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료라고 넘기기엔 그 비용과 후유증이 크다.

어려웠던 시절, 뭘 잘 모르던 시절의 불가피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복기하자면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그때는 형편이 그랬으니 그냥 덮고 가자' 혹은 '앞으로 일이 더 중요하다'는 넋두리는 하고 싶지 않다. 덮을 때 덮더라도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그리고 이를 정확히 파악해 미래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자는 게 현 정부 통치이념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게일인터내셔널의 인천 송도신도시 개발사업 취득은 지금이라도 곱씹어봐야 할 사건이다.

이 두 사건은 유사점이 많다. 일단 발생시기가 비슷하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때라 국제신인도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것은 2003년 8월이고 게일인터내셔널이 송도신도시 개발유한회사(NSC)를 설립한 것은 2001년 7월.

당시 외환은행은 국내외 어느 자본도 매입을 주저해 급박한 와중에 벌처펀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론스타에 넘겼다는 게 정부 측 변이다. 은행업종에 종사해야 한다는 규정을 고치고, '먹튀' 가능성이 높다는 비난까지 무릅쓰면서. 송도 자유무역지역 개발도 마찬가지다. 2001년 초 뉴욕까지 쫓아가 사업자를 구했지만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고 했다. 자격에 대한 논란도 많았지만 게일이 와준 것만 해도 당시로는 고마웠다는 게 정부 측 해명이다.

정부 측 논리는 더 발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론스타가 이 땅에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5조원 이상을 챙겨 떠난다 해도 그건 그만큼 리스크를 안고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게일 역시 단돈 80만달러(약 7억5000만원)를 쥐고 들어와 수조 원대 사업을 쥐락펴락하고 있지만, 디벨로퍼(developer)란 원래 그런 것이고, 그만큼 리스크를 안았으니 이익을 취하는 건 인정해야 한다는 것. 론스타와 게일 건은 이렇듯 우리의 숨기고 싶은 역사 한가운데 있다.

꼬박꼬박 세금을 내온 국민에게는 기가 막히는 소리로 들리지만, 백 번 양보해 당시 사정이 그랬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치자. 하지만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특히 당시 걱정했던 문제가 바로 지금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다.

론스타는 최근 우리 금융당국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활용해 HSBC와 은근슬쩍 매매계약서에 도장을 찍어버렸다. '한국 정부 승인을 전제로'라는 조건부 단서가 붙긴 했지만 정부로서는 '괘씸한 짓'임에는 분명하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까지 나서 최근 상황을 '한국에서 여전히 외국 기업들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압박하고 있다. '꽃놀이패'를 쥔 론스타 기세가 대단하다.

게일 역시 마찬가지다. 사업초기와 달리 이제는 국내 은행들이 서로 유리한 조건을 내세우며 돈을 대주겠다고 난리들이다.

게일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자신들 파이를 키우는 작업을 해나갈 것임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인천시 의회와 현지 언론 등에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정부는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됐는데 게일은 꼬드겨서라도 데리고 가야 한다'며 꾹꾹 누르기만 한다. 론스타에 못지않은 포커패를 쥔 게일은 이제 누워서 협상하게 생겼다.

두 사건이 외환위기 이후 다급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결정이었다는 점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지금이라도 짚을 건 짚는 당당함을 우리 정부에 기대한다. 한국에도 법질서가 있고, 이를 집행하는 정부가 있음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이는 분명 외국인 자본에 대한 거부감과는 별개 문제다.

선진국 금융당국은 이런 문제에 대해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게일에 대해서도 '그냥 데리고 가자'는 하소연보다 당초 약속이 지켜지고 있는지, 지금 진행 중인 각종 현안들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챙겨보는 단호함이 미래를 위해 지금 필요한 행동이 아닌가 싶다.

[경제부 = 장광익 차장 paldo@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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