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논설실장
기업을 자동차처럼 사고파는 M&A(기업 인수·합병, Merger and Acquisition)를 보는 한국인의 시각은 아직 ‘박정희 시대’에 머물고 있다. 지독한 편견과 선입관에 전염되어 있다.

예를 들어 M&A를 시도하는 쪽은 멀쩡한 회사를 잡아먹는 상어 같은 악당(惡黨)이고, 공격 받는 쪽은 순진하게 당하는 약자(弱者)라는 식이다. 또 외국인 주주가 많아진 기업은 우리 기업이 아니라, 남의 회사라는 잠재의식도 뿌리 깊다.

며칠 전 금융감독원의 고위 당국자마저 적대적 M&A에 방어 장치가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을 보면 민족 자본, 국산 재벌을 키워야 한다는 개발독재형 발상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재경부의 고위 당국자가 이를 부인, 적대적 M&A 정책을 둘러싼 정부 내 혼선은 가라앉았다.

하지만 총리실이나 재경부에서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과정에서 미국 측 반발을 의식해 M&A 제한 조치를 추가로 만들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할 뿐, 한국 경제가 한 계단 더 뛰는 과정에서 M&A 시장이 형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까지는 없어 보인다.

M&A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 중 하나는 마치 잘나가는 회사를 약탈해 간다는 인식이다. 이런 알레르기 증상은 80년 대부터 형성된 것이지만, 선진국의 연구 결과, 이는 경영권을 빼앗긴 경영진과 언론,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여론 조작이라는 견해가 많다.

미국에서는 지난 75년부터 90년 사이에 3만5000여 건의 M&A가 이루어졌으나, 그중 경영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적대적 M&A가 성사된 경우는 172건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M&A란 탐욕스러운 투자자들이 인정사정없이 회사를 집어가는 강도 행위쯤으로 국내에 소개되어 있다.

여기서 놓칠 수 없는 것은 어느 분야에서 M&A가 왕성하게 진행되느냐는 점이다. 미국 역사상 M&A가 가장 많았던 80년대 중반을 보면 석유, 은행, 보험, 식품, 타이어 등 과잉 중복투자로 경영이 부실해진 업종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M&A가 멀쩡한 회사를 무너뜨리기보다는 부실산업을 구조조정해주는 바람직한 역할을 맡았던 셈이다.

재계에서는 M&A당할까 신경 쓰느라 경영진이 장기 경영전략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있다. 또 연구 개발에 투자해야 할 돈을 경영권 방어에 투입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미국 경영학계의 분석은 전혀 다르다. M&A 붐이 불기 전인 지난 1950년대 이후 30년간과 그 후 M&A 붐이 불었던 지난 80년대 10년간 미국 기업들의 경영 실적을 비교할 때 오히려 연구 개발에 투입한 예산은 훨씬 증가했다. 노동 생산성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M&A 위협에 자극받아 장기 투자를 더 했고, 경영 실적도 좋아졌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2000년대 들어 국경을 넘어 M&A 시장이 확장되는 배경에는 80년대 미국의 경험이 경영 현장에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M&A란 그것이 적대적이든, 합의에 따른 것이든 크게 보면 기업 가치를 높여 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주주와 종업원, 경영진이 모두 만족할 수 있고, 나라 경제의 활성화에도 기여한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물론 적대적 M&A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국내 기업이 혹시 있을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첨단 기술을 갖고 있거나 국가 안보상 중요한 극소수 기업은 일본이나 미국처럼 외국인 투자자들의 공격으로부터 법으로 방어벽을 둘러줘야 한다.

그러나 국경 넘어 사업할 수밖에 없는 통신회사나 자동차-조선 회사, 세계 어디 가나 비슷한 기술이 개발되는 반도체-전자 회사, 해외 주식과 부동산에 엄청난 펀드 자금을 투자하는 금융회사들까지 경영권을 보호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낯 뜨거운 짓이다. 이들이 외국기업을 M&A할 때는 거창한 홍보 자료를 낸 후, 자기들이 공격받으면 테러리스트라도 만난 듯 호들갑을 떨고 있다.

특히 엄청난 외화를 버는 수출 대기업들이 적대적 M&A를 막아야 순(純)국산 기업을 지킬 수 있다는 식으로 잘못된 애국심을 건드리는 여론 조작도 속 보이는 행동이다.

재계는 보호막을 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M&A를 경영 전략에 활용해야 한다. 외국 자본과 경영기법, 첨단 기술을 적극 인수하고 합병해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이기는 길을 찾아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대기업들 엄살에 휘둘리지 말고 M&A가 좀 더 쉽게 이루어지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송희영·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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