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회화를 전공한 L교수를 만났더니 앉자마자 혀를 찼다. "큰 일이야. 무슨 생각들 하는지…". 제자들이 강의를 맡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방학중이면 강의 하나 얻기 위해 학교 주변을 얼쩡거리던 그들이었다. 젊은 제자들의 변은 이랬다. "작품을 해야 합니다. 좀 많이 밀려 있어서요." L교수는 "돈을 급히 벌면 마약이 다가오는데…"라며 우려했다.

소문을 들어보니 강의를 사양한 작가의 인기는 대단했다. 서양화를 좀 그리는 30∼40대 작가, 그 '시장의 총아' 그룹에 포함된 것이다. 소품 한 점이 수백만원을 호가했고, 작품은 재고가 없었다. 이들 인기 작가는 100명쯤 되는 모양인데, 색을 많이 쓰는 40대 작가는 물감이 마르기 전에 작품이 팔려나가고, 전시 개막 전에 솔드 아웃 되는 작가도 있다고 한다.

50대가 되도록 마포 언덕배기에 전세를 살던 작가 S씨도 최근 이사를 했다. 좁은 집에다 거실을 작업실로 사용하다 보니 중고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늘 미안했는데, 이제 한강이 보이는 곳에 전세 아파트를 얻었다. 비결은 한 화랑과의 전속계약이다. 전속금은 말하지 않았지만 한 달에 100호 정도 작품 한 점을 건네면 된다고 하니 연간 5000만원 정도로 유추할 뿐.

미술 시장이 이처럼 뜨거워진 근거는 많다. 먼저 그림을 그려본 컬렉터가 늘어났다. 어릴 적에 미술학원이라도 다녀본 사람은 직업미술가의 재능을 인정한다. 뮤지컬이나 발레가 인기를 얻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들이 구매력 왕성한 30, 40대로 성장한 것이다.

소장자 간의 손바뀜 현상도 주목할만 하다. 큰 장이 섰던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 후반에 그림을 산 컬렉터의 나이가 지금 70, 80대라고 볼 때 처분 혹은 상속을 결정해야 한다. 이 중 처분키로 한 자는 구입한 화랑으로 그림을 내놓고, 화랑은 신용 유지를 위해 경매 시장을 선택했다.

환경 또한 우호적이다. 끈질기게 발목을 잡던 미술품 양도소득세를 떨쳐냈고, 미술품을 담보로 한 대출상품이 등장했으며, 정부 돈으로 미술은행이 설립됐다. 미술품을 구입하면 세제 혜택도 주어진다. 금융기관의 아트펀드는 시장의 공신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모든 게 장밋빛일까. 내가 보기에 우리 미술시장의 펀더멘털은 여전히 허약하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의 반영이라고 하지만, 구매자의 미학적 소양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부박하다. 경매 시장은 육성해야 하지만 지금은 과열이고 과속이다.

여기에다 그림시장에서 투기자본이 확인될 경우, 양도소득세의 망령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아트펀드 역시 성공을 확신하기에도 아직 데이터가 부족하다.

그림은 부동산이나 증권과 다르다. 부동산은 실체가 분명하고, 증권이라는 게임은 국가가 개입돼 있지만, 그림은 스스로 빛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부동산은 스스로 생산을 하고, 증권 또한 기업을 통해 과실이 나오지만, 그림은 신뢰와 애호가 없으면 스스로 무너진다. 그래도 그림이 남지 않느냐고? 기름기가 많은 서양화는 불쏘시개로도 쓰기 어렵다.

손수호/편집국 부국장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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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 2004년 유럽 최초의 ‘기후거래소’가 생긴 곳이다. 세계는 이산화탄소의 거대한 상품성에 이곳을 예의주시한다.

세계는 왜 이산화탄소에 주목할까. 최근 발표된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의 보고서는 그 배경을 잘 설명해 준다. 2020년에 이르면 약 4억 내지 17억명의 인구가 물 부족에 시달리고, 2050년에 이르면 생물의 20∼30%가 멸종될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들의 주범으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노력은 교토의정서의 채택으로 이미 시작됐다. 2008년부터는 38개 선진국들이 본격적으로 감축을 이행해야 하고, 2013년부터는 이산화탄소 배출규모가 세계 10위인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국내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4%를 차지하는 전력산업계의 고민은 매우 심각하다. 향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벌과금이나 배출권 구입 부담이 발생할 것이고, 저탄소형 전원 구성을 위한 전환비용 역시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법은 태양광과 풍력발전소 등과 같이 배출가스 자체를 줄이는 것과 조림(造林)처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것 등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경제성과 현실성의 관점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법은 바로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통해 배출가스 자체를 줄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현재 전체 발전량의 1% 수준에 불과하며,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술 수준도 선진국의 50∼70%에 불과하다. 정부는 2011년까지 발전 비중을 7% 수준까지 확대하고, 기술 수준도 선진국의 약 9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한전도 이에 적극 동참하고자 한다.

한전은 신재생에너지의 보급 확대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정부와 체결한 ‘신재생에너지 공급협약(RPA)’을 통해 6개 발전자회사와 함께 총 1조2000억원을 투자해 태양광과 풍력사업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미 양양의 소수력과 풍력사업(4400㎾), 삼천포의 소수력사업(5400㎾), 대관령의 풍력사업(1만4700㎾)에 참여 중이며, 양구와 덕천의 풍력사업(6만㎾)도 추진 중이다.

한전은 앞으로도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을 지속적으로 개발함은 물론, 새로운 수익원 창출을 위한 ‘탄소펀드’ 참여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연료전지, 바이오매스, 해상풍력, 가스화복합발전 등 대형 프로젝트 위주로 사업 범위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야산에 방치된 잡목을 활용한 ‘목질계 바이오매스 발전소’의 건설로 홍수 시 잡목에 의한 교량피해 등을 사전에 예방하고 잡목 수거 비용도 절감코자 한다.

나아가 한전은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해 연료전지의 실용화를 위한 기술개발, 대규모 태양광 연구개발, 이산화탄소 분리와 저장기술개발 등의 투자를 통해 핵심기술을 선점해 미래의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친환경경영이 지속성장과 국제 경쟁력의 필수요소가 될 것인 바, 한전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개발 등 환경 친화적 경영을 선도적으로 추구함으로써 새로운 블루오션을 창출하고자 한다.

이원걸 한국전력공사 사장

* 제17대 대선 특별 사이트 http://17dae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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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회화를 전공한 L교수를 만났더니 앉자마자 혀를 찼다. "큰 일이야. 무슨 생각들 하는지…". 제자들이 강의를 맡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방학중이면 강의 하나 얻기 위해 학교 주변을 얼쩡거리던 그들이었다. 젊은 제자들의 변은 이랬다. "작품을 해야 합니다. 좀 많이 밀려 있어서요." L교수는 "돈을 급히 벌면 마약이 다가오는데…"라며 우려했다.

소문을 들어보니 강의를 사양한 작가의 인기는 대단했다. 서양화를 좀 그리는 30∼40대 작가, 그 '시장의 총아' 그룹에 포함된 것이다. 소품 한 점이 수백만원을 호가했고, 작품은 재고가 없었다. 이들 인기 작가는 100명쯤 되는 모양인데, 색을 많이 쓰는 40대 작가는 물감이 마르기 전에 작품이 팔려나가고, 전시 개막 전에 솔드 아웃 되는 작가도 있다고 한다.

50대가 되도록 마포 언덕배기에 전세를 살던 작가 S씨도 최근 이사를 했다. 좁은 집에다 거실을 작업실로 사용하다 보니 중고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늘 미안했는데, 이제 한강이 보이는 곳에 전세 아파트를 얻었다. 비결은 한 화랑과의 전속계약이다. 전속금은 말하지 않았지만 한 달에 100호 정도 작품 한 점을 건네면 된다고 하니 연간 수천만원 정도로 짐작할 수 있을 뿐.

미술 시장이 이처럼 뜨거워진 근거는 많다. 먼저 그림을 그려본 컬렉터가 늘어났다. 어릴 적에 미술학원이라도 다녀본 사람은 직업미술가의 재능을 인정한다. 뮤지컬이나 발레가 인기를 얻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들이 구매력 왕성한 30, 40대로 성장한 것이다.

소장자 간의 손바뀜 현상도 주목할만 하다. 큰 장이 섰던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 후반에 그림을 산 컬렉터의 나이가 지금 70, 80대라고 볼 때 처분 혹은 상속을 결정해야 한다. 이 중 처분키로 한 자는 구입한 화랑으로 그림을 내놓고, 화랑은 신용 유지를 위해 경매 시장을 선택했다.

환경 또한 우호적이다. 끈질기게 발목을 잡던 미술품 양도소득세를 떨쳐냈고, 미술품을 담보로 한 대출상품이 등장했으며, 정부 돈으로 미술은행이 설립됐다. 미술품을 구입하면 세제 혜택도 주어진다. 금융기관의 아트펀드는 시장의 공신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모든 게 장밋빛일까. 내가 보기에 우리 미술시장의 펀더멘털은 여전히 허약하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의 반영이라고 하지만, 구매자의 미학적 소양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부박하다. 경매 시장은 육성해야 하지만 지금은 과열이고 과속이다.

여기에다 그림시장에서 투기자본이 확인될 경우, 양도소득세의 망령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아트펀드 역시 성공을 확신하기에도 아직 데이터가 부족하다.

그림은 부동산이나 증권과 다르다. 부동산은 실체가 분명하고, 증권이라는 게임은 국가가 개입돼 있지만, 그림은 스스로 빛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부동산은 스스로 생산을 하고, 증권 또한 기업을 통해 과실이 나오지만, 그림은 신뢰와 애호가 없으면 스스로 무너진다. 그래도 그림이 남지 않느냐고? 기름기가 많은 서양화는 불쏘시개로도 쓰기 어렵다.

손수호/편집국 부국장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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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지난해 국세청에 600억원을 소득신고를 한 사람이 있다. 재벌 총수일까? 아니다. 변호사다. 그는 이미 2005년에 연소득 570억원을 신고하면서 삼성 이건희 회장을 제치고 소득 1위를 차지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법률사무소 ‘김&장’을 이끌고 있는 김아무개 대표 변호사가 바로 그다.

‘김&장’은 1997년 외환 위기를 기점으로 급성장했다. 기업의 대규모 합병, 해외 매각, 구조조정을 법률자문 사업의 주요 아이템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진 민주정부 시기 ‘김&장’의 활약은 놀라웠다.

-신자유주의와 김&장의 성공-

2003년 10월 투기성 사모펀드의 대표격인 론스타가 자산규모 62조6000억원의 외환은행 소유권을 단돈 1조3834억원에 매입할 당시 ‘김&장’이 법률자문 및 대리인의 역할을 맡았던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 뒤에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2005년엔 37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는 국내 10대 인수·합병(M&A) 건 중 7건을 맡았고, M&A 총 규모 431억달러의 절반에 가까운 202억달러어치 법률자문을 했다.

재벌 총수 관련 사건의 단골 변호인단 역시 ‘김&장’이다. 최근 석방된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의 변호도 ‘김&장’이 맡았다. 기업 인수·합병 시 사용자 편에 서서 노조의 저항에 대응하는 법률자문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김&장’ 건물 앞에서 해고 노조원들의 항의 집회가 끊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전직 경제부총리, 법무부장관, 국세청장, 국세심판원장, 관세청장을 비롯해 정부 고위관료들이 퇴직 후 고문, 실장, 팀장의 역할을 하는 곳도 ‘김&장’이다. 전직 경제부총리는 2003년 고문료로 4억2000만원을 받았다. 전직 법무부장관 한 사람은 지난해 7월 한 달에만 1억9990만원을 받았다. 국가의 세입을 관장하는 국세청 출신만 보더라도 1급에서 7급까지 꾸준히 충원되어 23명이 ‘김&장’을 위해 일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의 사명을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현실은 크게 다르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계화의 환경에 적응해 법률자문을 천문학적 규모의 사업으로 만든 것, ‘김&장’ 모델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 그 결과 한편으로 국내 최대 법률회사가 되고 법대생들이 선망하는 대상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 인권이나 정의와는 거리가 먼 냉혹한 법률기업이 되어버렸다.

신자유주의와 더불어 민간부문에서 거대 법률기업이 성장하고, 이들과 국가기구의 밀착이 사회 상층의 이익에 봉사하는 사적기능을 수행한다면 분명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가 관료제를 움직이는 가치가 공익이 아니라 사익추구에 있다면 정부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법이 강자의 이익에 봉사한다면 법 앞의 평등을 필요조건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없다.

-‘강자의 이익’에 경도된 법-

그간 민주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심화시켰다는 사실을 빼고 ‘김&장’ 모델의 성공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던 약속을 지키는 대신, ‘김&장’과 같은 성공 모델을 더 많이 만들어 국제 경쟁에서 승리하자는 쪽으로 돌아선 지 오래다. 지지자의 이탈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 나타난 다수 유권자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늘 자신의 생각을 고집했다.

대통령이든 정부든,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을 때, 가난한 다수의 이익보다 사회의 지배적 이익에 경도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를 현실로 확인하는 것은 분명 편치 않은 일이다. 오늘의 민주정부는 더 이상 ‘민주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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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
정부의 국민연금기금 지배구조 개편안이 엊그제 발표됐다. 기금운용위원회를 금융통화위원회 성격으로 독립시켜 위원들을 민간의 기금 운용 전문가로 구성하고, 국민연금공단 산하의 기금운용본부를 기금운용공사로 만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를 통해 국민연금이 비전문가에 의하여 운용되고 있다든지,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든지 하는 비판의 상당 부분을 불식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국민연금 수익률 제고에 초점을 맞춘 개편 방향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

올해 200조원을 넘어선 국민연금기금은 2012년 400조원, 2043년 2600조원으로 증가해 국내총생산(GDP)의 54%에 이르는 거대 기금으로 성장하게 된다. 하나의 기금이 국민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이렇게 커지는 사례는 금융시장이 발전한 선진국 중에도 찾기 어렵다.

이미 현재에도 증권시장의 황제로 군림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지금보다도 몇 배로 커지게 된 상태에서 수익률을 찾아 금융시장에서 전횡을 한다면 수익률 목표 달성이 가능하더라도 그 폐해 역시 심각할 것이다. 기금운용 수익률이 1%포인트 오르면 기금 고갈 연도가 3~4년 연장된다는 추계 결과는 수익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일 뿐이지 국민연금이 금융시장을 마구 헤집고 다녀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더욱이 국민연금은 최근 국내 기업에 대한 지분을 기초로 의결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기금의 이해 증대를 위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거대 기금이 국내 대부분의 주요 기업에 대해 대주주의 위치에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자칫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따라서 구조 개편에 앞서 국민연금기금 운용의 역할과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고, 국민연금이 국민경제 및 금융시장에서 순기능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새로운 지배구조에 마련될 견제와 균형 장치도 치밀하게 검토해 봐야 한다. 이번 개편으로 기금 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높아지면서 민간 전문가의 권한이 대폭 확대된다. 자산 운용은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흔적 없이 민간 전문가의 이해에 따라 투자 결정이 내려질 수 있는 여지가 항상 존재한다. 설령 이것이 사후에 밝혀졌다 해도 책임을 묻는 방법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위원회와 공사의 책임 운용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감시 및 견제를 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과거 정부에 의한 수직적 통제장치를 전문 조직에 의한 수평적 견제장치로 전환하는 것이 요체다. 또 해외 투자 등 적극적인 투자전략에 적합한 기금 운용 조직의 선진화, 유능하고 믿을 수 있는 전문가 확보도 시급한 과제다.

국민연금기금 지배구조 개편의 목표는 예상되는 거대 기금의 시장 폐해를 최대한 줄이면서 전 국민의 노후 소득 보장을 달성하는 것이다. 수익률 제고라는 단순한 목표는 수천억원 규모의 자산 운용 펀드에는 적절할지 몰라도 수백조원의 국민연금기금에는 적합한 목표가 아닐 수 있다. 이번 정부의 구조개편안이 담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충분히 보완해 고령화사회 최후의 보루인 국민연금기금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금융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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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새로운 전쟁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멕시코만 유전시설이 허리케인에 휩쓸린 것도 아니다. 미국 경제는 금리인하가 불가피하다고 여겨질 만큼 불안하고, 세계 경기둔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확산되는 상황이다.

상식적으로 유가가 급등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8월22일 배럴당 69.47 달러(9월 인도분)까지 하락세를 탔던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불과 20일 만인 9월13일 현재 명목가치로는 사상 최고치인 배럴당 80.09 달러까지 치솟으며 '유가 80 달러 시대'를 열었다. 이제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배럴당 10달러나 오른 유가를 기반으로 경제를 운용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 투기세력에 휘둘린 시장

20일 동안 유가가 무려 15%나 급등한 이례적인 '극적 반전'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요인들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의 최근 원유재고 감소, 허리케인 불안감의 상존, 겨울철 난방유 수요가 시작되는 계절적 요인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원유 재고량이야 늘 움직여왔던 것이고, 허리케인 우려나 난방유 수요 역시 늘 반복돼왔던 얘기로 최근의 유가급등을 뒷받침하는 근본 요인으로 보기엔 어려움이 있다.

이런 가운데 시장 전문가들은 지난달 9만1,000 계약이었던 뉴욕상품거래소의 원유 선물거래가 최근 13만2,000 계약으로 폭증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선물거래건수의 급증은 미래의 원유가격 변동에 따른 손실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한 실재 수요자들의 통상적 거래 외에, 단기차익을 노린 핫머니가 석유시장에 몰리면서 가격을 흔들었다는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상품시장 관련 보도에 따르면 석유시장의 투기자본들은 보통 수십억 달러 규모의 펀드가 떼거리로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올 들어서만 약 1,000억 달러가 원유 투기에 투입됐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물론 시장에서 투기는 어제 오늘의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투기세력은 헤지펀드 등 일부의 '튀는 집단' 정도였으나, 최근엔 공격적인 파생상품 투자가 일반화하면서 위험상품 투자가 엄격히 제한되는 보수적인 연기금까지 포함해 시장 참여자 대부분이 공격적인 '투기'에 나서면서 덩어리가 커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공격적 투기가 보편화하면서 과거 조지 소로스 같은 투기 '스타 플레이어'의 움직임은 오히려 잦아든 모습이다. 하지만 시장의 투기화는 더욱 광범위하게 확산돼 외환이나 채권 같은 금융상품은 물론, 원유와 비철금속 등 원자재까지 이르고 있어 가격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올 들어서만 해도 비철금속 가운데 납은 95% 이상 폭등했고, 곡물인 밀도 60%까지 치솟았다. 이밖에 콩과 구리 가격도 각각 29%, 23%나 급등했고, 최근엔 금값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 '꼬리'가 몸통 흔드는 경제

'웨그 더 독(wag the dog)'이라는 말이 있다. 강아지가 꼬리를 지나치게 흔들다 마침내 몸통까지 흔들리는 상황을 뜻하는 이 말은 주로 증권시장에서 주가선물 등 파생상품에 대한 투기적 거래가격이 주가 현물가격을 흔드는 현상을 일컬어 왔다.

투기적 거래가 상품 선물시장까지 확산되면서 대부분의 시장에서 미래의 허구적 가격이 실제 가격을 움직이는 '웨그 더 독' 현상이 극성을 부릴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 경제위기 이래 10년이 지났지만 세계 경제의 취약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뉴욕=장인철특파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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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한재준]  우리나라의 가구당 평균 주택담보대출은 1400여만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인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6년 만에 최고치인 5.35%까지 상승함에 따라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금리를 연 6.0~7.8%로 올렸다. 그러자 가계의 이자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와 함께 CD 금리에 연동시키는 현행 대출금리 조정 방식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 CD 금리가 급등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한국은행이 정책금리를 인상한 데 따라 전반적으로 금리 수준이 상승한 것이고, 둘째는 은행들의 CD 발행이 늘어난 데 기인한 것이다. 은행들은 현금관리계좌(CMA) 및 주식형 펀드로 자금이 빠져나가자 CD 발행을 늘려 자금을 조달했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들이 CD 금리를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로 삼게 된 주된 이유는 국내 채권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데 있다. 미국은 만기 15년 이상 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우리나라보다 크고, 주택대출 기관들이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을 장기채권을 발행해 조달하고 있다. 이때 대출금리는 장기채권 금리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년 만기 국고채가 지난해 겨우 발행되기 시작했을 정도로 장기채권 시장이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그러다 보니 은행들이 장기로 고정금리부 대출을 하려 해도 여기에 맞는 장기 자금 조달 수단이 없어 장기대출 재원을 만기가 짧은 CD나 은행채를 발행해 마련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의 평균 만기가 9년에 이르는데도 불구하고 93% 이상이 CD 금리에 연동된 변동금리부 대출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주택담보대출자들이 변동금리를 선호했다. 이는 고정금리부 대출의 가산금리가 높았고,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대출자들의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금리가 오르면 조기상환하면 된다는 생각도 변동금리를 선호한 요인이었다. 장기채시장이 발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은행들이 변동금리를 통해 금리 변동의 위험을 회피하려 했다는 점도 있다.

 그러나 최근 CD 금리가 급등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CD 금리에 연동된 대출금리가 오르면서 가계의 이자부담이 단기간에 크게 늘어난 것이다. 자칫하면 가계대출의 부실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CD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기적으론 장기채권시장을 육성해 대출과 조달재원의 만기 불일치를 해소하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당장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담보대출의 이자부담이 급격히 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단기 처방이 필요하다.

 우선 CD 시장의 매수 기반을 넓혀 수급불균형에 따른 금리상승 요인을 해소해 주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자산운용사의 머니마켓펀드(MMF)의 은행물 편입 한도를 늘려 주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다음으로, 대출자들은 금리 변동에 대한 위험 부담 능력이 떨어지므로 다소 프리미엄을 주고라도 고정금리부 대출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다. 고정금리 대출은 지난해까지는 높은 프리미엄이나 조기상환 시 부담금 등으로 인기가 없었지만, 최근 변동금리부 대출과의 격차가 줄고 있으므로 향후 금리 변동 위험이 부담스럽다면 갈아타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은행들은 최근 감독기관이 권고한 금리 변동 폭 제한 상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에 상한선을 둬 금리 상승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은행의 입장에서는 금리 하락 폭도 제한하는 방안을 동시에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CD 시장의 유통량이 적은 상황에서 특정 시점의 CD 금리를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로 삼으면 대출자들은 금리 변동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정 기간 동안의 금리를 평균해 기준금리로 사용한다면 급격한 금리 변동의 위험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한재준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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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현 산양전기 상임감사 순천향대 겸임교수


세계금융시장은 지금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식시장이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는가 하면 투자자, 차입자, 금융사 등 모든 시장 참여자들은 이번 파문이 더 큰 신용위기로 치닫지 않고 수습되기를 바라면서 사태의 추이를 예의 주시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문이란 미국의 주택가격의 하락이 비우량주택담보대출업체와 헤지펀드의 부실로 이어지고 그 파장이 금융시장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최근의 사태를 말한다. 지금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이 파장을 수습하기 위해 많은 자금을 투입하는 등 금융시장이 질서 있게 작동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작금의 금융혼돈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일까?

먼저 금과 불환지폐와의 관계다. 사실 금융혼돈은 1971년 8월 15일 닉슨 미국 대통령이 달러를 더 이상 금으로 바꿔 주지 않겠다는 금태환 중단을 전격 선언하면서 비롯되었다. 이전까지 돈의 가치는 금으로 보증되었다. 닉슨이 금태환 중단을 선언한 1971년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25년이 되던 해이다. 전쟁이 끝나가던 1945년에 태동되어 국제금융질서의 안정을 지켜왔던 브레튼우즈체제가 종말을 고한 것이다.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와 함께 이제 돈은 더 이상 금으로 보증되지 않는 질량과 본질이 없는 상상의 조각물이 된다. 바야흐로 중세 연금술사들이 그토록 갈망해왔던 `쇠를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의 꿈'이 실현된 것이다.

다음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금융질서의 관계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더해준 것일까 아니면 혼돈을 가져온 것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디지털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금융시장에 효율성을 가져다주고 있다고 믿어 왔다. 과연 효율성만 가져다주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분명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시장에서 더 빠른 채널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고 효율적인 판단을 내릴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사람들을 새로운 욕망과 혼돈의 세계로 내몰게 된다.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탐욕과의 관계를 보자. 정보통신기술의 1세대 혁명이라고 일컬어지는 1세대 일간지가 출현했을 때인 1720년대 영국에서는 남해(South Sea)투기라는 금융혼돈이 일어난다. 이어 철도가 건설되었던 1840년대에는 철도투기가, 또 라디오가 발명된 1920년대에도 미국증시에서의 급등락이 있었다.

또 하나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하는 파생금융상품의 혁명이다. 파생금융상품이란 부동산과 주식, 채권 등을 기본자산으로 이 기본자산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가치를 파생시키는 금융상품이다. 파생금융상품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다. 이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하는 파생금융상품이야말로 또 하나의 연금술의 출현이 아닐 수 없다. 80~90년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금융공학이 결합된 금융파생상품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정크본드투기와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 사태가 발생했고 최근 파문을 야기하고 있는 서브프라임사태도 그 본질은 파생금융상품의 혁명에서 비롯된다.

이렇듯 최근의 금융혼돈은 금으로부터 분리된 돈이 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로 무장되어 디지털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아무런 장벽이 없이 때로는 변신을 거듭하면서 빛의 속도로 세계를 넘나들고 있는 데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돈의 가치는 이제 더 이상 금으로 담보되지 않고 오로지 신용과 정보의 바탕 위에 현재와 미래를 넘나든다. 금본위제가 아닌 정보본위제가 세계 금융질서의 기초가 된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정보본위제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세계금융질서를 지배하는 금융욕망과 혼돈의 시대, 우리 금융소비자와 금융시장참여자, 금융당국 모두는 이 디지털정보본위제의 의미를 성찰하여 혼돈을 막고 금융시장을 질서 있게 작동시키도록 다 함께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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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윤창현]  동물을 가축과 맹수로 구분한다면 소는 가축으로, 호랑이는 맹수로 분류된다. 문제는 너구리나 오소리다. 가축도 아니고 맹수도 아니다. 이런 상황이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구분에서 일어나고 있다. 최근 미국 크라이슬러사의 지분을 80% 정도 획득한 서버러스는 소위 사모펀드다. 이 펀드는 지분취득 후 직접 경영에 참여해 인력을 줄이고 설비를 정리해 해외로 이전하는 등 다양한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바이아웃 펀드다. 직접 경영을 하는 것을 보면 산업자본 같기도 하지만 회사가 정상화돼 주가가 오르면 미련 없이 팔고 떠날 것이라는 면에서 금융자본 같기도 하다.

 미국의 GE는 지주회사 제도를 운영하면서 지주회사 산하에 은행을 제외한 다양한 금융 관련 회사들과 제조업 관련 회사들을 두고 있다. 제조업 쪽 회사가 장비를 생산하고 설치해 주면 금융회사는 리스 서비스를 붙여 고객에게 금융과 제조의 토털 패키지를 제공한다. 또한 신용등급 최우량인 지주회사가 금융자회사에 지급보증을 해 자금을 싸게 조달하도록 도와주고 지원한다. 제조업과 금융업이 한 지붕 아래 동거하면서 도움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상황은 어떤가. 남들은 은산(銀産)분리 정도를 시행할까 말까인데 우리는 은행에 증권·보험·카드까지 금융의 범주에 포함시킨 후 세계 유례없는 화끈한(?) 금산분리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조치라든가 금산법 24조, 그리고 지주회사에 금융회사를 편입시키는 것이 불허되는 등의 정책들은 이를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금산분리에 적용되는 기본 논리는 소위 ‘사금고화’ 논리다. 금융은 가축이고 산업은 맹수라는 것이다. 맹수는 남의 돈으로 닥치는 대로 투자해 남의 돈을 약탈하고 자기도 망하는 무서운 존재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가축인 금융은 얌전하게 제조업의 이익에 봉사하는 서포터스요, 도우미다. 이러니 둘 사이에 담장을 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가 아직도 타당한가.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의 공격성은 완전히 거세돼 버렸다. 우리나라 유수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동종업의 세계적 기업들보다 훨씬 낮아진 지 오래다. 자본부족경제가 자본잉여경제가 되면서 이제 과거의 맹수들은 온순한 가축으로 변모했다.

 따라서 만일 이들 중 일부가 금융업 진출을 시도할 경우 이를 금융업을 사금고화해 금융업과 제조업이 함께 파산하겠다는 시도로 볼 때는 지났다. 그리고 감독기법도 선진화돼 이런 시도를 보고 그냥 넘어갈 리도 없다. 게다가 금융업 진출을 시도할 정도의 기업이면 자기 이름으로 채권만 발행해도 충분히 자금조달이 가능하다. 최근 중국과 인도가 약진하면서 제조업의 이윤율은 자꾸 줄어들고, 앞날이 불투명한 지금의 시점에서 이들은 금융업 자체를 키워 새로운 이익의 원천 내지는 신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제 이 처절한 몸부림을 정책적으로 지원해 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은행이 신용창출기관이라 부담스럽다면 일단 금산분리 대신 은산분리 정책을 시행하면 된다. 나아가 은행 하나 정도는 복수의 산업자본이 참여한 사모투자펀드에서 인수, 경영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론스타도 은행을 경영하는데 우리나라 펀드는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는가.

  금융업은 우리의 미래이자 신성장동력이다. 대기업의 지주회사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글로벌 인수합병(M&A) 활성화, 금융의 탈중개화, 펀드자본주의의 도래, 국부펀드의 출현 등 다양한 움직임 속에서 세계 경제에서 ‘금융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이 흐름을 읽고 동참해야 한다. 현재의 금산분리정책은 재고되어야 하고 이제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때가 왔다.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시점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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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 달러 시대에 접근하면서 한국 경제는 도리어 정체기로 진입하는 듯하다. 고유가 고금리 원화강세의 세 악재와 더불어 후계구도에 발목 잡힌 대표 기업의 머뭇거림, 도덕불감증에 푹 빠진 사회 분위기가 이런 우려를 확신으로 바꾸는 듯하다.

지난해 실적 美의 6300분의 1 불과

한국 경제의 성장은 초기에 국가가 주도한 면이 있으나 1980년대 이후에는 격변하는 세계 환경 속에서 먹을거리를 찾아 고단한 생존을 유지해 온 우리 기업의 덕이었다. 기업이 1970, 80년대에는 수출, 1990년대에는 현지화로 승부를 걸었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좀 더 장기적으로 유효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일본이 동남아 현지 생산법인을 본국으로 회귀시키는 이즈음 우리 기업도 아시아에 국한된 현지화 전략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선 아시아에 편중된 현지화 전략을 동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으로 확대해야 한다. 또 기술 및 네트워크를 보유한 해외 기업을 인수해 세계의 다양한 고객 요구에 맞춰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제조 및 서비스 제공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현지화는 초기 자금이 적게 들고 번 돈으로 재투자해 확장하는 장점이 있으나 시장 진입 타이밍을 맞추기 어렵고 현지 시장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기업 인수를 통한 진출은 초기에 큰 자금이 들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 생산 능력을 즉시 확보할 뿐 아니라 이를 인수 기업의 보유 기술력과 융합시켜 목표 고객에게 즉시 유통시키는 장점을 가진다. 이 전략을 타 지역으로 점차 확산해 나갈 경우 안정적으로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다국적기업(MNC)으로 발돋움하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은 해외 인수합병(M&A)에 소극적이다. 2006년 실적을 보면 미국의 6300분의 1, 일본의 38분의 1, 중국의 47분의 1 규모이다. 실패율이 높을 뿐 아니라 실패를 감수하면서까지 추진할 인센티브가 경영자에게 없기 때문이다. 해외 M&A를 추진할 능력을 보유한 대기업은 대부분 창업 2세가 경영권을 행사하거나 민영화된 공기업이다. 실패율이 높은 해외 M&A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지배구조다.

해외 M&A의 실패율은 무려 70∼80%에 이른다. 돈 들인 만큼 알짜 자산이 된 경우가 흔치 않다는 얘기다. 실패 요인을 보면 양사 간 시너지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았다든가, 과도한 값을 지급한 것이 큰 원인이지만 인수 후 조직통합과정(PMI)에서 범한 실수가 이유의 50%를 넘는다.

해외 M&A를 성공적인 전략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우선 국내 M&A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국내에서 M&A 게임을 안 해 본 사람이 해외에서 성공하기란 실제로 불가능하다. 최경주나 박세리 선수처럼 국내에서 닦은 기량이 기본이 되는 것이다.

국내 M&A 시장을 활성화하려면 거래 관련 세금 부담을 줄이고 공정거래위원회의 독과점 판단이 세계 시장 규모에 근거하되 예측 가능해야 한다. 또 투자은행과 대형 사모투자펀드(PEF)의 육성이 필요하다. 기업에 좋은 짝이 될 만한 매물을 중개하고 적정한 가격과 인수 전략을 구사할 인력을 양성하고 해외 매물에 공동 투자할 다양한 형태의 PEF를 육성해야 한다.

국내 M&A 시장부터 활성화를

기업은 국내외 M&A를 주도할 실무진과 경영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중앙에 M&A 전략팀을 구축하고, 사업본부에는 통합 과정에서 문화적 갈등을 해소시킬 인력을 양성하며, 피인수 기업에 적용할 통합관리 및 재무회계 시스템을 국제 수준에 맞춰 구축해야 한다. 유창한 영어는 기본이다. 새 성장 동력으로서 해외 M&A에 적극 관심을 가질 시점이다.

선우석호 홍익대 경영대 교수 한국재무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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