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외환보유액 규모가 적정 보유액 이상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외환보유액은 전달에 비해 다시 소폭 증가해 8월 말 현재 2553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이처럼 지속적인 보유액 증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보유액 운용은 세계 다른 나라와 비교해 너무 소극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물론 지금처럼 국제금융시장이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안정적인 자금 운용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특히 외환보유액은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을 우선해야 하는 자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적정 규모 이상 보유액에 대해서는 자금 운용상 수익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게 세계적 흐름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2년 전 한국투자공사(KIC)를 출범시키고 적극적인 외환 운용의 물꼬를 튼 것이다.

문제는 기대와 달리 투자공사가 적극적인 자금 운용을 못하고 있고 그 결과 실적도 대단히 미미하다는 점이다. 외환보유액 170억달러를 포함해 모두 200억달러 펀드를 토대로 시작했으나 지금까지 투자 실적은 8월 현재 총 110억달러에 머물고 있다.

이에 대해 공사 측은 투자제한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투자 대상이 신용등급 BBB 이상 안전한 회사채나 주요 선진국 주식에 한정돼 있어 충분한 수익을 낼 기반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외국과 비교하면 일리가 있는 얘기다. 세계 최대 외환보유국인 중국은 미국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에 30억달러를 출자해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고 싱가포르는 테마섹을 통해 기업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러시아, 노르웨이 등도 위험자산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 투자공사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따로 있다고 본다. 한은에서 보유액을 위탁받아 운용하다 보니 한은 측에서 자금 운용에 일일이 간섭하고 있는 것이다. 위탁은 예탁과 달라 위탁기관이 적자발생 등 운용책임을 진다. 그러니 한은으로선 투자공사의 공격적인 운용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이럴 바에는 아예 투자공사가 채권 발행을 통해 한은에서 보유액을 매입한 뒤 그 자금으로 적극적인 운용을 하는 방식이 좀 더 바람직할 수 있다. 재정경제부가 검토해 보길 권한다. 정부채무가 늘어나는 부담이 있지만 옳은 일을 위한 것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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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영국계 글로벌은행인 HSBC가 외환은행 대주주인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외환은행 매수계약을 체결했다. 매수시기와 조건 등 여러가지 옵션이 있지만 지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국민은행과의 조건에 비해 가격면에서 1조원 이상이나 높다. 계약조건대로라면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로 5년만에 5조 3000억원 이상의 차익을 챙기게 된다. 우리가 자본 국수주의에 얽매여 덫을 놓는 사이에 론스타의 배만 더 불리게 된 것이다.

물론 론스타가 이같은 차익을 챙기려면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2건의 관련 재판과 금융당국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심사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론스타가 1심에서 승소하고 검찰이 항소하지 않는 한 ‘먹튀’할 가능성이 높다. 대주주 자격심사에서 결격판정을 받든,1심에서 패소하든 외환은행 지분을 팔고 떠나면 그만인 것이다.

우리는 지난해 국민은행이 외환은행 인수에 나섰다가 외국계 투기자본의 배만 불린다는 ‘국민정서법’에 떠밀려 계약이 백지화된 과정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감사원과 검찰, 금융당국 등은 외환은행의 헐값 매각의혹 여론에 편승해 전방위로 압박을 가했다. 감사 및 수사를 통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조작과 외환카드 주가조작이라는 비리가 밝혀져 관련자들이 기소되기는 했으나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입 자체를 무효화시킬 정도의 불법행위는 찾아내지 못했다. 대신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에 대한 신뢰는 크게 손상됐다.

외환은행 재매각 계약이 공표되자 자본의 국적을 따지는 후진적인 애국심이 다시 들끓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애국심은 정작 외환은행의 해외 네트워크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국내 은행의 인수 기회를 무산시키는 역기능만 초래했다. 우리가 동북아 ‘금융허브’를 지향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우물안 개구리식의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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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선 산자부 외국인투자기획관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000년간 가장 위대한 인물로 칭기스칸을 선정한 바 있다. 이는 수백년 전 동서양의 경계를 허물고 세계를 하나로 만들려 했던 칭기스칸의 정신이 21세기에 글로벌화로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지성 자크 아탈리도 21세기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은 `유목민(nomade)'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로 기업경영의 글로벌화가 촉진됨에 따라 국경을 넘나드는 빈번한 교류가 발생하고, 정착민의 수동적ㆍ수직적 마인드보다는 유목민의 진취적ㆍ수평적 마인드가 요구되는 시대인 것이다. 해외시장 개척, 기술ㆍ브랜드 확보 등을 위한 해외진출은 이제 기업의 필수 생존전략이 되었으며, 최근 고유가에 따른 자원확보 경쟁 심화는 우리나라에게 해외진출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만들고 있다.

그 간 우리 산업은 첨단제품 개발과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세계 조선 1위, 반도체 3위, 철강ㆍ자동차 5위의 글로벌 리더십을 달성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GDP 대비 해외직접투자잔액 비중은 4.6%로 일본의 8.5%, 미국의 16.4%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특히 석유화학ㆍ이동통신ㆍ전력ㆍ금융ㆍ게임 등 국내시장이 성숙ㆍ포화단계에 이른 산업의 경우는 구조조정이나 해외진출로 활로를 모색하지 않을 경우 설비과잉, 가격경쟁력 상실 등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에 정부는 올해 초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방안을 수립했다. 정부의 공식 협의체로서 해외진출협의회와 실무협의회를 구성ㆍ운영 중이며, 4월에 공식 출범한 KOTRA의 글로벌 코리아에 콜센터를 설치해 해외진출 희망기업들에게 무료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중국의 정책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기업들을 위한 대책도 마련했다. 해외진출통합정보시스템 구축과 민관 합동 해외진출지원단 구성을 통해 통합정보 제공 및 컨설팅 기능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해외건설펀드, 유전개발 후속펀드 출시 등 금융ㆍ세제ㆍ인력 등의 지원책이 포함돼 있다.

어떤 사람들은 기업의 해외진출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국내산업 공동화를 우려하거나 국내 기업환경 개선 문제와 혼동하기도 한다. 국내 기업환경 개선을 통한 국내투자 활성화 및 외국인투자 유치가 중요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이는 해외진출 확대를 통한 국부창출과 병행돼야 할 별개의 과제이다. 산업 공동화 문제는 산업구조 고도화 과정에서 다른 선진국에서도 나타난 논쟁이었으나, 해외투자가 국산부품 및 중간재 수출촉진, 생산유발 등 국내 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미친다는 것은 이미 국내외 많은 연구결과들이 입증하고 있다. 2004년 산업연구원 조사결과에서도 해외투자가 연간 순수 무역흑자 33억8000만달러, 생산유발 19조1000억원, 고용유발 8만8000명의 효과를 가져온다고 밝히고 있다.

아프리카, 동구 산유국 등 자원부국은 풍부한 오일달러를 이용해 인프라 건설, 산업발전, 경제개발을 모색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경험 습득, 산업협력 등을 희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나이지리아, 알제리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이들 국가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면서 자원 확보, 플랜트 수주, 수출 등 상호 윈-윈(Win-Win)하는 패키지형 해외진출을 더욱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일례로 현재 국산 고등훈련기인 T-50의 UAE 수출이 성사될 경우 그 금액만도 1조2000억원에 달할 뿐 아니라 항공산업이 우리나라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발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성공적 해외진출을 위해서는 국내투자보다 몇 배나 더 높은 리스크를 극복하고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Globalization+Localization)에 성공해야만 한다. 중동지역의 접시문화를 식기세척기에 접목시킨 동양매직이나, 물이 부족한 중동 지역의 특성에 맞춰 문을 자주 여닫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물쇠 냉장고를 개발한 대우일렉트로닉스는 현지화 성공의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우리경제는 한미 FTA라는 새로운 기회와 함께 중국ㆍ일본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국내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줘야 하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한 해외진출은 이를 위한 돌파구이자 우리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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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석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서브프라임 사태. 지난 7월부터 전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이슈이다. 대체로 8월말 정도부터는 진정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나 여전히 본질적인 문제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이 사태가 어떻게 흘러왔고, 앞으로는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에 대해서 차분히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사태의 가장 근원적인 시발점은 주택가격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을 바탕으로 상환능력이 없는 개인들에게까지 과도한 모기지대출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고수익의 투자처를 필요로 하던 주요 투자은행과 헤지펀드들, 낮은 등급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으로부터 높은 등급의 새로운 금융상품의 추출을 가능케 하는 CDO(부채담보부증권)와 같은 금융상품의 개발, 내용이야 어떻든 대출을 실행하기만 하면 커미션을 챙길 수 있었던 모기지 브로커, 그리고 느슨한 금융감독 관행, 이 모두의 합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주요국의 주식시장은 베어스턴즈 사태가 있었던 지난 7월 25일 이후 급락세를 보이다가 미 연준의 재할인율 인하를 발표한 지난 8월 18일부터는 불안 요소들이 해소되면서 빠르게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국내 주식시장은 외국인이 급매도세를 보이면서 고점대비 20%에 가깝게 폭락하였다가 빠르게 회복된 상황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회복 국면이 지속될 것인가? 그리고, 서브프라임 사태는 이렇게 해소되고 글로벌 경제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멀쩡하게 굴러갈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쉽게 정상화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미연준 의장 버냉키를 비롯한 여러 조사기관에 의하면 현재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손실액은 약 800~1,300억불의 수준으로 예상된다. 이는 미국 전체 금융자산의 약 0.25% 내외로 절대 수준으로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변동금리부 대출로 금년 10월 이후에 도래할 모기지 규모가 분기당 평균 1000억달러의 규모에 이른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들 대출의 경우 매달 상환해야할 이자규모가 많으면 수 배까지 증가할 수 있고, 결국 연체율이나 저당률이 상승하면서 손실규모가 더욱 커질 수 있다.

또 하나는 실물경제에 대한 파급효과 부분이다. 미국의 주요 경제지표는 7월 수치까지는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발한 이후인 8월 수치들은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미국경제의 70%를 차지하고 과거 수년간 고성장을 홀로 이끌었던 소비가 소비심리 급락으로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

마지막으로는 이번 사태가 확산된 주범 중의 하나인 헤지펀드에 대한 것이다. 헤지펀드들이 서브프라임 관련 투자비중이 높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손실을 우려하는 고객들의 환매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헤지펀드들은 자산을 매각하여 현금을 확보할 수 밖에 없는데 문제는 CDO들은 그 구조가 복잡하고 가격평가가 어렵기 때문에 유동성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적정가격에 매각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헤지펀드들은 문제가 있는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의 비중은 줄이지 못하고 아이러니하게도 펀더멘털에 문제가 없는 우량주식이나 채권, 상품 등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높은 자산들을 급매하면서 최근의 글로벌 금융시장에서의 가격변동폭을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 문제는 본질적인 불안요소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 2개월간에 있었던 사태들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금융불안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친 영향을 감안할 때 단기간 내에 전면적으로 진화될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아마도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액이 보다 정확하고 투명하게 알려지면서 단기적인 패닉 현상이 다소나마 해소되고, 나아가 현재의 글로벌 금융시스템 전반은 여전히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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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계 은행 HSBC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 지분 51.02%를 인수키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경제계 일각에서 ‘금산분리’(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원칙’ 철폐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산분리 원칙으로 인해 국내 자본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기회가 봉쇄되다보니 론스타가 외국계 자본인 HSBC에 비싼 값으로 팔고 한국을 떠나는 이른바 ‘먹튀’를 도와주는 꼴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원인과 결과를 잘못 연결한 ‘논리의 비약’이다. 우선 현행 은행법에 따르면 비금융 주력자(산업자본)는 국내 자본이든 해외 자본이든 4%를 초과해 은행 주식을 보유할 수 없다. 법적으로는 국내외 자본에 차별을 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금산분리 논란보다는 단기 차익을 노리는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어떤 경위로 외환은행이 넘어갔고, 그 과정에서 론스타의 불법행위나 정부와 금융감독당국의 잘못은 없었는지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우선돼야 한다.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인수’ 과정에 대한 검찰수사가 이뤄졌고,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전 세계 여러 기업들에도 투자를 하고 있는 론스타를 금융 주력자로 인정해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부여한 정부의 조치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금산분리 논란에 치우치기보다는 외환은행이 론스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불법과 오류가 있었다면 철저히 가려내 책임을 묻고, 외국계 자본이 우리나라의 국부를 손쉽게 빼가는 사태가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법적·제도적인 보완을 하는 데 집중할 때이다.

론스타는 금산분리 논란이 가열되길 내심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론스타는 여론의 뭇매를 맞지 않고 막대한 이익을 챙겨 한국을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준기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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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된 9ㆍ11 테러사건 발발 6년째를 맞았다. 당시에도 월가와 국제금융시장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다.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발언은 즉각 행동으로 옮겨졌다. FRB는 기준금리를 3%로 0.5%포인트 인하했다.

금리는 중앙은행이 경기를 조절하는 '마술봉'이다.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미국 기준금리는 2003년 6월 사상 최저 수준인 1%까지 낮춰졌다. FRB의 저금리 정책은 2005년까지 지속됐다. 이 와중에 풀린 돈은 부동산시장으로 대거 유입됐다. 결국 집값과 땅값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파티가 한창일 때 칵테일잔을 빼앗아야 한다." FRB는 이 같은 경고를 한 귀로 흘렸다. 부동산 거품은 뒤늦은 금리 인상과 맞물려 한순간에 꺼졌다. 미국 부동산 경기는 지난해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담보력이 취약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신용카드나 자동차 할부금융, 기업어음 시장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이번 사태로 자산담보부증권 등 파생상품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시장에서 기피하는 위험자산은 가치산정이 불가능해졌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퀀츠펀드는 무용지물이 됐다. 고위험ㆍ고수익을 노리고 파생상품에 '올인'한 헤지펀드는 환매요구가 쇄도하자 벼랑 끝에 몰렸다.

"경제 전반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이 같은 방침을 최근 세 차례나 강조했다. 신용경색이 소비위축, 경기침체로 연결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다.

FRB는 8월 9일부터 악화된 서브프라임 사태에 긴급 유동성 공급으로 대처했다. 유럽 등 중앙은행도 공조체제를 구축했다. 8월 17일 FRB는 민간은행 대출에 적용하는 재할인율을 0.5%포인트 내렸다. 이제 전 세계는 오는 18일 FOMC 회의 결과에 주목한다.

기준금리는 2006년 6월 이후 9차례 5.25%로 동결된 상태다. 월가는 금리 인하를 학수고대한다. 문제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예수의 '돌아온 탕자' 비유에서 집을 나가 재산을 탕진한 아들을 아버지는 다시 맞아들였다. 잔치까지 벌였다. 하지만 경제 현실은 냉엄하다. 이번 위기에서 FRB가 탕자인 부실 금융기관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면 납세자, 채권자, 예금자가 부담을 떠안게 된다. 그래서 반대가 많다.

"대출기관과 투자자들이 선택한 결과로 생긴 손실을 보호하는 것은 FRB의 책임이 아니며 그렇게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버냉키 의장은 부실 책임에 단호한 태도다. 부실대출은 시장에서 정리되는 게 맞다. 이는 모기지 회사나 헤지펀드의 추가 파산을 의미한다.

원리금을 못갚는 주택구입자도 마찬가지다. 채무를 탕감해주면 잘못된 신호가 전달된다. 위험을 자초한 행동을 응징하기보다 보상을 주는 셈이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이 과다 대출을 받은 뒤 빚을 못 갚겠다고 우길 수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에 따른 역선택의 폐해다.

FRB가 금리조정 외에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여러 가지다. 우선 재할인율 추가 인하와 공개시장조작 대상 담보증권 확대가 가능하다. 은행이 아닌 금융기관도 재할인 창구에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하는 방안과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기관의 협조융자 또한 고려 대상이다. 아울러 기업어음 담보대출을 확대하고 유럽중앙은행과 스와프를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금리 인하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이번 사태에서 과잉 유동성이 빚은 파문을 다시 유동성으로 해결하는 격이다. 일단 신뢰가 무너진 부문으로는 돈이 흘러가기 힘들다. 시장의 믿음을 살려 돈이 막힌 곳을 뚫고 자금흐름을 정상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번 위기는 대출기관ㆍ고객의 위험 추구와 부실 신용평가, 뒷북친 통화정책, 허술한 금융감독 등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불과 3년 전 400만명에 육박하는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던 한국의 카드대란과 닮았다. 완벽히 치유되려면 상당한 고통과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 90년대 자산 거품 붕괴로 일본이 겪은 '잃어버린 10년'과 유사한 과정을 거칠 수도 있다.

미국 일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한국에서도 안심할 수만은 없다. 전국 곳곳에서 아파트 미분양사태가 늘고 있는 게 심상찮다. 만일의 부동산발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홍기영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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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규형 명지대 교수
레이건 행정부의 경제 자문위원회 의장이자 레이거노믹스의 대변자였던 머레이 와이덴바움(Weidenbaum) 교수와 박사과정 세미나를 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 대통령 여러 명을 보좌하거나 자문에 응했던 그에게 한 학생이 질문했다. “접해 본 대통령 중에 가장 스마트했던 분은 누구인지요?” 와이덴바움의 확신에 찬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압도적으로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이었지!” 그에 따르면 닉슨은 복잡한 현안(懸案)을 이해하고 해결해 나가는 지적 능력이 탁월했고, 모르는 부분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했으며, 타당성 있는 의견이 개진되면 자신의 원래 의견과 다르더라도 수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둘러싼 은폐공작과 거짓말로 불명예 퇴진했지만, 정책적 측면, 특히 국제정치에서 닉슨이 이룩한 업적은 눈부셨다. 그런데 그 외교적 성과는 기실 헨리 키신저(Kissinger)라는 걸출한 국제 경략가(經略家)의 능력에 기인한 바 크다. 키신저는 원래 닉슨의 정적이었던 넬슨 록펠러(Rockefeller) 뉴욕 주지사의 측근이었다. 억만장자이자 공화당 내 진보파의 리더였던 록펠러는 세 번의 대통령후보 경선에 내리 참여했고, 그중 두 번은 닉슨과 치열한 경쟁을 했다. 키신저는 1968년 선거 때 록펠러 진영의 핵심 브레인으로 닉슨을 비판하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후보 경선과 대선에서 연달아 승리한 닉슨은 각 단계에서 키신저를 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베트남전쟁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고, 소련의 군사력이 미국과 대등해지거나 미국을 능가한 시점에서 미국은 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전략을 추구해야 했다. 개인적으로는 키신저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세계전략의 적절한 수정이란 면에서 그의 경륜과 식견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키신저는 원래 국제문제 전문가도 아니고 강경한 반(反)공산주의자인 닉슨을 설득해 세력균형에 기초한 현실정치(Realpolitik)론을 바탕으로 역사적인 공산 중국과의 화해와 소련과의 데탕트(detente·긴장완화)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역사적으로 이런 예는 많다. 볼셰비키였던 레닌은 혁명 후 서구 열강과의 정상외교가 필요해지자 멘셰비키파지만 외교경험이 풍부한 게오르기 치체린(Chicherin)을 외교수장으로 임명했다. 아예 경쟁자를 자기 사람으로 만든 예도 있다. 경선에서 격렬하게 1, 2등을 다투다 본선에서는 동일 티켓으로 정·부통령이 된 로널드 레이건/아버지 조지 부시, 빌 클린턴/앨 고어의 경우가 그랬다.

한나라당 경선이 끝나고 겉으로는 화합을 외쳐도 이명박, 박근혜 양 진영의 화학적 결합은 요원해 보인다. 왠지 겉돌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명박 후보는 “경제를 일으킬 리더십이 있을 것 같은 사람” “말만이 아닌 실적으로 뭔가 보여준 사람”이라는 강력한 자산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2% 부족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가치관이 실종된 실망스런 후보수락 연설에서 잘 나타나듯이, 특유의 실용주의만 가지고는 한계에 다다랐다. 가치가 결여된 실용주의는 자칫 포퓰리즘으로 빠지기 쉽다. 물론 현재로선 “한 방에 보낸다는” 희망 하나로 상대편 음해에만 골몰하며 별 비전도 제시 못하기 때문에 20~30% 부족해 보이는 범여권 후보들이나, 20세기형 낡은 어젠다에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나는 민노당 후보들보다는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이 후보에겐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 펀드 같은 위태로운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오늘(7일)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의 회동이 있다 한다. 이 후보는 이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 사람이라면 경쟁자와도 손잡고, 상대편 인재들도 필요하다면 과감히 등용해야 한다. 대권 가도에서의 정치공학적 측면에서건, 대권장악 후 나라를 잘 운영할 대국적 차원에서건, 그리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가치를 제시할 이념적 차원 모두에서, 인재를 가려내는 능력의 시험대에 섰다. 누가 얘기했듯이 “호감에 의한 만남보다 더 강렬한 것이 필요에 의한 만남”이다. 닉슨이 상대편의 키신저를 알아보고 중용했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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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진수 강남대 교수
한국화 6대 작가를 중심으로 미술시장이 들끓던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를 ‘부분적 활황기’라고 한다면 지금은 서양화가 이끄는 ‘전반적 활황기’라고 할 수 있다. 주요 화랑들이 기획하는 인기작가 초대전에 전시된 작품이 솔드아웃(매진)되고, 화랑과 작가단체들이 주최하는 아트페어가 줄을 잇고 있다. 1회에 100억 원 이상을 낙찰시키는 메이저 경매회사들의 경매가 격월로 열리고 블루칩 작가의 가격이 2년 사이에 배로 뛰었다.

여기에 1년 반 사이에 100억 원대 규모의 아트펀드가 4개나 출시되었고, 개별 투자자들이 출자하여 운영하는 미술품 투자 펀드까지 움직이고 있다. 은행, 백화점, 대기업이 아트마케팅을 내세워 미술품 구입과 판매를 대행하고 있다. 화랑들도 계속 설립되어 전국적으로 약 300개에 달했으며, 경매회사 설립도 계속되어 연말까지 15개가 될 전망이다.

이러한 미술시장의 활황기에 가장 바쁜 것은 작가다. 기획전을 통해 소개되는 메이저 화랑의 전속작가 작품은 구하기가 힘들다. 비전속작가이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작가의 작품은 구하기도 힘들고 전시 일정을 잡기도 힘들다. 갑자기 달아오른 시장 열기로 유명 작가의 작업실은 화랑대표와 큰손 컬렉터의 방문이 잦아 작업이 방해를 받을 정도이다. 아예 몇 명은 해외로 피신하여 작업을 하고 있다. 이제 작가와 화랑이 전속작가제도 등을 통해 베스트셀러 만들기보다 스테디셀러 육성에 합의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팔리는 작가를 작고 작가와 생존 작가를 포함하여 70여 명으로 보고 있다. 유명작가 중심으로 움직이는 미술시장에서 컬렉터들의 움직임이 자연히 바빠질 수밖에 없다. 컬렉터들은 믿을 만한 화랑이 어느 곳인가에 대해 정보를 나누고, 화랑들은 컬렉터의 스타일에 대한 얘기를 한다. 철저히 정찰제를 실시해도 좋은 작품을 공급하는 능력 있고 믿을 만한 화랑과, 전시 첫날 제 가격에 신사답게 걸작품을 구입하는 품위 있는 컬렉터가 모델로 회자된다. 이제는 전시장에 가격표를 비치하고 정상가격에 판매되는 제도가 일반화되고, 솔드아웃되면 예약을 통해 정식으로 구입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가격 문제도 여전히 미술시장의 큰 과제이다. 일반적으로 나이, 학력, 화가 경력, 동급 작가의 가격을 참고하여 작가가 가격을 정한다. 자연가격 체제다. 그러나 이제는 시장가격 체제가 확립되어야 한다. 화랑과 경매가 시장의 쌍끌이 역할을 하며 호당 가격과 점당 가격이 논의되고 있다. 이 점은 우선 작가가 받아들여야 하고, 감정의 역할이 진위(眞僞) 감정뿐만 아니라 시가감정까지 가능해져야 한다. 자본력을 갖춘 컬렉터들이 정보 공유를 하는 시대에 화랑이나 화랑협회에 시장 정보화와 체계화 등 많은 과제가 주어지고 있다.

미술시장 활황기에 돈을 가장 많이 버는 것이 화랑인가, 작가인가, 경매회사인가, 펀드인가, 개인 컬렉터인가, 액자집인가, 택배회사인가에 대한 얘기가 많다. 결론은 모든 주체여야 한다. 그러나 미술시장이 활황이어서 좋은 것은 역시 작가들이 좋아진 여건 속에서 새로운 실험을 통해 얻은 좋은 작품을 우리 모두가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미술시장의 주체인 작가, 유통관계자, 컬렉터가 기본에 충실하여 신뢰성만 쌓는다면 틀림없이 부를 얻고 행복을 느낀다는 사실을 20년 이상 묵묵히 수작(秀作)만 수집해온 한 컬렉터로부터 배웠다.


[서진수 강남대 교수·미술시장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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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료라고 넘기기엔 그 비용과 후유증이 크다.

어려웠던 시절, 뭘 잘 모르던 시절의 불가피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복기하자면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그때는 형편이 그랬으니 그냥 덮고 가자' 혹은 '앞으로 일이 더 중요하다'는 넋두리는 하고 싶지 않다. 덮을 때 덮더라도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그리고 이를 정확히 파악해 미래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자는 게 현 정부 통치이념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게일인터내셔널의 인천 송도신도시 개발사업 취득은 지금이라도 곱씹어봐야 할 사건이다.

이 두 사건은 유사점이 많다. 일단 발생시기가 비슷하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때라 국제신인도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것은 2003년 8월이고 게일인터내셔널이 송도신도시 개발유한회사(NSC)를 설립한 것은 2001년 7월.

당시 외환은행은 국내외 어느 자본도 매입을 주저해 급박한 와중에 벌처펀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론스타에 넘겼다는 게 정부 측 변이다. 은행업종에 종사해야 한다는 규정을 고치고, '먹튀' 가능성이 높다는 비난까지 무릅쓰면서. 송도 자유무역지역 개발도 마찬가지다. 2001년 초 뉴욕까지 쫓아가 사업자를 구했지만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고 했다. 자격에 대한 논란도 많았지만 게일이 와준 것만 해도 당시로는 고마웠다는 게 정부 측 해명이다.

정부 측 논리는 더 발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론스타가 이 땅에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5조원 이상을 챙겨 떠난다 해도 그건 그만큼 리스크를 안고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게일 역시 단돈 80만달러(약 7억5000만원)를 쥐고 들어와 수조 원대 사업을 쥐락펴락하고 있지만, 디벨로퍼(developer)란 원래 그런 것이고, 그만큼 리스크를 안았으니 이익을 취하는 건 인정해야 한다는 것. 론스타와 게일 건은 이렇듯 우리의 숨기고 싶은 역사 한가운데 있다.

꼬박꼬박 세금을 내온 국민에게는 기가 막히는 소리로 들리지만, 백 번 양보해 당시 사정이 그랬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치자. 하지만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특히 당시 걱정했던 문제가 바로 지금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다.

론스타는 최근 우리 금융당국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활용해 HSBC와 은근슬쩍 매매계약서에 도장을 찍어버렸다. '한국 정부 승인을 전제로'라는 조건부 단서가 붙긴 했지만 정부로서는 '괘씸한 짓'임에는 분명하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까지 나서 최근 상황을 '한국에서 여전히 외국 기업들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압박하고 있다. '꽃놀이패'를 쥔 론스타 기세가 대단하다.

게일 역시 마찬가지다. 사업초기와 달리 이제는 국내 은행들이 서로 유리한 조건을 내세우며 돈을 대주겠다고 난리들이다.

게일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자신들 파이를 키우는 작업을 해나갈 것임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인천시 의회와 현지 언론 등에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정부는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됐는데 게일은 꼬드겨서라도 데리고 가야 한다'며 꾹꾹 누르기만 한다. 론스타에 못지않은 포커패를 쥔 게일은 이제 누워서 협상하게 생겼다.

두 사건이 외환위기 이후 다급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결정이었다는 점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지금이라도 짚을 건 짚는 당당함을 우리 정부에 기대한다. 한국에도 법질서가 있고, 이를 집행하는 정부가 있음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이는 분명 외국인 자본에 대한 거부감과는 별개 문제다.

선진국 금융당국은 이런 문제에 대해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게일에 대해서도 '그냥 데리고 가자'는 하소연보다 당초 약속이 지켜지고 있는지, 지금 진행 중인 각종 현안들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챙겨보는 단호함이 미래를 위해 지금 필요한 행동이 아닌가 싶다.

[경제부 = 장광익 차장 paldo@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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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3일 오전 8시. 홍콩의 모 헤지펀드 회의실. "한국 100만달러, 대만 100만달러, 중국 100만달러…." 아침 미팅에 앉은 이 펀드의 중역들이 트레이더들에게 '주식 매도 할당'을 하고 있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거진 뒤 빗발치는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를 그들의 헤지펀드는 어떤 식으로든 응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많이 오른 주식을 팔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이튿날 아침 자산배분 담당 전무는 트레이더들에게 상황을 보고받았다. "한국은 어제 130만달러어치를 팔았습니다. 대만 80만달러, 중국 70만달러…." 전무는 어안이 벙벙했다. "어찌 된 일이냐?" "한국은 주식이 워낙 잘 팔려서 그랬습니다. 어차피 내일 또 팔아야 할 텐데 값이 비쌀 때 미리 파는 게 좋겠다 해서…."

홍콩에서 실제로 일어난 한 헤지펀드의 '속사정'이다. 한국에서만 많은 물량을 매도했다 하니 이 사태를 어찌 봐야 할까.

안드레아스 노이버 하나UBS자산운용 사장은 "사람들은 미국 LA의 저소득자가 집값을 못 내는 게 내 주식값 떨어지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고 푸념할 수 있다"며 "하지만 한국이 그만큼 글로벌 시장에 가까워졌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한국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글로벌 변수 앞에 벌거벗은 상태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위와 같은 헤지펀드 움직임을 읽는 것은 현지 애널리스트들만이 할 수 있다. 국내 애널리스트들이 한국 기관투자가들과 가깝게 지내며 그들의 움직임을 대략 읽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현지에서의 움직임을 읽고 전달해 줄 사람들이 필요한 때가 왔다. 하지만 이런 지역 전문 애널리스트가 우리에게는 없다.

해외 펀드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해외 펀드에서 현지 증권사로 빠져나간 주식매매 수수료만 모아도 현지 증권사 하나쯤은 금방 만들 수 있다. 우리는 글로벌 변수 앞에 한층 벌거벗었는데 증권사들 태도는 소극적이기만 하다.

[증권부 = 신현규 기자 rfrost@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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