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사장
얼마 전 지점을 들렀을 때의 일이다. 대학교 증권동아리를 운영한다는 한 학생을 만났는데, 이 학생은 “고시원 생활이 힘들어도 요즘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말을 붙여 왔다.

‘고시 준비가 쉽지는 않을 텐데, 무슨 낙이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말이 이어졌다.

“몇 달 전 전세보증금을 빼서 주식 한두 종목에 투자했는데 큰 수익이 났거든요. 이젠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주식에 투자해 볼까 생각해요.”

주식투자를 하느라 전세를 빼서 고시원으로 옮겨 가고, 이젠 빚을 내서, 게다가 ‘공부하라’고 학생에게 대출해 주는 자금까지 빼내 주식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증권사 경영인의 입장으로선 투자에 열정을 가지고 자본시장에 믿음을 가진 소중한 고객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증권인들에게 주가 2000은 ‘꿈의 지수’였다. 오랫동안 나라 전체가 ‘선진국’이라는 이상을 그리며 달려왔다면 증권인들은 ‘주가 2000 시대’라는 이상향을 그리며 달려왔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증권인들조차 이뤄지기 힘들다고 생각하던 꿈의 지수가 이제 현실이 됐다. 국민 전체에 증권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거액의 토지 보상금을 싸 들고 증권사를 찾아와 “집을 넓혀 이사를 가야 하는데, 딱 석 달만 투자할 펀드를 추천해 달라”고 말하는 고객도 나오고 있다. 국내펀드시장은 3년 전 8조원에서 이제는 70조원에 달하고 있고, 투자 상담을 하러 온 고객들로 객장도 붐빈다.

그러나 기대가 높다 보면 서둘러 큰 수익을 얻으려 하기 쉽고, 이에 따른 부작용 역시 적지 않다. 막연한 기대감에 거액의 빚을 내서 투자하는 투자자가 나오기 시작하는가 하면, 펀드마저 팔았다 샀다를 계속하며 단기투자하려는 투자자도 나온다.

이런 분들에게 “이젠 한국 증시를 믿어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1000선을 넘지 못해 고민해 왔다. 그런 증시의 2000선 도약에는 세계 증시의 동반 상승이라는 상황 외에도, 맨손으로 출발해 마침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우리 기업들의 노력, 많은 시행착오를 넘어 이뤄진 적립식 펀드 등 장기 간접투자의 정착 등 한국 경제가 수십 년간 이뤄온 성과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증시는 현재 이머징 마켓(성장시장)을 떠나 선진 증시로 진입하려는 문턱이다. 과거 1980년대 1000에서 1만으로 성장한 미국증시가 그랬듯이 저금리, 변액보험 유행, 퇴직연금 도입, 기업이익 증가세 등 여러 좋은 여건이 이미 갖춰진 상태다. 한국 증시에 ‘2000’은 지나가는 ‘정거장’에 불과하고, 앞으로도 장기적인 상승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한국 증시가 장기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공부해야 할 학생이 확실하지도 않은 개별 주식에 학자금 명목으로 빚을 내 성급하게 투자할 필요도 없고, ‘언제 다시 떨어질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단기투자에 매달릴 일도 없다.

단지 원칙에 따라 장기투자하면 된다. 때로 주가가 떨어지는 조정이 나타날 수 있지만, 적립식 펀드로 차분히 조금씩 투자해 놓는 사람에겐, 일시적인 조정이 장기적으로 오히려 높은 수익률을 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다양한 해외펀드, 부동산펀드 등의 대안펀드를 활용한 분산투자가 된다면 금상첨화다. 증권가에서는 “장기 분산 투자자만이 시간과 돈이 돈을 벌어주는 복리효과라는 특권을 향유할 수 있다”고 표현한다.

주가 2000 시대. 투자자도 선진 투자자의 마인드를 가지자고 권해 본다.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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