잖아 시행될 29개의 개선 사항이 담겨 있는 시장거래 중심 외환제도로의 변환은 환율 방어 차원을 넘어 실제로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첫째, 일반 국민과 외국인 투자자의 외환거래 편의를 도모한다. 연간 5만달러까지 구두 증빙만으로도 해외송금이 가능하고 투자가 확정되지 않아도 환전이 허용되는 등 외환거래 절차가 간소해지고 해외에서 체크카드 현금 인출과 기명식 선불카드 사용이 가능해진다. 둘째, 외환거래의 편의를 높여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한다. 지금까지 허가제였던 5000만달러 이상의 수출입 관련 대금 지급 수단이나 50만달러 이하 채권 채무 상계도 신고 없이 가능하고, 30대 주채무계열 소속 기업의 해외 금융보증 신고도 면제된다. 셋째, 외환거래의 편의성으로 외환시장 참여자가 많아지고 외환거래 규모가 확대되면 금융시장이 외부 충격에 강해지고 시장원리에 의한 환율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 넷째, 국내 금융기관의 외환업무 역량을 강화시킨다. 비은행 금융기관은 외환업무 취급 범위가 확대됐고, 사모투자펀드(PEF·Private Equity Fund)는 해외 금융기관 인수·합병(M&A) 투자절차가 간소화됐다. 금융기관이 외국환업무로서 수행하는 장외파생거래의 사전신고도 면제됐고 내년중 일정 요건을 충족한 금융투자회사에도 외국환업무 범위가 조정될 예정이다.

이 밖에 외환거래 자유화는 현행 외환규정 아래서 필요 이상의 규제로 양산되는 불법행위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그동안 해외에서 투자 기회가 생겼는데 신고하지 않고 외환거래를 했거나 또는 신고 내용대로 자금을 사용하지 않아 제재를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또한, 해외자산 취득이 자유로워지면 국내에 넘치는 외화로 인한 유동성이 해외로 분산돼 국내자산에 거품이 생길 위험성이 줄어들 것이다.

다만, 해외자산에의 투자는 운용수익을 중시해 국부 유입을 도모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조정을 받고 있는 부동산 투자나 가치 하락이 예상되는 달러화 자산에 대한 투자는 주의가 요구된다. 국가 전략적인 차원에서 국부펀드를 통해 보유외환을 해외 에너지나 원자재 산업 등 다양하게 운용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아울러 기왕 외환거래의 국제규범 정합성을 내세운 만큼 이제는 국제거래에서 원화 결제가 가능하도록 원화의 국제화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어쨌든 이번 외환자유화 확대는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흐름임에는 틀림없다.

[[연강흠 / 연세대 교수·경영학]]

[Copyright ⓒ 문화일보 & munhw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우리는 '명성'이 새로운 자본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워런 버핏, 골드만삭스, 맥쿼리, 미래에셋, 군인공제회, 대한전선 등의 공통점을 보면 드러난다. 그저 '투자를 잘한다'는 수준이 아니다. 이들은 투자를 '브랜드'로 만들고 있다.

단적인 예로 미래에셋은 과거 운용경력이 전혀 없는 '인사이트 펀드'를 3조5000억원 넘게 팔았다. 이를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 브랜드 가치가 3조원어치는 넘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른 예도 있다. 군인공제회가 투자하는 M&A에는 다른 연기금도 관심을 보인다. 대한전선도 웬만한 M&A에 있어서는 '증권사보다 나은 금융기업'이란 평판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뚜렷한 투자스타일을 브랜드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필자가 런던에서 배운 것은 '명성은 진짜 자본이 아니다'는 점이다. 슈로더운용 고위 관계자는 "명성은 허상이다. 진짜 자본은 명성 뒤에 숨어 있는 신뢰"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보자. 영국 베어링스나 미국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털은 투자자에 대한 신뢰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명성을 순식간에 잃었다. 슈로더는 앞날이 유망했던 IB사업부문을 매각했다. 행여 자기자본으로 투자하다 투자자 이익보다 자기 이익을 먼저 챙겨 신뢰를 잃을까 두려워서였다.

우리에겐 공모펀드가 신뢰를 잃은 경험이 없다. 하지만 비슷한 경험은 있다. 외환위기 때 사라진 수많은 은행들, 그리고 바이코리아 펀드. 그들이 그렇게 쉽게 쓰러질지 상상이나 했던가.

중요한 것은 명성이 아니라 신뢰다. 투자원칙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장치를 도입했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파악하고 펀드를 선택할 최종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 그래서 명성 뒤에 흐려진 신뢰를 보는 심미안이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명성이 신뢰라는 진짜 자본을 뿌옇게 가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증권부 = 신현규 기자 rfrost@mk.co.kr]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권동희 동국대 교수
지구촌이라는 말이 요즘들어 더 실감난다.

필리핀과 몽골 출신 등 외국인 며느리를 둔 가정을 어렵지 않게 주변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국내 한 종교단체에서 파견한 선교단원들의 피랍사건으로 온 나라를 충격 속에 휘몰아 넣었던 아프가니스탄,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젊은 장병들이 그곳에서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세계 경제 대국을 꿈꾸는 중국은 ‘동북공정’에 이어 ‘중국 펀드’로 우리 사회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일본-한국-중국을 거쳐 터키로 이어지는 아시아 고속도로(아시안하이웨이)가 아시아 32개국간의 협정으로 총 14만km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21세기, 교통 통신의 발달로 물리적 거리가 더욱 좁아지고 대륙과 국가의 장벽이 역사상 유례없이 개방되면서 서로의 관계들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좋든 싫든 그리고 멀든 가깝든 우리는 새로운 이웃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할 숙명을 안고 있다. 그에 따라 ‘지리상 발견 시대’ 이후 한동안 잊혔던 전통 지리학이 전 세계적으로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하고 있다. 빠르고도 복잡하게 얽히고 연결된 지구촌 사회의 역학 관계를 통찰하는 데는 무엇보다 지리적 사고(思考)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지리적 사고란, 눈앞에 보이는 세상을 뛰어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의 사람들 입장에서 또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미국은 최근 직면한 세계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리학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기 시작했다. 최근 국내에도 출간된 원로 지리학자 블레이의 교양도서 ‘분노의 지리학’을 해외 근무 직원과 외교관들의 필독서로 지정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이 책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구촌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지리학이 주요한 도구가 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베트남전쟁, 이라크 전쟁의 뼈 아픈 역사를 바탕으로 한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을 통해 우리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새로운 영토를 차지할 수는 있어도 그곳을 진정으로 통치하는 힘은 ‘지리적 통찰력’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인터넷 위성영상정보 사이트에서 우리 영토를 검색해 보면, 부산 수영만은 ‘Suiei-Wan’, 남해 천황산은 ‘Tenno San’ 그리고 한강 하구의 강화만은 ‘Koka-wan’ 등 일본식 표기 일색이다. 우리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 목 쉬도록 외치는 사이에 일본은 사이버 공간에서 소리 없이 그들의 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리부도를 펼쳐놓고 대전을 찾아보라고 하면 엉뚱하게도 부산이나 목포 쪽에서 헤매고 있는 게 우리 청소년들의 현실이다. 그들은 제주도 한라산이 외국에서 ‘Mount Auckland’나 ‘Kanra-san’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다.

개화기 이후 지리는 역사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세계관 교육의 하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일제 강점기의 지리교육 축소 정책, 이어 미국식 교육을 답습하는 과정에서 슬그머니 ‘사회과 교육’이라는 틀 속에 갇히면서, 우리 청소년들을 지리 문맹(文盲)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행히 최근 우리 주변에서도 작지만 의미있는 지리학 부흥운동의 싹이 트고 있다. 지리교양도서들이 대형서점에서 어엿하게 독립된 코너를 차지하고 있고, 그중 몇은 스테디셀러 목록에 오르고 있다. 관공서나 기업들로부터 지리학 특강 요청이 늘고 있다.

21세기, 지구촌 사회는 우리에게 새로운 지리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우리가 여전히 19세기식 사고에 머무른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우리 땅에 대한 지리학적 자긍심과 아시안 하이웨이를 달리는 지리학적 상상력을 키워 주자.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 가 있는 우리 장병들의 배낭 속에도 지리학 교양서 한 권쯤은 넣어 주자. 우리의 미래가 바로 이들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권동희 동국대 교수·지리학 ]
[☞ 모바일 조선일보 바로가기] [☞ 조선일보 구독하기]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장우 케이리치자산운용전략연구소 수석연구원


후한시대 장해라는 선비는 높은 학문과 뛰어난 식견으로 인해 조정에서는 거듭 벼슬을 권했고 명문세가들은 그와 친교를 맺으려 애썼지만 혼탁한 세상과 절연하기 위해 은둔생활로 일관했다. 방술(方術)로 안개를 일으켜 주변 5리까지 자신의 소재를 감추기도 했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이란 말의 출처이다.

최근 한 유력 정치인의 출마선언 이후 대선 정국만큼이나 8월 조정 이후 재차 상승세를 이어가던 주식 시장도 방향을 예측하기 힘든 모습을 보이고 있다.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미국시장의 신용경색 우려, 달러화 약세, 유가 100달러, 중국 시장의 불안정성 등이 안개를 피워 올리고 있고 미국시장과의 Decoupling(탈동조화)현상을 강조하던 일부 애널리스트들이 머쓱할 정도로 미국시장의 조정 폭을 그대로 추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투자자들의 문의도 다소 심각해졌다. 내용인즉 현재 시점이 추가 투자시점인지 아니면 수익실현의 적정시기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펀드 투자가 대중화되어 가면서 투자자들의 식견도 괄목할 만큼 높아졌다. 일견 까다로워 보이지만 투자의 정석으로 돌아가면 위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High risk - High return식의 막연한 투자라면 몰라도 재무 목표별 자금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는 기대수익을 다소 낮추더라도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리스크는 곧 변동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큰 변동성은 결과적으로 중장기적인 수익률의 장해요소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0%의 변동성의 경우 상승과 하락을 각 2회씩만 순차적으로 반복하고 나면 약 18%의 평가손실을 보이게 되는 반면 변동성 10%의 경우라면 약 2% 정도의 평가손실에 그치게 된다. 시장이 불안하다는 것은 변동성이 커졌다는 것을 뜻하며 고수익 지향보다는 분산투자를 통한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 시점이다. 과거 수익률에 연연하지 말고 과감하게 기대 수익을 낮춰보자. 가장 무난한 방식은 역시 분할투자(이를 시스템화 한 것이 적립식 펀드나 변액보험이다)인데 이른바 박스권 장세에서는 일정한 기간을 두고 하락과 상승의 패턴을 보여 왔고 그 점이 반영되어 이 방식의 펀드 투자는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과거 3년 동안 국내 증시나 중국, 그리고 일부 이머징 시장은 이러한 패턴에서 벗어나 일방적인 추세상승패턴이었고 1~2개월 정도의 기간 내 짧고 굵은 조정은 실제 평균매입단가 하락 효과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위험관리책으로 이보다 더 합리적인 방안은 찾기 힘들다. 거치식 투자의 경우 장기로 운용할 자금이라면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좋으나, 자금이 필요한 시점이 6개월~1년 남짓 한 투자자라면 전문가와 상담을 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중국을 비롯한 이머징 시장에 대한 투자비중은 당분간 현상유지 내지 축소가 바람직해 보이며 투자시점이 비교적 최근인 경우라면 애초 계획보다 투자기간을 보다 길게 잡는 것이 좋다.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금의 성격이며 투자포트폴리오 정비는 그에 따라야 한다. 투자 그 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시기별 필요자금을 만들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작은 위험을 통해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돈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투자방식 아닐까.

우리는 웰빙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크다. 먹거리는 물론이고 온통 웰빙을 표방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건강에 좋다해서 한꺼번에 많이 먹거나, 기초체력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운동은 오히려 심신을 혹사시키는 일빙(ill-being)이 되고 만다. 변동성을 도외시한 수익률 지상주의를 추종하거나 자신의 위험성향을 무시한 따라하기식 투자는 재무상황을 악화시킬 소지가 많으며 결국 심신을 상하게 한다. 돈에 꼬리표 잘 붙이고 자신의 성향에 맞는 투자 포트폴리오 찾기. 이것이 바로 웰빙 재테크이다.

coolmn67@hanmail.net

< 모바일로 보는 디지털타임스 3553+NATE/magicⓝ/ez-i >

< Copyrights ⓒ 디지털타임스 & d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하나로텔레콤의 새 주인 찾기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시장에서는 벌써 SK텔레콤의 인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통신시장 재편 전망을 나름의 분석을 토대로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 SK와 KT그룹의 양강체제론이 대표적이다. KT는 이참에 ‘숙원’인 KTF와의 합병을 추진할 동력을 찾았다는 해석도 나왔다. 기존 3강의 한 축이었던 LG 3콤의 향배에도 갖가지 억측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주목하는 것은 따로 있다. 하나로텔레콤 인수합병이 국민과 정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되짚어 봐야 한다. 하나로의 최대주주는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이다. AIG는 국민의 정부 시절 한솔PCS를 인수해 2∼3년 만에 천문학적 이윤을 챙긴 채 KTF에 지분을 넘겨 ‘신화’를 창조한 바 있다. AIG-뉴브리지는 5억달러 정도를 투자해 40%에 가까운 하나로 지분을 사들였다. 1주당 3천200원가량이다. 중간에 감자 등을 거치면서 매입가격은 6천400원 수준으로 평가된다. 시장이 예측하고 있는 SK텔레콤의 인수가격은 1조2000억원이다. 예상대로 진행된다면 3년여 만에 7천억원 이상을 튀기는 초대형 잭팟을 터트리게 된다. 물론 최종 인수가격은 변하겠지만 은행 M&A로 거액을 챙겨간 론스타 못지않은 수익이 기대된다. 이쯤되면 전형적인 M&A전문기업의 모습이다. 문제는 그 차액이 우리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이 인수한다 해도 그 재원의 출발점은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사용료다.

 AIG-뉴브리지는 부실기업을 회생시켜 제값 받고 파는데 웬 딴소리냐고 항변할 수 있다. 회계 시스템 투명화, 구조조정, 신사업 발굴 등으로 클린컴퍼니화했으니 7천억원 차익도 적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온전히 외자의 힘만으로 하나로의 기업가치가 오늘처럼 높아졌다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과점상태인 통신시장의 소비자 편익을 위해 정부는 경쟁사를 강력히 규제하는 정책을 펴왔다. 그 덕에 하나로의 회생은 가능했다. 하나로 사용자를 포함한 정부와 소비자의 역량이 투입된 결과라는 말이다. 임직원의 희생도 컸다. 경연진은 완전히 물갈이 됐고 25% 이상의 직원이 일터를 떠났다. 그럼에도 표면적으로는 그 과실이 고스란히 외자의 손으로 들어갈 것 같다.

 글로벌 시대 외자의 국내 기업 경영권 참여는 당연한 일이다. 삼성전자와 포스코의 외인 지분은 50%를 훨씬 넘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하나로와는 다르다. 경영권을 무기로 머니게임을 하지는 않는다. 회사의 가치 제고와 투자수익이라는 윈윈 게임을 벌인다. 주가 차익에 따라 툭하면 경영권이 바뀌는 기간통신사업자는 더 이상 기간사업자가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기억한다. AIG-뉴브리지가 하나로를 인수하면서 ‘한국 통신시장의 장기발전을 위한 투자’임을 누누히 강조했던 사실을.

 앞으로 또 어떤 외국 투기자본의 통신업체 M&A 시도가 있을지 모른다. 정부도 옥석을 가려야 한다. 머니게임용 자본을 외자유치로 포장할 수는 없다. 기간통신사업자에 필요한 외자는 파트너십이지 투기가 아니다. 통신시장이 외국 투기자본의 ‘대박의 추억’이 돼서는 곤란하다.

'No.1 IT 포털 ETNEWS'
Copyright ⓒ 전자신문 & 전자신문인터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전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등의 폭로로 세상이 연일 들썩이고 있다. 지난 6일 참여연대와 민변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아직까지 눈치만 살피고 있다. ‘떡값 검사’ 탓인지 검찰이 제 살을 도려내는 일에 머뭇거리고 있기 때문에 특검제 도입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회창은 삼성 구원투수?

이 때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의 무소속 대선 출마 소식이 전해졌다. 이회창 씨가 급부상하며 대선판 전체가 요동치는 가운데 파괴력이 점쳐지던 삼성 이슈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조짐이다.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한 이회창 씨. 과거 차떼기 오명까지 뒤집어쓰며 받아 챙긴 삼성 비자금의 약효가 이제야 발휘된 것일까. 단숨에 파란을 일으킨 이회창 씨는 삼성에 쏟아지던 비난의 화살을 대신 받는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 같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회창 씨와 삼성을 썩은 생선의 머리와 꼬리로 묶어보려고 노력하지만, 이회창 씨 출마의 파괴력 자체가 커서 상대적으로 삼성 이슈가 잠식되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삼성 이슈의 불씨를 최대한 살리고, 이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흐지부지 끝내버리면 반부패 투명사회 건설은 물론이고, 재벌개혁과 경제 대안 논의는 더 요원해질지도 모른다.

민주공화국 근간 흔드는 ‘삼성제국’

삼성 비자금 의혹을 최초로 폭로한 11월 6일자 <시사IN> 제7호 커버스토리 인터뷰에서 김용철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건희 회장을 신격화하는 사이비 종교 같은 사내 분위기는 참기 힘들었다. 똑똑한 사람들이 바보 노릇을 하게 만드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건희 회장의 어록과 지시 사항은 사내에서는 헌법과도 같다.”

이러한 고백은 일인의 제왕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삼성제국’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이다.

왜 흔히들 쓰는 표현인 ‘삼성공화국’이 아니라 ‘삼성제국’이냐고? 비록 ‘삼성공화국’이란 표현이 삼성에 대한 자조 섞인 비판에 불과하다 해도 ‘공화국’이란 칭호까지 붙여주는 것은 과도하다. 원래 공화국은 제왕적 통치가 아닌 법치를 근간으로 그 구성원들에게 예속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정치체를 일컫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은 공화국의 기본 원칙을 따르고 있지 않다. 오히려 헌법에도 명시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본질을 침해하는 무수히 많은 일들을 저질러 왔다. 법조계와 정치계에 대한 전방위 로비를 통한 사법체계 무력화, 노조 설립 원천 봉쇄 등 법치주의의 실현과 국민 기본권 보장을 가로 막아온 사례가 수두룩하다. 이미 삼성은 입법, 행정은 물론 사법, 언론 및 교육 등에 이르기까지 무소불위의 자본 권력, 제왕적 권력을 휘둘러 왔다.

역사 상의 제국들은 그 자체의 힘이 막강하여 외부의 적들보다는 내부의 구조적 결함과 분열로 인해 멸망했다. 때문에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삼성제국’을 그대로 두는 것은 대한민국을 파멸로 이끄는 첩경이다. 국민 경제에서 큰 몫을 담당하는 ‘삼성제국’이 내부균열로 쓰러진다면, 이를 뒷감당해야 하는 것은 결국 국민들이다.

‘삼성제국’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은 세계 굴지의 기업 삼성 그 자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삼성의 제왕적 질서를 적어도 민주공화국의 원칙에 어긋남이 없도록 바로 잡아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삼성 비자금 등의 문제가 앞으로 처리되는 방식과 그 결과를 두 눈 부릅뜨고 주시해야 할 이유가 있다.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이 ‘삼성제국’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허울 뿐인 민주공화국인지, 아니면 법치가 살아 있는 진짜 민주공화국인지를 증명하는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왜곡된 소유지분 구조에 주목해야

그러나 삼성의 고질적인 부패와 비리, 그리고 반사회적 특성을 법과 원칙에 따른 엄중한 수사와 처벌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금융실명제 등 부실한 법제도의 개선 또한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한가.

아니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로 시야를 확대해야 한다. 삼성그룹의 경우 이건희 회장의 그룹 계열사내 지분은 고작 0.31%, 이재용 전무 등 일가를 포함한 지분율은 0.81%로 전체 재벌그룹 가운데 총수 일가 지분율이 가장 낮은 경우다. 그리고 1%도 안 되는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이건희 회장은 황제 경영, 제왕적 총수의 대표사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에 발표한 ‘2007년 대규모 기업집단 소유지분구조’에 따르면, 출자총액제한제도 대상(자산 10조원 이상) 11개 그룹의 의결권 승수는 평균 7.54배(4월1일 기준)를 기록했다. 의결권 승수는 그룹 총수 일가가 계열사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지분이 실제 소유한 지분의 몇 배인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높을 수록 소유지배 구조 왜곡 정도가 크다는 것을 뜻한다. 의결권 승수가 7.54배라는 것은 1주를 갖고 7.54주의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의미인데, 삼성그룹 의결권 승수는 지난해 6.91배에서 8.10배로 크게 높아졌다.

턱없이 낮은 지분율로 그룹 전체를 지배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그 구조를 온존시키려고 하니까 자연히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로비가 횡행하고 비자금 조성 등을 비롯한 부패와 비리가 끼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황제경영, 족벌경영, 세습경영과 엇물린 부패와 비리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것은 이처럼 왜곡된 소유지분 구조의 온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런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 둔 채 문제가 드러나면 ‘도마뱀 꼬리 자르기’만 횡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부패와 비리의 몸통은 한 번도 제대로 수사된 적이 없고, 왜곡된 소유지분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는 커녕 막강한 자본권력의 힘 앞에 모두 머리를 조아리기 일쑤다.

한편, 삼성을 비롯한 재벌기업들은 비자금 조성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것을 덮기 위해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그린워시(Green-wash)’ 전략을 써왔다. 이는 이전에 회계장부를 분식하던 것을 이제는 사회공헌과 같은 고상한 방식으로 바꾼 것에 불과한데, 이는 사회공헌이란 이름으로 치부를 가리는 ‘윤리분식’이라 이름 붙일 만하다.

삼성그룹은 작년에 8,000억원을 내고 면죄부를 받으려 했다.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해 수천억원의 재산을 마지 못해 기부하는 기업이 존재하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지구상 어디에 또 있을까.

이런 문제를 발생시키는 재벌체제를 그대로 두고 한국 경제의 미래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순환출자 금지와 지배구조개선 등으로 표현되는 재벌개혁은 사실 기업들이 줄곧 외쳐대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자는 주장에 불과하다. 참여연대 등이 주장하는 후진적인 재벌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연기금 사회책임투자 확대로 사회적 통제 모색해야

그렇지만 근본적인 재벌개혁을 위해서는 법제도 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적 압력 수단을 사용하여 대기업들에게 그 규모와 영향력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사실 삼성 등의 대기업들은 그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국민기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국민들이 개입하고 감시할 수 있는 통로는 없다. 문제의 해법은 재벌을 위한 경제가 아닌 국민 모두의 경제를 위해 국민들 스스로가 이에 개입하고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특히,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23%, GDP의 17%를 차지할 만큼 국내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삼성그룹, 그 중에서도 시가총액 1위(2007년 10월 26일 종가기준 78조 3631억원)로 가장 덩치가 큰 삼성전자를 아예 국민기업으로 만드는 것을 검토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유력한 수단으로 연기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기금을 언급하면 여기저기서 볼 맨 소리가 그치지 않는데, 연기금 구조개혁 문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므로 여기선 언급하지 않는다. 일단 분명한 것은 가입자들의 불만해소와 더불어 사회연대의 성격을 높이는 방향으로 연기금 구조개혁을 전제하고 연기금 활용의 문제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골자는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를 확대하는 방법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최근 주식시장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사회책임투자는 기업의 환경적, 사회적, 지배구조적 측면을 평가하고 이것이 우수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 자체로도 큰 의미는 있지만, 이러한 기준은 장기투자 수익성 위주로 공익성이 부분적으로 결합된 한계를 갖고 있다.

이미 주식투자 전문가들도 사회책임투자 펀드 가입을 권하는 상황이다. 국내 상장회사 100곳의 사회적, 환경적 책임과 지배구조(ESG) 측면을 분석해 본 결과, 우수한 기업군(A+등급)보다 불량한 기업군(D등급)의 수익률 변동성(Volatility)이 2배 이상 높아 사회책임투자 펀드가 투자에 보다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까지 있다.

이미 주식시장의 큰손이 된 국민연금도 이미 사회책임투자 펀드에 3000억원을 투자해 올해 6월까지 주식형 펀드 평균수익률(25.7%)보다 높은 29.15%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2007년 7월 말 현재 212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은 세계 연금 5위 규모를 자랑하는데, 현재 추세라면 국민연금 기금은 앞으로 더욱 불어날 전망이다. 지난 2003년 정부는 국민연금 기금이 경상가격을 기준으로 2012년 400조 원, 2035년 1715조 원, 2043년 2600조 원, 2054년 5820조 원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추계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3월 현재 '시가총액 100대 기업 투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100대 기업 중 절반이 넘는 54개 기업에서 국민연금이 5대 주주 이상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그리고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앞으로 주식투자의 비중을 높일 방침인데, 기금운용위원회가 내놓은 중기 자산운용안에 따르면, 2012년까지 주식투자 비중이 30%로 증가할 예정이다.

또한 국민연금은 지난해 3월 '주식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를 만든 것을 계기로 지분 보유 기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2006년 국민연금은 487회의 주주총회에 참석해 1878건의 상정안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했다.

그런데 이 방법을 삼성 등의 재벌기업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사회책임투자 개념의 확장을 전제로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가운데 사회책임투자의 비중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책임투자 개념의 확장이란, 환경적, 사회적, 지배구조적 측면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기업에 투자한다는 개념을 넘어서 공공부문을 포함하여 국민적 영향력이 막대한 기업들의 주식을 일정 수준 이상 확보해 의결권을 행사함으로써 해당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지배 구조 재편은 투명한 경영은 물론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조절을 가능하게 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국민 경제 전체의 내실화와 좋은 성장에도 기여할 것이다.

‘연기금 사회주의’ 논란은 난센스다

이 같은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 확대는 금민 한국사회당 대선 후보의 핵심 정책이기도 한데, 한나라당 등 보수 진영에서는 이와 비슷한 발상을 염두에 두고 ‘연기금 사회주의’라고 손사래를 치며 예전부터 방어막을 쳐왔다. 하긴 노무현 정권을 아예 친북좌파라 규정하는 사람들이 이를 두고 ‘연기금 사회주의’라 부르는 것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을 놓고 ‘연기금 사회주의’(pension fund socialism)라 칭하는 것은 완전한 넌센스다. 1976년 미국의 유명한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가 처음 제기한 이 ‘연기금 사회주의’론은 미국 노동자들의 연기금을 통한 주식소유 비율이 급증하면서 미국이 조만간 노동자가 생산수단 대부분을 소유하는 사회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는 예측에서 나왔던 말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등이 이러한 주장을 계속하려면, 우선 미국과의 국교 단절부터 주장하고 볼 일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미국은 이미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한편,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 확대는 연기금 본래의 사회적 성격을 좀 더 강화하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 연기금은 본래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때문에 국민들이 스스로의 돈을 국민 경제 전체의 건실화를 위해 쓰자고 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 아니라 현실 가능하고 바람직한 대안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점화된 삼성 사태, 이제 더 이상 김 변호사와 몇몇 시민단체들만의 외로운 싸움이 되어선 안 된다. 부패 척결로 그칠 것이 아니라 재벌 경제를 국민 경제로 전환시키기 위한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만이 이번 삼성 사태의 본질적 해법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 사이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최광은 한국사회당 대변인

국내 선물시장의 역사는 일천하다. 수확기 전에 농산물을 확보하기 위한 밭떼기 거래는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제도화된 시장을 통해 선물거래를 육성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선물거래란 곡물 등 상품이나 주식, 주가지수 등을 미래의 일정한 시점에 미리 정한 가격에 매매하기로 약속하는 거래를 말한다. 곡물 선물거래는 원래 작황에 따른 가격 급등락과 운송 불편 등을 감안해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하고 가격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도입된 기법이다. 주식을 비롯한 금융 선물 역시 안정적으로 자본시장을 확충하고 거래자를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나왔다. 하지만 비교적 적은 돈으로 많은 물량을 확보해 한탕 건질 수 있다는 투기적 심리가 만연해 적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도 사실이다.

금융 선물거래에서 '압구정 미꾸라지'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윤강로(50)씨는 고수 중의 고수로 꼽혀 왔다. 옛 서울은행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던 윤씨는 1994년 미국 시카고선물거래소(CBOT)에서 3개월간 연수를 받은 뒤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선물거래의 매력에 푹 빠져든 그는 이론적인 분석과 모의투자 학습을 통해 내공을 쌓다가 1998년 은행에서 퇴직해 실전에 뛰어들었다. 몇 년간 주가지수 선물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 무려 1300억원. 그는 40대 중반에 이미 전설이 됐다. '미꾸라지'라는 별명이 다소 경박하게 들리기는 해도 급락 장세에서 과감한 손절매를 통해 빠져나가는 위험회피 능력을 높이 평가한 말이니 기분 나쁜 소리는 아닐 것이다.

개인 투자를 통해 거금을 쥔 윤씨는 3년 전 한국선물 회사를 인수해 KR선물로 이름을 바꾸고 회장에 취임했다. 모교에 거금을 쾌척해 장학기금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 인수 이후 지난해까지 내리 손해를 보아 그동안 번 돈의 절반 가량을 날렸다고 한다.

윤 회장이 최근 선물시장에서 발을 빼고 미국 하버드대학 부근에 중고교생 전문 기숙학원을 차렸다는 소식이다. 과감한 투자와 결단으로 전설이 된 그간의 행적을 감안하면 과연 윤 회장다운 업종 전환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인재양성 필요성에 사교육의 경쟁력을 접목한 판단이 주목된다. 윤 회장의 해외 진출이 또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해본다.

김성기 수석논설위원 kimsongk@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