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모스=심현 기자]”빌드가 워낙 좋았고 100경기 넘게 준비해서 자신감이 있었다”

삼성전자 이성은이 CJ 마재윤의 천적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팀 승리에 공헌했다.

6일 오후 6시 30분 용산 e스포츠 상설경기장에서 열린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4주차 4경기에서 이성은은 2세트에서 마재윤을 물리쳤다.

이날 경기 전까지 상대전적에서 5승 2패로 앞서고 있던 이성은은 이날도 감각적인 3배럭 타이밍 러시를 멋지게 성공시키며 승리를 거두고 상대전적을 6승 2패로 벌리고 천적임을 재확인했다.

“지난주 목요일에 엔트리가 뜨자마자 확인해보고 바로 마재윤 선수와 하는 걸 알았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이것이 하늘의 뜻이구나’였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맵이 저그에게 좋아서 연습하기 정말 힘들었고, 어제 최종적으로 빌드를 결정했다”고 말한 이성은은 “빌드가 워낙 좋았고 100경기 넘게 준비해서 자신감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시즌 전 개인전 다승왕 목표에 대해서는 “마음 같아서는 모두 이기고 싶었는데 테테전을 연속으로 지면서 승수 쌓는데 실패했다. 어제 이영호 선수와 박성균 선수가 하루에 2승을 챙기는 것을 보면서 엄청난 자극을 받았다”고 말한 뒤 “목표에서는 조금 멀어졌지만 아직 기회는 남았다고 생각하고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이성은이 되고 싶다”며 다시 각오를 다졌다.

다음은 이성은과의 일문일답.

- 마재윤을 상대로 4연승을 기록했는데

▲ 지난주 목요일에 엔트리가 뜨자마자 확인해보고 바로 마재윤 선수와 하는 걸 알았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이것이 하늘의 뜻이구나’였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맵이 저그에게 좋아서 연습하기 정말 힘들었고, 어제 최종적으로 빌드를 결정했다.

- 3배럭 타이밍 러시가 절묘했는데

▲ 그 타이밍에 저그가 앞마당에 성큰 4기와 다수 저글링이 있거나 최소 성큰 5기가 준비되어야 막을 수 있다. 그래서 3배럭에서 바이오닉을 뽑고 스팀팩 업그레이드가 되는 순간 공격을 감행했다. 그런데 나도 가난하기 때문에 막히면 답이 없는 빌드다. 하지만 빌드가 워낙 좋았고 100경기 넘게 준비해서 자신감이 있었다. 이 빌드만 준비했기 때문에 팀원들이 연습 도와주면서도 막 화를 냈다(웃음).

- 오늘 세리머니의 의미는 무엇인지

▲ 일단 삼 세 번을 채워야 했기 때문에 세 번째로 준비한 세리머니다. 원래는 부스를 잡고 저질 댄스를 하는 것이었는데 만만치 않았다. 오늘은 세리머니에 중점을 뒀다기 보다 이기자는 마음이 더 컸다. 오늘 경기에서 마재윤 선수에게 패하면 감당할 수 없는 화살을 맞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늘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마재윤 선수와의 경기는 세리머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기에 승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익명의 인터넷 게시판의 글들에 무감각해진다고 하더라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는 계속 승리를 거둬서 그런 악성 글들을 사라지게 만들고 싶다.

- MSL에서 다시 마재윤과 맞붙게 되는데

▲ 항상 그렇지만 이기고 나면 상대에게 자신이 붙는다. 오늘도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토요일에도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를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마재윤 선수가 내 경기를 준비하시면서 게임 내외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실 거라고 생각한다. 마재윤 선수도 열심히 준비하셨을 텐데 오늘 경기는 이렇게 끝났지만, MSL에서는 오늘 같이 단시간에 끝나는 경기가 아니라 운영 싸움을 하는 긴 경기를 해보고 싶다.

- 마재윤에게 특별히 강한 이유를 꼽는다면

▲ 내가 테란이고 마재윤 선수는 저그이기 때문에 다전제건 단판이건 심리적인 주도권은 테란이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저그의 경우 처음 당하면 막을 수 없는 빌드다. 그런 면에서 내가 조금 유리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최근 선수들이 로봇처럼 경기를 하기 때문에 다소 변칙적인 경기를 했을 때 허를 찌를 수 있는 가능성이 컸던 것 같다.

- 시즌 전 개인전 다승왕을 목표로 삼았는데

▲ 마음 같아서는 모두 이기고 싶었는데 테테전을 연속으로 지면서 승수 쌓는데 실패했다. 어제 이영호 선수와 박성균 선수가 하루에 2승을 챙기는 것을 보면서 엄청난 자극을 받았다. 경기력도 경기력이지만 나보다 어린 선수이고 후배인데 정말 와 닿는 게 많았다. 목표에서는 조금 멀어졌지만 아직 기회는 남았다고 생각하고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이성은이 되고 싶다.

-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이번 경기를 준비하면서 매번 뚫려줬던 우리 팀의 (주)영달이, (장)지수, (유)준희, (이)정현이, (백)진용이에게 고맙다. 그리고 우리 팀의 준프로 feelway에게도 고맙다. 모든 분들에게 내 빌드에 뚫려주셔서 고맙다. 덕분에 빌드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갖게 해주셨다. 준희는 유일하게 내 공격을 막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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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용우 기자] "MSL 마재윤과의 경기는 필사적으로 준비하겠다"

이성은(삼성전자)이 6일 용산 I'park Mall e스포츠 상설경기장에서 열린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4주차 경기에서 2세트에 출전, '마에스트로' 마재윤(CJ)을 꺾고 팀이 3-1로 승리하는데 기여했다. 이성은은 시즌 3승을 거두는 동시에 마재윤에게 3연승을 기록, '천적'으로 자리잡았다.

안드로메다에서 열린 2세트에서 이성은은 초반 상대 빌드를 확인한 후 배럭 3개를 건설한 뒤 마린/메딕의 바이오닉 병력으로 공격을 시도했다. 이에 마재윤은 성큰을 4개까지 올리며 방어에 집중했지만 이성은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성은은 마재윤의 앞마당을 초토화시킨 뒤 본진까지 밀어붙여 상대에게 GG를 받아냈다.

다음은 이성은과의 일문일답

- 마재윤을 상대로 4연승을 올렸는데?

"일단 엔트리 확인한 후 마재윤 선수랑 하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감 있게 준비했다. 이번 경기를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빌드를 생각했다. 맵이 저그가 유리하다보니 어떤 빌드를 사용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제 빌드를 완성했다. 오늘 사용한 빌드 자체가 저그전에 좋아 자신감이 충만했다"

- 마재윤의 노스포닝 3해처리를 스캔으로 확인했는데?

"스캔으로 확인한 후 아차 싶었다. 전략을 수정할까 고민을 했는데 즉흥적으로 전략을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 승리후 세리머니의 의미는?

"일단 저질댄스의 삼세번을 채워야 했다. 사실은 부스와 함께 하고자 했는데 쉽지 않았다. 오늘은 세리머니에 중점보다는 이기는데 중점을 뒀다. 마재윤과의 경기에서는 세리머니보다 승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 이번주 토요일 아레나 MSL에서 마재윤과의 경기가 예정돼 있다

"내가 이긴 상대에게 자신감이 붙는 편이다. 오늘 이겼기에 토요일에도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재윤 선수가 오늘 경기를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나도 마재윤 선수와의 경기는 필사적으로 경기를 준비할 것이고 토요일 경기에는 멋진 경기를 했으면 좋겠다"

- 시즌 다승왕이 목표였는데 연패가 있다

"사실 마음 같았으면 다 이기고 싶은데 테란 종족전에서 패배했다. 어제 이영호(KTF) 선수와 박성균(위메이드) 선수의 경기를 지켜봤는데 자극을 많이 받았다. 목표인 다승왕을 차지하기에는 불리한 위치에 있지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노력하는 모습을 시즌이 끝날때까지 보여주고 싶다"

-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이번 경기를 준비하면서 우리 팀 주영달, 장지수, 유준희, 이정현, 백진용 그리고 feelway라는 아이디를 쓰는 아마추어가 도와줬다. 빌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해줘서 감사하다"

(김용우 기자 hilju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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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색 수집품을 감상하고 레저문화 즐겨… 조선 후기 생활사 연구하는 한문학이 ‘고루한’ 이미지 벗고 인문학 주도하네

조선의 일상이 황금어장이다!

온 사방이 공부밭이다! 퀴퀴한 고전을 뒤지는 분야로만 인식되던 한문학이 ‘웰빙’ ‘글로벌’ 학문의 첨병이자 국내 인문학 르네상스를 이끄는 끌차로 떠올랐다. 조선시대 엄청난 문헌자료에다 일상의 놀이와 여가, 동아시아란 관점을 들이대고 보니 곳곳이 ‘황금어장’이다. 어디를 파도 좋다. 사방팔방이 다 학문의 새로운 광맥이다. 공부할 거리들이 수두룩하다. 눈길 주는 곳마다 툴툴 털어내면 담론과 쟁점이 쏟아진다. 해외로 나가면, 우리와 비슷한 중국·일본, 전혀 다른 유럽과의 비교연구 과제가 기다린다. 21세기 한국학의 광맥을 캐는 그들 뒤에 환호하는 인문학 독자들과 출판사도 있다. 한문학자들은 지금 국내 학계에서 가장 바쁘고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고무된 분위기와 열정, 유행만이 전부일까.

▣ 교토(일본)=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18세기 한양 선비들이 ‘웰빙’을 따졌다고요? 웰빙이 뭐죠? 일본엔 없는 말인데….”

“한국에서는 수년 전부터 유행한 용어인데, 풍족한 생활을 바탕으로 어떻게 잘살까, 잘 놀까 따위를 따지는 걸 말하죠.”

“선비들이 정원 짓고 꽃 키우고 취미생활 하는 데 웰빙이 왜 필요한 거죠?”

“지금 한국 사람 마인드와 딱 맞아요. 18세기 서울의 유한층 선비들도 삶이 풍족해지니 여가와 문화를 흠뻑 즐길 궁리에 빠졌죠. 그때도 삶의 질이 문제였던 겁니다.”


책 수집하고 애완동물 키우던 ‘벽’들

지난 4월18일 낮 일본의 명문대학인 교토대 교정 북쪽의 인문과학연구소 회의실. 18~19세기 한국과 일본의 도시문화를 주제로 20여 명의 한·일 한문학자들 사이에 뜨거운 ‘웰빙’ 토론이 벌어졌다. 이 대학 인문과학연구소와 한국 연구자 모임 ‘문헌과해석’이 공동 주최한 학술세미나 자리였다. ‘18세기 조선의 웰빙 풍조와 원예 취미’를 발제한 정민 한양대 교수에게 일본 쪽 연구자들의 질문이 거푸 이어졌다. 18세기 서울의 유한층 선비와 중인들의 꽃 키우기, 정원 조성 등을 도시 소비문화를 즐기는 웰빙 현상이라고 단언했기 때문이다. 자연을 수양 차원이 아니라 눈으로 즐기는 대상으로 보게 됐고, 골동품·책 수집, 앵무새 따위의 애완동물 키우기 등이 ‘벽’(癖)이란 신종 마니아를 낳으면서 유행했다는 설명이 여러 문헌들을 제시하면서 이어졌다. 이미 500여 년 전부터 정원과 꽃꽂이 따위를 생활습관으로 받아들였던 일본인들은 18세기 들불처럼 일어난 조선의 웰빙 붐이 잘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참석한 한국 학자들은 하나같이 18세기 서울의 유한층 양반이나 중인(경화세족)들이 즐겼던 건축, 주거, 취미 등의 웰빙 소비문화에 초점을 맞춘 논문을 내놓았다. 이종묵 서울대 교수는 경화세족들이 동대문 밖, 아차산, 양주 등 서울 근교에 거대한 별장이나 집을 짓고 자명종 등의 이색 수집품을 감상하면서 레저문화를 즐겼다고 당대 인테리어 주거문화상을 소개했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18세기 요절 문인 유만주가 남긴 일기와 문집초본을 발굴했다. 당시 한양의 값비싼 명당 주택지에 대한 알뜰한 답사 품평기와 동대문 밖에 지으려 구상했던 대규모 정원 주택의 얼개, 숭고한 품격을 강조한 정원 설계의 미학적 기록 따위를 공개했다. 또 김문식 단국대 교수는 18세기 한성 여성들의 사치스런 덧머리(가채) 패션 열풍의 규제 여부를 놓고 영조·정조와 신하들이 조정에서 격론을 벌인 전말을 다루어 눈길을 끌었다.

마지막 발제를 한 노영구 국방대 부교수는 조선 후기 수도방위를 위해 군인들이 모여들면서 서울 인구가 급증했고, ‘왈짜’로 불린 유랑군인들의 건달 같은 삶이 서울의 도시 소비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일본 오사카도 호위 무사들이 몰려들면서 생활용품을 조달해주는 상인층이 같이 성장해 서울처럼 인구가 늘고, 난만한 도시 문화를 만들었다”는 의견들이 일본인 학자들로부터 나왔다.

소득 2만달러 시대에 어울리는 연구

발제 내용들은 엄청나게 널린 조선 후기 문집, 문헌류에서 새로 발굴한 생활사 기록들이 바탕이 됐다. 모두 기존 학계에서는 ‘연구 감이 안 된다’며 눈길조차 주지 않던 자질구레한 일상적 기록들이다. 18세기를 기점으로 경제력이 발달하면서 조선의 수도권에 명분 대신 일상의 삶 자체를 열심히 즐기는 도시인, 소비문화족의 콘셉트가 오늘날 레저문화처럼 자리잡았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논지였다. 이종묵 교수는 “소득 2만달러 시대의 학문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라고 했다. 반면 일본 연구자들은 정원과 원예에 대한 당대 서울 사람들의 열광에 놀라워하면서도 이런 도시문화가 왜 19세기에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됐는지 의문을 던졌다. “그 의문을 푸는 게 우리 모임의 과제”라는 김문식 단국대 교수의 대답을 끝으로 종일 진행된 세미나는 끝났다.

열기 넘쳤던 교토대 세미나는 웰빙을 발판 삼아 글로벌 담론까지 치고 나오는 인문학계의 한문학 열풍을 반영한다. 생활사와 일상 연구로 대중과 접점을 맞춘 최근 한문학의 웰빙 탐구는 유행 수준을 넘어섰다. 글로벌 명제를 앞세워 조선 후기 생활사 분야로의 거침없는 진군이 계속된다. 한문학은 지식인 사회는 물론 인문학 독자들 사이에서도 가장 유력한 담론의 샘이 되고 있다. 가장 고루한 학문 장르이자 국문학의 의붓자식으로 치부되던 한학 연구자들의 기세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이미 조선 후기 생활사나 문화사 측면에서 역사학계나 사회학계, 미술사학계를 추월하며 새 담론을 주도적으로 내놓고 있고, 학제 간 연구도 앞장서 이끄는 상황이다. 소장 한문학자들은 실증에만 치중하는 기존 역사학자들보다 훨씬 유연한 시각으로 문헌들을 재해석할 수 있는 까닭이다.

급기야 최근 한문학계는 학계에서 금기 중 금기로 여기던 ‘섹스 담론’에 대한 분석까지 시도하기 시작했다. 6월21일 동국대에서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열리는 한국 한문학회 하계학술대회는 일종의 학문적 모험으로 비친다. 조선 후기 사회에서 선비, 중인, 서민들 사이에 공공연히 유통되었던 춘화, 도색소설 등이 논의의 텍스트가 된다. 고전학계에서 성 문제를 가지고 본격적인 학문적 토론이 이뤄지는 건 전례가 없던 일인데, 남녀의 정사 장면이 실린 춘화나 <북상기> 같은 하드코어 도색소설의 장면 등이 텍스트로 거론된다는 사실도 큰 파격이다.

‘글로벌 한문학’ 시도도


밑그림도 간단치 않다. 저술을 통해 조선 후기의 저변 풍속사를 낱낱이 분석해온 강명관 부산대 교수가 단국대 윤채근 교수와 같이 ‘한문학과 성담론’을 발제하며, 학계에서 소문난 춘화 수집가인 진재교 성균관대 교수가 한·중·일 동아시아 춘화에 대한 연구 성과물들을 갈무리해 내놓을 계획이다. 김경미 이화여대 강사는 고전소설 속의 섹슈얼리티를 새롭게 탐구한다. 진재교 교수는 “당시 제도나 사회가 섹스를 이념적으로 용납 못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성담론은 일종의 금기를 깨뜨린다는 사회적 발언으로 새롭게 접근할 수 있다”며 “춘화의 유통은 지식 정보의 유통이란 측면에서도 학문적 접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기획을 주도한 정민 한양대 교수도 “중국·유럽에서는 성담론 학술연구서 사진집이 당연한 담론의 대상이고 관련 저술도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우리 쪽은 춘화나 남근석 사진의 자료집도 판금시키는 등 아예 논의의 조건 자체를 가로막고 있다”면서 “중량급 학자들 위주로 성 담론화를 위한 논의의 물꼬를 터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문학회 쪽은 올해 10월 예정된 추계학술대회의 주제도 ‘한문학과 바다’라는 색다른 주제를 잡아놓았다.

웰빙 한문학 트렌드의 열풍은 방송에도 밀어닥치고 있다. 한국방송 1라디오에서는 아침 뉴스 프로그램이 끝나는 평일 7시54분부터 약 3분간 시사 문제를 동양고전에 접목시켜 해석하는 <라디오 시사고전>이라는 간이 프로그램을 지난 4월21일 신설했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와 박재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번갈아가면서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심 교수는 21·22일치 방송분에서 <주역>의 문구나 19세기 지식인 최한기의 글을 인용하면서 낙하산 공직 임명, 조기교육 광풍 등의 세태를 비판하는 방송 칼럼을 내보내 호평을 받았다. 이 방송을 애청한다는 이종묵 교수는 “짧은 고전 문구를 통한 촌철살인의 교훈이 재미있었다”며 “한문학이 현대인의 삶과 일상에 가까이 다가가는 하나의 방증이 아니겠느냐”고 풀었다.

풍성한 자료로 탈근대화 담론 이끌어

한문학계 새 트렌드의 한 축이 웰빙이라면, 다른 한 축은 이른바 글로벌 담론으로 대표되는 다른 나라·지역과의 비교연구다. 동아시아, 그리고 서양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 문화사를 견주어 분석하는 것이 뼈대다. 거창하게 이름 붙인다면, ‘글로벌 한문학’이라고 할 만한 시도들도 최근 웰빙 트렌드 못지않게 부쩍 활발해지고 있다. 18세기 동서양 연구자 간 학제 모임인 18세기 학회는 출판사 김영사와 손잡고 국내 동서양 인문학자들의 ‘18세기 대담 시리즈’ 출간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지난 연말 정민 교수와 서울대 불문과 이영목 교수가 ‘18세기 조선과 프랑스의 백과전서파’를 주제로 학회의 주제 발표와 대담을 마치고 첫 번째 대담집 간행을 앞두고 있다. 정약용을 중심으로 한 실학담론과 ‘제자+스승’의 집체적인 지식 경영을 당대 디드로와 볼테르가 주도한 프랑스 지식인들의 담론 구조와 비교한 작업이다. 2차 작업으로는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가 이화여대 영문과 최주리 교수와 ‘18세기 도시문화, 한양과 런던’을 주제로 대담하는 자리를 추진 중이다. 서로 직접적 연관이 없으면서도 지식계의 동향이나 도시 집중, 과밀화 등에서 비슷한 행보를 보였던 한국과 유럽의 18세기 문화사적 양상들을 흥미있게 재검토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한문학이 대중과의 소통을 부르짖으며 생활사와 당대 대중의 영역으로 내려온 것은 새삼스런 트렌드는 아니다. 이미 90년대 중·후반부터 30~40대 소장연구자들과 각종 연구모임들이 활발한 저술과 간행 활동 등을 펼쳐왔다. 동아시아적 차원에서 서구와 한국 한문학의 넘나들기를 고민해온 연구집단 ‘수유+너머’, 벽이 없는 학제 간 연구자 모임으로 한문학 대중화의 진원지 구실을 해온 ‘문헌과해석’ 등이 그런 끌차 구실을 해온 연구 집단들이다. 그러나 최근 흐름은 대중적 접점을 넘어 인문학계, 특히 한국학계에서 본격적인 학문적 주도권을 잡고서, 담론의 주제를 설정하고 재생산을 주도해 이끄는 단계로까지 접어들었다. 이들이 발굴한 옛 일상의 단면들이 지금 삶과도 잘 맞물리기 때문이다.

출판 동네에도 이런 맥락에서 당대의 일상과 삶의 미세한 구석을 살펴보는 소장 한문학자들의 역저가 쏟아지고 있다. 실학자 서유구의 고전 <임원경제지> 가운데 선비와 서민들의 주거문화에 관한 기록을 추린 <산수간에 집을 짓고>(안대회 편역), <조선의 문화공간 1~4>(이종묵), <간찰>(심경호),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18세기 조선지식인의 발견>(이상 정민), <공안파와 조선 후기 한문학>, <조선의 뒷골목 풍경>(이상 강명관) 등의 저술이 그것이다. 특히 정 교수와 강명관 교수, 안대회 교수, 이종묵 교수 등은 이런 한문학 르네상스를 이끄는 주역으로 평가된다. 안 교수는 “전에는 한문학이 역사학계 쪽 경향을 뒤따라가는 경향이 있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풍성한 자료 덕분에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탈근대 담론까지 이끌어내고 있다”고 평한다. 조선 후기 풍속사에 대한 선구적 흐름을 이끈 강명관 부산대 교수의 경우 만연한 민족주의 근대 담론을 배제하고 중국의 지식담론과 양반 체제에 기댔던 18세기 도시 지식인 문화의 객관적 현실을 살펴야 한다는 주장으로 각광을 받았다. 앞으로도 해석의 기본기와 독특한 관점만 갖춘다면, 엄청난 분량의 한문학 자료들은 얼마든지 흥미롭게 재조명이 가능할 정도로 학문의 ‘블루오션’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8세기 학문의 주담론이 실학이었는데, 생활사·일상사 쪽에 대한 한문학계의 집중조명으로 실학이 오히려 퇴색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들도 퇴폐적 소비유흥으로 빠지지 않았나

물이 오를 대로 오른 한문학계의 혁신 바람이 마냥 온당한 것으로만 인정받고 있는 건 아니다. 이미 학계 일각에서는 한문학 르네상스가 관점의 진정성을 벗어나 흥미나 선정성 위주의 소재주의로 흘러갈 수 있다거나, 재조명된 콘텐츠가 문제 의식을 배제하려는 자본의 이윤 콘텐츠 전략에 이용당하는 것 아니냐는 경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문학 연구에서 핍진한 문제의식을 강조해온 강명관 부산대 교수의 지적은 적실한 일침처럼 비친다.

“일상과 생활을 중시하는 한문학의 새 흐름은 엄숙한 근대 민족 중심주의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그러나 고전 인문학을 이윤 콘텐츠화하려는 출판이나 언론 자본의 요구에 순응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근대와 민족에 짓눌렸던 인간의 역사를 제대로 찾아내겠다는 비판적 의식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곤란하다. 흔히 거론하는 18세기 소비문화의 주도자인 선비, 중인들도 결국 양반 체제와 중국 문화 흐름에만 기생하다가 19세기 퇴폐적인 소비유흥의 길로 빠지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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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근심은 쓰레기 같은 것 자기 삶에 충실하고 또 충실해야

 걱정거리가 없는 사람은 없다. 정말로 걱정할 일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물어 볼 필요가 있다. 그 걱정을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대목이 있는가를. 대개는 자기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협조를 끌어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인생사의 대부분은 사람들끼리의 모듬살이에서 생기는 일이지 단독적인 일이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협조를 끌어내야 한다면 걱정하는 대신 직접 행동으로 나서서 만나고, 대화하고, 편지를 쓰는 등의 활동을 펼쳐야 한다. 일의 성사 여부는 하늘에 맡기고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한다. 쓸모없는 근심 걱정은 백해무익하다. 근심 걱정은 쓰레기 같은 것이다. 쓰레기는 쓰레기통 속에 집어넣으면 된다. 마음에 품고 있으면 소중한 자기 자신을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것이다.

▶흥교 스님은?

1959년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60년 보살계·비구계를 받았다. 상원사·범어사·칠불사·만덕사·벽송사 등에서 참선수행. 범어사·대각사(서울)·성주사(창원) 주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역임. 현재 선찰대본산 범어사 전계대화상·학교법인 원효학원 이사장·재단법인 대각회 이사장. 국민훈장 동백장·조계종 종정상·총무원장상 수상. 부산 거제동 금용암 주석(住錫).

범어사 전계대화상 흥교(興敎·66) 스님은 "평소의 삶을 열심히, 충실히 살아라. 행복과 불행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춥고 배고픈 시절의 피나는 정진이 수행자로서 오늘을 살아가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스님은 20대에 출가한 이후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부산 범어사, 지리산 벽송사 등에서 10여년을 목숨 건 수련을 했다. 1960년대 초 상원사 시절의 이야기다.

상원사는 큰 절인 월정사에서 가려면 개울을 건너야 하는데, 당시는 지금의 큰 다리가 놓이기 전이었다. "외나무다리 3개를 건너야 했다"고 한다. "일년 내내 있어도 정진대중 말고는 사람구경하기 힘들었다. 춥기는 왜 그리 추운지. 또 배고픔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어." 날이 추울 때는 문고리를 잡으면 손에 찍찍 달라붙었다고. 상원사에서 평창군 진부면의 마을까지는 하룻길이었다. 30여 대중스님은 한 줄로 서서 탁발을 나가곤 했다.

스님은 종두(鐘頭:새벽 예불 때 종을 치는 소임)를 맡았다. 다른 수행 스님들은 오전 3시에 기상하나 스님은 그보다 30여 분 일찍 일어나야 했다. 그래야 예불 종을 칠 수 있으니까.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어도 구도열은 그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낼 정도로 치열했다"고 회상한다.

은사의 덕망과 해박한 학문을 나는 도저히 못따라 간다

스님은 은사 동산(東山) 스님이 전남 강진의 만덕사에 있을 때 모시고 살았다. 인근에 다산초당이 있어 다산 정약용 선생을 기리는 선비들이 동산 스님을 자주 찾았다. "어이, 동산 있는가." 선비들은 동산 스님은 만나러 와서는 이렇게 하댓말로 찾곤 했다. 그러면 동산 스님은 환히 웃으면서 "아, 어서들 오시게"로 응대했다. 첫인사에서부터 중이라고 해서 낮춰보는 선비들에게 기가 꺾이지 않는 당당한 태도였다.

동산 스님은 만덕루에 큰 멍석을 깔고 그 선비들과 대좌했다. 선비들의 질문은 깊고 날카로웠다. 그런데도 동산 스님은 척척 대답했다. 한시(漢詩)를 서로 주고 받음에도 막힘이 없었다.

동산 스님은 제자들에게 엄격하면서도 자상했다. 흥교 스님이 상원사에서 수행할 때 동산 스님은, 당시에는 귀한 털신과 함께 편지를 보냈다. "춥지 않느냐. 중은 청정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흥교 스님은 "은사의 덕망과 해박한 학문을 지금 나는 도저히 따를 수 없다"고 한다.

가나안농군학교를 졸업한 스님

스님은 가나안농군학교 출신이다. "1960년대 말 서울 대각사에 있는데 총무원에서 나를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정부에서 산지개발·토지활용 정책을 펴고 그에 합당한 인재를 기르는데, 우리 종단에서도 사람을 선출하여 교육받게 해야 한다. 스님들의 이력을 훑어보니 그에 걸맞는 스님이 흥교 스님이더라. 가나안농군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고 오라.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스님은 원예 중·고를 졸업했다. 당시 스님들 가운데서 이런 이력을 지닌 스님은 없었다. 학창시절 과수과와 원예과를 다닌 스님이기에 가장 적임자였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농군학교에 갔다. 수녀·신부·목사님들도 왔다. 스님은 방 배정을 받고 보니 차지철 씨와 한 방을 쓰게 됐다. 강의는 서울대 교수와 일본인 전문 학자가 맡았다. 식생활개선 과목은 김활란(이화여대 총장) 박사가 했다.

박정희 대통령도 이 학교를 방문해서는 학생들과 함께 줄을 서서 밥을 타 먹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의 싹도 여기서 키웠다고.

흥교 스님은 이 학교를 졸업할 때 '가나안 상'을 탔다. 수업 시간에 전문적 내용에 질문하고 답변하는 학생은 주로 스님이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스님은 이미 중·고교 때 과수나 원예학을 배우고 익혔으며 출가하기 전에 벌써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설계에서부터 조경에 이르기까지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데 참여한 경력이 있었다.

사찰 주변 산지의 수목갱신을 못한 게 못내 아쉽다

농군학교 졸업 후 스님은 거기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사찰주변 수목갱신을 계획한다. 그러나 그 계획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당시 종단 분위기는 "그런 일은 일반 일꾼이 할 일이지 출가한 스님이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참선수행하여 도를 깨닫는 수행을 본분사로 여겼으니 스님의 계획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스님은 지금도 그 때 계획의 좌절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그 때 했더라면 사찰주변 수목은 지금과는 다르게 계획적이고 효율성 높은 수종으로 바뀌었을 것이고, 숲도 더 울창해졌을 게 아니냐는 아쉬움이다.

범어사 전계대화상으로 추대되다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은 출가해 스님이 되려는 사람에게 계를 주어 정식 스님이 되게 하는 역할을 맡은 고승이다. 2002년 스님은 범어사 고승들의 추대로 전계대화상이 되었다.

전계대화상은 출가한 스님에게 계를 전수할 뿐 아니라 재가 신도들에게도 계를 전하여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인도한다.

현 조계종단은 출가에 뜻을 둔 사람에게 계를 전하여 정식 스님의 자격을 갖게 하는 수계의식은 단일계단에서, 전국 각 사찰의 예비 스님들을 모아 한 자리에서 합동으로 수계한다. 따라서 단위 계단(戒壇)인 범어사 금강계단에서는 재가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보살계 수계의식만 갖는다. 흥교 스님은 동산-광덕-덕명 스님으로 이어 온 계맥을 지니고 있다.

미안한 마음과 잘못했다는 자책감을 감출 수 없다

스님은 44세에 범어사 주지를 맡았다. "경륜이 부족한 사람이 주지라는 큰 소임으로 일하면서 어려움도 많았다. 주위 사람들을 걱정 끼치는 일도 적지 않았고 대중 스님을 잘 받들지 못해 후회스럽다. 화합을 이루지 못한 일도 많아 이게 아닌데' 하는 마음을 떨치지 못한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스님은 출가수행자가 소임을 맡으면 그 일을 이행하는 데 남모르는 자책과 회한이 많음을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회상하면서 소임자의 자세를 일깨운다.

이진두 객원기자 bibbab@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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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다 울컥한 것이 얼마만인가. 온세상이 봄꽃으로 가득할 무렵, 사춘기 시절 가슴 설렜던 첫사랑 계집애가 올해는 일찍 벚꽃이 피었다며 보러 오라고 걸어온 전화, 일찍 핀 벚꽃처럼 일찍 혼자된 그녀의 씩씩한 목소리, 하지만 끝내 둘 다 울먹이고 있을 때,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만인가 싶어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나눠줬더니 그들도 눈물난단다. 정일근의 시집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당그래). 1985년 새해 아침, 여러 신문의 신춘문예 발표에서 그는 특히 빛났었다. 그 시절 숱한 젊은이로 하여금 신춘문예의 꿈을 접게 했던 이 시.

‘아직은 미명이다. 강진의 하늘 강진의 벌판 새벽이 당도하길 기다리며 죽로차를 달이는 치운 계절, 학연아 남해바다를 건너 牛頭峰을 넘어오다 우우 소울음으로 몰아치는 하늬바람에 문풍지에 숨겨둔 내 귀하나 부질없이 부질없이 서울의 기별이 그립고, 흑산도로 끌려가신 약전 형님의 안부가 그립다.’(‘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중)

나의 20대는 이런 시 속에 숨어 있었던가. ‘학연아’ 하고 큰아들 이름을 부르는 정약용의 목소리에 코끝이 찡하더니 ‘약전 형님의 안부’에 이르자 눈물이 났다. 암울했던 시절, 이런 시인과 시들이 있어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나는, 언제 그들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을까. 바다가 보이는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던 시인은 지금은 울산 어디에서 은둔하듯 살고 있다고 한다. 집 앞 야트막한 동산 가득 피어나는 연보랏빛 오동꽃. 이제 봄도 다 간 이 새벽, 무등산 자락에서 들려오는 소쩍새 울음을 들으며 춘설차를 끓인다.

<김정례|전남대 일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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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전형화 기자] MBC 드라마 '이산'이 2주 만에 30%대 시청률에 재진입했다.

시청률조사회사 TNS미디어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5일 방영된 '이산'은 30.0%를 기록했다. '이산'은 지난달 21일 3주만에 30%대 시청률에 재진입한 뒤 연이어 30%대 시청률을 기록하다 28일 20%대로 주춤했다.

이날 '이산'에서는 야심가인 홍국영의 몰락 과정이 소개돼 시청자의 관심을 모았다.

한편 동시간대 방영된 SBS '사랑해'는 4.7%를, KBS 2TV '강적들'은 7.5%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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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으로 역사읽기]

▲ 효의왕후를 죽이려다가 결국 자기 무덤을 파고만 홍국영. 드라마 <이산>. ⓒ MBC

홍국영(한상진)이 끝내 사고를 치고 말았다. 하늘에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세도가 홍국영. 그는 중전 효의왕후(박은혜, 고종 때 황후로 추존)마저 떨어뜨리려다 자신이 쏜 새총에 자신이 맞고 말았다. 홍국영의 세도가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최측근 일등공신이 자신의 부인을 독살하려 했다는 이 기막힌 사실을, 정조 임금(이서진)은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설마 아닐 거라고 말했다. 뭔가 오해가 있을 거라고 말했다. 누군가 홍국영을 음해하려고 지어낸 말일 거라고 했다.

그러나 처소에서 홍국영과 단둘이 만나 그의 실토를 듣게 된 정조 임금. 소신이 한 짓이라는 홍국영의 말을 들은 정조 임금. "그럴 리 없어!"라며 정조는 방바닥에 주저앉았고, 홍국영 역시 흐느끼며 무릎을 꿇었다. 두 군신은 그렇게 울었고 밤은 깊어만 갔다. <이산> 제66회(5월 5일)에서 묘사된 장면들이다.

가장 신임했던 홍국영이 결국 자신을 배반했다는 엄청난 사실에 직면한 실제의 정조 임금 역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느꼈던 모양이다. <정조실록> 정조 4년(1780) 2월 26일자 기사에 수록된 교서에 따르면, 정조는 "홍국영을 고향으로 쫓아 보내라"(命洪國榮放還田里)고 명령하면서 자신의 복합적인 심경을 함께 표출했다.

"이 사람에게도 이런 말이 있고, 이 사람에게도 이런 일이 있는가? 말이 가공으로 꾸며진 게 아니라면, 일(사실, 인용자 주)이 정말로 그러하였다고 참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일이 정말로 그러하다고 믿을 수 없다면, 말이 정말로 가공으로 꾸며진 것인가?"(斯人而有斯言也斯人而有斯事乎言非架空搆虛則事果信有眞然乎事非信有眞然則言果架空搆虛乎)

홍국영이 저지른 죄악 앞에서 정조 임금은 '이 모든 말이 실제 사실과 일치하는 것인가?'라며 괴로운 심경을 드러냈다. 그만큼 홍국영에 대한 신임이 두터웠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정조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흐느끼는 홍국영. 드라마 <이산>. ⓒ MBC

한편,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하면, 이러한 언급은 문제의 본질을 여전히 아리송한 상태로 남겨둠으로써 정조 자신이 문제의 처결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해두려는 의도를 표출한 대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조가 문제를 아리송한 채로 남겨둠으로써 문제해결의 주도권을 쥐려 했다는 점은, 이후 정조가 "홍국영을 처벌하라!"는 조정의 여론을 일축하고 그를 지방으로 내쫓는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등 끝까지 자기 방식으로 홍국영 문제를 처리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조정 내 여론을 일축하고 최측근 신하를 끝까지 예우한 것은 홍국영과의 특수관계를 고려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측근 신하를 잔혹하게 다루므로 인해 발생할지 모를 정치적 부담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 최측근 신하를 매정하게 다룰 경우에 다른 측근들의 충성심에 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우려 역시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위와 같이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며 문제를 모호하게 '포장'한 정조 임금은 교서 중간 부분에서 홍국영이 아닌 자기 자신을 책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내 탓이요, 내 탓이요!'라며 자책한 셈이다.

"대개 옳고 그름은 버려두고라도, 내가 참으로 옳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말까지 생기고 이런 일까지 생긴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면 부끄럽고 괴로워서 차라리 죽고 싶다."(大槪是非姑舍是予誠不穀之故致有此言致有此事撫躬慙痛寧欲無吪)

위와 같이, 홍국영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을 돌린 정조는 군신(群臣)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홍국영을 지방으로 추방하는 선에서 문제를 마무리하고자 했다.

"다만 시종(始終)을 지키려면 이 사람이 자취를 감추고 근신함으로써 종래의 화기(和氣)를 잃지 않도록 할 수 있을 따름이다. 봉조하(奉朝賀) 홍국영을 고향(田里)으로 돌려보내어 내 군신(君臣)의 시종을 지키도록 하라."

여기서 봉조하란 종2품 이상의 퇴임 관료에게 부여되던 것으로서, 종신토록 신분 상당의 '연금'을 받는 자리였다. 홍국영의 경우에는 고향으로 쫓겨나기 얼마 전인 정조 3년(1779) 9월 28일에 봉조하의 신분을 부여받았다.

▲ 홍국영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는 정조 임금. 드라마 <이산>. ⓒ MBC

이처럼 홍국영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린 정조 임금은 홍국영의 신분을 봉조하로 유지시켜주면서 그를 고향으로 내쫓는 선에서 문제를 마무리했다. 이렇게 해야만 군신관계의 시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정조는 강조했다.

홍국영의 죽음을 다룬 정조 5년(1781) 4월 5일자 <정조실록>에 따르면, "경자년(1780년, 인용자 주) 봄부터 신하들이 일제히 홍국영의 죄가 하늘에 가득하다고 성토했지만, 주상께서 끝내 주벌을 가하지 않았다"라고 한다.

정조 5년 4월 5일자 <정조실록>의 이어지는 부분에서도 "돌이켜 생각하면 이는 나의 잘못이고, 지금 스스로 반성할 겨를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내가) 오히려 무슨 말을 하겠는가?"(反以思之此予之過到今自反之不暇尙何說哉)라고 정조가 말한 대목이 나온다.


이와 같이, 정조는 여러 차례에 걸쳐 홍국영의 잘못을 끝까지 자기의 잘못으로 돌리는 태도를 보였다. 홍국영을 처벌하라는 조정의 빗발치는 여론을 묵살하고 결국 정조는 홍국영을 횡성현으로 쫓아냈다가 다시 강릉현으로 내쫓는 선에서 문제를 마무리했다. 홍국영이 삼사의 탄핵으로 인해 형벌을 받았다고 하는 일설도 있지만, 실록에서는 정조가 끝까지 홍국영을 보호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실록 기록과 달리 홍국영이 형벌을 받았건 안 받았건 간에, 적어도 정조 임금이 홍국영 문제로 인해 일정 정도 심적 고통을 느낀 점만큼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실록 기록에 어느 정도의 과장이 있을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임금이 공식 문서상에서 신하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면서 괴로움을 표시한 점을 볼 때에 정조 임금이 홍국영을 내쫓을 때에 상당한 심적 고통을 느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산> 제66회에서, 야밤에 은밀히 의금부 옥사로 찾아가 홍국영을 면회한 정조 임금은 "난 자네가 무슨 말을 하든지 다 믿을 테니, 이제라도 자네가 한 짓이 아니라고 말해보게"라며 끝까지 홍국영에 대한 신뢰를 표시했다. 물론 과장된 장면이기는 하지만, 이는 두 군신의 관계가 그만큼 각별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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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깊다' 출간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역사도 깊고, 유서도, 뿌리도, 모든 것이 다 깊은 도시죠."

문화재 전문위원이기도 한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는 '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돌베개 펴냄)를 내놓고 책의 제목에 대한 설명이자 서울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최근 10여년간 서울시립대학교 부설 서울학연구소에서 상임연구위원을 지낸 저자가 2004-2007년 한국역사연구회 웹진에 서울의 역사에 대해 연재한 글을 엮은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했으나, 서울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를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서울학연구소에서의 학제간 연구에 힘입은 바가 크다.

"역사학이 사회, 정치, 경제 분야는 많이 다뤘지만 공간과학이나 토목학, 문화인류학 등 다른 분야의 학문과는 교류가 많지 않았죠. 이런 분야의 연구자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았던 것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그 동안 우리 역사가 다루지 않았던 내용들로 채우고자 했다"고 밝힌 대로, 다양한 학문과 만난 서울 역사 이야기는 서울을 다른 각도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서울'이라는 말의 기원과 본뜻을 묻는 데서 시작해, 서울에서 종교색을 거세하고자 했던 개국공신 정도전의 뜻에 따라 다른 중세의 도시들과는 다른 '특이한 도시'가 된 서울 이야기를 전한다.

또 다산 정약용이 부연설명 없이 "이(里)가 귀한 이름이고 동(洞)은 천한 이름인데 지금은 풍속이 어그러져 사람들이 서울 지명을 모두 동으로 쓴다"고 한 말을 궁리하다가, 계획도시 서울에서 반듯했던 큰길이 왜 구불구불한 작은 길로 이어졌는지 추적한다.

'똥물, 똥개', '땅거지', '무뢰배', '촌뜨기', '어섭쇼', '남주북병', '종로, 전차', '덕수궁 돌담길', '물장수', '땅거지', '도깨비 시장' 같은 말이 보여주는 서울의 풍속과 계층에 따른 생활방식, 그 안에 숨겨진 일화와 사연들이 흥미롭다.

392쪽. 1만8천원.

eoyy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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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고홍주 기자] 탤런트 유연지가 정조의 후궁으로 '간택'됐다.

유연지는 MBC 월화 특별기획 '이산'(극본 김이영, 연출 이병훈 김근홍)에 정조의 후궁 화빈 윤씨로 발탁돼 6일 방송되는 67회에 투입된다.

시트콤 '김치치즈 스마일'을 통해 톡톡 튀는 연기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유연지가 '이산'에서 맡은 화빈 윤씨는 송연(한지민)의 후궁 입궐에 못마땅한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는 혜경궁 홍씨(견미리)가 새로이 간택한 정조의 후궁이다.

실제 역사 속 화빈 윤씨는 판관 윤창렬의 딸로 원빈 홍씨에 이어 입궐한 사실상 두 번째 후궁에 해당한다. 원빈 홍씨가 입궐 1년만에 병사하자 후사를 얻기 위해 정조의 두 번째 후궁으로 간택된 인물이다.

하지만 드라마 '이산'에서는 정조와 의빈 성씨, 성송연의 사랑이 주가 된 관계로 화빈 윤씨의 등장에도 일부분 극적 설정이 가미될 것으로 보인다. 갈등이 정점에 이른 의빈 성씨와 혜경궁 홍씨의 관계와 맞물려 정조의 새로운 후궁으로 투입되는 것이다.

5일 방송 말미에 예고된 장면에서 유연지는 혜경궁 홍씨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후궁으로 등장해 의빈성씨 한지민과 갈등 구도를 이뤘다.

사실 두 사람의 극중 관계는 역사에 기록된 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설정이다. 정조는 원손을 보기 위해 화빈 윤씨의 처소를 드나들던 차 윤씨의 시중을 들던 나인에게 마음이 끌려 세 번째 후궁으로 들이게 되고, 바로 이 나인이 의빈 성씨였던 것이다. 이는 극적 재미를 위해 드라마 속 내용에 어느 정도 설정이 가미됐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며, 정조는 이들 세 명 외에 수빈 박씨까지 네 명의 후궁을 들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유연지가 투입되는 이날 방송에는 조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도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탤런트 송창의가 정약용 역할에 낙점돼 정조의 측근으로 '이산'의 막바지 전개를 이끌어 간다.

[드라마 '이산'에 투입되는 유연지. 사진=MBC제공]

(고홍주 기자 coo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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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 사극 '이산'(극본 김이영, 연출 이병훈 김근홍)이 2주 만에 시청률 30%대를 탈환했다.

시청률 조사기관 TNS미디어코리아에 따르면 5일 방송된 '이산'의 전국 시청률은 30.0%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달 29일 방송 시청률인 29.4%보다 0.6%가량 상승한 수치.

'이산'은 지난달 21일 시청률 30%대에 재진입한 뒤 지난주 방송분에서는 연이어 20%대로 떨어졌지만 홍국영(한상진)의 퇴장과 몰락 과정을 보여주면서 30%대 재 탈환에 성공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광기 어린 출세욕으로 궁지에 몰린 홍국영이 정순왕후(김여진)와 내통한 사실이 드러난 뒤 서서히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려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사도정치가로 최고의 권력을 누리던 홍국영이 끝없는 출세욕으로 몰락의 길을 걷다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게 되고 이로써 정조의 최측근인 홍국영과 정약용, 두 인물의 바통터치가 이뤄진다. 정약용의 등장으로 '이산'은 가파른 극 전개와 함께 역사적으로 한 획을 그은 정조의 개혁 정책도 함께 버무릴 예정이다.

정약용 역으로는 탤런트 송창의(29)가 전격 투입된다.

송창의는 5월 1일 경기 용인 드라마 '이산' 세트장에서 진행되는 촬영에 첫 투입, 정조 이서진과 호흡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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