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이나 거품의 존재를 확인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뜨겁다고 다 과열이 아니고, 부풀었다고 다 거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통계와 예측모델을 갖고 있던 앨런 그린스런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조차 현직 시절 "거품이 터져 그걸 입증하기 전까지는 거품이 있는지 확실히 알기가 아주 어렵다"고 인정했을 정도다.

결코 진입을 허용하지 않을 것 같던 지수 2,000고지를 밟은 현 주식시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과열의 감(感)은 느낄지언정, 누구도 실체적 거품을 자신 있게 증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 투자자들이 모처럼 활황장을 만끽하고 있는 지금은 과열 얘기를 섣불리 꺼낼 분위기도 아니다.

그렇다 해도 누군가는 과열을 걱정하고, 거품을 경계해야만 한다. 과학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용기 있게 우려의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거품은 터지는 순간 너무도 큰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에, 단 1%의 가능성이 엿보이더라도 싹을 잘라야만 한다.

시장경제에서 그 역할을 할 곳은 딱 한군데 뿐이다. 중앙은행이다.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정부는 생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인플레이션 타도(inflation-fighter)'의 소명을 받고 탄생한 중앙은행만이 진정 거품을 경고하고,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현 증시에 대해 너무 조용한 것 같다. 몇 차례 과열을 걱정하는 언급은 있었지만, 무거운 액센트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쪽 경고음이 더 크게 들렸을 정도다.

한은이 거품을 애써 외면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확신이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과열'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증시가 '과속'중임은 명백하다.

지수 1,500에서 2,000으로 가는데 고작 3개월 남짓 걸렸다. 유동성장세, 실적장세, 글로벌 동조장세란 말로도 이 놀랄만한 스피드는 설명이 안 된다. 그린스펀이 말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포말의 신호(sign of froth)'쯤은 될 것이다.

아무리 증시기반이 펀드위주로 변했다고는 하지만, 간접투자도 과속은 위험하다. 시장의 속도위반을 단속하는 것 역시 중앙은행의 몫이지만, 한은에서 그런 모습이 잘 발견되지 않는다. 시장이 듣지 않아도, 말은 해야 하는데 말이다.

1~2년에도 그랬다. 지금의 증시와는 비견도 되지 않는 부동산거품이 있었다. 망국적 수준이었다. 하지만 '경기' 논리에 빠진 한은은 이 위험천만한 자산버블에 대해 지극히 소극적이었고, 결과적으로 부적절했다.

'과감하고 시끄러운 중앙은행'과 '신중하고 조용한 중앙은행' 가운데 무엇이 더 좋은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떤 중앙 은행이든 거품에 대해서 만큼은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투사(bubble-fighter)'여야 한다.

증시는 지금 파티중이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화려한 축제다. 모두들 '끝나지 않는 긴 파티(장기랠리)'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영원한 파티는 없다. 과열된 축제일수록 끝은 비극적이다.

누군가는 뜨겁게 달궈지는 파티열기를 좀 식혀야 한다. 욕을 먹더라도 말이다. 파티가 서서히 무르익어 오래가게 하려면, 더더욱 그러해야 한다. 중앙은행을 두고 '파티를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party-pooper)'라고 부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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