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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발언은 즉각 행동으로 옮겨졌다. FRB는 기준금리를 3%로 0.5%포인트 인하했다.
금리는 중앙은행이 경기를 조절하는 '마술봉'이다.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미국 기준금리는 2003년 6월 사상 최저 수준인 1%까지 낮춰졌다. FRB의 저금리 정책은 2005년까지 지속됐다. 이 와중에 풀린 돈은 부동산시장으로 대거 유입됐다. 결국 집값과 땅값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파티가 한창일 때 칵테일잔을 빼앗아야 한다." FRB는 이 같은 경고를 한 귀로 흘렸다. 부동산 거품은 뒤늦은 금리 인상과 맞물려 한순간에 꺼졌다. 미국 부동산 경기는 지난해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담보력이 취약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신용카드나 자동차 할부금융, 기업어음 시장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이번 사태로 자산담보부증권 등 파생상품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시장에서 기피하는 위험자산은 가치산정이 불가능해졌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퀀츠펀드는 무용지물이 됐다. 고위험ㆍ고수익을 노리고 파생상품에 '올인'한 헤지펀드는 환매요구가 쇄도하자 벼랑 끝에 몰렸다.
"경제 전반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이 같은 방침을 최근 세 차례나 강조했다. 신용경색이 소비위축, 경기침체로 연결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다.
FRB는 8월 9일부터 악화된 서브프라임 사태에 긴급 유동성 공급으로 대처했다. 유럽 등 중앙은행도 공조체제를 구축했다. 8월 17일 FRB는 민간은행 대출에 적용하는 재할인율을 0.5%포인트 내렸다. 이제 전 세계는 오는 18일 FOMC 회의 결과에 주목한다.
기준금리는 2006년 6월 이후 9차례 5.25%로 동결된 상태다. 월가는 금리 인하를 학수고대한다. 문제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예수의 '돌아온 탕자' 비유에서 집을 나가 재산을 탕진한 아들을 아버지는 다시 맞아들였다. 잔치까지 벌였다. 하지만 경제 현실은 냉엄하다. 이번 위기에서 FRB가 탕자인 부실 금융기관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면 납세자, 채권자, 예금자가 부담을 떠안게 된다. 그래서 반대가 많다.
"대출기관과 투자자들이 선택한 결과로 생긴 손실을 보호하는 것은 FRB의 책임이 아니며 그렇게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버냉키 의장은 부실 책임에 단호한 태도다. 부실대출은 시장에서 정리되는 게 맞다. 이는 모기지 회사나 헤지펀드의 추가 파산을 의미한다.
원리금을 못갚는 주택구입자도 마찬가지다. 채무를 탕감해주면 잘못된 신호가 전달된다. 위험을 자초한 행동을 응징하기보다 보상을 주는 셈이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이 과다 대출을 받은 뒤 빚을 못 갚겠다고 우길 수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에 따른 역선택의 폐해다.
FRB가 금리조정 외에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여러 가지다. 우선 재할인율 추가 인하와 공개시장조작 대상 담보증권 확대가 가능하다. 은행이 아닌 금융기관도 재할인 창구에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하는 방안과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기관의 협조융자 또한 고려 대상이다. 아울러 기업어음 담보대출을 확대하고 유럽중앙은행과 스와프를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금리 인하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이번 사태에서 과잉 유동성이 빚은 파문을 다시 유동성으로 해결하는 격이다. 일단 신뢰가 무너진 부문으로는 돈이 흘러가기 힘들다. 시장의 믿음을 살려 돈이 막힌 곳을 뚫고 자금흐름을 정상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번 위기는 대출기관ㆍ고객의 위험 추구와 부실 신용평가, 뒷북친 통화정책, 허술한 금융감독 등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불과 3년 전 400만명에 육박하는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던 한국의 카드대란과 닮았다. 완벽히 치유되려면 상당한 고통과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 90년대 자산 거품 붕괴로 일본이 겪은 '잃어버린 10년'과 유사한 과정을 거칠 수도 있다.
미국 일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한국에서도 안심할 수만은 없다. 전국 곳곳에서 아파트 미분양사태가 늘고 있는 게 심상찮다. 만일의 부동산발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홍기영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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