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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노동자의 희생이 얼마나 크든 기업의 수익 극대화가 구조조정의 핵심 목표라 한다면,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기업 구조조정의 성과가 최고조에 이른 것은 2004년일 것이다. 몇 해째 가계 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기업 이익이 급증해온 가운데, 그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전체의 순이익은 50조원을 넘었다. 그 전 몇년간 평균치의 갑절을 넘는 이런 실적 향상은 주가를 상대적으로 아주 싸게 만들었다.
발빠르고 눈치빠른 외국인 투자가들은 2004년 한햇동안 무려 10조5천억원어치나 주식을 순매수했다. 그해 주가는 9% 올랐지만 증권선물거래소가 2005년 4월이 되어 2004년 상장사 경상이익을 당시 시가총액으로 나눠보니 8배가 채 되지 않았다. 과거 10~12배 하던 것에 견주면 주가는 여전히 쌌다. 국내 투자자들은 인터넷 거품 붕괴와 대우사태로 놀란 가슴을 아직 쓸어내리고 있었고,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2004년 기업 실적 폭증이 당국의 적극적인 외환시장 개입 덕이라 지속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기업 실적은 2005과 2006년에 조금 나빠졌을 뿐이다. 이런 실적에 바탕을 두고 주가는 이후에도 쉼없이 올랐다.
코스피지수는 어느새 2000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해 상장사 실적에 견줘보면, 시가총액은 경상이익의 15배에 이른다. 싸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을 넘어선 지 꽤 됐음에도 주가 상승세는 아직 멈출 줄 모른다. 주가가 오른 이유를 설명할 근거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증권 분석가들이 애써 눈감는 것이 있다. ‘기업들의 주식 사재기’다.
경영진들이 주가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다. 보유 현금이 풍부한 가운데, 적대적 인수합병을 막는다는 구실은 주식 사재기의 좋은 핑곗거리다. 매입한 자사주 값이 오르면 실적도 더 좋게 ‘포장’된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자사주 매입액은 2004년 6조원, 이듬해엔 4조5천억원, 지난해엔 6조6천억원에 이르렀다. 올 들어서는 더욱 열기가 더해, 지금까지 벌써 5조원어치 넘게 사들였다. 상장사야말로 최근 몇년간 우리 증시의 일관된 최대 순매수 세력이다. 기업들의 주식 사재기는 시장 유통물량을 점차 줄여, 신규 설정 펀드가 조금씩만 우량종목을 사도 주가가 오르기 쉬운 구조를 만들었다.
자사주 매입 열기는 미국에서도 뜨겁다. 지난 18일치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를 보면, 미국 증시의 에스앤피500 소속 종목들은 올해 1분기에 1180억달러어치의 자사주를 사들였고, 2분기에는 그보다 더 많은 1574억달러어치의 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최근 6분기 연속 1000억달러어치 이상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상장사들이 자사주를 사들여 주가를 끌어올리고, 자사주 가치가 올라 기업 실적이 좋게 포장되고, 이를 구실로 또 주가가 오르는 것은 금융 피라미드처럼 언젠가는 무너지게 마련인 ‘폰지 게임’이다.
우리 증시가 외국인들에게 개방된 뒤, 상승기의 초기엔 외국인이 사고, 그 다음엔 기관투자가가 사고, 마지막에 개인투자자들이 다투어 주식을 사들이면서 상승 주기가 끝나고 폭풍이 일곤 해왔다. 이번 상승장에서도 외국인들은 2004년에 10조원어치를 사고, 기관투자가들은 2005~2006년 18조원어치를 샀다. 관망세를 보이던 개인 투자자들이 올해 4월부터 주식형 펀드로 돈을 쏟아붓다시피 하고 있는 것은 불길하다. 주가가 더 오르지 말란 법은 없으나, 기업들의 주식 사재기 열풍이 키워가고 있는 파괴력을 투자자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정남구 논설위원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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