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다 울컥한 것이 얼마만인가. 온세상이 봄꽃으로 가득할 무렵, 사춘기 시절 가슴 설렜던 첫사랑 계집애가 올해는 일찍 벚꽃이 피었다며 보러 오라고 걸어온 전화, 일찍 핀 벚꽃처럼 일찍 혼자된 그녀의 씩씩한 목소리, 하지만 끝내 둘 다 울먹이고 있을 때,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만인가 싶어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나눠줬더니 그들도 눈물난단다. 정일근의 시집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당그래). 1985년 새해 아침, 여러 신문의 신춘문예 발표에서 그는 특히 빛났었다. 그 시절 숱한 젊은이로 하여금 신춘문예의 꿈을 접게 했던 이 시.

‘아직은 미명이다. 강진의 하늘 강진의 벌판 새벽이 당도하길 기다리며 죽로차를 달이는 치운 계절, 학연아 남해바다를 건너 牛頭峰을 넘어오다 우우 소울음으로 몰아치는 하늬바람에 문풍지에 숨겨둔 내 귀하나 부질없이 부질없이 서울의 기별이 그립고, 흑산도로 끌려가신 약전 형님의 안부가 그립다.’(‘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중)

나의 20대는 이런 시 속에 숨어 있었던가. ‘학연아’ 하고 큰아들 이름을 부르는 정약용의 목소리에 코끝이 찡하더니 ‘약전 형님의 안부’에 이르자 눈물이 났다. 암울했던 시절, 이런 시인과 시들이 있어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나는, 언제 그들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을까. 바다가 보이는 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던 시인은 지금은 울산 어디에서 은둔하듯 살고 있다고 한다. 집 앞 야트막한 동산 가득 피어나는 연보랏빛 오동꽃. 이제 봄도 다 간 이 새벽, 무등산 자락에서 들려오는 소쩍새 울음을 들으며 춘설차를 끓인다.

<김정례|전남대 일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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