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해 한양대 교수·정보경영공학
한국의 통상교섭본부장과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지난달 말 워싱턴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합의문에 공식 서명했다. 이로써 지난해 2월부터 17개월 간 지루하게 진행돼 온 협상은 완전히 종결됐다. 그러나 미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 지도부가 며칠 전 FTA 반대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미 의회 비준은 난항이 예상된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했던 빌 클린턴 대통령과 달리 힐러리 의원은 한미 FTA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FTA와 세계화는 일부만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은 지난 20년 간 미국 경제성장의 절반이 상위 1%의 부유층 주머니로 들어갔다며 사모펀드와 헤지펀드에 대한 세금 인상을 통해 부를 재분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도 유세 과정에서 “세계화된 경제에 적응했다는 전문직 인력마저도 부지기수로 일자리를 잃고 있다”며 이런 기류에 동참하고 있다. 이렇게 미국 민주당의 대선주자들이 세금 인상을 통한 부(富)의 재분배, 각종 복지정책의 강화, 자유무역주의 반대, 국내 일자리 보호 등을 외치며 포퓰리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포퓰리즘 정책을 통해 노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인식 아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한미 FTA 내용 개정까지 주장하는 의원이 있는가 하면, 의회의 신통상 정책까지 반영해준 자동차 협상에 트집을 잡고, 쇠고기 생산 벨트인 몬태나 네브래스카 등 중부권 지역 민주당 의원들은 주민 불만을 앞세워 한미 FTA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한미 FTA 반대파 목소리가 갈수록 우세해지면 한미 FTA가 미국 의회에서 통과되겠느냐는 비관론도 높아지고 있다. 양국 통상장관 서명식까지 한 한미 FTA에서 주도적 역할은 행정부였다. 그러나 이제 양국 의회로 공이 넘어갔다. FTA가 효력을 얻으려면 양국 의회에서 통과돼야 하기 때문이다. 의회 승인을 못 얻으면 협정문은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이제 국익을 위해 우리 국회의원들이 나서야 할 때다. 정부가 비준을 요구하면 그때 가서 보자는 식의 소극적 자세로는 안 된다. 각 당이 대선을 향한 후보 경선과 정파적 이합집산에 함몰돼 외면하고 미룬다면, 어렵게 추진해온 한미 FTA는 물거품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 국회에서 미 의회보다 먼저 한미 FTA 협정안을 통과시켜, 미 의원들의 추가 협상 요구에 쐐기를 박고 미 의회의 동의를 유도할 수 있는 압박카드로 활용해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지금이야말로 국민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 국회의원들이 나서야 할 때다.


[이영해 한양대 교수·정보경영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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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 규모가 급팽창하면서 세계 경제에 대한 영향력도 막강해지고 있다. 그 영향력을 '쇼크'에 비유한다면 1단계 쇼크는 제조업 쇼크, 2단계 쇼크는 원자재 쇼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산 제품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급속히 확대돼 다른 국가 제품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것이 제조업 쇼크이고, 고도성장을 배경으로 중국이 원자재를 빨아들여 국제 원자재 가격을 급등시키고 있는 것이 원자재 쇼크다.

최근에는 중국이 막대한 무역 흑자와 외환보유액, 지나칠 정도로 많은 유동성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 3단계 쇼크 파장을 미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외환보유액 중 30억달러를 미국 사모펀드인 블랙스톤 지분 인수에 투입했던 중국이 이번에는 영국 바클레이스은행 지분 3.1%(22억유로 상당)를 확보하고 이 은행과 함께 네덜란드 최대 은행인 ABN암로 인수전에 뛰어들겠다 한다. 투자 주체인 중국개발은행은 바클레이스와 ABN암로 합병이 성사되면 추가로 76억유로를 투입해 합병은행 지분 7.7%를 확보할 계획인 만큼 이러한 중국 움직임에 세계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대형 외국은행 지분 확보와 인수ㆍ합병(M&A) 시도는 과잉 외화공급에 따른 위안화 절상 압력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이 사실상 고정환율제에 가까운 엄격한 관리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 넘쳐나는 외화를 해소하는 일이 큰 과제이며, 이런 차원에서 외국기업 사냥에 막대한 외화를 투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상 국제 기관투자가라 할 수 있는 중국정부와 정부계 은행의 외국기업 M&A 시도는 이제 시작일 뿐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이 틀림없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블랙스톤을 통해 그런 것처럼 에너지, 자원 등 국가 전략산업에서 중국이 글로벌 지배력을 계속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이는 점이다. 그러기에 미국 등 선진국들이 중국의 이러한 야심에 경계의 눈초리를 보냄과 함께 방위책 마련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움직임은 우리로서도 강 건너 불이 결코 아니다. 우리 알짜배기 은행이나 기업도 얼마든지 중국의 M&A 대상이 될 수 있다. 세계가 환율제도 개선을 통해 과잉 외화공급을 해소하도록 중국당국에 촉구해야 하겠지만, 당장에는 금융투자가로서의 중국 야심에 대처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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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지수 2000시대가 개막했다. 주식시장에서 올해 들어 거침없는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코스피지수가 그제 장중 2000선을 처음 넘어서더니 마침내 어제는 종가 기준으로도 2000선을 돌파하는 신기원을 이룩한 것이다.

지금 증시는 온통 낙관적인 분위기 일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중 유동성은 넘치는데 부동산시장 침체로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돈이 주식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기업 실적 향상과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 세계 증시 동반 상승도 국내 주식시장의 뜨거운 투자 열기를 뒷받침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국가신용등급까지 상향 조정됐으니 시장 분위기가 더욱 달아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주가가 오를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코스피지수가 별다른 조정없이 3개월 사이 무려 500포인트 넘게 상승한 것을 예사로운 일로 보기는 어렵다. 특히 최근 활황장세에서 비중이 크게 높아진 개인투자자들은 분위기에 편승한 투자를 자제해야 할 것이다.

실적 장세라고 하지만 원화값 상승에 따른 수출 기업 채산성 악화와 고유가 부담은 기업 실적을 악화시켜 주식시장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중국의 긴축조치로 차이나 쇼크가 언제든지 우리 경제와 증시에 복병으로 등장할 위험이 있다. 주가가 일단 하락세로 반전되면 그동안 빨리 오른 만큼 낙폭이 깊어질 수 있음을 투자자들은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코스피지수 2000시대라는 외형적 성장에 걸맞은 질적 성장도 시급한 과제다. 증시 활황을 틈타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가 기승을 부릴 조짐이 나타나는 것은 국내 증시가 투명성과 투자자 보호에 여전히 미흡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증권사 직원들이 고객 동의없이 임의로 매매하는 고질적인 병폐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증권사 주가 전망이 틀려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끼쳤다고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다.

증권당국과 업계는 주가 상승에 환호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부끄러운 모습부터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

우리 증시도 이제 개인투자자들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후진성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주식형 펀드 잔액이 70조원을 넘어섰다고 하지만 아직 더 성장할 여지가 많다. 간접 투자를 유도할 수 있도록 펀드 판매 수수료 인하 등 유인책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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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코스피지수가 어제 2000선을 돌파한 것은 의미가 크다. 우리 증시가 지수 1000선을 고점으로 급등락을 거듭하던 시대를 마침내 마감하고, 확실히 한 단계 도약을 이뤘음을 상징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주가는 투자자들이 특정 시점에 기업의 가치를 평가한 ‘가격’일 뿐이다. 상장기업들의 성적표일 수는 있어도, 경제의 성적표는 아니다. 주가가 얼마냐로 경제정책의 잘잘못을 따질 일은 아니다. 최근 몇 해 가계소득 증가는 미진한 가운데, 기업 수익이 급증한 것이 주가를 끌어올린 핵심 동력이었다. 이는 부정적 측면이기도 하다. 가계소득 증가율은 이제 겨우 안정돼 가고 있다. 다시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올해 들어 주가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오르고, 기업 실적에 견줘 이미 과도한 수준까지 올랐다는 우려도 일부에서 나온다. 경기가 하반기부터는 회복세를 보이고 기업실적도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넘쳐나는 돈이 주가를 끌어올리는 힘이라는 분석에도 투자자들은 귀기울여야 한다. 미국에 이어 유럽과 중국도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다. 유동성 증가에는 한계가 있다. 주식형 펀드로 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식을 처분해 차익실현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불과 일곱 달 만에 40%나 오르는 주식시장을 안정된 시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통화당국은 부동산 거품에 이어 주식 거품이 커지지 않도록 한발 앞서 움직여야 하고, 정책 방향을 투자자들이 예측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우리 증시가 자금조달 창구로서 제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도 ‘지수 2000’의 빛을 흐리게 한다. 기업 공개는 몇 해째 지지부진하고, 유상증자도 활발하지 않다. 기업들은 자사주 사들이기에 열을 올린다.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을 막는다는 게 구실이나, 주가 관리 성격이 짙다. 현금을 많이 보유한 기업들이 투자에 소극적이니, 증시의 자금조달 구실이 살아나기 어렵다. 경영권 보호장치를 강화해 투자의욕을 살리자는 의견도 있으나, 부작용이 훨씬 클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더 급한 것은 투자자 보호 쪽이다. 여전히 난무하는 주가조작을 차단하고, 상장사들이 더 투명하게 경영상황을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몰릴 때, 주가조작 세력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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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사장
얼마 전 지점을 들렀을 때의 일이다. 대학교 증권동아리를 운영한다는 한 학생을 만났는데, 이 학생은 “고시원 생활이 힘들어도 요즘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말을 붙여 왔다.

‘고시 준비가 쉽지는 않을 텐데, 무슨 낙이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말이 이어졌다.

“몇 달 전 전세보증금을 빼서 주식 한두 종목에 투자했는데 큰 수익이 났거든요. 이젠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주식에 투자해 볼까 생각해요.”

주식투자를 하느라 전세를 빼서 고시원으로 옮겨 가고, 이젠 빚을 내서, 게다가 ‘공부하라’고 학생에게 대출해 주는 자금까지 빼내 주식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증권사 경영인의 입장으로선 투자에 열정을 가지고 자본시장에 믿음을 가진 소중한 고객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증권인들에게 주가 2000은 ‘꿈의 지수’였다. 오랫동안 나라 전체가 ‘선진국’이라는 이상을 그리며 달려왔다면 증권인들은 ‘주가 2000 시대’라는 이상향을 그리며 달려왔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증권인들조차 이뤄지기 힘들다고 생각하던 꿈의 지수가 이제 현실이 됐다. 국민 전체에 증권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거액의 토지 보상금을 싸 들고 증권사를 찾아와 “집을 넓혀 이사를 가야 하는데, 딱 석 달만 투자할 펀드를 추천해 달라”고 말하는 고객도 나오고 있다. 국내펀드시장은 3년 전 8조원에서 이제는 70조원에 달하고 있고, 투자 상담을 하러 온 고객들로 객장도 붐빈다.

그러나 기대가 높다 보면 서둘러 큰 수익을 얻으려 하기 쉽고, 이에 따른 부작용 역시 적지 않다. 막연한 기대감에 거액의 빚을 내서 투자하는 투자자가 나오기 시작하는가 하면, 펀드마저 팔았다 샀다를 계속하며 단기투자하려는 투자자도 나온다.

이런 분들에게 “이젠 한국 증시를 믿어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1000선을 넘지 못해 고민해 왔다. 그런 증시의 2000선 도약에는 세계 증시의 동반 상승이라는 상황 외에도, 맨손으로 출발해 마침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우리 기업들의 노력, 많은 시행착오를 넘어 이뤄진 적립식 펀드 등 장기 간접투자의 정착 등 한국 경제가 수십 년간 이뤄온 성과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증시는 현재 이머징 마켓(성장시장)을 떠나 선진 증시로 진입하려는 문턱이다. 과거 1980년대 1000에서 1만으로 성장한 미국증시가 그랬듯이 저금리, 변액보험 유행, 퇴직연금 도입, 기업이익 증가세 등 여러 좋은 여건이 이미 갖춰진 상태다. 한국 증시에 ‘2000’은 지나가는 ‘정거장’에 불과하고, 앞으로도 장기적인 상승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한국 증시가 장기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공부해야 할 학생이 확실하지도 않은 개별 주식에 학자금 명목으로 빚을 내 성급하게 투자할 필요도 없고, ‘언제 다시 떨어질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단기투자에 매달릴 일도 없다.

단지 원칙에 따라 장기투자하면 된다. 때로 주가가 떨어지는 조정이 나타날 수 있지만, 적립식 펀드로 차분히 조금씩 투자해 놓는 사람에겐, 일시적인 조정이 장기적으로 오히려 높은 수익률을 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다양한 해외펀드, 부동산펀드 등의 대안펀드를 활용한 분산투자가 된다면 금상첨화다. 증권가에서는 “장기 분산 투자자만이 시간과 돈이 돈을 벌어주는 복리효과라는 특권을 향유할 수 있다”고 표현한다.

주가 2000 시대. 투자자도 선진 투자자의 마인드를 가지자고 권해 본다.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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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지수가 2000선을 들어섰다. 1980년 1월 100으로 시작한 이래 27년여 만의 기록이다. 코스피 2000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돈의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출을 중심으로 잘 나가는 대기업들은 국내 투자를 기피한 채 현금을 쌓아두거나 자사주 매입, 부채 비율 인하 등 경영권 방어에 급급하다. 일관성 잃은 거미줄 정부규제, 외국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 강성 노조와 비싼 인건비 등 국내 투자 환경 악화가 우리 기업들을 보수 경영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국토균형개발 계획에 따라 전국에서 풀린 토지보상금과 함께 기업 현금은 금융기관을 거쳐 개인 손으로 넘어갔고, 한때는 부동산으로 갔다가 이제는 증시로 몰려다니고 있다. ‘자고 나면 억씩 오르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종합부동산세, 담보대출규제, 양도소득세 중과, 분양가 상한제 등 고강도 가격 억제책으로 주춤하다. 또 올 대선에서 누가 정권을 잡든 1가구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보유세 감면을 넘어서는 획기적 규제 완화는 어렵다는 예측이 투자처로서의 부동산 매력을 반감시킨다. 국내 펀드 260조원, 가계금융자산 중 주식 비중 19.1%, 적립식 펀드 1000만개 달성 기대는 이러한 유동성 흐름의 표피일 뿐이다.

유동성의 증시 유입이 ‘치고 빠지기’ 식이 아니라 저출산·고령화라는 근본적 구조 변화에 따른 현상이라는 근거도 있다. 주가지수의 일일 변동성은 2000년 2.86%로부터 계속 떨어져 최근 2~3년간 1%를 유지하고 있다. 증권이 부동산·예금·채권과 함께 안정적 투자처로 바뀌었다는 방증이다. 이처럼 부동산과 저축만 고집하던 가계들이 펀드를 통해 대거 뛰어들면서 증시가 안정적인 돈줄을 갖게 된 이면에는 안정적 노후 자금 마련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려는 베이비 붐 세대들이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공적연금 파산 우려, 저출산과 무관치 않은 초저금리, 고령화에 따른 예상 수명 상승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런 변화를 경험한 바 있다. 8000만명에 달하는 미국의 베이비 붐 세대는 노후 대비를 위해 1980년대 초반부터 대거 펀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간 안정 위주로 운용하던 연·기금도 주식투자 비중을 늘리면서 합세했고, 그 덕에 미국 펀드시장은 10년 만에 7배 이상 덩치가 커졌다. 또 15년 이상 지수 1000대에 갇혀 있던 다우존스지수도 급등, 세기 말 10000시대를 맞이했다. 우리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거시경제 변수 조작을 통해 시장에 영향을 미치려 해서는 곤란하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추가로 올릴 경우 중소기업과 서민가계는 타격을 받겠지만 증시가 식을지는 분명치 않다. 투자자들이 금리 인상을 경기회복의 신호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가가 오르더라도 산유국의 오일머니가 오히려 세계 주가 상승을 이끌 수도 있다. 환율과 주가의 관계도 단순치 않다. 환율 방어를 명목으로 시장에 개입할 경우 시중유동성의 증가와 금리 상승의 덫에 빠질 위험도 있다.

주가 변동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근본적 체질 개선이 중요하다. 규제를 줄이고 세금 부담을 낮춰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가 늘도록 해야 한다. 국내 경제가 회복되고 기업 가치가 오르면 이번에 저평가가 해소된 우리 기업들의 주가를 든든한 펀더멘털로 받쳐주게 된다. 유상증자, 우량 공기업 상장 등으로 경제가 튼실해지고 또다시 주가가 오르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미시적으로 증권 상품 및 사업 자유화, 금융거래비용 인하, 금산분리 완화를 통한 대형 투자은행의 등장 촉진 등 사전 규제는 완화하고 금융감독과 사후 처벌은 강화하여 금융산업을 선진화해야 한다.

[[김영세 /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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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열이나 거품의 존재를 확인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뜨겁다고 다 과열이 아니고, 부풀었다고 다 거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통계와 예측모델을 갖고 있던 앨런 그린스런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조차 현직 시절 "거품이 터져 그걸 입증하기 전까지는 거품이 있는지 확실히 알기가 아주 어렵다"고 인정했을 정도다.

결코 진입을 허용하지 않을 것 같던 지수 2,000고지를 밟은 현 주식시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과열의 감(感)은 느낄지언정, 누구도 실체적 거품을 자신 있게 증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 투자자들이 모처럼 활황장을 만끽하고 있는 지금은 과열 얘기를 섣불리 꺼낼 분위기도 아니다.

그렇다 해도 누군가는 과열을 걱정하고, 거품을 경계해야만 한다. 과학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용기 있게 우려의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거품은 터지는 순간 너무도 큰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에, 단 1%의 가능성이 엿보이더라도 싹을 잘라야만 한다.

시장경제에서 그 역할을 할 곳은 딱 한군데 뿐이다. 중앙은행이다.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정부는 생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인플레이션 타도(inflation-fighter)'의 소명을 받고 탄생한 중앙은행만이 진정 거품을 경고하고,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현 증시에 대해 너무 조용한 것 같다. 몇 차례 과열을 걱정하는 언급은 있었지만, 무거운 액센트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쪽 경고음이 더 크게 들렸을 정도다.

한은이 거품을 애써 외면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확신이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과열'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증시가 '과속'중임은 명백하다.

지수 1,500에서 2,000으로 가는데 고작 3개월 남짓 걸렸다. 유동성장세, 실적장세, 글로벌 동조장세란 말로도 이 놀랄만한 스피드는 설명이 안 된다. 그린스펀이 말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포말의 신호(sign of froth)'쯤은 될 것이다.

아무리 증시기반이 펀드위주로 변했다고는 하지만, 간접투자도 과속은 위험하다. 시장의 속도위반을 단속하는 것 역시 중앙은행의 몫이지만, 한은에서 그런 모습이 잘 발견되지 않는다. 시장이 듣지 않아도, 말은 해야 하는데 말이다.

1~2년에도 그랬다. 지금의 증시와는 비견도 되지 않는 부동산거품이 있었다. 망국적 수준이었다. 하지만 '경기' 논리에 빠진 한은은 이 위험천만한 자산버블에 대해 지극히 소극적이었고, 결과적으로 부적절했다.

'과감하고 시끄러운 중앙은행'과 '신중하고 조용한 중앙은행' 가운데 무엇이 더 좋은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떤 중앙 은행이든 거품에 대해서 만큼은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투사(bubble-fighter)'여야 한다.

증시는 지금 파티중이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화려한 축제다. 모두들 '끝나지 않는 긴 파티(장기랠리)'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영원한 파티는 없다. 과열된 축제일수록 끝은 비극적이다.

누군가는 뜨겁게 달궈지는 파티열기를 좀 식혀야 한다. 욕을 먹더라도 말이다. 파티가 서서히 무르익어 오래가게 하려면, 더더욱 그러해야 한다. 중앙은행을 두고 '파티를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party-pooper)'라고 부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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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송병락] 꿀벌은 각종 과일나무·농작물·꽃들로부터 자기에게 필요한 꿀을 얻는다. 그리고 몸에 꽃가루를 묻혀 열매를 맺게 한다. 그런데 꿀벌의 습격이 무섭다고 벌을 모두 없애 버리면 어떻게 될까? 식물들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꽃을 피우지 못하는 등 생태계에 막대한 피해를 줄 것이다.

 재벌을 죽이면 어떻게 될까? 그 일가나 종업원만 손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기업생태계와 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피해가 어마어마하다. 꿀벌을 죽이면 아름다운 꽃과 열매는 얻지 못하고 풀만 무성해지듯이 재벌을 죽이면 사기업은 줄고 공기업만 무성해지기 쉽다. 사실 공기업은 이미 ‘신이 내린 직장’이라 할 정도가 되었다.

 사기업이 상대적으로 감소함에 따라 취직이 안 돼 아예 포기하는 사람, 취직해도 실직 불안에 떠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일류 사기업에 근무하는 직원 중에 공기업 취직 준비를 하는 사람이 늘어 간다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어느 언론인은 이십대의 태반이 백수라는 이른바 ‘이태백’이 삼태백, 사태백까지 돼 인생을 포기하는 40대가 증가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꿀벌은 해충과 식물 병을 옮기거나 과실과 꽃을 파괴하는 등의 피해를 주기도 하고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는 경우도 있다. 재벌 역시 족벌 경영, 경제력 집중 등의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꿀벌과 재벌 모두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신(神)은 꿀벌에게 꿀을 얻기 위해서는 각종 식물의 꽃가루를 옮겨 결실을 보도록 했다. 시장경제는 기업에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기업에 많은 도움을 주도록 만들어 놓았다. 예를 들어 포스코의 이윤이 많아진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을 만들어 우리 자동차나 조선회사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만약 포스코 제품이 부실하다면 우리 자동차·배·가전제품도 모두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기업이 기업생태계나 국가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꿀벌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또한 다양하다. 다른 예를 보자.

 ‘기업인은 민주화 인사다’고 말하면 반감을 갖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고급차를 만들어 팔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델T’라는 값싼 차를 만들어 일반인도 손쉽게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역사학자 해럴드 에번스는 『그들이 미국을 만들었다』에서 포드야말로 진정한 민주화 인사라고 했다. 미국의 민주화에는 기업인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이런 경제민주화가 있어야 정치민주화가 된다. 이 기준으로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휴대전화·TV·컴퓨터·자동차 등을 만들어 대중화에 앞장선 우리 재벌기업 경영인들도 민주화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꿀벌은 인간에게 로열젤리·밀랍·화분(花粉), 약용 벌독(毒) 등의 혜택을 준다. 재벌 역시 제품·서비스 이외에 민주화 등 많은 혜택을 준다. 현대전에 필수인 최첨단 군함인 이지스함을 포함해 각종 군사장비도 생산하고, 스포츠팀 운영을 통해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를 양성하며, 학교나 연수원을 통해 각종 인재도 양성한다.

 꿀벌의 적은 새·말벌·잠자리·거미 등 많다. 이 중 천적은 말벌이다. 재벌 역시 적이 많다. 천적도 많다. 우리 10대 그룹 소속 277개사의 자산 총액이 미국 GE 한 회사보다도 작다. 외국의 재벌은 그 규모가 방대하다. 그런데 꿀벌은 상대방의 벌통을 파괴하거나 잡아먹는 일이 없지만 기업 중에는 헤지펀드 등 기업 사냥에 나선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이 말벌 같은 존재다.

 꿀벌을 많이 키우면 꿀을 많이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천에 아름다운 꽃과 과일이 많아진다. 기업도 많이 키우면 키울수록 일자리가 많아지고, 주식값도 올라가는 등 근로자들의 삶이 풍요로워진다. 더욱이 외국의 말벌로부터 우리 기업을 지킬 수 있다.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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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 노사관계 이야기만 나오면 으레 일본의 도요타자동차 사례를 들곤 한다. 60년 가까이 노사가 분규 없이 상생 구조를 이뤄낸 결과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갖는 기업이 됐다. 그러나 화합적 노사관계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굳이 일본까지 갈 필요는 없다. 바로 우리 옆에 있는 현대중공업이 좋은 사례다. 이 회사의 근로자들은 24일 임금 5.71% 인상, 성과금 최소 368% 지급, 격려금 300%에 추가로 100만원 지급, 사내근로복지기금 50억원 출연 등의 합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로써 현대중공업은 13년째 분규 없이 근로조건을 결정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매우 투쟁적이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는 골리앗 크레인 위의 농성 모습이 바로 현대중공업 노조의 모습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러다 보니 경영은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윤은 줄었고, 회사의 대외 신인도 역시 바닥으로 추락했다. 노사 공멸의 위기 앞에서 노조는 변신을 시도했다. 1995년부터는 분규 없는 협조적 노사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급기야 2004년에는 민주노총으로부터의 제명이라는 ‘수모’까지 당하지만, 평화의 대가는 풍성했다. 이번에 근로자들이 받게 될 성과금과 격려금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포천’지가 선정하는 세계 500대 기업의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세계 최고의 선박과 엔진과 기계 등을 만들어낸 데에 대한 훈장이다. 최고의 찬사를 받을 만하다.

현대중공업의 근로자들은 자신들에게 좋은 일을 했을 뿐 아니라 수많은 다른 사람에게 덕을 베푼 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좋은 제품을 쓰는 소비자에게 좋은 일을 했다. 2005년에는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유조선을 구입해서 쓰는 미국의 엑슨모빌사가 특별 사례금으로 100억원을 주기까지 했다. 그뿐인가. 주가가 올라서 투자자도 넉넉하게 해주었다. 협력 업체들과 울산 시민 모두에게 이로움을 베푸는 일이기도 하다.

노동자와 사용자를 계급투쟁 관계로 몰아가려는 직업적 노동운동가들은 현대중공업의 이런 모습으로부터 깨달아야 한다. 노동자의 투쟁은 악덕 자본가 계급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다. 이제 기업에 자본을 대는 사람은 ‘머리에 뿔 달린’ 악덕 자본가가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개미 투자자들이다. 그들이 증권사 객장을 통해서, 주식 공모를 통해서, 각종 펀드를 통해서 기업에 자본을 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투쟁을 통해서 차지하려는 이윤은 악덕 자본가가 착취하는 ‘잉여가치’가 아니라 수십만 수백만 명의 개미 투자자들에게 돌아갈 배당이다.

또 과격한 투쟁은 소비자와의 투쟁이기도 하다. 파업과 태업은 생산성을 낮추고 생산원가를 높인다. 그 결과 가격은 높아지고 수백만, 수천만의 소비자가 그 피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제 노조는 악덕 자본가와 투쟁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과 세계의 소비자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서 타도해야 할 자본가 계급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대다수는 노동자이면서 자본가이자 소비자다. 그 때문에 과격한 투쟁의 결과는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는 도끼가 돼 돌아오기 마련이다. 다행히도 한국인은 빨리 배우는 능력을 가졌다. 이제 많은 기업에서 협력적 노사관계가 자리잡아 가고 있다. GS칼텍스가 그렇고, 코오롱이 그렇다. 회사는 일하는 곳이지 싸우는 곳이 아니라는 평범한 지혜를 깨우쳤기 때문일 것이다. 더 많은 기업이 그 뒤를 이을수록 우리는 더 빨리 선진국의 문지방을 넘게 될 것이다.

[[김정호 / 자유기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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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영·논설실장
기업을 자동차처럼 사고파는 M&A(기업 인수·합병, Merger and Acquisition)를 보는 한국인의 시각은 아직 ‘박정희 시대’에 머물고 있다. 지독한 편견과 선입관에 전염되어 있다.

예를 들어 M&A를 시도하는 쪽은 멀쩡한 회사를 잡아먹는 상어 같은 악당(惡黨)이고, 공격 받는 쪽은 순진하게 당하는 약자(弱者)라는 식이다. 또 외국인 주주가 많아진 기업은 우리 기업이 아니라, 남의 회사라는 잠재의식도 뿌리 깊다.

며칠 전 금융감독원의 고위 당국자마저 적대적 M&A에 방어 장치가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을 보면 민족 자본, 국산 재벌을 키워야 한다는 개발독재형 발상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재경부의 고위 당국자가 이를 부인, 적대적 M&A 정책을 둘러싼 정부 내 혼선은 가라앉았다.

하지만 총리실이나 재경부에서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과정에서 미국 측 반발을 의식해 M&A 제한 조치를 추가로 만들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할 뿐, 한국 경제가 한 계단 더 뛰는 과정에서 M&A 시장이 형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까지는 없어 보인다.

M&A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 중 하나는 마치 잘나가는 회사를 약탈해 간다는 인식이다. 이런 알레르기 증상은 80년 대부터 형성된 것이지만, 선진국의 연구 결과, 이는 경영권을 빼앗긴 경영진과 언론,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여론 조작이라는 견해가 많다.

미국에서는 지난 75년부터 90년 사이에 3만5000여 건의 M&A가 이루어졌으나, 그중 경영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적대적 M&A가 성사된 경우는 172건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M&A란 탐욕스러운 투자자들이 인정사정없이 회사를 집어가는 강도 행위쯤으로 국내에 소개되어 있다.

여기서 놓칠 수 없는 것은 어느 분야에서 M&A가 왕성하게 진행되느냐는 점이다. 미국 역사상 M&A가 가장 많았던 80년대 중반을 보면 석유, 은행, 보험, 식품, 타이어 등 과잉 중복투자로 경영이 부실해진 업종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M&A가 멀쩡한 회사를 무너뜨리기보다는 부실산업을 구조조정해주는 바람직한 역할을 맡았던 셈이다.

재계에서는 M&A당할까 신경 쓰느라 경영진이 장기 경영전략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있다. 또 연구 개발에 투자해야 할 돈을 경영권 방어에 투입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미국 경영학계의 분석은 전혀 다르다. M&A 붐이 불기 전인 지난 1950년대 이후 30년간과 그 후 M&A 붐이 불었던 지난 80년대 10년간 미국 기업들의 경영 실적을 비교할 때 오히려 연구 개발에 투입한 예산은 훨씬 증가했다. 노동 생산성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M&A 위협에 자극받아 장기 투자를 더 했고, 경영 실적도 좋아졌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2000년대 들어 국경을 넘어 M&A 시장이 확장되는 배경에는 80년대 미국의 경험이 경영 현장에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M&A란 그것이 적대적이든, 합의에 따른 것이든 크게 보면 기업 가치를 높여 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주주와 종업원, 경영진이 모두 만족할 수 있고, 나라 경제의 활성화에도 기여한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물론 적대적 M&A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국내 기업이 혹시 있을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첨단 기술을 갖고 있거나 국가 안보상 중요한 극소수 기업은 일본이나 미국처럼 외국인 투자자들의 공격으로부터 법으로 방어벽을 둘러줘야 한다.

그러나 국경 넘어 사업할 수밖에 없는 통신회사나 자동차-조선 회사, 세계 어디 가나 비슷한 기술이 개발되는 반도체-전자 회사, 해외 주식과 부동산에 엄청난 펀드 자금을 투자하는 금융회사들까지 경영권을 보호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낯 뜨거운 짓이다. 이들이 외국기업을 M&A할 때는 거창한 홍보 자료를 낸 후, 자기들이 공격받으면 테러리스트라도 만난 듯 호들갑을 떨고 있다.

특히 엄청난 외화를 버는 수출 대기업들이 적대적 M&A를 막아야 순(純)국산 기업을 지킬 수 있다는 식으로 잘못된 애국심을 건드리는 여론 조작도 속 보이는 행동이다.

재계는 보호막을 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M&A를 경영 전략에 활용해야 한다. 외국 자본과 경영기법, 첨단 기술을 적극 인수하고 합병해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이기는 길을 찾아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대기업들 엄살에 휘둘리지 말고 M&A가 좀 더 쉽게 이루어지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송희영·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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