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지수가 2000선을 들어섰다. 1980년 1월 100으로 시작한 이래 27년여 만의 기록이다. 코스피 2000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돈의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출을 중심으로 잘 나가는 대기업들은 국내 투자를 기피한 채 현금을 쌓아두거나 자사주 매입, 부채 비율 인하 등 경영권 방어에 급급하다. 일관성 잃은 거미줄 정부규제, 외국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 강성 노조와 비싼 인건비 등 국내 투자 환경 악화가 우리 기업들을 보수 경영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국토균형개발 계획에 따라 전국에서 풀린 토지보상금과 함께 기업 현금은 금융기관을 거쳐 개인 손으로 넘어갔고, 한때는 부동산으로 갔다가 이제는 증시로 몰려다니고 있다. ‘자고 나면 억씩 오르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종합부동산세, 담보대출규제, 양도소득세 중과, 분양가 상한제 등 고강도 가격 억제책으로 주춤하다. 또 올 대선에서 누가 정권을 잡든 1가구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보유세 감면을 넘어서는 획기적 규제 완화는 어렵다는 예측이 투자처로서의 부동산 매력을 반감시킨다. 국내 펀드 260조원, 가계금융자산 중 주식 비중 19.1%, 적립식 펀드 1000만개 달성 기대는 이러한 유동성 흐름의 표피일 뿐이다.

유동성의 증시 유입이 ‘치고 빠지기’ 식이 아니라 저출산·고령화라는 근본적 구조 변화에 따른 현상이라는 근거도 있다. 주가지수의 일일 변동성은 2000년 2.86%로부터 계속 떨어져 최근 2~3년간 1%를 유지하고 있다. 증권이 부동산·예금·채권과 함께 안정적 투자처로 바뀌었다는 방증이다. 이처럼 부동산과 저축만 고집하던 가계들이 펀드를 통해 대거 뛰어들면서 증시가 안정적인 돈줄을 갖게 된 이면에는 안정적 노후 자금 마련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려는 베이비 붐 세대들이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공적연금 파산 우려, 저출산과 무관치 않은 초저금리, 고령화에 따른 예상 수명 상승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런 변화를 경험한 바 있다. 8000만명에 달하는 미국의 베이비 붐 세대는 노후 대비를 위해 1980년대 초반부터 대거 펀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간 안정 위주로 운용하던 연·기금도 주식투자 비중을 늘리면서 합세했고, 그 덕에 미국 펀드시장은 10년 만에 7배 이상 덩치가 커졌다. 또 15년 이상 지수 1000대에 갇혀 있던 다우존스지수도 급등, 세기 말 10000시대를 맞이했다. 우리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거시경제 변수 조작을 통해 시장에 영향을 미치려 해서는 곤란하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추가로 올릴 경우 중소기업과 서민가계는 타격을 받겠지만 증시가 식을지는 분명치 않다. 투자자들이 금리 인상을 경기회복의 신호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가가 오르더라도 산유국의 오일머니가 오히려 세계 주가 상승을 이끌 수도 있다. 환율과 주가의 관계도 단순치 않다. 환율 방어를 명목으로 시장에 개입할 경우 시중유동성의 증가와 금리 상승의 덫에 빠질 위험도 있다.

주가 변동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근본적 체질 개선이 중요하다. 규제를 줄이고 세금 부담을 낮춰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가 늘도록 해야 한다. 국내 경제가 회복되고 기업 가치가 오르면 이번에 저평가가 해소된 우리 기업들의 주가를 든든한 펀더멘털로 받쳐주게 된다. 유상증자, 우량 공기업 상장 등으로 경제가 튼실해지고 또다시 주가가 오르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미시적으로 증권 상품 및 사업 자유화, 금융거래비용 인하, 금산분리 완화를 통한 대형 투자은행의 등장 촉진 등 사전 규제는 완화하고 금융감독과 사후 처벌은 강화하여 금융산업을 선진화해야 한다.

[[김영세 /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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