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수 경제개혁연대 연구팀장〉

최근 HSBC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을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자 재계는 과거 외환은행의 헐값 매각과 론스타 펀드의 상당한 규모의 매각차익은 국내자본을 역차별한 결과이므로, 이제라도 산업자본이 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금산분리 규정을 철폐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과연 이는 올바른 진단인 것일까?

현재 국내 은행법상 비금융주력자(즉 산업자본)는 그 국적을 불문하고 4%(초과분에 대해 의결권을 포기하는 경우 10%)를 초과하여 은행 주식을 보유할 수 없다. 반대로 금융자본인 한, 국내자본이든 해외자본이든, 은행 소유는 가능하며, 여기에는 어떠한 차별도 없다. 이번에 HSBC가 외환은행 인수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된 것은, 금산분리 원칙 때문이 아니라 “형사재판 결과 확정시까지는 승인조치를 해줄 수 없다”는 금융 감독 당국의 초법적 태도로 인해 하나은행, 농협 등의 국내 은행들이 인수 경쟁에 제대로 뛰어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독 당국은 HSBC 역시 예외일 수 없다고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은행법을 비롯한 관련 법규에 근거한 주장인지가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 당장 금감원이 착수한 HSBC 한국지점에 대한 정기검사를 HSBC의 인수자격과 연결시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실제 의도가 무엇이든간에, 감독 당국의 행보가 이처럼 ‘정치행위’처럼 읽히는 한 동북아 금융 허브의 구축은 요원하다.

이럴수록 법과 원칙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는 태도가 필요하건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정권 말기에 논란의 소지가 있는 민감한 결정은 결코 내리지 않겠다는 복지부동이 대세이다. 감독 당국의 직무유기적 태도는,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서 빚어졌던 관치금융의 원죄, 즉 관료들의 책임을 은폐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은행법상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없는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그 시행령상의 예외조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했을 뿐 아니라 론스타의 비금융주력자 여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심사조차 하지 않았다. 뒤늦게 시민단체들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에 대해 조사하고 있지만 결과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 조사 대상이 방대해서라기보다는, 검사 결과 론스타가 산업자본인 것이 확인될 경우 불거질 관료들의 책임추궁을 의식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론스타 사건을 빌미로 이번 기회에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를 금지하고 있는 ‘금산분리 원칙’을 무너뜨리려고 한다. 그러나 금융자본인 외국자본에 대응하기 위해 산업자본인 국내재벌에 은행을 넘기자는 주장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국내 은행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금산분리 원칙에 기반하여 정부·외국자본·재벌로부터 독립된 국내 금융자본을 육성하는 길밖에 없다. 그것만이 ‘제2의 외환은행’을 만들지 않는 길이다. 외환은행의 론스타로의 매각이 진정 금융 산업발전에 재앙이었다면 재벌로의 재매각은 이보다 더 무서운 재앙이 될 것이다. 그것만은 결단코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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