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계 은행 HSBC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 지분 51.02%를 인수키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경제계 일각에서 ‘금산분리’(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원칙’ 철폐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산분리 원칙으로 인해 국내 자본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기회가 봉쇄되다보니 론스타가 외국계 자본인 HSBC에 비싼 값으로 팔고 한국을 떠나는 이른바 ‘먹튀’를 도와주는 꼴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원인과 결과를 잘못 연결한 ‘논리의 비약’이다. 우선 현행 은행법에 따르면 비금융 주력자(산업자본)는 국내 자본이든 해외 자본이든 4%를 초과해 은행 주식을 보유할 수 없다. 법적으로는 국내외 자본에 차별을 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금산분리 논란보다는 단기 차익을 노리는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어떤 경위로 외환은행이 넘어갔고, 그 과정에서 론스타의 불법행위나 정부와 금융감독당국의 잘못은 없었는지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우선돼야 한다.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인수’ 과정에 대한 검찰수사가 이뤄졌고,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전 세계 여러 기업들에도 투자를 하고 있는 론스타를 금융 주력자로 인정해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부여한 정부의 조치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금산분리 논란에 치우치기보다는 외환은행이 론스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불법과 오류가 있었다면 철저히 가려내 책임을 묻고, 외국계 자본이 우리나라의 국부를 손쉽게 빼가는 사태가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법적·제도적인 보완을 하는 데 집중할 때이다.

론스타는 금산분리 논란이 가열되길 내심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론스타는 여론의 뭇매를 맞지 않고 막대한 이익을 챙겨 한국을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준기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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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된 9ㆍ11 테러사건 발발 6년째를 맞았다. 당시에도 월가와 국제금융시장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다.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발언은 즉각 행동으로 옮겨졌다. FRB는 기준금리를 3%로 0.5%포인트 인하했다.

금리는 중앙은행이 경기를 조절하는 '마술봉'이다.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미국 기준금리는 2003년 6월 사상 최저 수준인 1%까지 낮춰졌다. FRB의 저금리 정책은 2005년까지 지속됐다. 이 와중에 풀린 돈은 부동산시장으로 대거 유입됐다. 결국 집값과 땅값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파티가 한창일 때 칵테일잔을 빼앗아야 한다." FRB는 이 같은 경고를 한 귀로 흘렸다. 부동산 거품은 뒤늦은 금리 인상과 맞물려 한순간에 꺼졌다. 미국 부동산 경기는 지난해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담보력이 취약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신용카드나 자동차 할부금융, 기업어음 시장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이번 사태로 자산담보부증권 등 파생상품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시장에서 기피하는 위험자산은 가치산정이 불가능해졌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퀀츠펀드는 무용지물이 됐다. 고위험ㆍ고수익을 노리고 파생상품에 '올인'한 헤지펀드는 환매요구가 쇄도하자 벼랑 끝에 몰렸다.

"경제 전반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이 같은 방침을 최근 세 차례나 강조했다. 신용경색이 소비위축, 경기침체로 연결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다.

FRB는 8월 9일부터 악화된 서브프라임 사태에 긴급 유동성 공급으로 대처했다. 유럽 등 중앙은행도 공조체제를 구축했다. 8월 17일 FRB는 민간은행 대출에 적용하는 재할인율을 0.5%포인트 내렸다. 이제 전 세계는 오는 18일 FOMC 회의 결과에 주목한다.

기준금리는 2006년 6월 이후 9차례 5.25%로 동결된 상태다. 월가는 금리 인하를 학수고대한다. 문제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예수의 '돌아온 탕자' 비유에서 집을 나가 재산을 탕진한 아들을 아버지는 다시 맞아들였다. 잔치까지 벌였다. 하지만 경제 현실은 냉엄하다. 이번 위기에서 FRB가 탕자인 부실 금융기관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면 납세자, 채권자, 예금자가 부담을 떠안게 된다. 그래서 반대가 많다.

"대출기관과 투자자들이 선택한 결과로 생긴 손실을 보호하는 것은 FRB의 책임이 아니며 그렇게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버냉키 의장은 부실 책임에 단호한 태도다. 부실대출은 시장에서 정리되는 게 맞다. 이는 모기지 회사나 헤지펀드의 추가 파산을 의미한다.

원리금을 못갚는 주택구입자도 마찬가지다. 채무를 탕감해주면 잘못된 신호가 전달된다. 위험을 자초한 행동을 응징하기보다 보상을 주는 셈이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이 과다 대출을 받은 뒤 빚을 못 갚겠다고 우길 수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에 따른 역선택의 폐해다.

FRB가 금리조정 외에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여러 가지다. 우선 재할인율 추가 인하와 공개시장조작 대상 담보증권 확대가 가능하다. 은행이 아닌 금융기관도 재할인 창구에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하는 방안과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기관의 협조융자 또한 고려 대상이다. 아울러 기업어음 담보대출을 확대하고 유럽중앙은행과 스와프를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금리 인하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이번 사태에서 과잉 유동성이 빚은 파문을 다시 유동성으로 해결하는 격이다. 일단 신뢰가 무너진 부문으로는 돈이 흘러가기 힘들다. 시장의 믿음을 살려 돈이 막힌 곳을 뚫고 자금흐름을 정상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번 위기는 대출기관ㆍ고객의 위험 추구와 부실 신용평가, 뒷북친 통화정책, 허술한 금융감독 등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불과 3년 전 400만명에 육박하는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던 한국의 카드대란과 닮았다. 완벽히 치유되려면 상당한 고통과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 90년대 자산 거품 붕괴로 일본이 겪은 '잃어버린 10년'과 유사한 과정을 거칠 수도 있다.

미국 일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한국에서도 안심할 수만은 없다. 전국 곳곳에서 아파트 미분양사태가 늘고 있는 게 심상찮다. 만일의 부동산발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홍기영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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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규형 명지대 교수
레이건 행정부의 경제 자문위원회 의장이자 레이거노믹스의 대변자였던 머레이 와이덴바움(Weidenbaum) 교수와 박사과정 세미나를 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 대통령 여러 명을 보좌하거나 자문에 응했던 그에게 한 학생이 질문했다. “접해 본 대통령 중에 가장 스마트했던 분은 누구인지요?” 와이덴바움의 확신에 찬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압도적으로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이었지!” 그에 따르면 닉슨은 복잡한 현안(懸案)을 이해하고 해결해 나가는 지적 능력이 탁월했고, 모르는 부분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했으며, 타당성 있는 의견이 개진되면 자신의 원래 의견과 다르더라도 수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둘러싼 은폐공작과 거짓말로 불명예 퇴진했지만, 정책적 측면, 특히 국제정치에서 닉슨이 이룩한 업적은 눈부셨다. 그런데 그 외교적 성과는 기실 헨리 키신저(Kissinger)라는 걸출한 국제 경략가(經略家)의 능력에 기인한 바 크다. 키신저는 원래 닉슨의 정적이었던 넬슨 록펠러(Rockefeller) 뉴욕 주지사의 측근이었다. 억만장자이자 공화당 내 진보파의 리더였던 록펠러는 세 번의 대통령후보 경선에 내리 참여했고, 그중 두 번은 닉슨과 치열한 경쟁을 했다. 키신저는 1968년 선거 때 록펠러 진영의 핵심 브레인으로 닉슨을 비판하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후보 경선과 대선에서 연달아 승리한 닉슨은 각 단계에서 키신저를 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베트남전쟁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고, 소련의 군사력이 미국과 대등해지거나 미국을 능가한 시점에서 미국은 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전략을 추구해야 했다. 개인적으로는 키신저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세계전략의 적절한 수정이란 면에서 그의 경륜과 식견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키신저는 원래 국제문제 전문가도 아니고 강경한 반(反)공산주의자인 닉슨을 설득해 세력균형에 기초한 현실정치(Realpolitik)론을 바탕으로 역사적인 공산 중국과의 화해와 소련과의 데탕트(detente·긴장완화)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역사적으로 이런 예는 많다. 볼셰비키였던 레닌은 혁명 후 서구 열강과의 정상외교가 필요해지자 멘셰비키파지만 외교경험이 풍부한 게오르기 치체린(Chicherin)을 외교수장으로 임명했다. 아예 경쟁자를 자기 사람으로 만든 예도 있다. 경선에서 격렬하게 1, 2등을 다투다 본선에서는 동일 티켓으로 정·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아버지 조지 부시, 빌 클린턴/앨 고어의 경우가 그랬다.

한나라당 경선이 끝나고 겉으로는 화합을 외쳐도 이명박, 박근혜 양 진영의 화학적 결합은 요원해 보인다. 왠지 겉돌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명박 후보는 “경제를 일으킬 리더십이 있을 것 같은 사람” “말만이 아닌 실적으로 뭔가 보여준 사람”이라는 강력한 자산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2% 부족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가치관이 실종된 실망스런 후보수락 연설에서 잘 나타나듯이, 특유의 실용주의만 가지고는 한계에 다다랐다. 가치가 결여된 실용주의는 자칫 포퓰리즘으로 빠지기 쉽다. 물론 현재로선 “한 방에 보낸다는” 희망 하나로 상대편 음해에만 골몰하며 별 비전도 제시 못하기 때문에 20~30% 부족해 보이는 범여권 후보들이나, 20세기형 낡은 어젠다에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나는 민노당 후보들보다는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이 후보에겐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 펀드 같은 위태로운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오늘(7일)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의 회동이 있다 한다. 이 후보는 이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 사람이라면 경쟁자와도 손잡고, 상대편 인재들도 필요하다면 과감히 등용해야 한다. 대권 가도에서의 정치공학적 측면에서건, 대권장악 후 나라를 잘 운영할 대국적 차원에서건, 그리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가치를 제시할 이념적 차원 모두에서, 인재를 가려내는 능력의 시험대에 섰다. 누가 얘기했듯이 “호감에 의한 만남보다 더 강렬한 것이 필요에 의한 만남”이다. 닉슨이 상대편의 키신저를 알아보고 중용했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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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진수 강남대 교수
한국화 6대 작가를 중심으로 미술시장이 들끓던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를 ‘부분적 활황기’라고 한다면 지금은 서양화가 이끄는 ‘전반적 활황기’라고 할 수 있다. 주요 화랑들이 기획하는 인기작가 초대전에 전시된 작품이 솔드아웃(매진)되고, 화랑과 작가단체들이 주최하는 아트페어가 줄을 잇고 있다. 1회에 100억 원 이상을 낙찰시키는 메이저 경매회사들의 경매가 격월로 열리고 블루칩 작가의 가격이 2년 사이에 배로 뛰었다.

여기에 1년 반 사이에 100억 원대 규모의 아트펀드가 4개나 출시되었고, 개별 투자자들이 출자하여 운영하는 미술품 투자 펀드까지 움직이고 있다. 은행, 백화점, 대기업이 아트마케팅을 내세워 미술품 구입과 판매를 대행하고 있다. 화랑들도 계속 설립되어 전국적으로 약 300개에 달했으며, 경매회사 설립도 계속되어 연말까지 15개가 될 전망이다.

이러한 미술시장의 활황기에 가장 바쁜 것은 작가다. 기획전을 통해 소개되는 메이저 화랑의 전속작가 작품은 구하기가 힘들다. 비전속작가이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작가의 작품은 구하기도 힘들고 전시 일정을 잡기도 힘들다. 갑자기 달아오른 시장 열기로 유명 작가의 작업실은 화랑대표와 큰손 컬렉터의 방문이 잦아 작업이 방해를 받을 정도이다. 아예 몇 명은 해외로 피신하여 작업을 하고 있다. 이제 작가와 화랑이 전속작가제도 등을 통해 베스트셀러 만들기보다 스테디셀러 육성에 합의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팔리는 작가를 작고 작가와 생존 작가를 포함하여 70여 명으로 보고 있다. 유명작가 중심으로 움직이는 미술시장에서 컬렉터들의 움직임이 자연히 바빠질 수밖에 없다. 컬렉터들은 믿을 만한 화랑이 어느 곳인가에 대해 정보를 나누고, 화랑들은 컬렉터의 스타일에 대한 얘기를 한다. 철저히 정찰제를 실시해도 좋은 작품을 공급하는 능력 있고 믿을 만한 화랑과, 전시 첫날 제 가격에 신사답게 걸작품을 구입하는 품위 있는 컬렉터가 모델로 회자된다. 이제는 전시장에 가격표를 비치하고 정상가격에 판매되는 제도가 일반화되고, 솔드아웃되면 예약을 통해 정식으로 구입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가격 문제도 여전히 미술시장의 큰 과제이다. 일반적으로 나이, 학력, 화가 경력, 동급 작가의 가격을 참고하여 작가가 가격을 정한다. 자연가격 체제다. 그러나 이제는 시장가격 체제가 확립되어야 한다. 화랑과 경매가 시장의 쌍끌이 역할을 하며 호당 가격과 점당 가격이 논의되고 있다. 이 점은 우선 작가가 받아들여야 하고, 감정의 역할이 진위(眞僞) 감정뿐만 아니라 시가감정까지 가능해져야 한다. 자본력을 갖춘 컬렉터들이 정보 공유를 하는 시대에 화랑이나 화랑협회에 시장 정보화와 체계화 등 많은 과제가 주어지고 있다.

미술시장 활황기에 돈을 가장 많이 버는 것이 화랑인가, 작가인가, 경매회사인가, 펀드인가, 개인 컬렉터인가, 액자집인가, 택배회사인가에 대한 얘기가 많다. 결론은 모든 주체여야 한다. 그러나 미술시장이 활황이어서 좋은 것은 역시 작가들이 좋아진 여건 속에서 새로운 실험을 통해 얻은 좋은 작품을 우리 모두가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미술시장의 주체인 작가, 유통관계자, 컬렉터가 기본에 충실하여 신뢰성만 쌓는다면 틀림없이 부를 얻고 행복을 느낀다는 사실을 20년 이상 묵묵히 수작(秀作)만 수집해온 한 컬렉터로부터 배웠다.


[서진수 강남대 교수·미술시장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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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료라고 넘기기엔 그 비용과 후유증이 크다.

어려웠던 시절, 뭘 잘 모르던 시절의 불가피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복기하자면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그때는 형편이 그랬으니 그냥 덮고 가자' 혹은 '앞으로 일이 더 중요하다'는 넋두리는 하고 싶지 않다. 덮을 때 덮더라도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그리고 이를 정확히 파악해 미래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자는 게 현 정부 통치이념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게일인터내셔널의 인천 송도신도시 개발사업 취득은 지금이라도 곱씹어봐야 할 사건이다.

이 두 사건은 유사점이 많다. 일단 발생시기가 비슷하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때라 국제신인도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것은 2003년 8월이고 게일인터내셔널이 송도신도시 개발유한회사(NSC)를 설립한 것은 2001년 7월.

당시 외환은행은 국내외 어느 자본도 매입을 주저해 급박한 와중에 벌처펀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론스타에 넘겼다는 게 정부 측 변이다. 은행업종에 종사해야 한다는 규정을 고치고, '먹튀' 가능성이 높다는 비난까지 무릅쓰면서. 송도 자유무역지역 개발도 마찬가지다. 2001년 초 뉴욕까지 쫓아가 사업자를 구했지만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고 했다. 자격에 대한 논란도 많았지만 게일이 와준 것만 해도 당시로는 고마웠다는 게 정부 측 해명이다.

정부 측 논리는 더 발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론스타가 이 땅에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5조원 이상을 챙겨 떠난다 해도 그건 그만큼 리스크를 안고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게일 역시 단돈 80만달러(약 7억5000만원)를 쥐고 들어와 수조 원대 사업을 쥐락펴락하고 있지만, 디벨로퍼(developer)란 원래 그런 것이고, 그만큼 리스크를 안았으니 이익을 취하는 건 인정해야 한다는 것. 론스타와 게일 건은 이렇듯 우리의 숨기고 싶은 역사 한가운데 있다.

꼬박꼬박 세금을 내온 국민에게는 기가 막히는 소리로 들리지만, 백 번 양보해 당시 사정이 그랬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치자. 하지만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특히 당시 걱정했던 문제가 바로 지금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다.

론스타는 최근 우리 금융당국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활용해 HSBC와 은근슬쩍 매매계약서에 도장을 찍어버렸다. '한국 정부 승인을 전제로'라는 조건부 단서가 붙긴 했지만 정부로서는 '괘씸한 짓'임에는 분명하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까지 나서 최근 상황을 '한국에서 여전히 외국 기업들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압박하고 있다. '꽃놀이패'를 쥔 론스타 기세가 대단하다.

게일 역시 마찬가지다. 사업초기와 달리 이제는 국내 은행들이 서로 유리한 조건을 내세우며 돈을 대주겠다고 난리들이다.

게일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자신들 파이를 키우는 작업을 해나갈 것임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인천시 의회와 현지 언론 등에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정부는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됐는데 게일은 꼬드겨서라도 데리고 가야 한다'며 꾹꾹 누르기만 한다. 론스타에 못지않은 포커패를 쥔 게일은 이제 누워서 협상하게 생겼다.

두 사건이 외환위기 이후 다급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결정이었다는 점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지금이라도 짚을 건 짚는 당당함을 우리 정부에 기대한다. 한국에도 법질서가 있고, 이를 집행하는 정부가 있음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이는 분명 외국인 자본에 대한 거부감과는 별개 문제다.

선진국 금융당국은 이런 문제에 대해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게일에 대해서도 '그냥 데리고 가자'는 하소연보다 당초 약속이 지켜지고 있는지, 지금 진행 중인 각종 현안들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챙겨보는 단호함이 미래를 위해 지금 필요한 행동이 아닌가 싶다.

[경제부 = 장광익 차장 paldo@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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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3일 오전 8시. 홍콩의 모 헤지펀드 회의실. "한국 100만달러, 대만 100만달러, 중국 100만달러…." 아침 미팅에 앉은 이 펀드의 중역들이 트레이더들에게 '주식 매도 할당'을 하고 있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거진 뒤 빗발치는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를 그들의 헤지펀드는 어떤 식으로든 응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많이 오른 주식을 팔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이튿날 아침 자산배분 담당 전무는 트레이더들에게 상황을 보고받았다. "한국은 어제 130만달러어치를 팔았습니다. 대만 80만달러, 중국 70만달러…." 전무는 어안이 벙벙했다. "어찌 된 일이냐?" "한국은 주식이 워낙 잘 팔려서 그랬습니다. 어차피 내일 또 팔아야 할 텐데 값이 비쌀 때 미리 파는 게 좋겠다 해서…."

홍콩에서 실제로 일어난 한 헤지펀드의 '속사정'이다. 한국에서만 많은 물량을 매도했다 하니 이 사태를 어찌 봐야 할까.

안드레아스 노이버 하나UBS자산운용 사장은 "사람들은 미국 LA의 저소득자가 집값을 못 내는 게 내 주식값 떨어지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고 푸념할 수 있다"며 "하지만 한국이 그만큼 글로벌 시장에 가까워졌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한국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글로벌 변수 앞에 벌거벗은 상태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위와 같은 헤지펀드 움직임을 읽는 것은 현지 애널리스트들만이 할 수 있다. 국내 애널리스트들이 한국 기관투자가들과 가깝게 지내며 그들의 움직임을 대략 읽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현지에서의 움직임을 읽고 전달해 줄 사람들이 필요한 때가 왔다. 하지만 이런 지역 전문 애널리스트가 우리에게는 없다.

해외 펀드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해외 펀드에서 현지 증권사로 빠져나간 주식매매 수수료만 모아도 현지 증권사 하나쯤은 금방 만들 수 있다. 우리는 글로벌 변수 앞에 한층 벌거벗었는데 증권사들 태도는 소극적이기만 하다.

[증권부 = 신현규 기자 rfrost@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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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부가 추진해 온 국민연금기금 지배구조 개편안이 이번주 최종 발표된다. 지금껏 알려진 주요 내용을 보면, 기금운용위원회가 정부에서 독립해 상설화된다. 이 기구의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은 대체로 민간 전문가들로 꾸려지며, 위원장은 보건복지부가 구성한 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번 개편안은 두 가지 틀에서 이뤄지고 있다. ‘독립성’과 ‘전문성’이다. 독립성은 막대한 연금기금이 정치적으로 쓰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전문성은 경제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응해 연금기금의 수익을 높이자는 취지다.

이번 개편안은 기금운용위원회의 독립을 꾀한다는 측면에서 현재보단 진일보한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우려되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은 지난 6일 “기금운용위는 정부 부처의 입김이 완전히 배제될 수 있도록 구성할 방침”이라고 밝히며 유난히 독립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독립적 운영이란 어쩌면 ‘눈 가리고 아웅’의 소지가 적지 않다. 기금운용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거시적 방향을 세우는 결정권을 기금운용위가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느냐는 데 의문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개편에서 현재 보건복지부 차관이 위원장인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장관이 위원장이 되는 조직으로 격상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자명한 사실이지만,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이 조직을 통해 기금운용 계획의 거시적 방향을 결정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기금운용위를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하려는 점도 이해할 수 없다. 연금기금은 오롯이 가입자들의 보험료 수입으로 쌓인 돈이다. 이 돈의 사용처를 정하는 데 가입자 대표가 실질적 구실을 못한다는 건 의사결정의 민주성은 물론 자본주의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돈의 주인이 자기 돈에 대해 아무런 의견을 내지 못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기금운용위원장을 대통령에게 추천할 추천위원 11명 중 가입자 대표가 3명에 그친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모두 연금 수익률을 의식해 이뤄진 조처로 보인다.

강조하건대 연금기금은 사설 펀드가 아니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질 안전판이다. 그렇기에 위험한 수익률 중심의 운용보다 안정성과 공익성에 바탕을 둔 운용이 돼야 마땅하다. 최종 발표에 앞서 정부는 이 점을 놓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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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 따른 신용 위기가 전 세계 금융 시장을 강타했다. 지난달 9일에는 프랑스 최대 은행 BNP파리바가 미국 서브프라임 관련 펀드의 환매와 가치산정을 중단하자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급기야는 글로벌 신용 경색의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이 일로 국내 증시 역시 하루만에 125포인트가 폭락하는 등 큰 홍역을 치렀다. 아직까지도 이로 인한 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서브프라임이 전 세계적 이슈라면 연일 이어지는 우리 사회 유명인사들의 학력 위조 파문은 단연 국내의 관심사다. 신정아 동국대 교수의 ‘학력 위조’ 파문 이후 그동안 신문이나 방송에서 심심치 않게 보았던 다수의 유명인들이 이 문제로 연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학력 위주 풍토의 단면을 드러낸 것이기에 관련 검증 시스템만 갖춘다고 해서 끝날 문제는 아닌 듯하다.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사안이지만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이번 문제들의 진원지가 우리가 그동안 가장 신뢰하고 있던 곳이라는 점이다. 서브프라임은 전 세계 최고의 금융강국인 미국에서부터 출발했고, 학력 위조는 교수, 연예인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명예와 실력을 인정받고 인기 있던 유명인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둘째는 부실한 정보관리가 한 원인이었다는 점이다. 서브프라임 부실은 표면적으로 금리상승으로 인한 연체율 증가였지만 그 이면(裏面)에는 갚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과도한 주택자금을 대출해 준 금융회사들의 부실한 신용정보관리가 자리하고 있다. 학력 위조는 해당 학교에서 학위의 진위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정보관리자의 기본 역할을 방관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셋째는 그 결과 두 사안이 우리 사회에 주는 피해는 예상보다 컸고 그 여파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가늠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서브프라임은 부실대출이 복잡한 파생 상품으로 둔갑해 전 세계로 흘러들어갔으니 전문가들조차 정확한 피해 규모를 예상하기 어렵게 됐다. 학력 위조 역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로 언론의 도마에 오를지 알 수 없다.

부실대출을 해 준 기업과 감당도 되지 않는 많은 돈을 빌린 대출자, 큰 돈을 벌기 위해 고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투자자가 만들어낸 서브프라임, 마땅한 검증 절차 없이 안이하게 교수를 임용한 학교와 그동안 검증 기능을 소홀히 했던 감시기관, 그리고 목적과 자기과시를 위해서라면 위조를 동원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일부 유명인이 만들어낸 학력위조. 우리는 이 두 사안의 근본 원인이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항상 실수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수를 교훈 삼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번 두 사안을 투명한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값비싼 경험으로 삼아 앞으로 더 큰 사회적, 경제적 발전을 이루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어야겠다.

도덕성 회복을 통한 신뢰의 확보가 가장 좋은 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만 이 두 사안에서 보듯이 신뢰의 공간엔 언제나 불신의 유혹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투명성 확보를 통해 도덕성을 담보하는 일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

송진철 현대엘리베이터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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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손해용]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 매각으로 4년 만에 5조원의 차익을 거뒀다는 소식에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5조라는 돈이 얼마만한 돈인가. 현대차가 지난해 벌어들인 1조2344억원(영업이익)의 4배가 넘는 금액이다. 이 돈을 벌기 위해 현대차는 수만 명의 인력과 수천 억원의 연구개발(R&D)비를 투입해 자동차 200만 대를 전 세계에 팔아야만 했다. 그런데 론스타는 수십 명의 인력과 1조3832억원을 투입해 간단히 5조원을 챙겼다.

사실 외국 자본의 '먹튀'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뉴브리지캐피털은 제일은행을 인수해 1조원 넘게 남겼고, 한미은행을 인수한 칼라일펀드도 6600억원을 벌었다.

하지만 배 아프다고 흥분할 일이 아니다. 차분히 따지면서 고쳐야 할 대목이 있으면 빨리 손질해야 한다. 앞으로 외환은행보다 훨씬 큰 우리금융지주.현대건설.하이닉스 등이 줄줄이 매각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요즘 한국에 새로 투자한 외국인을 만나면 두 가지 면에서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 하나는 한국의 놀라운 산업 포트폴리오이고, 또 하나는 낙후된 금융산업이다. "반도체.휴대전화.자동차.철강.조선.화학 등 다양한 업종에 걸쳐 나름대로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국가를 보지 못했다." 한 외국인 투자자는 "일본을 제외하면 한국만큼 황금의 산업 구성을 가진 나라는 흔치 않다"고 감탄했다.

반면 '금산(金産) 분리'에는 혀를 찬다. 한 외국인 투자자는 "낙후된 금융산업에 경쟁을 촉진해야 할 터인데 왜 보호막을 치느냐"고 했다. 그는 오히려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산업자본이 금융 쪽에 더 많이 흘러 들어와야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국내 산업자본이 '의결권 있는 은행 주식을 4% 이상 갖지 못한다'는 금산 분리는 낡은 규제다. 예전에 돈이 쪼들리는 기업이 은행을 사금고처럼 여기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다. 지금 기업들은 거꾸로 돈이 남아돌고 있다.

경기개발연구원 김이석 박사는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와 토종 자본의 구별은 사라졌다. 그런데 왜 국내 자본에는 아직도 금융자본.산업자본으로 출신 성분을 구분하느냐"고 지적했다. 차라리 모든 자본의 국적.업종별 출신 성분을 따지지 말자는 것이다. 귀담아 들어야 할 지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또다시 '제2의 론스타' '제2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태가 재연될지 모른다.

손해용 경제부문 기자 ▶손해용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ys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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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가 고속 성장을 하던 시기에는 회사를 설립해 키우기에 바빴다. 그런데 경제가 성숙기 초입단계에 들어서자 미래를 약속하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정보통신이나 생명공학, 그리고 에너지나 환경 분야 등에서의 성장으로 세계 10위의 경제 규모를 견인하려면 기다림의 인내가 필요하고 외국 기업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수익성이 좋아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도 새로운 사업 기회와 만족할 만한 투자처를 찾는 데 총력을 기울이지만 쉽지가 않다.

우리보다 앞서 성장 둔화를 경험했던 선진국 기업들은 성장의 돌파구를 인수·합병(M&A)에서 찾았다. 자본력만 있으면 시너지를 위해서건, 유통망이나 노동력 혹은 원재료를 확보하기 위해서건, 아니면 순수 자산운용 목적이건 간에 기업이 원하는 것을 달성하는 데는 M&A만큼 빠른 것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글로벌화에 편승해 사모펀드(PEF)의 활성화로 적대적 M&A의 비중이 확대되면서 글로벌 M&A가 모든 산업에 걸쳐 중요한 성장전략으로 떠올랐다. 선진국 기업들은 물론 중국이나 인도 기업들도 외국에 회사를 새로 세우기보다는 글로벌 M&A를 통해 성장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반면 우리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액 대비 M&A 비율은 선진국은 물론 중국에도 크게 못 미친다. 금융기관들도 전문인력과 경험 부족으로 글로벌 M&A라는 유망 사업분야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 안타깝다.

글로벌 M&A는 우리 경제에 일거삼득의 효과가 있다. 세계 5위의 외환보유액과 기업이 보유한 풍부한 현금을 무기로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달러 수요가 늘어나면서 환율을 안정시키며, 시중의 유동자금을 생산적인 부문으로 돌릴 수 있다. 글로벌 M&A로 기업의 규모를 키우면 적대적 M&A에 대한 적극적 방어수단도 된다. 최근 두산그룹이 국내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M&A를 통해 일약 세계 7위권의 건설 중장비업체로 도약한 것처럼 국내 기업들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글로벌 M&A의 추진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하고 있다. 여기서 글로벌 M&A 효과를 높이기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해본다.

첫째, 사회가 M&A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버려야 한다. M&A가 기업 설립에 비해 너무 쉽게 돈을 버는 것으로 비칠 수 있고, 심지어는 남의 기업을 탈취하는 부도덕한 행위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M&A가 기업으로 하여금 전 세계의 모든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하고, 무능력하거나 부도덕한 경영진에 대한 시장 감시의 역할을 수행하며, 경제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기업은 M&A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M&A는 리스크도 커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손해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업은 스스로 M&A 전문가를 확보할 뿐만 아니라 법무법인, 회계법인, 투자은행, 컨설팅 회사 등과 공조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셋째, 정부는 M&A에 따른 독과점 방지 규제 완화, 외환 거래의 사후신고제 전환, 해외 M&A와 관련된 각종 세제 혜택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통해 글로벌 M&A를 지원해야 한다. 또한 시중의 여유자금을 금융기관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현행 간접투자자산운용법상 제한하고 있는 국내 PEF의 부실채권 인수 방식을 통한 해외 M&A를 허용하고, 국내 PEF에 의한 해외 투자목적회사(SPC)의 설립과 보험사의 PEF 출자도 허용해야 한다. 또한 금융산업이 산업자본의 잉여자금을 활용해 대형 글로벌 M&A를 성사시킬 수 있도록 금융기관의 지배구조와 정부의 금융감독 기능을 강화한다는 전제 아래 금산분리 원칙을 완화하는 것도 심각히 고려해야 할 때다.

[[연강흠 / 연세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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