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석·경제부
납세자의 세금 불복 사건을 처리하는 국세심판원이 5일 좀 괴상한 보도자료를 냈다. ‘론스타펀드의 스타타워 빌딩 매각 관련 심판 청구에 대한 국세심판원 결정’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바로 그 제목이 문제였다.

국세심판원은 세금사건 당사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외부에 공개되는 결정문에서 익명을 고수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보도자료까지 내서 미국계 펀드 론스타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국세심판원 A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심판원이 납세자의 실명을 공개한 건 처음 아니냐”고 물었다.

A과장은 “청구인 입장에서 항의할 순 있지만, 국민들이 관심이 많은 사안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국민들의 알 권리와 청구인의 권익 보호를 중간에서 절충한 걸로 봐달라”고 말했다.

그동안 세금 관련 기사를 쓰기 위해 숱하게 둘러봤던 국세심판원의 홈페이지를 뒤져봤다. 수많은 심판청구 사건의 결정문이 올려져 있었지만, 한결같이 ○○기업, ××상사라는 식으로 실명이 감추어져 있었다. 어떤 청구에 대해 어떤 결정이 내려졌는지는 공개하지만, 누가 청구했는지는 밝히지 않는 것이다.

일본의 국세불복심판소 등도 비슷한 원칙을 유지하고 있는 등 세금 사건의 실명 비공개는 국제 관행이다. 그런데도 심판원은 이례적으로 “론스타가 이런 일이 있었다”는 보도자료를 낸 것이다.

한 국세청 관계자는 “수조원대의 ‘대박’을 터뜨리고도 세금 한푼 안 내겠다고 해 미운털이 박혀서 그런 모양”이라면서 대단치 않은 일이라는 듯 말했다. 하지만 안 그래도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외국 투자자에 대해 적대적인 나라”라는 말을 듣는 마당에 한국의 이미지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적지 않다.

론스타는 이미 한국에서 수조원의 이익을 챙겼고, 앞으로도 수조원의 이익을 챙길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론스타에만 이런 실명 공개의 ‘특별 대우’를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이진석·경제부 island@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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