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연일 세상이 시끄럽다. 대통령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쟁투만으로도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대학의 편입학 부정, 특목고의 입시문제 유출, 현직 국세청장 구속, 검찰의 떡값, 삼성의 비자금과 기업윤리까지 도마에 올라 마치 전쟁 직전이나 직후의 황폐한 인간 세상을 지켜보는 것처럼 조석으로 기분이 씁쓸해진다. 그것도 모자라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인물까지 다시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고 세상을 주유하는 걸 지켜보노라면 도대체 이 나라에 도덕적 신망이나 신뢰가 터럭만큼이라도 남아 있는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사회 유명 인사들의 학력위조로부터 출발해 지금껏 세상을 어지럽게 만든 이런저런 사건의 이면에는 하나같이 신뢰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신뢰란 지극히 간단하고 명징한 것이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스스로 구별할 줄 아는 사람된 도리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사회 활동을 하고 또한 세상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작금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만든 문제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거나 무시하거나 배신한 행위를 한 셈이다. 몇 년 쉬다가 나오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옛날에 했던 말은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인가.

1980년대부터 20년 동안 한국인의 사회 신뢰도는 무려 10% 가깝게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부패인식 지수도 세계 43위를 기록하고 있다. 작년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사회적 자본실태 종합조사’에 나타난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는 점입가경이다. 10점 만점 신뢰 기준으로 정부·정당 각 3.3점, 국회 2.9점, 지자체 3.9점, 검찰·법원 각 4.2점, 경찰 4.5점, 언론·군대 각 4.9점, 대기업 4.9점, 노조 4.6점을 기록해 사회 각 분야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시각이 어느 정도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모르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의 신뢰도가 4.0이라는데 도대체 국민에 의한 국민의 국가와 공공기관의 신뢰도가 어찌 그리 낮은지 모를 일이다. 응답자의 52%가 ‘공직자의 다수 또는 거의 모두가 부패했다’고 답했다고 하니 길게 말해 뭣하랴.

신뢰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소중한 재산이다. 국가도 마찬가지, 사회 신뢰도는 ‘제3의 자본’이라 하여 국가경쟁력의 근본을 형성하고 사회적 계층적 지역적 갈등을 해소하는 밑거름이 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실정은 신뢰가 아니라 불신의 벽을 높여 가는 일에 놀라운 가속력과 집중력을 보이고 있다. 국민적 관심사가 부동산이나 주식, 펀드 상품 따위에 노도처럼 휩쓸리고 있고, 대권에 도전한 예비후보들은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하나같이 ‘경제대통령’을 내세우고 있다.

불신 다음에 오는 것은 사회적 단절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가 끊어지면 사람은 더 이상 사람답게 살지 못한다. 스스로 짐승이 되거나 다른 짐승의 희생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뢰의 상실과 불신의 팽배는 결국 인성을 저버린 물질사회의 지옥을 구현하게 될 것이다. 사람을 존중하면 신뢰가 쌓이고 물질을 숭배하면 불신이 쌓인다는 것, 어지러운 시절에 다시 한 번 되새겨봐야겠다.

〈박상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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