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 21일 임창렬 당시 경제부총리와 미셸 깡드쉬 IMF 총재는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정부가 IMF 구제 금융을 요청했음을 공식화한다. 한국전쟁 이후 최대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IMF 구제금융 이후 우리 사회는 미증유의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이로부터 10년…CBS와 데일리노컷뉴스는 외환위기 10년을 맞아 지나간 10년이 담긴 명암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 10년을 준비하자는 차원에서 13회에 걸쳐 특집기사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1부: 1997년 외환위기 왜 왔나?
1-1. 다시 써 본 외환위기
1-2. IMF 융단폭격, 그 상처는 깊었다
1-3. 쓰러진 대한민국, 다시 일어서다
2부: 2007년, 무엇이 달라졌나?
2-1. 뒤바뀐 산업 지형
2-2. 기사회생한 한국금융
2-3. 거품위에 쌓은 부동산 왕국
2-4. 잃어버린 일터. 다시 찾은 이성
2-5. 주식회사로 재탄생한 대한민국
3부: 2017년, GNP 4만$의 조건은?
3-1. 4만불시대 기업 아이콘 '존경받는 기업'
3-2. 중소기업…이젠 강소기업으로
3-2. 금융강국으로 가는 길
3-4. 제주도를 팔아라
3-5. 패자 부활을 꿈꾸며
▣ 세계 최고 기업에 도전장
지난 2000년 당시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의료전자사업부 책임연구원으로 있던 아이리텍(Iritech) 김대훈 사장은 홍체인식부문에서 유일하게 세계 특허를 보유한 미국 '이리디안'사의 대표 앞으로 한통의 편지를 보냈다. "이리디안의 홍체인식기술은 동공이 변화지 않는 것에 기반을 하는데 제 연구에 따르면 홍체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한 홍체인식기술이 보다 정확하지 않겠는가"라는 내용이었다.
얼마 뒤 이리디안 측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흥미롭지만 당신의 주장은 틀렸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연구에 확신을 가지고 있던 김사장은 오기가 났다. 내친김에 홍체인식기술 회사 '아이리텍'을 설립하고 '이리디안'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 제 2의 마이크로소프트를 꿈꾸며
미국 워싱턴에 본사를 설립한 김 사장은 2001년 6월 미국특허를 받았다. 한국의 LG와 미국의 IBM, 그리고 일본의 대기업들이 수년 동안 뚫지 못한 이리디안 독점특허의 철옹성을 깨뜨린 것이다.
올 3월에는 미 국립표준연구소(NIST)가 실시하는 국제표준심사 테스트에 통과했고 지난달에는 미국 최대의 군수업체인 '록히드마틴'과 홍체인식 사업에 대한 전략전 제휴를 맺었다.
김 사장은 "이번 계약으로 당장 2008년부터 1000~2000만불의 매출이 예상된다"며 "오는 2010년까지 1억 4천만불의 매출을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홍체인식기술 시장은 시장규모를 예상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현재는 이 기술을 채택한 제품들이 워낙 고가라 아직은 일부 기업이나 재력가들만이 사용하고 있지만 아이리텍은 휴대전화 같은 소형제품에도 홍체인식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저가의 홍체인식 카메라모듈을 개발하고 있다. 상용화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김 사장은 "카메라모듈이 개발되면 우리는 삼성이나 LG, 노키아 같은 업체에 기술사용료를 받고 기술을 이전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앞으로의 매출은 기술개발 이외에는 모든 것이 그대로 수익이 되는 셈이죠"라고 밝혔다.
▣ 찾아보면 널려있는 중소기업 지원책
가진 건 기술 밖에 없는 아이리텍이 미국에 본사까지 차릴 수 있었던 건 중소기업진흥공단의 '해외인큐베이터' 프로그램 덕분이다. 중진공의 해외인큐베이터 사업은 해외거점 도시에 한국 중소기업들이 상주할 수 있는 공간을 저가에 제공하고 각종 행정적 편의와 법률지원까지 제공한다.
김 사장은 "이리디안의 특허를 깨뜨리기 힘든 가장 큰 이유가 자신들의 독점특허를 침해한다 싶으면 바로 소송을 걸기 때문이고 이 과정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나가떨어지게 된다. 저희도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해외인큐베이터의 법률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에는 7000여가지의 중소기업지원정책이 있어 이를 적절히 활용만 하면 사업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중소기업연구원 이준호 연구위원은 "한국의 중소기업정책은 그 규모면에서는 OECD 국가 가운데서도 최고의 수준"이라며 "각 기관별로 따라 노는 지원책을 적절히 통합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한계기업의 퇴출을 막는 지원책은 과감히 없앤다면 세계 일류 중소기업 탄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역 수입되는 수출품
지난 10월 28일 오전, 홍콩국제조명전시회에 참가하기 위해 인천공항 출국장에 들어선 필룩스(Feelux) 노시청 회장. 노회장은 공항면세점에 들러 진열대를 비추고 있는 소형 형광등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인천공항 면세점 조명이 대부분이 저희 필룩스 제품이다. 공항 개항당시 각 면세점들이 고급화 전략을 내세우면서 수입 조명제품을 썼는데 알고 보니 저희가 유럽에 수출한 제품이었다."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필룩스는 전체 생산량의 55%를 해외에 수출하고 있는데 오슬람 등 세계적인 조명회사들이 필룩스의 특허제품들을 사겠다고 제의하고 있다.
▣ "문화를 팔아라"
우리나라 최초의 조명박물관을 운영하는 기업,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만 5곳의 공장을 둔 기업, 해외법인을 포함해 연 매출 1000억원을 바라보는 기업. 왠지 필룩스에게는 중소기업이라기보다 강소기업이라는 명칭이 더 잘 어울리는 이유들이다.
필룩스는 세계최초로 '감성조명'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필룩스가 지난 2004년 아직 생소한 '감성조명'을 알리기 위해 경기도 양주에 조명박물관을 지을 당시에만 해도 주주들의 반발이 거셌다. 연매출 500억원 수준의 중소기업이 굳이 100억원이나 들여 박물관을 지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
끈질긴 설득끝에 조명 박물관을 설립한 노회장은 "기술보다 중요한게 문화이다. 조명박물관 설립은 물론 저희가 소비자체험단을 모집해 감성조명 제품을 사용을 권하고 해외바이어들을 초청해 감성조명 아래서의 생활을 체험해보도록 하는 이유도 바로 감성조명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라며 필룩스의 감성조명 철학을 설명했다.
▣ 새로운 시도로 돌파구 찾아
필룩스는 국내 규제와 그릇된 기업문화로 손해를 입은 뒤 해외로 눈을 돌려 성공한 사례다. 지난 1984년 설립당시 필룩스의 생산제품은 조명이 아닌 TV 등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이었다. 하지만 전자부품 생산은 결국 대기업의 원가입하 압력이나 종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식한 필룩스 경영진은 과감하게 조명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특히 필룩스가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데는 한국의 왜곡된 한국의 기업문화도 큰 영향을 줬다. 노 회장은 "사업을 하면서 이게 술장사지 제조업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술접대 문화에다 구매담당자가 '자기 몫을 얼마 떼 주면 수 십억원치를 팔아주겠다'는 검은 제의를 해 올 때도 자주있죠."라며 한국에서 사업하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게다가 국내의 온갖 규제들은 필룩스가 해외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다. 실례로 이미 지난해 상용화를 마쳐 올 초부터 유럽에 판매된 'Slim Line' 제품들이 한국에서 안정인증을 받은데 1년이나 걸려 올 10월에나 공식적으로 판매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상무이사는 "신제품을 내놨는데 규격이 없다고 1년이나 안정인증을 안 내주는 거예요. 국내에서는 누가 안정인증도 없는 제품을 사겠습니까"라며 규제중심의 기업정책을 꼬집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독보적인 영역 구축에 성공한 중소기업들의 공통점은 독자적인 기술 보유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기업을 강소기업이라 부른다. 많은 기업들이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세월이라고 하지만 강소기업들에게는 다시 태어난 10년이다.
CBS특별취재팀 성기명/권민철/임진수/박지환 기자
(뉴스부활 20주년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www.nocut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