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imgnews.naver.com/image/079/2008/04/21/21095047328_60200070.jpg)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
[
] “아직도 하고 싶은 공부에는 한이 없습니다”
이 말은 2003년 대학 강단을 떠난 서울대 장회익 명예 교수가 전하는 말로, 최근 '공부 도둑'이란 제목의 자서전을 펴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장회익 교수는 국내 최고의 물리학자이자 온생명 이론으로 대표되는 독창적인 사상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루이지애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줄곧 대학교수로만 지내왔던 장회익 교수는 대학 퇴임 후, 국내 첫 대안대학인 녹색대학의 초대 총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칠십 평생을 학문의 길에 놓여있으면서 여전히 공부할 게 많다는 ‘공부 도둑’ 장회익 교수를 4월 17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앎과 함께 숨바꼭질 하며 살아온 세월▶ 최근 <공부도둑>이란 책이 화제인데, 무슨 뜻입니까?
그저 재미있으라고 제목을 그렇게 붙여봤습니다. 그 뜻을 이야기하자면, 공부를 통해서 앎의 내용을 잘 빼내는 도둑이라는 뜻입니다.
▶ 책 내시고 책 제목의 뜻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으시죠?
특별한 뜻은 없었어요. 공부나 교육관계에 대해 제가 지내온 경험이 지금까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달랐어요. 그래서 ‘이런 면도 있었다’는 것을 참고로 알리면 도움 받으시는 분들도 생길 것이니까요. 그래서 적어 본 것입니다.
▶ 스스로를 공부꾼이라고 칭하시는데요, 공부하는 게 좋으세요?
저는 어려서부터 공부하는 것에 재미를 붙였어요. 공부가 취미였죠. 공부를 안 하면 심심하고, 공부에 몰입해서 온 정신을 쏟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일부분이었어요. 그렇게 살아 왔고 지금도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 그간의 삶을 ‘평생 앎과 함께 숨바꼭질하며 살아온 세월’이라고 표현을 하셨는데요.
공부가 놀이라는 의미도 있죠. 아는 것 같다가도 몰라서 다시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마치 숨었다 나타났다 하는 놀이 같았어요. 앎이라는 것이 한꺼번에 다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볼 때 장난꾸러기같이 요기조기 숨어 피해 다니면서 자기를 찾도록 만들어주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래서 숨바꼭질이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공부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결국은 앎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크게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죠. 하나는 기왕에 알려졌지만 내가 모르는 것. 그래서 내가 가서 배우려는 노력을 공부라고 할 수 있고요. 또 하나는 미처 알려지지 않은 자연의 법칙이랄까, 아무도 찾아내지 못한 것들을 새롭게 찾아나가는 것. 즉, 연구나 탐구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그런 것도 넒은 의미의 공부이죠.그 두 개가 완전히 별개는 아니고 결국 연결되어있는 것입니다.
남이 이미 알았다고 내가 공부할 때 더 쉬워지는 것은 아니고, 나는 나대로 역시 새로운 것을 알아내는 노력을 들여야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죠. 물론 책을 읽는다거나 아는 분이 설명을 하는 그런 방법도 공부라고 할 수 있고요. 어쨌든 이 모든 것을 통틀어 공부라고 하죠.
▶ 요즘은 ‘평생 공부’라고 해서 학문적인 것보다는 생활 수단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잖아요.
그것도 필요합니다. 자기 실생활이라든지 구체적 목적 때문에 하는 공부나, 더 깊은 의미에서 자기의 호기심을 따라가는 것, 그리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것도 공부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 토목기사 아버지의 독서가 큰 영향▶ 공부하기 싫은 사람들은 어떻게 공부가 취미가 될 수 있을까 궁금한데요. 공부를 재미있게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참 중요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공부가 재미있게 되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 여건의 첫째는 부모님들이 해주셔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학교나 주변 여건이 받쳐줘야 하죠. 제 경우에는 부모님, 특히 부친께서 그런 면에서 나를 잘 안내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공부에 취미를 붙여주셨죠.
저희 부모님은 제게 공부하라는 말을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저 당신이 책을 즐겨보실 뿐이었어요. 특히 아버지는 주로 독특한 책을 읽으셨어요. 토목기사였는데 예전에는 다 그렇지만 교육을 못 받으셨거든요. 초등학교 졸업 후 6개월 정도 공식적인 토목교육만 받으시고는, 나머지는 자기 혼자 책을 보고 익히는 것으로 일생을 사셨어요. 그래서 혼자 책을 많이 보셨죠.
제가 어릴 때 그런 책들을 보면 수식도 나오고 삼각형 그림, 원도 있고 하는 그런 이상한 기호들이 ‘나는 언제 저런 것을 읽을 수 있을까’ 동경심 같은 것을 불러 일으켰어요. 그래서 공부라는 것이 좋은 것 인가보다해서 나도 기회만 있으면 책을 읽었죠. 그때야 뭐 만화 정도였지만, ‘나도 빨리 커서 저런 책 읽어야지’ 하던 생각이 나요.
그래서 어른의 역할이 참 중요합니다. 공부가 중요하다는 말을 아무래 해도 본인이 행동하지 않고 말만 하는 것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말은 안 해도 자기가 열심히 하면 아이들이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저희 아버지는 절대로 무리하게 공부를 시키지 않았어요.
내가 공부하고 있으면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자라고 하시면서, 내가 공부에 지치게 만들어 주시지 않으셨죠. 그래서 공부라는 것이 기회만 있으면 자꾸 더하고 싶었어요. 나도 모르게 책이 펴고 싶어지게 만들어주셨어요.
▶ 아버님이 참 훌륭하신 분이셨어요.
책에도 썼지만 아버지의 독서 습관 중에 재미난 것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책을 읽다가 재미난 곳이 있으면 일단 덮어놓고 쉬었다가 또 보셨어요. 어릴 때 그게 참 이해가 안 갔어요. 우리 어머니도 이해를 못하셨죠. 근데 아버지의 설명이 뭐였냐면, 재미난 것을 덮어놓아야 자꾸 그 책이 더 보고 싶어진다는 거였어요. 읽기 싫을 때 덮으면 그 책을 다시 읽기가 어렵다는 거였죠.
부친이 주로 하신 공부가 수학, 물리학이었으니까 보통 의미의 재미난 것이 별로 없었고, 지치기 쉬운 책이었겠죠. 그래서 아마 그런 철학을 터득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후에 그 생각이 나서 절대로 책 읽을 때 무리를 안 합니다. 지금도 70이 넘었지만 늘 책 읽는 게 즐겁고 그런 것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 어머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어머니도 학교 공부를 많이 안 하셨어요. 초등학교도 다 못 마친 학력이셨어요. 그래서 젊으실 때 소설책 이런 것을 좋아하셨고, 이제는 기독교에 심취하셔서 성경을 열심히 읽고 계십니다. 어머니 역시 공부나 책 읽기에 대해 호의적으로 이끌어주신 그런 분이십니다.
◇ 할아버지 반대로 중학교 진학 못 채 1년간 농사만 짓기도▶ 1938년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셨다고요?
제가 어릴 때 집안 자체는 경제적으로 그리 어렵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공부는 묘하게 엇갈리는 분위기가 있었죠. 저희 증조부는 학업을 장려하시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를 공부시키려고 했고, 할아버지는 도망 다니면서 공부 안하려고 했죠. 그래서 증조할아버지 돌아가시면서 할아버지가 가장이 되었을 때, 공부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또 아버지는 반대로 공부를 하려고 하시고 두 분이 영 뜻이 안 맞았죠.(웃음)그래서 아버지는 일찍이 토목일을 하셔서 도시로 떠나시고, 저는 어릴 때 아버지 따라 도시로 가서 공부를 했어요.
처음에 만주로 가서, 지금 연길이라고 하는 데서 한 7살 정도까지 자랐고요. 해방 직전 귀국하셔서 강원도 춘천에서 기사생활을 하셔서 저도 거기서 초등학교 입학하고 그럭저럭 5학년까지 정도까지 마치고 6학년 때쯤 6.25가 터져서 그때 고향으로 다시 되돌아갔죠. 그때 아버지가 집안의 장자셨는데, 세상도 복잡하니까 농사나 다시 짓자 하고 귀농을 결심하셨어요.
근데 엉뚱한 일이 터진 것이 제가 초등학교도 미처 못 마쳤는데, 할아버지가 학교를 그만 다니라는 거예요. 아버지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죠. 할아버지는 그 옛날에 중학교까지 나오셨을 정도였는데, 억지로 하기 싫은 공부를 막상 해보니 별 소용이 없었다는 철학 같은 것이 있으셨어요.
그래서 제가 중학교를 못가고 1년을 일꾼들과 같이 일을 한 적이 있었죠.그때 할아버지 동생분이 있으셨는데, 이분은 또 교육열이 뜨거우신 분이었어요. 고향에서 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신 분이었는데, 그 학교가 경제적으로든, 입학시험에 떨어져서든, 어떤 이유로든 중학교를 못간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는 학교였어요. 그래서 거기에 입학을 하게 되고, 거기서 한 1년 남짓 다니다가 다시 다른 지방의 중학교로 편입을 하였습니다.
▶ 향학열이 있으셨던 모양이에요?
많았죠. 초등학교 때는 누구나 다 다니니까 그러려니 했어요. 공부도 재미있고 또 성적도 잘 받았어요. 그렇게 별 문제 없이 다니다가 딱 잘리니까 공부를 해야 되겠다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학교는 안 다녔지만, 학교 다니는 친척들의 교과서 보면서 혼자 공부를 했어요. 그렇게 고등공민학교를 갔는데, 거기 선생님들이 여건을 갖춘 선생님들 아니었어요. 그저 주변에서 공부 좀 했다는 분들 그냥 와서 가르치는 데였죠.
▶ 결국은 61년도 서울대 물리학과를 들어 가셨죠.
고등학교를 제가 청주 공업 고등학교를 나왔어요. 당시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달랐죠. 실업학교에서도 우수한 학생들은 대학을 많이 갔어요. 제 고등학교 선배들 중에 서울대 의대를 가신 분도 있었고요. 그렇게 한 학년에 꼭 한 두 명씩은 있었어요.
▶ 그러다 또 65년도에 미국 유학을 가셨어요?
그때 국내에서 잘 내보내주지도 않았었을 뿐더러, 더 중요한 것은 학비문제였어요. 요즘 많은 학생들이 집안에서 어느 정도 학비를 대주고 있는데, 그때는 그런 사람들은 극소수였죠. 유학을 간다고 하면 학비와 생활비를 다 지원해주는 엄청난 장학금을 받던가. 조교로 일하면서 거기서 나오는 월급을 가지고 생활비, 학비를 대야 갈 수 있었죠.
◇ 아인슈타인, 함석헌 선생의 영향 많이 받아▶ 책에 보니까 방황도 했었다고 나오던데, 흔히 있는 술, 담배, 여자문제였는지요.(웃음)
학문적인 방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교과서로 혼자 공부를 하는데 물리가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공과대를 갈 것이 아니라, 물리학과를 지원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굉장한 기대를 가지고 대학을 입학하게 되었어요. 근데, 공부를 해보니 기대했던 것만큼 이해도 쉽지 않고, 공부 방식도 나와 잘 맞지 않았어요.
![](http://imgnews.naver.com/image/079/2008/04/21/21095157156_60200070.jpg)
그때 상대성 이론을 보게 되었는데, 시간이 길어졌다 짧아졌다는 둥 공간이 휘어진다는 등의 이야기를 보고, ‘야, 이걸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죠. 그래서 그걸 깊이 공부하고 싶어서 갔는데 막상 공부를 해봐도 내가 이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그래서 철학을 해야 하나 싶어 철학 강의 들었다가, 물리학 강의 들었다가.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방황을 했죠.
▶ 영향을 준 분이 ‘아인슈타인, 함석헌 선생님’이라고 하던데요.
예. 아인슈타인은 잘 아시다시피 대표적 물리학자이죠. 제가 공부하던 과정과 학문적인 취향이 아인슈타인과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아인슈타인에 의해 배운 점도 많고요. 특히 아인슈타인이나 함석헌 선생을 책에 언급한 이유는,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 회장도 하는 등 착실한 크리스천이었어요. 그러다가 기독교에서 믿어야 하는 내용과 과학에서 이야기하는 것과의 모순점이 자꾸 충돌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조화시켜 함께 갈 수 있겠느냐고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러다가 내가 생각한 것이 과거에 믿은 것은 너무 좁은 의미의 신학이었다고 느꼈어요. 이적과 기적이 있어야 신앙이 있다고 믿었죠. 자연 질서만으로는 신이 없다는 단순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인슈타인은 달랐어요. 자연의 오묘한 법칙이야말로 엄청나게 놀라운 질서가 있고, 이런 놀라운 질서는 신의 섭리 아니고는 불가능하다는 거였죠. 즉, 모순이 아니라 원래 자연이 하나님의 솜씨이고, 하나님의 존재를 이야기한다는 이런 신앙이었어요.
과거에 과학을 잘 모를 때에는 자연 질서를 벗어나는 것이 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불완전한 것이었죠. 이렇게 더 중요하고 더 깊은 의미의 신앙으로 안내자의 역할을 해준 분이 아인슈타인과 함석헌 선생이었어요. 다른 측면에서 지적인 활로를 열어줬습니다.
◇ 온생명 이론의 권위자, 녹색대학 총장으로 ▶ 교수 생활을 접으시고 녹색대학 총장으로 가셨는데, 그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생명에 대한 이해를 다시 하다보니까, ‘우리가 자라온 환경이 바로 우리 몸이다, 나라는 것이 개별적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전체가 한 몸이다’ 그런 시각에서 우리 문명이 생명을 크게 훼손하고 해치고 있다 이렇게 이해를 했어요. 마침 내가 대학에서 정년도 되었고, 더구나 그동안 생명이나 녹색문명에 대해 생각해온 것도 있고 해서, 이것을 교육을 통해서 알릴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정년퇴직하기 한 학기 전에 서울대 나와서 녹색대학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 지금은 환경운동에도 열심이신데요.
현대문명의 제일 큰 맹점이 우리가 살고 있는 기반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각성을 하고, 힘이 있으면 있는 대로 그것을 살리는데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죠. 저는 현장에 뛰어들어 활동은 많이 못하지만 글로써 그런 내용을 알리고, 또 심정적인 지원을 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여건이 되는 대로 돕고 있습니다.
▶ 일산에 사시다가 아산으로 가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퇴직했기 때문에 직장 때문에 서울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어요. 어디나 가서 살 수 있었는데 또 너무 수도권에서 멀리가면 아무래도 연계도 있기 때문에 불편하고. 그래서 그렇게 멀지 않으면서 자연이 가까운 곳을 찾다보니까 가게 되었죠. 제게 있는 취미라고 한다면 자연을 접하는 것인데, 가까운 산이 주변에 있으면 그게 제일 좋고요. 마침 아산 쯤 가니까 1시간 정도 걸으면 딱 되는 350~360m 정도 되는 작은 산도 있고 해서, 그 정도에 가서 살면 여러 가지 불편 없겠다 싶어서 1년 전에 아산으로 옮겼습니다.
▶ 책이 굉장히 많으실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은 책을 그렇게 많이 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과거에 봤던 책이 떠오르면 다시 뒤져보기 때문에 버리기 어려워요. 그래서 그걸 간직하려고 하다보니 벽을 많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베란다 등 여러 군데 다 꽂아놓아도 역시 항상 책이 문제입니다.(웃음) 그래서 책을 많이 놓을 수 있는 넓은 집이 있었으면 해도, 사람은 둘인데 집만 덩그러니 넓히기도 뭐해서, 여기저기 겨우겨우 꽂아 놓고 살고 있습니다.
◇ 공부는 많은 시간을 매달려야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던져 놓아야 하는 것▶ 공부하는 장소로 책상머리, 산책길, 잠자리 세 군데를 꼽으셨던데요?
저는 10시간~15시간 이렇게 책상에 앉아있는 공부는 안합니다. 길어야 두세 시간 이렇게 책상에 앉아 있는데, 중요한 것은 자기 머릿속에 담아놓고 늘 생각을 정리하는 거죠. 물론 글을 쓸 때는 책상에서 쓰지만, 약간 피곤하면 밖으로 걸어 나갑니다. 산책하거나 산에 오르면서 주변의 것을 보는 것이죠. 그러면 생각했던 것이 잊혀지고 머리가 단순해집니다.
그렇게 걸어가다 아주 중요한 부분이 머릿속에 떠올라요. 그런 생각은 책상 앞에 앉아있을 때보다 더 중요한 부분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수첩을 가져가 적어놓거나, 대개는 돌아와 메모를 합니다. 그렇게 걷는 시간은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하기 어려운 것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 되죠.
마지막으로는 잠자리입니다. 저는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안 합니다. 자기 전에 잠깐 더듬어 생각을 하면 5분 내에 잠이 들어요. 그렇게 자다가 새벽에 적당히 깨면, 그냥 머리가 돌아가요. 그러면 피곤했을 때는 못했던 부분이 그때 머릿속에 돌아가는 생각으로 정리가 됩니다. 그래서 공부하다 잠자리에 드는 것이 공부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잠자면서 고민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잠깐 생각하다 졸리면 자고 자연스럽게 깨면 머리가 돌고 그런 것이죠.그런 식으로 공부라는 것이 어떤 특정한 자리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책상에서도 하고, 산에서도 하고, 잠자리에서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쓴 것이죠.
▶ 그동안 너무 재미없게 사신 것은 아니세요? 도박 같은 통속적인 유혹 받아본 적은 없으신가요?
제가 그런 것을 하고 싶은데 억제했다면 굉장히 힘든 삶이었겠죠. 저는 어려서부터 이런 것이 몸에 배서 자연스러웠어요. 그런 고민은 거의 없었다고 봅니다. 게임이나 오락, 심지어 TV도 특별한 것 외에는 거의 안 봐요. 저거 볼 시간에 다른 것을 하지.(웃음) 그런 것이 부담감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이게 더 하고 싶어서 했어요. 물론 밖에서 볼 때 정말 답답하고 융통성 없다고 하겠지만, 저는 그것이 몸에 배어 편안합니다. 이때까지 ‘심심하다’ 이런 적은 없었어요. 다만 여행은 좋아합니다.
▶ 요즘 0교시 수업, 우열반 수업 허용 등 문제가 많은데, 우리 교육을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이해가 안갑니다. 제가 공부한 것을 보면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시간적, 심정적인 여유를 많이 줘야 해요. 하지만 우리는 제도적으로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매달려야 공부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만약 제가 그랬다면 저는 숨이 막혀 공부 못했을 것 같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한 1년 정도 완전히 방치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오히려 그 기회에 많은 것을 배웠어요. 공부라는 것은 멋대로 던져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 같이 특히 ‘적성이 공부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시간을 던져주어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아인슈타인도 한 1~2년은 학교를 뛰어나와 혼자 공부했어요. 그런 깊이 있는 생각은 공부에서가 아니라 한 1~2년 공백을 두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이렇게 해야 길게는 훨씬 지적인 능력을 기른다고 봅니다.
요즘 0교시를 한다, 새벽 2시 일어난다, 그래야 결국 시험 성적 약간 올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을 길러주면 시험성적도 오히려 더 잘나온다는 것을 부모님이나 선생님, 사회전체가 잘 이해를 못하고 있어요.
▶ 외국어도 잘하신다면서요. 프랑스어, 독어, 영어 등 혼자 익히셨다고. 웬만한 사람들은 질리겠어요.(웃음)
그것도 필요하면 할 수 있습니다. 독어는 거의 대학교 때부터 배웠고, 불어는 한 시간도 강의 듣지 못했지만 박사학위 할 때 그 둘을 해서 박사학위를 받았고요. 일어와 중국어는 한때 일본이나 중국에서 공동연구해 볼 기회가 있어서, 공부해봤더니 재미가 있어요. 어학도 하면 꽤 재미있어요. 그것도 요령이 있습니다. 최근에 인류 지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한번 뽑아보자고 해서, 라틴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세의 서구학자들은 우리가 한문 쓰듯이 라틴어를 쓰거든요. 그래서 최근에 책을 마련해서 보고 있는데 아직 제대로는 아니고요.(웃음)
◇ 참된 공부는 즐겁게 하는 것▶ 교수님 IQ가 어떻게 되세요?(웃음)
저는 IQ테스트를 한 적이 없어요. 내가 자라온 과정에서는 해본 적이 없었죠.
▶ 교수님도 약한 부분이 있으신가요?
물리학이나 자연과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내게 제일 약한 것이 인문 쪽이에요. 사람이 살다보면 균형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쪽과 연결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 그 쪽의 대표적인 작품에 푹 빠져보고 싶어 일단 ‘괴테의 파우스트’를 보고 있습니다. 보면서 나 나름대로 현대의 감각으로 어떻게 파악을 할 것인가, 거기에 더 욕심을 부린다면 내가 파우스트를 쓴다면 나는 어떻게 쓸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 집에서는 이해를 해주십니까?
다행히도 집사람도 같이 공부하는 사람이에요. 같이 물리학을 공부했고, 대학에서 같이 교편도 잡았고요. 너무 비슷하면 재미가 덜하긴 합니다. 그거 말고는 문제가 없었어요. 서로의 학문을 이해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다면 어려울 수 있었을 텐데, 그런 문제는 없었죠.
▶ 내가 느낀 점이 이론으로 정리가 되면, 나만 알 것이 아니라 글로 남겨 다른 이들에게도 공감하게 해야 한다고 하시는데요.
그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내가 아무리 많이 알아봤자 내 생애가 끝나고 나면 다른 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내가 무엇을 알았거나 생각했다면, 되도록 잘 정리해서 던져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의미가 있는 것이죠.
▶ 교수님은 소위 인기가 없는 학문을 하셨잖아요.
대개 요즘은 깊이 있거나, 머리를 많이 쓰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요. 힘은 적게 들고 성과는 많은 이런 쪽으로 자꾸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공부라는 것은 그것에 무관하게 자기가 하고 싶고, 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야 합니다. 인기는 없을지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죠. 나는 또 그게 재미있으니 나라도 한다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습니다.
▶ 참된 공부의 길은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여쭈어 보고 싶어요.
뭐 특별한 길 있겠습니까? 그저 정말 우리 삶에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를 생각하고, 자기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알려고 하는 것. 다만 즐겁게 할 수 있는 품성을 가지고 가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는 월~토 오후 4시 5분에 방송된다.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 김효정)
[관련기사]
●
"무일푼에서 '저 700억 회사는 내꺼다' 상상했죠"●
"국회의원으로 할 일 바뀌었 뿐, 난 아직 노동자"●
"51년간 3개월 빼곤 라디오 방송 놓지 않았죠"(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www.nocut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아이디어의 보물섬!
최신 아이디어 모여라! www.idea-clu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