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로텔레콤의 새 주인 찾기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시장에서는 벌써 SK텔레콤의 인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통신시장 재편 전망을 나름의 분석을 토대로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 SK와 KT그룹의 양강체제론이 대표적이다. KT는 이참에 ‘숙원’인 KTF와의 합병을 추진할 동력을 찾았다는 해석도 나왔다. 기존 3강의 한 축이었던 LG 3콤의 향배에도 갖가지 억측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주목하는 것은 따로 있다. 하나로텔레콤 인수합병이 국민과 정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되짚어 봐야 한다. 하나로의 최대주주는 AIG-뉴브리지 컨소시엄이다. AIG는 국민의 정부 시절 한솔PCS를 인수해 2∼3년 만에 천문학적 이윤을 챙긴 채 KTF에 지분을 넘겨 ‘신화’를 창조한 바 있다. AIG-뉴브리지는 5억달러 정도를 투자해 40%에 가까운 하나로 지분을 사들였다. 1주당 3천200원가량이다. 중간에 감자 등을 거치면서 매입가격은 6천400원 수준으로 평가된다. 시장이 예측하고 있는 SK텔레콤의 인수가격은 1조2000억원이다. 예상대로 진행된다면 3년여 만에 7천억원 이상을 튀기는 초대형 잭팟을 터트리게 된다. 물론 최종 인수가격은 변하겠지만 은행 M&A로 거액을 챙겨간 론스타 못지않은 수익이 기대된다. 이쯤되면 전형적인 M&A전문기업의 모습이다. 문제는 그 차액이 우리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이 인수한다 해도 그 재원의 출발점은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사용료다.

 AIG-뉴브리지는 부실기업을 회생시켜 제값 받고 파는데 웬 딴소리냐고 항변할 수 있다. 회계 시스템 투명화, 구조조정, 신사업 발굴 등으로 클린컴퍼니화했으니 7천억원 차익도 적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온전히 외자의 힘만으로 하나로의 기업가치가 오늘처럼 높아졌다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과점상태인 통신시장의 소비자 편익을 위해 정부는 경쟁사를 강력히 규제하는 정책을 펴왔다. 그 덕에 하나로의 회생은 가능했다. 하나로 사용자를 포함한 정부와 소비자의 역량이 투입된 결과라는 말이다. 임직원의 희생도 컸다. 경연진은 완전히 물갈이 됐고 25% 이상의 직원이 일터를 떠났다. 그럼에도 표면적으로는 그 과실이 고스란히 외자의 손으로 들어갈 것 같다.

 글로벌 시대 외자의 국내 기업 경영권 참여는 당연한 일이다. 삼성전자와 포스코의 외인 지분은 50%를 훨씬 넘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하나로와는 다르다. 경영권을 무기로 머니게임을 하지는 않는다. 회사의 가치 제고와 투자수익이라는 윈윈 게임을 벌인다. 주가 차익에 따라 툭하면 경영권이 바뀌는 기간통신사업자는 더 이상 기간사업자가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기억한다. AIG-뉴브리지가 하나로를 인수하면서 ‘한국 통신시장의 장기발전을 위한 투자’임을 누누히 강조했던 사실을.

 앞으로 또 어떤 외국 투기자본의 통신업체 M&A 시도가 있을지 모른다. 정부도 옥석을 가려야 한다. 머니게임용 자본을 외자유치로 포장할 수는 없다. 기간통신사업자에 필요한 외자는 파트너십이지 투기가 아니다. 통신시장이 외국 투기자본의 ‘대박의 추억’이 돼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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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전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등의 폭로로 세상이 연일 들썩이고 있다. 지난 6일 참여연대와 민변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아직까지 눈치만 살피고 있다. ‘떡값 검사’ 탓인지 검찰이 제 살을 도려내는 일에 머뭇거리고 있기 때문에 특검제 도입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회창은 삼성 구원투수?

이 때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의 무소속 대선 출마 소식이 전해졌다. 이회창 씨가 급부상하며 대선판 전체가 요동치는 가운데 파괴력이 점쳐지던 삼성 이슈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조짐이다.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한 이회창 씨. 과거 차떼기 오명까지 뒤집어쓰며 받아 챙긴 삼성 비자금의 약효가 이제야 발휘된 것일까. 단숨에 파란을 일으킨 이회창 씨는 삼성에 쏟아지던 비난의 화살을 대신 받는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 같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회창 씨와 삼성을 썩은 생선의 머리와 꼬리로 묶어보려고 노력하지만, 이회창 씨 출마의 파괴력 자체가 커서 상대적으로 삼성 이슈가 잠식되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삼성 이슈의 불씨를 최대한 살리고, 이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흐지부지 끝내버리면 반부패 투명사회 건설은 물론이고, 재벌개혁과 경제 대안 논의는 더 요원해질지도 모른다.

민주공화국 근간 흔드는 ‘삼성제국’

삼성 비자금 의혹을 최초로 폭로한 11월 6일자 <시사IN> 제7호 커버스토리 인터뷰에서 김용철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건희 회장을 신격화하는 사이비 종교 같은 사내 분위기는 참기 힘들었다. 똑똑한 사람들이 바보 노릇을 하게 만드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건희 회장의 어록과 지시 사항은 사내에서는 헌법과도 같다.”

이러한 고백은 일인의 제왕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삼성제국’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이다.

왜 흔히들 쓰는 표현인 ‘삼성공화국’이 아니라 ‘삼성제국’이냐고? 비록 ‘삼성공화국’이란 표현이 삼성에 대한 자조 섞인 비판에 불과하다 해도 ‘공화국’이란 칭호까지 붙여주는 것은 과도하다. 원래 공화국은 제왕적 통치가 아닌 법치를 근간으로 그 구성원들에게 예속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정치체를 일컫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은 공화국의 기본 원칙을 따르고 있지 않다. 오히려 헌법에도 명시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본질을 침해하는 무수히 많은 일들을 저질러 왔다. 법조계와 정치계에 대한 전방위 로비를 통한 사법체계 무력화, 노조 설립 원천 봉쇄 등 법치주의의 실현과 국민 기본권 보장을 가로 막아온 사례가 수두룩하다. 이미 삼성은 입법, 행정은 물론 사법, 언론 및 교육 등에 이르기까지 무소불위의 자본 권력, 제왕적 권력을 휘둘러 왔다.

역사 상의 제국들은 그 자체의 힘이 막강하여 외부의 적들보다는 내부의 구조적 결함과 분열로 인해 멸망했다. 때문에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삼성제국’을 그대로 두는 것은 대한민국을 파멸로 이끄는 첩경이다. 국민 경제에서 큰 몫을 담당하는 ‘삼성제국’이 내부균열로 쓰러진다면, 이를 뒷감당해야 하는 것은 결국 국민들이다.

‘삼성제국’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은 세계 굴지의 기업 삼성 그 자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삼성의 제왕적 질서를 적어도 민주공화국의 원칙에 어긋남이 없도록 바로 잡아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삼성 비자금 등의 문제가 앞으로 처리되는 방식과 그 결과를 두 눈 부릅뜨고 주시해야 할 이유가 있다.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이 ‘삼성제국’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허울 뿐인 민주공화국인지, 아니면 법치가 살아 있는 진짜 민주공화국인지를 증명하는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왜곡된 소유지분 구조에 주목해야

그러나 삼성의 고질적인 부패와 비리, 그리고 반사회적 특성을 법과 원칙에 따른 엄중한 수사와 처벌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금융실명제 등 부실한 법제도의 개선 또한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한가.

아니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로 시야를 확대해야 한다. 삼성그룹의 경우 이건희 회장의 그룹 계열사내 지분은 고작 0.31%, 이재용 전무 등 일가를 포함한 지분율은 0.81%로 전체 재벌그룹 가운데 총수 일가 지분율이 가장 낮은 경우다. 그리고 1%도 안 되는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이건희 회장은 황제 경영, 제왕적 총수의 대표사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에 발표한 ‘2007년 대규모 기업집단 소유지분구조’에 따르면, 출자총액제한제도 대상(자산 10조원 이상) 11개 그룹의 의결권 승수는 평균 7.54배(4월1일 기준)를 기록했다. 의결권 승수는 그룹 총수 일가가 계열사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지분이 실제 소유한 지분의 몇 배인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높을 수록 소유지배 구조 왜곡 정도가 크다는 것을 뜻한다. 의결권 승수가 7.54배라는 것은 1주를 갖고 7.54주의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의미인데, 삼성그룹 의결권 승수는 지난해 6.91배에서 8.10배로 크게 높아졌다.

턱없이 낮은 지분율로 그룹 전체를 지배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그 구조를 온존시키려고 하니까 자연히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로비가 횡행하고 비자금 조성 등을 비롯한 부패와 비리가 끼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황제경영, 족벌경영, 세습경영과 엇물린 부패와 비리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것은 이처럼 왜곡된 소유지분 구조의 온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런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 둔 채 문제가 드러나면 ‘도마뱀 꼬리 자르기’만 횡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부패와 비리의 몸통은 한 번도 제대로 수사된 적이 없고, 왜곡된 소유지분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는 커녕 막강한 자본권력의 힘 앞에 모두 머리를 조아리기 일쑤다.

한편, 삼성을 비롯한 재벌기업들은 비자금 조성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것을 덮기 위해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그린워시(Green-wash)’ 전략을 써왔다. 이는 이전에 회계장부를 분식하던 것을 이제는 사회공헌과 같은 고상한 방식으로 바꾼 것에 불과한데, 이는 사회공헌이란 이름으로 치부를 가리는 ‘윤리분식’이라 이름 붙일 만하다.

삼성그룹은 작년에 8,000억원을 내고 면죄부를 받으려 했다.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해 수천억원의 재산을 마지 못해 기부하는 기업이 존재하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지구상 어디에 또 있을까.

이런 문제를 발생시키는 재벌체제를 그대로 두고 한국 경제의 미래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순환출자 금지와 지배구조개선 등으로 표현되는 재벌개혁은 사실 기업들이 줄곧 외쳐대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자는 주장에 불과하다. 참여연대 등이 주장하는 후진적인 재벌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연기금 사회책임투자 확대로 사회적 통제 모색해야

그렇지만 근본적인 재벌개혁을 위해서는 법제도 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적 압력 수단을 사용하여 대기업들에게 그 규모와 영향력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사실 삼성 등의 대기업들은 그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국민기업’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국민들이 개입하고 감시할 수 있는 통로는 없다. 문제의 해법은 재벌을 위한 경제가 아닌 국민 모두의 경제를 위해 국민들 스스로가 이에 개입하고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특히,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23%, GDP의 17%를 차지할 만큼 국내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삼성그룹, 그 중에서도 시가총액 1위(2007년 10월 26일 종가기준 78조 3631억원)로 가장 덩치가 큰 삼성전자를 아예 국민기업으로 만드는 것을 검토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유력한 수단으로 연기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기금을 언급하면 여기저기서 볼 맨 소리가 그치지 않는데, 연기금 구조개혁 문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므로 여기선 언급하지 않는다. 일단 분명한 것은 가입자들의 불만해소와 더불어 사회연대의 성격을 높이는 방향으로 연기금 구조개혁을 전제하고 연기금 활용의 문제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골자는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를 확대하는 방법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최근 주식시장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사회책임투자는 기업의 환경적, 사회적, 지배구조적 측면을 평가하고 이것이 우수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 자체로도 큰 의미는 있지만, 이러한 기준은 장기투자 수익성 위주로 공익성이 부분적으로 결합된 한계를 갖고 있다.

이미 주식투자 전문가들도 사회책임투자 펀드 가입을 권하는 상황이다. 국내 상장회사 100곳의 사회적, 환경적 책임과 지배구조(ESG) 측면을 분석해 본 결과, 우수한 기업군(A+등급)보다 불량한 기업군(D등급)의 수익률 변동성(Volatility)이 2배 이상 높아 사회책임투자 펀드가 투자에 보다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까지 있다.

이미 주식시장의 큰손이 된 국민연금도 이미 사회책임투자 펀드에 3000억원을 투자해 올해 6월까지 주식형 펀드 평균수익률(25.7%)보다 높은 29.15%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2007년 7월 말 현재 212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은 세계 연금 5위 규모를 자랑하는데, 현재 추세라면 국민연금 기금은 앞으로 더욱 불어날 전망이다. 지난 2003년 정부는 국민연금 기금이 경상가격을 기준으로 2012년 400조 원, 2035년 1715조 원, 2043년 2600조 원, 2054년 5820조 원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추계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3월 현재 '시가총액 100대 기업 투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100대 기업 중 절반이 넘는 54개 기업에서 국민연금이 5대 주주 이상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그리고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앞으로 주식투자의 비중을 높일 방침인데, 기금운용위원회가 내놓은 중기 자산운용안에 따르면, 2012년까지 주식투자 비중이 30%로 증가할 예정이다.

또한 국민연금은 지난해 3월 '주식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를 만든 것을 계기로 지분 보유 기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2006년 국민연금은 487회의 주주총회에 참석해 1878건의 상정안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했다.

그런데 이 방법을 삼성 등의 재벌기업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사회책임투자 개념의 확장을 전제로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가운데 사회책임투자의 비중을 대폭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책임투자 개념의 확장이란, 환경적, 사회적, 지배구조적 측면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기업에 투자한다는 개념을 넘어서 공공부문을 포함하여 국민적 영향력이 막대한 기업들의 주식을 일정 수준 이상 확보해 의결권을 행사함으로써 해당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지배 구조 재편은 투명한 경영은 물론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조절을 가능하게 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국민 경제 전체의 내실화와 좋은 성장에도 기여할 것이다.

‘연기금 사회주의’ 논란은 난센스다

이 같은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 확대는 금민 한국사회당 대선 후보의 핵심 정책이기도 한데, 한나라당 등 보수 진영에서는 이와 비슷한 발상을 염두에 두고 ‘연기금 사회주의’라고 손사래를 치며 예전부터 방어막을 쳐왔다. 하긴 노무현 정권을 아예 친북좌파라 규정하는 사람들이 이를 두고 ‘연기금 사회주의’라 부르는 것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을 놓고 ‘연기금 사회주의’(pension fund socialism)라 칭하는 것은 완전한 넌센스다. 1976년 미국의 유명한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가 처음 제기한 이 ‘연기금 사회주의’론은 미국 노동자들의 연기금을 통한 주식소유 비율이 급증하면서 미국이 조만간 노동자가 생산수단 대부분을 소유하는 사회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는 예측에서 나왔던 말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등이 이러한 주장을 계속하려면, 우선 미국과의 국교 단절부터 주장하고 볼 일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미국은 이미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한편,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 확대는 연기금 본래의 사회적 성격을 좀 더 강화하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 연기금은 본래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때문에 국민들이 스스로의 돈을 국민 경제 전체의 건실화를 위해 쓰자고 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 아니라 현실 가능하고 바람직한 대안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점화된 삼성 사태, 이제 더 이상 김 변호사와 몇몇 시민단체들만의 외로운 싸움이 되어선 안 된다. 부패 척결로 그칠 것이 아니라 재벌 경제를 국민 경제로 전환시키기 위한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만이 이번 삼성 사태의 본질적 해법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 사이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최광은 한국사회당 대변인

국내 선물시장의 역사는 일천하다. 수확기 전에 농산물을 확보하기 위한 밭떼기 거래는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제도화된 시장을 통해 선물거래를 육성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선물거래란 곡물 등 상품이나 주식, 주가지수 등을 미래의 일정한 시점에 미리 정한 가격에 매매하기로 약속하는 거래를 말한다. 곡물 선물거래는 원래 작황에 따른 가격 급등락과 운송 불편 등을 감안해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하고 가격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도입된 기법이다. 주식을 비롯한 금융 선물 역시 안정적으로 자본시장을 확충하고 거래자를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나왔다. 하지만 비교적 적은 돈으로 많은 물량을 확보해 한탕 건질 수 있다는 투기적 심리가 만연해 적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도 사실이다.

금융 선물거래에서 '압구정 미꾸라지'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윤강로(50)씨는 고수 중의 고수로 꼽혀 왔다. 옛 서울은행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던 윤씨는 1994년 미국 시카고선물거래소(CBOT)에서 3개월간 연수를 받은 뒤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선물거래의 매력에 푹 빠져든 그는 이론적인 분석과 모의투자 학습을 통해 내공을 쌓다가 1998년 은행에서 퇴직해 실전에 뛰어들었다. 몇 년간 주가지수 선물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 무려 1300억원. 그는 40대 중반에 이미 전설이 됐다. '미꾸라지'라는 별명이 다소 경박하게 들리기는 해도 급락 장세에서 과감한 손절매를 통해 빠져나가는 위험회피 능력을 높이 평가한 말이니 기분 나쁜 소리는 아닐 것이다.

개인 투자를 통해 거금을 쥔 윤씨는 3년 전 한국선물 회사를 인수해 KR선물로 이름을 바꾸고 회장에 취임했다. 모교에 거금을 쾌척해 장학기금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 인수 이후 지난해까지 내리 손해를 보아 그동안 번 돈의 절반 가량을 날렸다고 한다.

윤 회장이 최근 선물시장에서 발을 빼고 미국 하버드대학 부근에 중고교생 전문 기숙학원을 차렸다는 소식이다. 과감한 투자와 결단으로 전설이 된 그간의 행적을 감안하면 과연 윤 회장다운 업종 전환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인재양성 필요성에 사교육의 경쟁력을 접목한 판단이 주목된다. 윤 회장의 해외 진출이 또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해본다.

김성기 수석논설위원 kimsong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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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누군가 선물투자를 해서 엄청나게 돈을 벌었다는 말을 들었다. 부러워하다가 기어이 3년 넘게 부었던 적금을 깼다. 그러고는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선물에 몽땅 털어 넣었다. 그런데 그만 홀랑 날려버렸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우리 주가가 폭락한 탓이었다. 돈을 모으느라 그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데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니 기가 막힐 뿐이었다. 하지만 누구를 원망하랴….

묻어두었던 펀드를 정리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펀드로 얻게 된 이익금이 앞서 선물에서 날린 돈과 엇비슷한 액수였다. 결국 내 전재산은 한푼도 늘지도, 줄지도 않은 셈이었다. 그 돈이 돌고 돌아서 내게 다시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줄지 않은 것이 큰 다행으로 여겨졌다.

소득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많은 교훈을 얻었고 스스로 반성도 많이 했다. 크게 보이는 남의 떡이 내 떡은 아니며, 그저 열심히 일하고 번돈 아껴 쓰는 게 나로서는 돈 버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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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건설산업 비전포럼 공동대표
요즘 서울 한복판에서는 대규모 복합도시 개발사업이 속속 추진되고 있다. 한강 르네상스와 연계해 용산의 철도기지창을 옛 나루터와 연결하는 초대형 복합도시 개발사업인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은 이미 사업자를 선정했다. 상암동 DMC 지역에 들어설 150층이 넘는 초고층 랜드마크 빌딩이 조만간 사업자를 공모하고, 세운상가 일대도 대대적인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고, 시내 16곳의 재정비촉진지구 개발사업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 같은 대규모 복합재개발 사업의 경우 사업비도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경우 물경 28조원에 이른다.

그동안 규모가 큰 사업인 SOC(사회간접자본)사업이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사업의 경우, 대개 대형 건설회사들이 사업 주체로 선정되어 왔다. 마땅한 대안이 없다 보니 ‘건설회사 위주’의 개발사업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주거나 상업시설, 용도를 불문하고 건설회사가 개발 주체로 나설 경우 속성상 ‘분양’ 중심의 ‘치고 빠지기식’ 개발을 피하기 어렵다. 도심재개발사업에선 개발이나 분양보다는 운영이나 유지관리가 오히려 더 중요하다. 재개발된 시설물이 몇 년도 채 가기 전에 공동화하거나 퇴락하는 것도 운영이나 유지관리 측면을 도외시한 채 사업을 추진한 탓이 크다.

미국이나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에서는 이른바 재벌급 디벨로퍼가 ‘명품’ 부동산을 개발한다. 도쿄 도심의 롯폰기 힐스는 디벨로퍼인 모리부동산이 재무적 투자자의 도움을 받아 6년여에 걸친 재개발 끝에 세계적인 명품을 탄생시켰다. 도쿄 미나토구 옛 방위청 용지에 지어진 미드타운 복합단지는 미쓰이 부동산이 전국공제농업협동조합연합회, 메이지야스다 생명보험 등 업종을 뛰어넘는 기업들을 컨소시엄으로 끌어들여 성공할 수 있었다.

최근 아파트 분양열기가 식으면서 우리나라에도 대형 건설업체들이 디벨로퍼 역할을 할 부동산개발 전담회사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건설업체들은 일괄 도급계약 후 하도급이라는 다단계 건설생산방식에 익숙하다 보니 높은 공사비와 불투명한 건설관행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건설업체가 디벨로퍼로 변신하기보다는 재벌급 회사나 대기업이 나서 부동산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디펠로퍼를 설립하거나, 혹은 은행이나 보험·펀드·연기금 등이 주축이 된 디벨로퍼가 더 바람직하다. 금융과 개발업체가 합치면 국내외에서 무궁무진한 국가적 부를 창출할 수 있다.

디벨로퍼는 단순한 주택사업자가 아닌 만큼 건축과 토목 등 엔지니어링 기술은 물론 경제·사회·문화·법률·금융 등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지식과 직관력·창의력·분석력·예술적 감각까지 두루 갖춰야 한다. 창조 경영, 상상력 경영의 표상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두바이도 에마르(Emaar), 낙힐(Nakheel) 같은 대형 디벨로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이러한 디벨로퍼들을 발굴하고 장기적으로 육성하는 일에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할 때다.




[김종훈 건설산업 비전포럼 공동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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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부소장


지난 11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1641만7000개인 총 가구수는 2030년 1987만1000개로 21% 증가한다. 반면 인구는 2018년 4934만명을 정점으로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인구는 줄어드는 데 가구 수가 늘어나는 이유는 자녀 없는 부부 가구와 1인 가구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의 고령화 문제도 심각하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다. 2026년이면 우리나라 인구는 전체 인구에서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어가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인구 5명 당 1명이 노인이 세상이 되는 것이다. 또한 2030년이면 고령화의 또 다른 측면인 인구 감소도 시작된다. 자본주의 200여년 역사상 자연재해나 전쟁이 아닌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는 처음 있는 일이다.

고령화는 정치ㆍ경제ㆍ문화 등 사회 각 부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2005년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혼율 급증, 신체기능 노화에 따른 교통 사고율의 급증, 연금 등 사회복지 부담의 증가 등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가경제 차원의 문제다. 왜냐하면 고령화는 정부 부문의 부담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많아지면 의료비와 연금 등의 증가로 의료보험과 연금은 적자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자금 부족이 발생하면 정부 재정으로 이를 충당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 재정의 재원은 국민들이 낸 세금이므로 이는 자연스레 세금 인상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세율이 높아지고 각종 연금과 의료보험 등에서 기업 측이 내는 분담금 비중이 높아지면, 기업들의 투자 의욕은 점차 줄게 된다. 이 때 기업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보다 좋은 경영환경을 제시하는 다른 나라로 공장 등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세계화가 진전된 상황에서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국가들은 다른 나라와의 `제도 경쟁'을 통해 투자를 유치하고자 한다. 제도 경쟁의 우위 즉, 저임금과 낮은 세율 등을 제공하면, 기업들은 이런 조건을 찾아 생산기지를 이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기업들이 해외 이전을 단행하면, 국내 실업률은 높아지고, 실업자가 된 사람들은 노후 대비를 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처럼 고령화 문제를 정부 부문이 직접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하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사회적 비용을 가장 적게 들이는 방법은 바로 금융산업, 그 중에서 자산운용업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자산운용업을 발전시키자는 취지는 젊어서 번 돈을 잘 운용해 그 돈으로 노후 생활을 할 수 있는 시장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저금리 시대에는 예금 등 안전 자산 위주로 자산을 운용해서는 화폐의 구매력을 전혀 지킬 수 없다. 따라서 개인들이 주식형 펀드와 같은 투자 자산을 포트폴리오에 편입시키는 게 불가피하고, 그 불가피성을 실현할 수 있는 주체 중 하나가 바로 자산운용업인 것이다.

고령화 시대의 또 다른 해법은 해외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돈 중 일부를 노년층에 이전해 왔다. 효도나 연금제도도 바로 대표적인 사례다. 노년층이 많아지면, 이런 해법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 반면 돈이 있는 노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자산을 팔아서 생활비를 충당한다. 노년층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들의 자산이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경우, 50~70대가 일본 금융기관에 맡겨 놓은 돈의 85%를 소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년층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돈을 젊은 나라의 국가들에게 투자하고, 그 대가로 수익을 올리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즉, 글로벌 차원에서 젊고 성장하는 국가에 투자하는 방법으로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두고 제레미 시겔 미국 워튼 경영대학원 교수는 `글로벌 해법'이라고 부른다.

국내 자산운용업은 최근 적립식 펀드와 해외 펀드 등의 인기로 새로운 도약기를 마련했다. 향후 고령화 사회의 힘겨운 파고를 넘기 위해서는 자산운용업에 종사하는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자산운용업이 보다 활성화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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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큰 관심을 모았던 로봇랜드 예비사업자로 인천과 경남(마산) 두 곳이 최종 결정됐다. 세계 최초 로봇 테마파크인 로봇랜드는 오는 2013년까지 79만∼99만㎢ 부지에 첨단 로봇을 테마로 한 전시관과 체험관·경기장·오락시설 등을 만드는 복합테마파크 사업이다. 이 사업을 유치하면 지역 경제 발전에 획기적 전환점이 될 수 있어 여러 지자체가 눈독을 들여왔다.

 일각에서는 로봇랜드에서 연간 1000억원대 생산 유발과 수천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7월 마감 때 서울·제주·충정도를 제외하고 경기·인천·대전·대구·광주·부산·경남·경북·전남·강원도 등 거의 모든 지자체가 신청서를 제출하며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신청서도 마지막 날에 몰릴 만큼 눈치작전도 심했다. 지자체마다 자치단체장이나 해당지역 출신 정치인이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했고 일각에서는 정부 구상을 훨씬 뛰어넘는 대규모 민자·외자 유치 계획을 담을 만큼 과열양상도 보였다. 이 때문에 정부는 더욱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애초 지난 8월 발표하려던 예비사업자 선정을 3개월가량 늦추기도 했다.

 사업자 선정 공고에서 예비사업자 선정까지 7개월이 걸린 로봇랜드 사업은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내년 상반기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 정부 지원 타당성이 인정되면 오는 2009년 본격적으로 조성이 시작되는 이 사업은 소요비가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대형 프로젝트다. 이 중 정부가 지원하는 자금은 국비가 지원되는 설계·건축비의 50% 정도이고 이를 제외한 자금은 지자체와 민간투자가 매칭 펀드 방식으로 조달해야 한다. 자금 모으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지역실정이나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일단 따놓고 보자’는 식의 무리한 접근은 결코 안 된다고 지적해왔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차세대 먹을거리 중 하나인 로봇은 오는 2020년께면 자동차 산업을 능가할 만큼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다. 이 때문에 정부도 지난 2005년 산자부에 로봇팀을 신설해 오는 2013년까지 세계 로봇 시장 점유율을 15%로 높이고 세계 3대 지능형 로봇기술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큰 그림을 세워놓고 이를 추진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의 로봇산업은 갈 길이 멀다. 일례로 정확성이 매우 중요한 로봇 구동용 초정밀 에너지 모터는 거의 대부분이 고가 외산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로봇 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을 축적하고 학제·전문가 간 교류를 통해 전문가를 많이 키워야 한다. 범국민적 관심을 높여야함은 물론이다.

 로봇랜드는 지방경제 활성화는 물론이고 우리가 안고 있는 이 같은 산업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일조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참여정부는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국정 핵심과제로 정하며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역대 어느 정부보다 지방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아직 가시적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방 발전과 육성 없이는 국가 발전도 있을 수 없다. 로봇랜드가 지방경제를 살린 대표적 성공사업이 되도록 다시 한 번 정부와 예비사업자가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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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연일 세상이 시끄럽다. 대통령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쟁투만으로도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대학의 편입학 부정, 특목고의 입시문제 유출, 현직 국세청장 구속, 검찰의 떡값, 삼성의 비자금과 기업윤리까지 도마에 올라 마치 전쟁 직전이나 직후의 황폐한 인간 세상을 지켜보는 것처럼 조석으로 기분이 씁쓸해진다. 그것도 모자라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인물까지 다시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고 세상을 주유하는 걸 지켜보노라면 도대체 이 나라에 도덕적 신망이나 신뢰가 터럭만큼이라도 남아 있는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사회 유명 인사들의 학력위조로부터 출발해 지금껏 세상을 어지럽게 만든 이런저런 사건의 이면에는 하나같이 신뢰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신뢰란 지극히 간단하고 명징한 것이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스스로 구별할 줄 아는 사람된 도리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사회 활동을 하고 또한 세상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작금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만든 문제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거나 무시하거나 배신한 행위를 한 셈이다. 몇 년 쉬다가 나오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옛날에 했던 말은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인가.

1980년대부터 20년 동안 한국인의 사회 신뢰도는 무려 10% 가깝게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부패인식 지수도 세계 43위를 기록하고 있다. 작년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사회적 자본실태 종합조사’에 나타난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는 점입가경이다. 10점 만점 신뢰 기준으로 정부·정당 각 3.3점, 국회 2.9점, 지자체 3.9점, 검찰·법원 각 4.2점, 경찰 4.5점, 언론·군대 각 4.9점, 대기업 4.9점, 노조 4.6점을 기록해 사회 각 분야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시각이 어느 정도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모르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의 신뢰도가 4.0이라는데 도대체 국민에 의한 국민의 국가와 공공기관의 신뢰도가 어찌 그리 낮은지 모를 일이다. 응답자의 52%가 ‘공직자의 다수 또는 거의 모두가 부패했다’고 답했다고 하니 길게 말해 뭣하랴.

신뢰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소중한 재산이다. 국가도 마찬가지, 사회 신뢰도는 ‘제3의 자본’이라 하여 국가경쟁력의 근본을 형성하고 사회적 계층적 지역적 갈등을 해소하는 밑거름이 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실정은 신뢰가 아니라 불신의 벽을 높여 가는 일에 놀라운 가속력과 집중력을 보이고 있다. 국민적 관심사가 부동산이나 주식, 펀드 상품 따위에 노도처럼 휩쓸리고 있고, 대권에 도전한 예비후보들은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하나같이 ‘경제대통령’을 내세우고 있다.

불신 다음에 오는 것은 사회적 단절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가 끊어지면 사람은 더 이상 사람답게 살지 못한다. 스스로 짐승이 되거나 다른 짐승의 희생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뢰의 상실과 불신의 팽배는 결국 인성을 저버린 물질사회의 지옥을 구현하게 될 것이다. 사람을 존중하면 신뢰가 쌓이고 물질을 숭배하면 불신이 쌓인다는 것, 어지러운 시절에 다시 한 번 되새겨봐야겠다.

〈박상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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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근 연세대 교수
최근 우리 경제와 금융시장에 큰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이른바 신(新)3고(원화 강세, 고유가, 고금리)에다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그리고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등 대외적 악재에 노출되어 주식시장이 요동을 치고, 세계 자금시장은 신용경색 조짐을 보이고 있어 기업과 투자자들이 크게 불안해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대외적 교란에 단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적절한 대책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미국 금융당국은 그래도 여건이 어려운 가운데 정책 금리도 내리고 달러 평가절하도 유도하며 나름대로 신용 경색과 경기 침체에 선제적으로 대응을 하고 있지만, 우리 금융당국은 금리나 환율을 정책수단으로 사용하는 데 큰 제약을 받고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우리나라처럼 대외 의존도가 높은 소국(小國) 개방경제는 어차피 대외적 변수에 휘둘림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은 여기에 더해 우리가 노력하였으면 피할 수 있었던 금융구조의 취약점까지 안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그간의 우리 금융시장 개방이 외국 자본의 국내 유입 일변도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돈은 들어오면 또 나가야 하는데, 우리는 돈이 일방적으로 들어오기만 하고 나가지는 않아 쏠림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이는 현재 우리 경제가 큰 부담으로 안고 있는 과잉 유동성과 원화 가치의 과도한 절상의 근본적 원인이 되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이 같은 구조적 취약점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적극 실행해야 한다. 정부 당국은 우선적으로 우리의 금융구조를 외국 자본의 국내 유입 일변도 형태에서 국내 자본도 외국 시장에 활발하게 진출하는 양방향 개방화 형태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경제 흐름은 양방향으로 진행이 되어야 안정성을 갖게 된다.

다행히 정부도 다소 늦긴 했지만 양방향 개방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내국인의 해외 투자 규제 완화 등 제도적 뒷받침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실행을 좀 더 앞당기고 해외 투자 활성화를 위한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우리 기업인들이 해외 투자에 적극 나서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이는 기업 입장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함은 물론, 우리 경제를 양방향 구조로 가져가 안정화시킨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14일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해외 펀드 형태로 국내 투기성 핫머니가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국내 부동산 가격도 낮추고 환율도 안정시키는 등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빈말이 아니다.

물론 묻지마식 해외 투자는 또 다른 후유증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금융구조를 양방향 구조로 개편하는 것을 미룸으로써 우리 경제가 거시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국가적 비용은, 이미 우리 국민의 해외투자 실패로 인한 국가적 부담을 훨씬 능가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우리 통화당국은 과잉 유동성과 시장금리 상승 문제를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뒷짐 지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대외적인 요인에 의하여 금융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현 상황을 특수 상황이라고 보고, 시장 금리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는 과도한 채권 발행 물량을 적절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최근 여러 대외적 경제 불안 요인이 한꺼번에 우리에게 다가와 불안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통제 밖에 있는 대외 변수를 손 놓고 쳐다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리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대내적인 불안 요인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금융시장의 양방향 개방화는 그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성근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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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명 검찰총장이 BBK 주가조작 사건의 수사와 관련해 의미 있는 언급을 했다. 정총장은 엊그제 출입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검찰은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다”면서 “검찰은 오직 실체적 진실만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른바 ‘삼성 떡값 의혹’으로 인해 검찰의 신뢰가 무너진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우리를 믿어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우리는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이 사건의 수사에 대해 검찰 총수가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소중한 원칙을 천명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BBK 사건은 투자자문회사인 BBK를 비롯해 종합금융회사 LKe뱅크, (주)다스, 역외펀드 MAF 등 알쏭달쏭한 영문 명칭들이 등장하고 이들 각각의 관계도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 복잡한 것 같지만 의혹의 핵심은 간단하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가 BBK의 실소유주인가, 따라서 이후보가 5000명의 소액투자자들에게 수백억원의 피해를 입힌 법적 책임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경준씨와 이후보 측의 주장은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김씨는 “그렇다”고 주장하고 이후보 측은 “아니다”라고 반박해왔던 것이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대선후보가 연루된 데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대선 판도를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는 사안인 만큼 검찰로서는 당연히 적잖은 부담감과 압박감을 느낄 만하다. 그러나 상황이 어렵고 복잡할수록 해법은 원칙과 대도(大道)를 따르는 것이다. 정총장이 밝힌 대로 수사 결과가 누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가를 따지지 말고 오로지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떡값 의혹’ 등으로 실추된 신뢰와 위상을 회복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검찰이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난 뒤의 일은 국민들의 몫이다. 한나라당이나 이후보 측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오면 “민란(民亂)이 일어날 것” 운운하는 협박성 언동을 다시 해선 안된다. 자신들이 진정 결백하다면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그 결과를 지켜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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