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시장이 뜨거운 화제다. 일부 언론이 초등학생까지 증시에 뛰어들었다고 흥분하더니, 곧이어 정부가 급제동을 걸었다. 대통령이 기대 주가 지수 1500까지 거론하며 과열을 거론한 후, 총리까지 나서 냉각수를 끼얹는 발언을 했다.

정부가 증권회사 창구에서 신용 융자를 금지시키고 돈 줄을 조이는 호들갑 조치를 보면 한국 경제는 아직 갈 길이 멀고 멀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샐러리맨들마저 위험을 무릅쓴 채 주식-부동산 펀드에 가입하고 해외 투자에 뛰어드는 판에, 오로지 대통령과 공무원들만 5공(共)-6공 군부독재 시대에 머물러 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글로벌 머니 마켓(Money market)의 흐름과는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대통령의 만용과, “대통령이 주가나 환율, 금리에 관해 언급하면 곤란합니다”는 한마디 못하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공무원들의 무지(無知)다. 바로 이것이 투자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화(Globalization)의 상징적인 증상을 몇 가지 꼽는다. 어떤 전문가는 국가 간 빈부 격차가 커지는 현실을 지적하기도 하고, 미국의 룰이 모든 나라에 강요되는 미국화(化) 현상을 비판하는 세력도 있다.

하지만 가장 뚜렷한 세계화 증상 중 하나는 돈의 흐름, 투자 자금의 방향에 따라 나라 경제의 승패가 갈리는 세상이 됐다는 점이다. 요즘 유행하는 시중 언어로 말하자면 글로벌 규모로 펼쳐지는 ‘쩐의 전쟁’이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를 갈라놓고 있다는 얘기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금융업은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한 나라 경제의 운명을 결정짓는 핵폭탄급 산업으로 등장한 것은 최근 10여 년 사이다. 세계화 추세와 정보기술(IT)의 발전 덕분에 미국-영국 같은 금융 제국(帝國)이 등장했다는 데 많은 전문가들은 동의한다.

몇 가지 사례를 생각해보자. 2년여 전 미국 연방준비이사회(FRB)의 버냉키 의장이 버지니아 경제학자 모임에서 재미있는 표현을 했다. 매년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무역수자 적자는 ‘개 꼬리(Dog’s tail)’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가 중국-인도에서 엄청난 소비재를 수입하면서 수출 실적은 올라가지 않는데도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 없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럼 개의 머리와 몸통에 해당하는 알짜는 무엇일까. 바로 금융업이다. 해외 부동산과 주식 투자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펀드나 투자회사, 은행들이 미국에는 많기 때문에 미국의 호황 국면은 지속되고 있다. 머니 게임에서 무역 적자를 메우고도 남는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확실히 세계는 변해버렸다. 전 세계 상품의 무역 거래가 연간 9조3000억 달러(2004년 기준)라면 금융 거래 액수는 그보다 83배에 달하는 지경이다. 런던의 집값을 점치려면 주택 수요-공급 전망만으로는 판단이 안 선다. 그보다는 중동의 오일 달러가 얼마큼 더 들어올지 들여다보는 작업이 훨씬 중요해졌다고 한다.

서울 증시도 상장 회사의 실적 전망치보다는 뉴욕 증시의 흐름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과거에는 실물 경제가 머리이고 금융은 실물의 흐름을 따라가는 꼬리 역할을 해왔다면, 지금은 금융이 머리이자 몸통이고 실물은 꼬리로 뒤바뀌었다.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 선진국일수록 금융업에 온 정성을 쏟고, 머리 좋은 수재들이 그곳에 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고 호황을 누리는 국내의 어느 조선회사 임원은 한탄했다. “1억 달러짜리 대형 선박을 수주해 3년간 수천 명의 기술자들이 땀 흘려 수출하면 500만 달러나 600만 달러 정도 남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금융기관은 선박 건조 자금을 1억 달러 빌려주고 단번에 엇비슷한 금액을 벌어갑니다.”

한국 정부와 언론은 촌티를 벗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큰돈이 어디서 어디로 굴러다니는지 모르는 비전문가들이 증시에 헌 칼을 휘두른다고 통하는 세상이 아니다. 초등학생의 주식 투자까지 걱정해줄 필요가 없다. 미국에서는 초등학생들이 동아리를 만들어 주식 모의 투자를 하고, 지역 학교끼리 벌이는 투자 수익률 경쟁 순위가 매주 워싱턴 포스트에 보도되기도 한다.

우리는 세계 11위 무역대국이라고 뽐내며 언제까지 강아지 꼬리나 붙잡고 있을 것인가. 나라 경제를 위해서는 글로벌 머니 게임의 검투사(劍鬪士)들을 키워야 한다.

[송희영·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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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을 기술금융으로 유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지난주 열린 `기술혁신을 위한 금융시스템 발전방안' 정책 포럼을 통해 시중은행의 자금을 기술금융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키로 했다. 시중은행의 자금을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등 기술혁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어 바람직하다. 잘만 활용된다면 상당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기술력을 가진 중소 벤처기업들에게 자금을 지원해주기 위해 적극성을 보여왔다. 그러나 정부의 자금지원을 통한 연구개발 성과가 산업화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정부는 2004년에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중심으로 `기술가치평가제도를 활용한 기술금융 활성화 방안'을 추진했다. 당시 정부는 1조원 상당의 `기술금융모태펀드'를 만들어 기술력을 가진 중소 벤처기업들에게 안정적인 투자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과기부가 기술성과 활용성을 평가하고, 산자부는 기술 사업화를 촉진하고, 재경부는 민간 금융권에 관련 제도를 보급하는 협력 틀을 만들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일선 산업현장에서는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정부는 기술금융 지원과 관련해 무엇이 문제인지를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 등 물적 담보없이 기술력만으로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경영실적이 좋지 못한 중소 벤처기업이 기술력을 담보로 시중은행에서 자금을 대출받기가 과연 쉬울까.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커 대출을 망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금융기관이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중소 벤처기업을 가려내는 일은 쉽지 않다. 더욱이 첨단 업종은 특성상 변화무쌍해 현재 보유한 기술이 한순간에 사장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시중은행의 자금을 기술금융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방안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기술가치보험제도'는 고려해 볼만하다. 이 제도는 기업과 금융기관, 정부가 책임과 위험을 나눠 가지는 것이다.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 부도가 나더라도 기술력에 대한 소유권을 기업이 갖게 함으로써 기술력이 사장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 전문적인 기술평가기관 육성도 필요하다. 그래야 기술력과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고, 기술이 사장되는 현상을 최소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소벤처 자금에 대한 정부의 직접 지원방식 대신 금융시장을 이용한 간접지원 방식을 검토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정부의 직접 지원 방식은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 지원은 주인없는 돈이라는 인식이 아직 강한 게 현실이다. 반면 금융기관을 통한 대출은 갚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동안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확대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술혁신형 기업에 대한 금융기관들의 대출은 크게 활성화되지 않았다. 앞으로 신바젤 협약이 도입되면 기업의 신용도에 따른 자금조달 양극화가 심화돼 기술금융은 위축될 가능성 높다. 첨단 기술력을 가진 중소벤처업체들이 자금에 대한 어려움없이 연구개발 성과를 거둬, 산업화로 연결되는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기술금융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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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미래에셋증권 연구원


저축 시대에서 투자의 시대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그 중심에 선 펀드투자 문화가 정착되면서 분산투자도 이제는 익숙한 개념이 됐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이 상징하듯, 분산투자는 크게 공간을 분산하는 방법과 투자시점을 분산하는 방법으로 나뉜다.

국내펀드와 해외펀드에 동시에 투자하는 것은 공간을 분산해 지역별 고유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함이고, 일정 금액을 기간마다 적립해 나가는 적립형 투자는 투자시간의 분산시켜 주가변동성을 해소하기 위한 전략이다.

적립식 펀드의 장점은 소액투자가 가능하고 주가 등락에 관계없이 시간이 흐르면 수익이 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돈으로 주식 가격이 하락하면 많이 사고 오르면 적게 사기 때문에 현 주가가 가입시점보다 낮더라도 평균매입단가보다 높기만 하면 수익이 나는 구조다. 단 결혼자금이나 학자금과 같이 1년 안에 반드시 필요한 자금이라면 주식형 펀드보다는 확정 수익형 상품이 유리하다. 아무리 적립식 투자라고 하더라도 1년간 주가가 하락세를 보일 경우 손실을 본 채 환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3년 이상 장기투자를 권하는 이유도 손실을 만회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다.

적립식펀드라고 무조건 장기투자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작은 돈이라도 장기투자하면 목돈투자가 되기 때문에 주가등락에 수익률이 민감히 반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적립식 투자는 지속하되 목돈으로 불어난 펀드는 환매 후 확정 수익을 주는 상품에 가입하거나 공격적인 투자자라면 국내외 주식형 펀드에 분산투자를 통해 리스크를 줄여줄 필요가 있다.

올해 들어 국내 증시가 활황세를 보이며 많은 투자자들이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간접투자방식인 적립식 펀드는 그야말로 열풍이라는 말이 적합할 만큼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해외 펀드를 비롯해 국내 펀드 상품들도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어서, 가입자들은 펀드를 선택할 때 수익률 외에도 수수료, 환매조건 등을 꼼꼼히 살펴보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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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수 / 한국은행 아주경제팀장] 일본은행이 정책금리를 동결하면서 엔화 약세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ㆍ달러 환율은 122엔대까지 떨어졌고 엔ㆍ유로 환율도 1999년 유로화 도입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

엔화 약세가 지속되는 까닭은 미국의 경기둔화 염려가 약화되면서 금리 인하 가능성이 사라졌고 세계 증시 호황으로 주식투자를 위한 엔케리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개인들의 외화자산투자가 6월 상여금 수령과 함께 늘어난 것도 엔화 약세를 심화케한 요인이다.

엔캐리 트레이드는 당초 외국 투자가 또는 헤지펀드 등이 저금리의 엔을 고금리 통화로 전환하여 운용하는 수법을 지칭했지만 엔화 약세가 장기화하면서 일본 투자가들의 해외 예금, 증권 투자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대되고 있다.

엔캐리 트레이드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까닭은 금융, 자본시장, 외환시장에서 변동성이 과거보다 낮아지면서 금리 차이가 자금 이동의 주된 인센티브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엔캐리 자금의 가장 큰 원천은 일본 금융기관의 대외 증권투자로 일본은행 통계에 따르면 2006년 말 기준 약 1조9000억달러에 달하며 이 중 적지 않은 부분이 신흥시장국 주식에 투자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자산운용사의 대외 증권투자도 최근 수년간 3배 이상 늘어났다.

엔캐리 자금이 엔화 약세의 원인임과 동시에 세계 유동성 과잉의 배경으로 작용하면서 일본은행의 향후 금리 인상에 따른 일본의 저금리 해소 여부와 엔캐리 트레이드의 청산 가능성에 세계 금융시장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인플레이션 우려로 각국의 정책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가운데 일본에서도 금리 인상이 당초 예상보다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는 일본의 실물경기 상황이 매우 양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분기 일본 경제는 수출이 미국 경기 속도 둔화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증가하고 가계소비와 설비투자도 예상보다 좋은 실적을 나타내 주요 선진국 증 최고 수준인 전기 대비 3.3% 성장을 기록했다.

수출과 소비 호조는 4월에도 이어지고 있으며 4월 실업률이 9년 만에 3%대에 진입하는 등 고용사정 개선이 뚜렷하다.

일본은행은 금리 인상에는 여전히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후쿠이 총재의 발언과 향후 주요 통계 등 발표 일정을 고려할 때 금리 인상 시기는 8월 또는 9월이 될 것으로 보인다.

8월중 인상을 주장하는 근거는 7월 말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나고 7월 24일과 8월 13일에 각각 발표되는 미국과 일본의 2분기 GDP를 본 뒤 8월 23일에 열리는 일본은행 정책회의에서 금리 인상 결정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다.

그러나 7월부터 주민세 등 가계의 세금부담이 늘어나므로 8월중 이를 반영한 소비 관련 통계를 확인한 후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하겠다. 또한 소수이긴 하나 7, 8월 중 소비자물가 하락 전망 등을 근거로 당초 예상대로 4분기에나 금리 인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일본의 정책금리가 8월 또는 9월에 인상된다 하더라도 엔캐리 트레이드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추가 인상이 일러야 내년 3월께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일본의 금리 인상 속도가 매우 느린 데다 주요국의 금리도 계속 상승함에 따라 내외 금리차 축소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럽은 3분기중 다시 정책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도 2분기 성장률이 2%로 회복되는 등 경기가 다시 좋아질 것으로 전망돼 그간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약화되고 오히려 금리 인상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의 금리 인상 속도를 감안할 때 엔캐리 자금의 환류는 일본의 정책금리 인상보다는 세계 증시의 조정과정에서 촉발될 가능성이 더 높다.

최근 일본의 외화자산 투자 중 주식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 세계 주가가 하락세로 돌아설 경우 여기에 투자되었던 엔화 자금이 일본으로 회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과열 우려가 제기되었던 중국 증시가 당국의 증권거래세 인상 이후 안정을 되찾고 있는 등 세계 증시의 급격한 조정 가능성도 크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당분간 엔캐리 트레이드 규모의 축소를 기대하기 어렵다. 엔화도 일시적인 등락은 있겠으나 일본은행의 다음 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내년 3월께까지는 약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고용수 한국은행 아주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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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갑부 김갑순’은 구한 말 땅부자였다. 서울 행차 때 자기 땅 절반, 남의 땅 절반을 밟고 다녔다고 할 정도다. 돈으로 벼슬을 얻었고, 그 벼슬로 다시 돈을 긁어 모아 땅을 샀다. 금력과 권력을 활용한 것이다. 친일파 연구가 정운영은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에서 “김갑순은 아산군수 시절 삭탈관직당할 뻔했으나 한일합방으로 유야무야됐다”고 기록했다. 그는 재임 시절 맺어둔 인맥을 총동원, 개발 정보를 빼내거나 일제로부터 특혜를 받았다. 탐관오리에다 전형적 투기꾼이었던 셈이다.

5공화국 초기인 1982년. 일제시대 부자들의 성공기를 풍자적으로 다룬 MBC ‘거부실록’에서도 김갑순의 축재술이 다뤄졌다. 극중 주인공 김갑순이 “민나 도로보데스”라고 일갈했다. 일본말로 ‘모두 도둑놈’이라는 뜻이다. 당시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사건이 사회적 물의를 빚었는데 이·장 부부가 전두환 대통령과 먼 인척관계였던 것을 비꼰 말이라는 것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이 말은 유행어가 됐고 사람들은 세상을 개탄할 때 ‘민나 도로보데스’라고 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SBS 수목 드라마 ‘쩐의 전쟁’. 사채업자들의 비정함을 다룬 이야기다. 증권사 펀드매니저에서 사채업자로 변신한 극중 주인공 금나라(박신양 扮)는 피도 눈물도 없다. 돈 때문에 망한 인생, 돈으로 복수한다. 대검 김진숙 검사는 이 드라마를 범죄적 관점에서 분석한 뒤 ‘철창행’을 피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현실은 어디 그런가.

야당 대권 예비후보와 연관된 땅투기 의혹도 어찌보면 ‘쩐의 전쟁’ 같다. 진실이 밝혀진 것은 아니나 정황으로 보면 ‘합리적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금력(金力)이 일부 개입됐을 개연성마저 있어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종종 금력과 권력은 결탁한다는 점이다. 김갑순이 다시 태어난다면 ‘민나 도로보데스’라고 개탄할지도 모르겠다.

‘돈이면 안되는 것이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어도 잠을 살 순 없다. 존경이나 명예도 마찬가지. 돈으로 권력을 사고, 권력으로 돈을 모은 사람은 많을지라도 ‘존경’을 샀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성경에서조차 ‘약대(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했을까.

박현동 논설위원 hd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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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은 한 인간에게 선견지명과 행운을 동시에 주지 않는 듯하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은 80~90년대 세계 경영을 외치며 동유럽, 구소련, 동남아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와 제3세계 국가들을 누볐다. 대우그룹이 망한 지 8년째지만 아직도 이들 나라에서는 ‘대우’와 ‘김우중’ 하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우연의 일치인지 요즘 이런 나라들이 뜨고 있다. 하나같이 자원이 풍부하고 잠재력이 무한한 미래의 강국들이다. 김우중씨의 안목은 탁월했지만 시대를 너무 앞섰다. 독불장군식 황제경영이 파멸을 재촉했다. 아마 대우가 지금까지 활약했다면 한국은 신흥시장을 주도하는 나라로 대접받을지 모른다. 너무 아쉬운 대목이다.

외환위기 여진이 채 가시지 않았던 1999년 4월.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은 강당을 가득 메운 투자자들에게 열변을 토했다. “한국 경제를 살리면서 돈도 많이 버는 방법은 바이코리아 펀드투자”라며 “2005년엔 지수가 6000까지 오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후 추락한 주가가 1000을 다시 넘는 데 6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주장한 지 8년이 지난 2007년에 와서야 철강, 조선, 건설 등이 증시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잠재력 있는 한국 제조업에 투자하란 그의 주장은 백번 옳은 얘기였다. 다만 총명한 그의 두뇌를 도덕성이 뒷받침해주지 못해 뒤끝이 좋지 않았다.

넘치는 돈으로 전 세계 증시가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시중에 풀린 돈은 주식 값을 띄우기에 충분하다. 지난 10년 새 넓은 의미의 유동성은 700조원에서 1800조원으로 늘어났다. 주식형펀드가 60조원을 넘어섰고 증시의 큰손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기업이 2003년 3월 이후 투자를 하지 않고 대신 사들인 자사주가 22조8000억원에 달한다. 기업이 투자를 기피하니 기업공개나 유·무상증자로 돈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어졌다. 수요는 느는데 유통주식 수가 감소하면 주가가 오르는 게 당연하다.

“경기상승 속도보다 주가 오름세가 너무 빠르다”는 재경부 차관의 걱정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내수 경기회복이라기보다 세계경제 호조와 국내 수급 요인으로 주가가 급등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수급은 모든 재료보다 앞선다. 재건축을 틀어막는 참여정부의 부동산대책이 강남 아파트 값을 부채질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시골의사’로 불리는 박경철씨는 지금 증시는 무릎이 아닌 발목이라며 투자를 하지 않는 위험보다 투자해서 부닥치는 위험이 훨씬 적다고 강조한다. 이원기 KB자산운용 사장은 이제 겨우 3부 능선에 왔을 뿐이라고 단언한다. 과거 증시는 산업화를 반영했다면 지금은 민주화와 정보통신의 발전에 남북 화해 분위기가 겹쳐진 복합적인 상승장이란 설명이다.

증시에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잘하면 10년에 한 번 오는 대운(大運)을 잡을 수 있지만 자칫하면 무서운 쓰나미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거친 바다는 튼튼한 배(우량주)로 항해해야지 쪽배를 타고 건널 순 없는 일이다. 모두가 환호할 때 함정이 숨어있다.

위험관리가 최우선이다. 블랙먼데이 같은 돌발사태가 와도 피해가 덜할 저평가 우량주를 사서 ‘마르고 닳도록’ 보유해야 한다.

‘유(有)주식 상(上)팔자’ 시대다. 주식 없는 노후대비는 생각하기 힘든 세상이 왔다. 전 세계에서 재산 1조원이 넘는 946명 중 63%가 자수성가했다고 한다. 금전적인 속박에서 벗어나는 자유(Financial Freedom)를 누리려면 위험자산인 주식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자산포트폴리오에서 부동산·예금 비중을 낮추고 주식 보유를 높일 때다. 하늘은 과학적 투자를 하는 지혜로운 사람에게만 선물을 준다.

[윤영걸 / 주간국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412호(07.07.04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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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세계 자동차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빅3 중 하나인 크라이슬러자동차를 서버러스라는 펀드에서 인수한 것. 서버러스는 이미 자동차 관련 금융 회사를 소유하고 있어, 자체로도 자동차 그룹을 형성한 상황이다. 사모(私募)펀드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론스타’ ‘칼라일’ 등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 진출, 기업과 부동산, 금융기관들을 차례로 인수하면서 이름을 떨친 이들이 모두 사모펀드의 일종이다. 외국계 사모펀드들은 인수한 기업이나 부동산 등을 높은 가격으로 되팔면서 ‘먹튀’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소수의 투자자에게 이익을 배분할 목적으로 기업을 인수한 뒤 무자비한 구조조정을 단행해 거액을 챙긴다는 비판이다. 반면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을 회생시키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 고용창출에 기여한다는 ‘긍정론’도 만만치 않다. 일각에선 대형 산업자본과 투자은행 등이 향유하던 ‘자본주의의 제왕’ 자리를 사모펀드가 차지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1, 2위를 다투는 블랙스톤과 KKR의 운용자산은 200억달러를 넘어섰다.

한국에서도 사모펀드의 투자 규모와 영역이 다양해지면서, 피인수기업 임직원과의 마찰도 발생하고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사모펀드가 자본주의의 제왕으로까지 주목받는 배경에는 연기금과 재단, 부유한 개인 등이 맡긴 막대한 자금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찬반 논란을 떠나 사모펀드의 역할에 주목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모펀드의 순기능을 잘 살린다면, 자본시장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외국계 사모펀드에 안방을 내준 우리 입장에선 이들에 대한 대항마로 토종 펀드를 활용할 수도 있다. 대형 기업들이 인수합병시장에 매물로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단어가 ‘국부유출’ 논란이다. 국내에도 유동성은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이 돈들이 인수합병시장에 들어가는 물꼬는 막혀 있다. 토종 사모펀드들은 규모나 운용 노하우 등에서 밀려 대우조선해양, 현대건설 등 줄줄이 나올 기업 인수전에는 명함도 내밀기 힘든 판이다.

물론 사모펀드의 역기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대형 사모펀드들은 정재계 실력자를 끌어 모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정부에서는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불투명한 경영관행으로 소수의 투자자만이 이익을 본다는 비판도 면키는 어렵다.

토종 사모펀드들이 ‘금융시장의 제왕’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투자성과를 바탕으로 한 신뢰구축이 필요하다. 금융 당국에서도 불필요한 규제는 없는지, 혹은 제대로 된 모니터링이 이뤄지고 있는지 고민해야 할 때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412호(07.07.04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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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우종원] 어느샌가 우리 사회는 실적이 가치판단의 중심인 사회가 됐다. 스스럼없이 주가로 기업의 서열을 매기고 연봉이라는 잣대로 샐러리맨의 우열을 잰다.

 이를 두고 사회 발전이라 칭송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실적주의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당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기업의 현장을 책임진 중간관리자라면 다들 어렴풋이 느끼는 바이기도 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실적주의란 단기간의 실적에 주목하는 것인 데 반해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장기간의 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 사회에 실적주의가 만연하면서 장기적 투자는 탄성을 잃었다. 최근 상당수 기업이 수익을 내면서도 그것을 재투자하지 않고 현금으로 보유하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 준다. 더 심각한 것은 인적 자원 투자이다. 5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 외환위기 시의 대폭 삭감 후에도 최근까지 인적 투자가 가장 필요한 20대의 고용을 16%, 30대의 고용을 8%나 더 줄였다.

 조직 내는 어떤가. 실적주의로 소수의 고액 연봉자가 탄생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도 장기적 성장보다는 눈앞의 실적에 급급하는 경향이 크다. 한편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여기는 다수는 더 많이 받는 자를 질투하거나 일할 의욕을 잃거나 아니면 미련을 끊고 회사를 떠난다. 이런 풍토 속에서 10년, 20년 뒤 회사의 장래를 책임질 인재가 육성되리라 보기는 힘들다.

 이렇게 얘기하면 실적주의는 세계적 흐름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구별해야 할 것이 있다. 성장기와 성숙기는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장기의 미국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혀 실적주의가 아니었다. 그후 금융이 산업의 주도권을 쥐고 펀드가 성행하면서 실적주의로 되었다. 하지만 그 대가도 적지 않았다. 장기적 경쟁력을 필요로 하는 제조업이 몰락한 것이다. 과연 우리는 금융업으로 먹고 살 단계에 이미 들어선 것일까.

 물론 제조업으로 먹고산다고 해도 세계화란 흐름이 실적주의를 비켜가게 하지는 않는다. 일본의 경우도 90년대 이후 실적주의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하지만 이를 견제하는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언젠가 미국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고용 유지가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며 도요타의 신용등급을 끌어내렸을 때 도요타가 이에 저항한 얘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도요타는 내부적으로도 실적과 급여를 직접 연동시키지 않고 장기적 능력과 연계해 평가한다. 이런 가운데 도쿄대학의 한 경영학교수는 “성과주의는 다 글렀다. 일본식 연공제가 제일 맞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나섰다.

 대기업뿐만이 아니다. 주켄(樹硏)은 100명 남짓의 종업원으로 직경 0.15㎜의 세계에서 가장 작은 기어를 만들어 내는 회사다. 이 회사에 개발을 전담하는 기술자는 없다. 대신 입사시험도 없이 선착순으로 들어온 근로자들이 오로지 장인정신으로 신제품을 제작한다. 급여는 완전한 연공급이다. 마쓰우라 사장은 잘라 말한다. “경영자의 임무는 평소 절약한 돈으로 근로자에게 좋은 기계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에게 가장 큰 모티베이션이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균형감각이다. 즉 실적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장기적 실적이 중요한 것이고 돈만이 아니라 일 자체에 보람을 느끼고 장기적으로 스스로를 일구는 내적 동기가 필요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외환위기가 분수령이었다. 그때 우린 방만한 차입 경영을 고치되 성장 전망을 갖는 경영으로 방향을 틀었어야 했다. 먹고살기 위한 일률적 급여 체계를 개선하되 장기적 능력 개발을 촉진하는 보수 체계로 가져갔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장기를 희생한 단기적 실적주의가 되고 말았다.

 40대라면 한번쯤 신명나게 일해 본 경험을 누구나 갖고 있다. 20대도 그냥 돈만을 원하지는 않는다. 장래를 기약 못 하는 기업과 근로자를 가지고 선진국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기적 전망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너무나 절실하다.

우종원 일본 국립사이타마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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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을 합한 우리나라 증시 시가총액이 1000조원을 돌파해 계속 늘고 있다. 최근 국제신용평가기관의 국가신용등급 상향 조정 검토 소식과 북핵 문제 진전 영향 등으로 주가가 급등하고 있지만, 길게 보면 그동안 저평가됐던 국내 기업 주가가 제대로 평가받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 증시를 견인했던 삼성전자 등 정보기술(IT) 관련 기업 주가가 상대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조선 철강 기계 등 전통산업이 증시를 이끄는 주역으로 부상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다시 말해 최근 반도체 가격 상승 등으로 IT 관련 기업 주가가 본격 오르기 시작하면 국내 증시가 광범위한 산업에 의해 골고루 뒷받침되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점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한국 증시 시가총액은 120%를 넘어섰다. 그러나 한국 GDP 규모가 세계 12위인 데 비해 시가총액이 15위라는 점은 아직 주가 상승 여력이 충분히 있음을 말해준다. 이울러 개인의 적립식펀드 규모가 계속 확대되고,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등 증시 재원으로 활용될 자금이 크게 늘고 있는 것도 중장기적으로 주가가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유동성이 단기간에 지나치게 증시로 쏠리거나, 개인 신용거래가 급증해 주가가 오르는 것은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특히 주가 급등 상황에서 흔히 나타나는 작전세력이 시장을 교란할 수 있는 것도 간과해선 안 될 일이다.

안타까운 것은 증시 활황을 기업들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후 한동안은 증시가 좋을 때 기업들이 유상증자나 상장 등을 통해 자금을 확충하고 주식공급 물량을 늘림으로써 증시과열을 막는 역할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국내 1000개 기업이 쌓아놓은 돈이 364조원이나 되는 상황이고 부채비율도 낮은 상황에서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증시 활황이 기업의 시설자금 확충과 미래투자 등 실물경제 활성화와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적극 늘릴 수 있도록 여건을 개선해 증시 활황을 성장잠재력 확충에 충분히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투자자가 기업의 잘못된 경영공시 등으로 인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데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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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부자든 샐러리맨이든 재테크 화두는 단연 주식투자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주식 투자가 이젠 각종 언론에 인기 메뉴로 제공되고 있고, 성공담은 발 없는 소문을 타고 부러움 속에 회자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도 자본시장통합법의 국회 통과는 범세계적 증시 호황 국면 속에서 우리 경제의 회복 전망, 자금의 꾸준한 증시 유입, 우리 증시의 선진국지수 편입 가시화 등 제반 요인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앞으로 2~3년간 우리 증시 활황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시급한 것은 '장밋빛 전망'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 펀드시장의 발전 과제를 제언하고자 한다.

최근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물건을 팔아 자금을 마련해 펀드에 투자토록 하는 내용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고 대박 펀드, 고수익 해외 펀드에 대한 기사도 넘쳐 나고 있다. 전문 운용사를 통한 펀드 투자는 개인의 직접투자보다 전문성, 정보량, 분산투자 등에서 유리해 이를 활성화하는 것이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고 선진시장 추세이기도 하다.

아울러 경제성장 과정에서 늘어난 수천조 원의 국부가 오갈 데 없이 시장을 떠돌다가 부동산과 채권시장을 교란해 왔던 폐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고 금융허브 구축과 성장률 제고에도 기여할 것이다. 다만 펀드 투자는 일정액을 수수료로 물게 되므로 치밀한 비용효익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현재 펀드시장은 일반인들의 관심 증가, 금융사들의 시장 조성 노력, 정부의 법적 인프라스트럭처 정비라는 삼각 축 위에서 도약의 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하드웨어 못지않게 소프트웨어가 중요하고, 참가자들이 윈-윈할 수 있는 시스템 운용이 중요하다.

과거 우리 주식시장은 하드웨어에 상응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패가망신자들(losers)'을 양산했다. 이는 투자자 보호에 책임성이 부족했던 금융회사, 선진 금융 관행 정착에 소홀했던 감독 당국, 투자자들의 무모한 행태 등 제반 요인 간 부정적 상호작용의 산물이었으며 정상 작동하지 않는 주식시장은 경제성장의 동맥류를 제공하는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거듭했다.

과거 실패를 딛고 더 나은 시장을 형성하기 위해 금융사들은 전문성을 강화, 고객들이 기대하는 수준으로 운용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투자자의 위험 수용능력, 태도, 자금 수요 등 요인을 충분히 고려해 직업윤리에 기초하여 정직하게 상품을 추천해야 한다.

최근 일간지에 일부 금융사가 했던 것처럼 5년간 500% 수익, 대박 펀드의 실적을 자랑함으로써 돈을 맡기면 대박이 날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오도하기보다 운용 중인 전체 펀드의 유형별로 평균 수익률을 정직하게 알려야 한다. 아울러 펀드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 금전적, 비금전적 이익은 펀드 가입자를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회사들은 이미 지난 성공에 자족하지 말고 선진적 시장 규범을 정착시키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감독 당국은 이미 만들어진 법에 따라 관련 규정을 잘 정비하고 적극적 리더십을 발휘해 금융사들이 직업윤리에 기초하여 영업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인센티브에 기초한 선진 감독체계 구축, 투자자 교육 등이 중요하다. 또 단기적으로는 펀드 운용사들의 부실, 과장공시와 불충분한 대고객 상품 설명 등에 대해 법에 따라 단호히 대처, 시정하는 것이 신뢰를 확립하는 데 시급한 과제다.

투자자들도 복잡한 현대 금융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초적인 금융지식에 대한 꾸준한 학습이 필요하며 금융사에 대해서도 공정한 정보 공시, 상품의 주요 내용 설명 등 법적 권리를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각자 여건에 대한 냉정한 판단 없이 비전문가들의 책임 없는 조언이나 시류에 부합해 맹목적 투자에 나선다면 시장의 패배자로 남게 될 것이고 이는 개인의 재앙일 뿐 아니라 우리 자본시장의 긍정적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신현준 세계銀 선임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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