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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규형 명지대 교수
레이건 행정부의 경제 자문위원회 의장이자 레이거노믹스의 대변자였던 머레이 와이덴바움(Weidenbaum) 교수와 박사과정 세미나를 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 대통령 여러 명을 보좌하거나 자문에 응했던 그에게 한 학생이 질문했다. “접해 본 대통령 중에 가장 스마트했던 분은 누구인지요?” 와이덴바움의 확신에 찬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압도적으로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이었지!” 그에 따르면 닉슨은 복잡한 현안(懸案)을 이해하고 해결해 나가는 지적 능력이 탁월했고, 모르는 부분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했으며, 타당성 있는 의견이 개진되면 자신의 원래 의견과 다르더라도 수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둘러싼 은폐공작과 거짓말로 불명예 퇴진했지만, 정책적 측면, 특히 국제정치에서 닉슨이 이룩한 업적은 눈부셨다. 그런데 그 외교적 성과는 기실 헨리 키신저(Kissinger)라는 걸출한 국제 경략가(經略家)의 능력에 기인한 바 크다. 키신저는 원래 닉슨의 정적이었던 넬슨 록펠러(Rockefeller) 뉴욕 주지사의 측근이었다. 억만장자이자 공화당 내 진보파의 리더였던 록펠러는 세 번의 대통령후보 경선에 내리 참여했고, 그중 두 번은 닉슨과 치열한 경쟁을 했다. 키신저는 1968년 선거 때 록펠러 진영의 핵심 브레인으로 닉슨을 비판하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후보 경선과 대선에서 연달아 승리한 닉슨은 각 단계에서 키신저를 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베트남전쟁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고, 소련의 군사력이 미국과 대등해지거나 미국을 능가한 시점에서 미국은 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전략을 추구해야 했다. 개인적으로는 키신저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세계전략의 적절한 수정이란 면에서 그의 경륜과 식견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키신저는 원래 국제문제 전문가도 아니고 강경한 반(反)공산주의자인 닉슨을 설득해 세력균형에 기초한 현실정치(Realpolitik)론을 바탕으로 역사적인 공산 중국과의 화해와 소련과의 데탕트(detente·긴장완화)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역사적으로 이런 예는 많다. 볼셰비키였던 레닌은 혁명 후 서구 열강과의 정상외교가 필요해지자 멘셰비키파지만 외교경험이 풍부한 게오르기 치체린(Chicherin)을 외교수장으로 임명했다. 아예 경쟁자를 자기 사람으로 만든 예도 있다. 경선에서 격렬하게 1, 2등을 다투다 본선에서는 동일 티켓으로 정·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아버지 조지 부시, 빌 클린턴/앨 고어의 경우가 그랬다.
한나라당 경선이 끝나고 겉으로는 화합을 외쳐도 이명박, 박근혜 양 진영의 화학적 결합은 요원해 보인다. 왠지 겉돌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명박 후보는 “경제를 일으킬 리더십이 있을 것 같은 사람” “말만이 아닌 실적으로 뭔가 보여준 사람”이라는 강력한 자산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2% 부족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가치관이 실종된 실망스런 후보수락 연설에서 잘 나타나듯이, 특유의 실용주의만 가지고는 한계에 다다랐다. 가치가 결여된 실용주의는 자칫 포퓰리즘으로 빠지기 쉽다. 물론 현재로선 “한 방에 보낸다는” 희망 하나로 상대편 음해에만 골몰하며 별 비전도 제시 못하기 때문에 20~30% 부족해 보이는 범여권 후보들이나, 20세기형 낡은 어젠다에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나는 민노당 후보들보다는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이 후보에겐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 펀드 같은 위태로운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오늘(7일)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의 회동이 있다 한다. 이 후보는 이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 사람이라면 경쟁자와도 손잡고, 상대편 인재들도 필요하다면 과감히 등용해야 한다. 대권 가도에서의 정치공학적 측면에서건, 대권장악 후 나라를 잘 운영할 대국적 차원에서건, 그리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가치를 제시할 이념적 차원 모두에서, 인재를 가려내는 능력의 시험대에 섰다. 누가 얘기했듯이 “호감에 의한 만남보다 더 강렬한 것이 필요에 의한 만남”이다. 닉슨이 상대편의 키신저를 알아보고 중용했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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