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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훈 경제부 차장대우
한 달 전 글로벌 증시 버블을 우려하는 글을 쓴 뒤 지인들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았다.
“펀드에 투자하고 있는데 언제 돈을 빼야 하느냐”는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사회에 펀드 투자가 본격 시작된 지 몇 년 안 되는데, 어느 새 많은 사람이 펀드 투자를 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세계 증시가 버블이라고 볼 만한 근거가 충분히 있다. 하지만 당장 꺼지지는 않을 것이다. 꺼지기 전의 불꽃이 더 밝다는 말도 있지 않나. 언제 꺼질지를 맞히는 것은 신(神)의 영역이다. 그러니 투자금액을 조금씩 줄여 나가면 어떻겠느냐.”
7일 뉴욕증시에 이어 8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가 급락하는 등 글로벌 증시의 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두 가지 징후를 보면서 버블이 꺼지기까지 좀 더 시간이 갈 것이란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첫째, 미래에셋이 내놓은 ‘인사이트 펀드’ 열풍이다. 이 펀드는 발매 1주일 만에 3조원을 끌어들이는 기염을 토했다. 단기간에 단일 펀드에 이토록 많은 자금이 쏠리는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이 펀드가 어디에 투자하는지 뚜렷이 밝히지 않고, 돈이 되면 어디든 투자하는 고위험·고수익 성격을 갖고 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시중에 갈 데 없는 자금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부동산시장 부진이 이어지는 한 돈은 계속 주식과 펀드로 갈 것이다.
글로벌 시장으로 시야를 넓혀도 역시 과거 수년간 축적된 과잉 유동성이 넘실댄다. 이 엄청난 돈은 미국 경제와 달러 약세가 이어지는 한 신흥시장(이머징마켓) 증시를 계속 주목할 것이다.
둘째, 대선(大選)효과이다. 적어도 선거가 끝나기까지는 정부가 민생(民生)과 직결된 주가와 환율 등의 수치를 관리한다는 것이다. 사실이라기보다는 항간의 믿음에 가까운데, 최근 그 같은 믿음에 근거가 있다고 느낀 적이 있다.
얼마 전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900선을 위협했을 때였다. 수출 기업의 경쟁력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비상사태였다. 그런데 외환 전문가들에게 물어 보니 “큰 폭의 하락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유를 묻자 한결 같이 “선거를 앞둔 정부가 손 놓고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과연 당시 외환당국은 외환시장에 개입했으며 환율은 900선 위에서 비교적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징후는 단기적으론 호재이지만 장차 버블 붕괴의 파괴력을 더욱 키우는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경제에 공짜란 없고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환율을 방어하면 할수록 장차 오히려 주가 하락 폭은 커질 수 있다. 주가와 상극(相剋)관계인 금리 상승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환율을 방어하려면 정부는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여야 하고,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채권을 찍어야 한다. 시중에 채권이 많이 풀리면 채권값은 떨어지고 금리는 오르기 마련이다.
미래에셋의 ‘인사이트 펀드’에 아줌마 부대들이 몰려가는 것도 과거 ‘바이코리아 펀드’ 열풍을 연상시켜 불안하다. 대형 금융기관 간부 A씨는 “나쁘게 말하면 ‘묻지마 펀드’ 아니냐”면서 “묻지마 현상은 버블 말기의 대표적 징후”라고 우려했다.
앞으로 우리가 헤쳐 가야 할 재테크 전선은 그만큼 안개 속이다. 욕심을 좀 줄이고 늘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돈을 한 군데 ‘몰빵’ 하기보다 적절히 분산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이지훈 경제부 차장대우 jh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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