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은행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창구에서 직원과 크게 다투는 모습을 보았다. 유가에 연계된 파생상품 펀드에 가입한 듯한 투자자가 최근 유가가 급등하면서 거의 반 토막 정도로 손실을 보게 되면서 직원에게 언성을 높이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저금리 시대를 맞아 펀드상품이 그 대안으로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또한 은행 등에서도 펀드 판매수수료를 위해 투자자를 유치하고 있다.

그런데 은행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당연히 원금 보장이 되는 줄 아는 잘못된 인식과 높은 수익률에만 현혹되어 과거 묻지마 주식 투자열풍이 부는 것이 아닌지 씁쓸하다. 또한 원금 손실 등에 대한 충분히 사전 설명 없이 펀드 상품 가입을 위해 상담하러 왔다고 하면 수익률 높은 상품 한두 개를 5분 남짓 보여주며 설명서에 동그라미를 쳐주면서 금방 사인하라며 부추기는 모습 역시 펀드 판매 창구인 은행에서는 늘 보게 된다.

우리는 지금 펀드계좌수가 1800만개를 넘는 펀드 전성시대에 살고 있다. 올바른 투자문화를 위해서도 투자자 본인이 자세히 알아보고 펀드 가입을 하고 판매 측에서도 막무가내로 가입만 유도할 것이 아니라 고객이 인지할 수 있도록 설명에 내실을 기했으면 한다.

김종신·경남 산청군 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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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 가는 길로 ‘삼청동 입구-삼청터널 지나’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길은 출·퇴근 시에는 교통체증이 심하다. 러시아워에는 더 빨리, 성북동에 가는 다른 길이 있다. ‘청와대 담 옆길-북악스카이웨이 타고’ 또는 ‘가회동 입구-성균관대 뒷문 지나’ 등이 그것인데, 이 두 길은 경치도 좋고 출퇴근 시간에도 그다지 붐비지 않는다.

잘 알려진 ‘삼청동 입구…’ 길을 택하는 것은 업종 대표주들로 투자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인덱스펀드투자’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남들이 잘 안가는 ‘청와대 담 옆길…’이나 ‘가회동 입구…’길을 택하는 것은 ‘가치투자’ 기법일 것이다.

인덱스펀드투자에서는 투자방법이 쉬운 만큼 시장평균 정도의 수익률에 만족해야 한다. 가치투자에서는 가치 있지만 싼 주식의 쉽지 않은 선택과 장기투자에 필수적인 인내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시장평균을 웃도는 수익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지난 2년간 10여개의 사회책임투자펀드(SRI펀드)가 출시됐다. 이들 SRI펀드를 수익률에서 다른 펀드와 비교해 보는 언론 기사가 가끔 눈에 띈다. 할아버지 떡도 맛있어야 사먹는 것이 우리의 심정이다. SRI펀드가 표방하는 사회적 사명에는 찬성을 하면서도 수익률은 수익률대로 따져보고 싶은 것이다.

SRI펀드에 편입된 주식 종목들을 언뜻 살펴보면 대체로 삼성전자, 포스코, SK텔레콤, 국민은행 등 잘 알려진 업종 대표주들이 먼저 눈에 띈다. 이들 회사들이 정말 사회책임을 잘하는지는 별도로 따져보더라도, 이렇게 구성된 SRI펀드는 결국 유사 인덱스펀드가 돼 시장 평균을 넘는 수익률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가치투자자의 입장에서는 남들이 다들 쫓아다니는 여학생을 나도 같이 쫓아가 봤자 무슨 좋은 일이 생기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에서 기업경영이 해야 할 책무, 더 나아가 이러한 책무의 인식을 통해 장기적인 수익성장의 기반과 동력을 만들겠다는 사업전략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SRI펀드의 사회책임투자에서도 업종 대표주만이 아닌 이들 각 분야에서 숨겨진 투자기회를 찾아 투자한 뒤, 그 기회가 수익으로 실현될 때까지 기다리는 장기적인 가치투자적 접근법을 활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환경(E)분야의 경우, 대체에너지나 탄소배출권 시장에서 어느 기업이 유리한 사업기회를 가질 것인지 연구, 분석해볼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일부에서 이미 바이오에탄올연료, 태양에너지, 태양전지 등의 대체에너지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지배구조(G)분야에서는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경영관여(Engagement) 외에도, 기업분할·인수합병·지주회사 설립에 따르는 투자기회를 연구해볼 수 있다. 경영을 장악한 지배주주에게 부당한 내부거래 등의 시정을 요청하거나, 과도한 현금성 자산의 보유로 인한 자기자본수익률의 하락을 막기 위해 자사주매입을 요청하는 등의 경영 관여는 주주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가치투자 기회를 제공한다.

한편 사회(S)분야에서는 노사나 협력업체의 관계에서 어느 기업이 혁신적 진전을 이룰 것인지 살펴볼 수 있다. 노사관계의 진전은 수익의 개선으로, 협력업체 관계 개선은 공급망 관리를 통한 시장지배력(Franchise Value)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면, 여기에서도 가치투자의 기회를 찾아볼 수 있다.

SRI펀드들이 E·S·G분야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좋은 투자의 기회를 모색할 때 투자수익률도 좋아지고,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촉진하는 사회적 사명도 더 잘 실현된다. 요컨대 님도 보고 뽕도 더 많이 따자는 것이다.

[이철영 아크투자자문 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427호(07.10.24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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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0월 19일 미국 증시 사상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다. 다우지수가 하루에 22.6%(508포인트)나 폭락한 미증유의 사태였다. 주가 하락률이 대공황 때인 1929년 10월 28일의 12.8%를 훨씬 웃돌았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 취임한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은 앨런 그린스펀은 당시 댈러스 출장 중이었다. 주가 대폭락 소식을 접한 그는 출장지에서 증권거래소나 선물시장 간부들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긴급 사태 수습에 나섰다. 먼저 주식거래를 정지하려는 증권거래소에 "어리석은 일"이라며 쐐기를 박는 일부터 했다. 주식거래를 정지하면 투자자들의 불안이 더욱 커져 증시 패닉 사태가 장기화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들에게도 불안감을 떨쳐 버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득인지를 생각하며 차분히 대응해 줄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그는 적극적인 통화정책도 펼쳤다. 주가폭락 사태 후 사흘 만인 10월 22일 임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열어 정책금리를 18.75bp(1bp는 0.01%) 인하하고 이듬해 2월 11일까지 추가로 62.5bp 인하(사태 발생 후 4개월간 5차례에 걸쳐 금리를 7.31%에서 6.5%로 인하)했다. 아울러 시장에 유동성을 대폭 풀어 증시 회생을 도모했다.

블랙먼데이 발생 원인은 미국 증시 과열(87년 8월까지 5년간 주가가 250% 상승)과 인플레이션 염려, 경상ㆍ재정 수지의 쌍둥이 적자 확대, 대이란 보복조치 등 국제정세 불안과 정책공조를 둘러싼 국가간 불협화음 등이었다. 특히 87년 2월 루브르합의에서 과도한 달러화 약세를 시정하기 위해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서독과 일본은 금리를 낮은 수준에서 유지하도록 했으나 서독이 이 약속을 깨고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10월 초 금리를 전격 인상해 공조 체제가 깨지면서 달러화 가치와 주가가 폭락하게 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주가 폭락 주범이 컴퓨터를 사용한 프로그램 매매였다는 점이다. 주가가 급락할 때 손실 확대를 막기 위해 자동으로 매도 주문이 쏟아지고 이 때문에 주가 하락이 증폭됐던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 주가가 일정 범위 이상으로 급락할 때 거래를 일시 정지하는 '서킷 브레이커'가 도입된 것은 바로 블랙먼데이가 계기가 됐다.

다우지수는 사태발생 다음날부터 1개월 반 동안 등락을 거듭하다 12월 초 다시 블랙먼데이 당일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고용 호조 등으로 주가는 상승하기 시작해 약 1년3개월 만에 블랙먼데이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블랙먼데이가 발생한 지 꼭 20년이 된 지난 19일 뉴욕증시는 또다시 폭락했다. 하루에 다우지수가 2.64% 급락했고, 이 여파는 바로 한국 등 아시아 증시를 강타했다.

미국발 증시 폭락은 세계경제 불안 요인이 심상치 않음을 반영한 것이다. 서브프라임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FRB가 지난달 18일 정책금리를 전격 인하하고 앞으로도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이자 미국에서 대거 투자자금이 이탈하고 이 때문에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이는 또 유가 등 국제 원자재 값을 치솟게 했다. FRB는 추가 금리 인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달러화 가치 하락과 유가 상승 등 때문에 고민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다.

세계 증시 불안의 또 다른 잠재적 진원지는 중국이다. 중국은 통화량 팽창으로 물가가 급등해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돼 있다. 이 때문에 시중자금이 예금보다는 증시 쪽으로 집중되고 거품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중국 당국은 추가로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17차 전국대표대회를 끝낸 중국은 조만간 올 들어 여섯 번째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중국은 물론 과잉 유동성으로 부풀려진 세계 증시를 또 한바탕 뒤흔드는 뇌관이 될 수 있다.

다행스럽게 최근 미국 경상수지 적자는 달러화 약세에 힘입어 축소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달러화 가치가 안정을 되찾고 유가 급등 등 세계경제 불안 요인도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경제 안정은 최근 원유시장으로 쏠린 헤지펀드 등 국제 투기자금들이 다른 자산으로 재배분돼 유가 거품이 빠질 때 가속될 것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중국의 위안화 환율제도 개혁이다. 중국이 지금과 같이 환율제도를 사실상 고정환율제로 운용하면 시장 개입과 통화량 팽창은 지속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백약을 써도 경제불안은 가시지 않을 것이다.

[온기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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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4년 전 영국에서는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실험이 시도됐다.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대처 총리가 집권하면서 보수당 정부는 기존 노동당 정부가 수행한 사회복지 확대 정책을 과감히 수정했다. 그러면서 정부 재정 지출을 줄이되 사회적 효용성을 증대시키려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시도했다. 당시만 해도 영국에서는 정부 예산을 통한 일방적인 예술단체·예술가 지원 정책만 고집하던 분위기였다. 이에 따라 예술 지원정책은 ‘예술에 대한 안정적 지원 유지’라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지원방식의 비효율성, 예술계의 자생력 저하 및 기생력 증대라는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이런 가운데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대안으로 대처 정부가 제시한 것이 ‘뉴 파트너스(New Partners)’ 제도였다. 예술계에 대한 기업의 지원 금액에 비례해 정부가 매칭펀드를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도 도입 초기만 해도 과연 이 제도로 인해 기업의 예술계 지원 확대가 가능할지, 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이 제도는 해를 거듭할수록 매우 효율적인 문화예술 지원정책으로 평가받았다. 1984년 이후 22년간 매년 평균 정부 지원금이 50억원인 반면 기업 출연금 규모는 100억원을 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올 3월 영국을 방문했을 때 정부 위탁을 받아 이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영국메세나협회(Art & Business Counsil)의 콜린 트위디 사무총장은 물론 영국 정부 관계자들도 “이 사업은 영국에서 ‘기업과 예술의 만남’의 대표적 성공 사례”라고 자랑한 바 있다.

  최근 불거진 신정아·변양균씨 파문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제 막 활성화되기 시작한 기업들의 메세나 운동과 문화 마케팅이 축소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과 정부의 제도 운영 방법이다. 문화예술계에 대한 기업의 관심과 투자, 지원은 이제 시대적 흐름이다.

 기업들은 다가오는 CSR라운드(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국제 회의)에 적극 대응하는 한편 지속가능한 경영 차원에서도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영국의 뉴 파트너스 제도는 한국에도 도입돼 올해부터 ‘중소기업 예술지원 매칭펀드’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총 27개 중소기업을 예술단체와 결연시키면서 기업의 예술계 지원 활성화를 위한 획기적인 이정표로 평가되고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서 정부는 민간 재원 유입을 통해 자체 지출을 줄이고 예술지원 확대를 꾀하는 효과를 얻는다. 중소기업은 국민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예술계는 자체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예술활동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결국 이 제도는 정부·기업·예술계·국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선 우선 정부의 과감한 재정 지원이 있어야 한다. 올해 6억원에 불과한 정부의 매칭펀드 규모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기업들의 관심 확대에 힘입어 예술계 지원 방법·과정도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화돼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최근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생긴 무거운 숙제를 보다 기쁜 마음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병권 한국메세나협의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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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쟝 샤를 델크로아 기은SG자산운용 대표이사 글로벌 시장은 4~5년 전만 해도 미국을 주축으로 성장을 지속했지만, 현재 그 영향을 어느 정도 벗어난 유럽과 아시아 시장이 또 다른 성장엔진으로 성장하고 있다. 

물론 미국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과거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세계가 감기에 걸린다'는 속설이 최근의 성장세에서 점차 퇴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많은 인구, 값 싼 노동력, 그리고 천혜의 자원으로 거대한 성장 잠재력을 가진 이머징 마켓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금의 집중으로 세계는 역사적으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머징 마켓에 대한 투자의 증가는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기회와 위험의 요소를 동시에 가지게 된다. 

80년대와 90년대의 통상 금리가 10%를 상회하면서 위험자산에 투자를 하지 않아도 안전자산으로 어느 정도 인플레이션을 상회하는 수익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평균 이자율이 4~5%로 인플레이션 고려시 겨우 현상유지를 하거나 실질가치가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이다. 

이머징 마켓을 포함해 모든 국가가 발전하면서 경제 규모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각 국의 통화량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또한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인플레이션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유동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도 투자 기회의 증가와 글로벌 시장의 활황으로 투자를 늘겨가고 있지만, 그에 따라 투자대상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부족한 채 '묻지마 투자'까지 성행하고 있는 것은 걱정스러운 현상이라 볼 수 있다.

미래를 대비해 현재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것은 마이너스 수익률이 무서워 소극적인 투자를 하는 것 보다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투자는 어느 특정 시점의 시장동향에 따라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현재는 주식시장이 활황이지만 어느 순간 시장조정 시 동반 하락에 따른 공황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잘 알고 있는 두 가지 투자원칙을 다시 한번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첫번째는 포트폴리오 즉 위험분산투자이다. 어느 경우에도 투자는 한 곳에만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그 곳이 조정을 받거나 하락할 때 그 부분을 상쇄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적은 투자처에도 위험분산 차원의 투자를 해 놓아야 한다. 

투자는 먼저 위험을 최대한 낮춘 상태에서 최고의 수익률을 낼 수 있는 자산배분을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장기투자이다. 단기 수익을 보고 펀드를 교체하면 경험적으로 볼 때 수익이 저조하거나 손실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을 생산하는 기업을 고려해 보자. 아이스크림이 비수기인 겨울에 관련 회사 주식을 매입한 후에 성수기인 여름에 팔면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비수기인 겨울과 봄에 가격이 하락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시장에서 다른 종목의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

장기투자는 이것을 어느 정도 무시하고 투자를 유지해야 수익을 낼 수 있다. 상승 종목으로 교체하면 하락기 직전에 진입하는 경우가 많아서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펀드투자 대상과 성장 잠재력에 대해 잘 알고 투자하면 단기적으로 하락해도 장기투자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막연히 현재의 실현수익률만 보고 투자하면 가격 하락 시 손실에 따른 불안한 투자심리로 투자를 회수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따라서 장기투자와 분산투자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 할 수 있다. 

투자는 도박이 아니라 장기 투자를 통해서 자산을 증식해 나가는 과정이다. 단기적으로 특정 펀드에 자금을 집중투자해 고수익을 바라는 것은 투기이며 도박행위와 동일하다. 

'기대수익률에 대한 확률이 50%이면 투기지만 51%의 확률은 투자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최대한 정보를 모아서 고수익을 낼 수 있는 확률이나 가능성이 큰 자산에 장기 분산투자하는 것이다.

이 원칙을 지킬 때 비로소 투자의 안전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현재 자신의 투자 방법은 어떠한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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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2005년 7월 출범한 한국투자공사(KIC)는 1년 반 동안 71억원 적자를 내고도 임직원들에게 7억원의 성과급을 줬다. 3년째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투자공사가 성과급부터 챙기는 것을 국민들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투자공사의 임무는 위탁받은 외환보유액과 공공기금을 잘 운용해서 국부를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투자공사는 200억달러(18조원)의 위탁 자산을 갖고 아직 이렇다할 투자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홍석주 사장은 작년 11월 투자를 시작해 자금을 위탁한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에 이미 수천억 원을 벌어줬으며 투자금액 대비 운용수익률이 연 7%대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동안 전 세계 자산가격이 큰 폭으로 뛴 사실을 감안하면 이 정도는 결코 좋은 실적이라고 볼 수 없다.

물론 아직 투자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기에는 이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소극적인 운용을 계속한다면 앞으로도 높은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170억달러를 위탁한 한은과의 협약에 따라 수익률 1%대인 일본 채권에 일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경직적인 자산운용으로는 결코 성과를 높일 수 없다.

투자공사는 출범 때부터 계속된 재경부와 한은 간 갈등으로 아직도 정체성조차 분명히 찾지 못하고 있다. 한은은 여전히 투자공사가 외환보유액 운용의 여러 창구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공사 측은 2010년까지 자산 규모를 500억달러로 늘리려 하지만 외환보유액을 위탁하는 데 극히 부정적인 한은 태도로 볼 때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은 국부펀드의 적극적인 행보에 공포를 느끼며 규제 필요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3300억달러 규모 싱가포르투자공사(GIC)가 최고지도자 리콴유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며 전략적 투자를 통해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것에 비하면 한국투자공사는 자산 규모나 운용의 자율성 측면에서 아직 어린아이나 다름없다. 뒤늦게 나온 2000억달러 규모 중국 국부펀드(CIC)가 세계 자본시장의 거인으로 등장한 것과 비교하더라도 한국투자공사는 초라한 모습이다.

투자공사는 지배구조와 자산 운용을 규정하는 관련법의 전면 개편을 통해 환골탈태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외환보유액 운용을 차라리 민간 운용사에 맡기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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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달러가 폭락하더라도 별 상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세계 경제에서 미국 비중이 줄어들고 있어 당연한 결과라고 봅니다. 유로화도 있고 앞으로 아시아 통화 통합 논의도 활발해질 겁니다."

위안화 가치는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합니까? "위안화는 매년 3~4% 정도 절상될 것으로 봅니다."

지난주 매일경제 세계지식포럼 연사로 나선 주민 중국은행 부총재는 민감한 이슈에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주민 부총재는 다른 세션에서 한국의 청년실업에 대한 질문에 "중국으로 와라. 일자리가 널려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강연이 끝날 때마다 대학생들이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는 '스타'였다. 다보스포럼이나 여러 국제콘퍼런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사는 중국 연사들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주 홍콩에서 위안화의 국제화 전략을 논의하는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 한국 홍콩 금융전문가들이 참석했고, 경쟁 통화로 꼽히는 엔화를 겨냥한 듯 일본은 제외됐다고 한다. 중국은 중장기적으로 위안화를 아시아 통화가 아니라 세계의 기축통화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지난 8월 기준 1조3000억달러를 넘어선 외환보유액은 중국의 강력한 무기다. 영토인 홍콩의 보유액도 1300억달러다. 외환보유액 2000억달러를 넘겨받아 신설한 중국투자공사(CIC)는 미국달러 국채나 주식 등에 투자할 예정이다. 한국은 200억달러로 한국투자공사를 만들었지만 재경부와 한국은행 등쌀에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중국투자공사는 위안화 절상 압력에 대항하고 미국과 서방 선진국을 견제하는 교두보 구실을 하게 된다. 중국이 해외자산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가져가느냐, 어느 쪽으로 조정하느냐는 국제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미국 유럽 국가들이 국부펀드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 분명하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 역할로 모은 차이나머니를 활용해 무서운 속도로 금융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중국국제신탁공사(CITIC) 산하 증권회사는 미국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와 10억달러 규모 상호지분투자를 결정했다. 제임스 케인 베어스턴스 최고경영자는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장을 향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다"고 말했다고 한다. 겉으로는 중국과 아시아에서 협력하기로 한 것이라지만 속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곤경에 처한 미국 금융회사가 차이나머니에 기대어 회생하려는 시도다. 중국에서 일종의 구제금융을 받는 셈이다.

지난 7월에는 중국개발은행이 영국 바클레이스은행 지분 6.7%를 매입해 주목받았다. 한국 금융회사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중국은 눈깜짝할 새 국제금융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등장하고 있다. 베어스턴스는 중국과 계약을 맺기 전에 국내 주요 은행에도 제휴를 요청했다고 한다.

중국 금융회사들이 한국 시장에 들어올 날도 머지않았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이미 쌍용자동차와 비오이하이디스 등을 인수했고, 조선 반도체 등 한국이 기술 우위에 있는 업종을 노리고 있다. 한국의 은행 보험 증권 자산운용 등 여러 금융 분야가 1~2년 내에 중국 공세를 맞게 될 것 같다. 거품이 끼었다고 하지만 은행 시가총액 세계 1위인 중국공상은행 등이 한국 시장을 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 가입하는 국내 펀드의 절반 이상이 해외펀드고 그 절반은 중국에 투자하는 돈이다. 국내 증권시장은 중국 증시와 경쟁하고 있다.

중국 금융회사들은 국영기업이 대부분이고 회계의 투명성과 부실자산 문제 등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돈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중국의 기세는 세계 경제구도를 바꿔 놓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금융회사 입장에서 보면 세계경제의 중심국이 돼 버린 중국 금융시장은 피해가기 어렵다.

한국이 중국 시장에서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식포럼 연사로 나선 크리스 라이언 ING 아ㆍ태 대표는 "일본과 중국이 껄끄러운 관계인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한국이 중국과 협력할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금융산업이 성장해야 한국이 3만달러 선진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제 막 해외진출 계기를 잡으려는 한국 금융회사들은 곳곳에서 중국이라는 벽을 마주하게 됐다. 주요 금융회사 CEO들은 안방싸움에서 벗어나 아시아권의 주요 플레이어를 향해 뛰었으면 한다. 정책당국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조경엽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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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비비케이(BBK) 주가조작 사건과 무관하다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주장을 믿기 어렵게 하는 증거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의혹 제기와 반박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주가조작에 동원된 투자운용사 비비케이와 이 회사가 운용한 역외 펀드인 마프(MAF)의 실제 주인이 이 후보냐 아니냐는 점이다.

한나라당 태도는 조금씩 달라졌다. 이번 주초 ‘이 후보가 대표였던 엘케이이(LKe)뱅크가 2001년 2월 마프펀드에 150억원을 투자하는 등 실질적 지배권을 행사했다’는 통합신당 쪽 주장이 나왔을 때, 한나라당 대변인은 이를 “허위 주장”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다 어제 한나라당 대변인은 ‘이 후보가 엘케이이뱅크의 자본금을 마프펀드에 가입시키는 데는 동의했지만, 펀드 운용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한발 물러섰다.

한나라당은 지금도 비비케이와 이 후보는 무관하며, 마프펀드 운용은 김경준씨가 도맡아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000년 10월 이뱅크코리아(엘케이이뱅크)의 소책자를 보면, 이뱅크코리아 아래 비비케이와 이뱅크증권중개 등이 모두 들어 있고, 엘케이이뱅크의 주요 상품으로 마프펀드가 소개돼 있다. 이 후보는 마프펀드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올라 있다. 또, 비비케이와 엘케이이뱅크는 이 후보의 결정권 행사를 보장하는 내용을 정관에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데다, 전산시스템까지 통합하도록 돼 있었다. 이쯤 되면, 비비케이와 마프펀드가 엘케이이뱅크 대표였던 이 후보 소유였거나 최소한 강한 영향력 아래 있었다고 보는 게 상식에 맞다. 이 후보 쪽이 거짓 해명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제는 이 후보가 김씨의 주가조작을 알고 있었거나 실제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 후보가 2001년 4월 김씨와 관계를 끊었으며, 주가조작은 그 뒤의 일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씨의 주가 조작은 이 후보와 동업관계를 유지하던 2000년 12월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이 후보는 이들 의혹에 분명한 해명을 내놓아야 한다. 관련 증거를 모두 ‘조작’으로 몰아붙이거나 ‘제2의 김대업 사건’이라는 식의 음모론으로 사건을 뭉갤 단계는 이미 지났다. 내용을 정확히 모르는 대변인을 통해 쪽지 해명을 내놓기보다, 이 후보 자신이 직접 해명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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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질문부터 하나 던져보자. 올해 최고의 수출기업은? 삼성전자 혹은 현대차·포스코라는 대답이 많겠지만, 틀렸다. 정답은 ‘미래에셋 자산운용’이다. 미래에셋증권 계열의 이 금융회사가 대한민국 어느 대기업보다 많은 외화를 벌어들였다.

농담이 아니다. 직원 수 196명의 이 회사는 올해 들어 해외펀드 투자로 7조5000억원(평가액)을 벌어 투자자들에게 안겨 주었다. 국내 투자자가 맡긴 돈, 즉 ‘메이드 인 코리아’의 자본을 수출한 것이다. 반면 삼성전자가 올 1~9월 수출로 번 영업이익(추정치)은 3조3000억원쯤 되니, 미래에셋의 압승이다.

금융은 왜 수출로 돈 벌 수 없나.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은 지난 10년간 이 화두(話頭)와 격투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IMF 환란(換亂) 시절, 그는 몹시 배가 아팠다. 론스타 같은 외국 펀드들이 휘젓고 다니며 알짜배기 건물·기업을 헐값으로 사 가는데,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고 한다.

10년 뒤, 이젠 박 회장 쪽이 론스타 비슷한 위치가 됐다. 미래에셋은 중국·인도·동남아 시장에서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현지인 쪽에서 보면 영락없는 ‘한국판(版) 론스타’다. 만날 안방에서 당하기만 하던 한국 금융이 밖으로 나가 제법 힘도 쓰는 입장이 됐다,

돌이켜 보면 한국 금융이 지금처럼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 과거엔 주로 당하고 깨진 쓰라린 추억뿐이었다. 대형 은행들을 줄줄이 외국계에 넘기고, 시장 쟁탈전에서 판판이 깨져도 숙명이려니 했다.

하물며 금융으로 밖에 나가 돈 벌 생각은 꿈조차 꾸지 못했다. 그저 안방을 잘 지키면서 국내 고객에게 금리 뜯고, 수수료 열심히 챙기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금융도 훌륭한 수출산업이 될 수 있음을 미래에셋과 몇몇 증권사들이 증명해 주고 있다.

물론 작은 성공에 취할 상황은 아니다. 미래에셋의 약진은 세계적 주가상승의 덕이 컸다. 한두 해 반짝 실적을 올렸다고 삼성전자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무리다. 미래에셋이 강하다 해도, 아직은 동아시아에서나 통하는 군소(群小) 플레이어일 뿐이다.

금융에선 왜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가 탄생하지 못할까. 한국 경제는 제조업에서 몇몇 세계적 강자를 배출했지만, 금융에 관한 한 만년 약소국이다.

국민은행이 자산 규모 한국 1등이라 큰소리쳐도 세계 순위는 70위에 불과하다. 시중은행들의 시가총액을 다 합쳐 보았자 중국 공상(工商)은행 한 곳만 못하다는 통계도 있다. 제조업의 성공에 비춰 금융은 수수께끼라고 할 만큼 허약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동안 금융은 돈 버는 전략산업의 대우를 받지 못했다. 산업의 뒷바라지나 하고, 정부 정책을 보조하는 관치(官治)의 대상이었다. 효율보다 평등이, 경쟁보다 공공성이 중시되는 ‘금융 사회주의’가 한국 금융을 지진아로 만들었다.

다행히 여·야 대통령 후보도 금융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예상치도 않게 ‘금융·산업 분리’ 문제가 선거전 초반의 이슈로 떠올랐다. 그런데 초점이 엉뚱하게 빗나가더니 이른바 ‘가치 전쟁’으로 번져 ‘정글 자본주의’다, 아니다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지금 한국 금융의 문제는 이념 이슈가 아니다. 삼성전자가 한국 경제를 먹여 살렸듯이, 어떻게 금융을 통해 새로운 국부(國富)를 창출하느냐의 아주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문제다. 좌·우나, 보수·진보와 관계없는 국익의 영역인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펼쳐지는 부(富)의 경연에서 철저하게 소외돼 왔다. 어떻게 하면 여기에 비집고 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가치 타령’부터 벌이고 있으니 앞뒤가 뒤집힌 격이다.

대통령 후보들로부터 ‘금융의 삼성전자’를 키워내기 위한 전략부터 듣고 싶다. 이 문제가 한반도 대운하나, 개성공단보다 몇 배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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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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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미국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올해 1월 12일 오전 워싱턴 랑팡플라자 지하철역에서 45분간 길거리 연주회를 열었다. 악기는 350만 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였고 클래식을 6곡 연주했다. 지나간 사람은 1097명. 이 중 1분이라도 연주를 들은 이는 7명, 동전함에 돈을 넣은 이는 27명이었다. 그러니까 1070명은 연주자의 1m 앞을 그냥 지나쳤고, 모은 돈은 32달러를 조금 넘었다.

국내 펀드 시장을 개척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대학생 시절부터 증권 투자로 유명했다. 그는 대학원에 다니던 1984년 ‘한국 증권시장에 대한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는데, 이것이 놀라운 적중률을 보여 회자됐다. 그런데 증권업계를 돌고 돌아 그의 손에 돌아온 그 보고서의 작성자는 일본 노무라증권이라고 돼 있었다.

벨의 이야기는 워싱턴포스트지의 기사이고, 박 회장의 일화는 ‘박현주 미래를 창조하다’라는 책에서 본 것이다. 두 사례 모두 우리가 안다는 것의 한계나 허구를 보여 주고 있다. 우리에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눈이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든다.

신정아 사건 이후 여러 명이 학력 위조로 곤욕을 치렀다. 그들 중에는 취재를 인연으로 식사를 같이 하면서 대학 이야기를 한 이도 있었다. 그들이 뉴스에 오르내릴 때 필자는 ‘도대체 내가 보고 느낀 것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에 휩싸였다. ‘내 속에는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노래(‘가시나무’)처럼 아무리 사람의 얼굴이 여러 개라고 하지만, 내 눈은 까막눈에 가까웠다.

우리는 이제 알기 위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와 실랑이를 해야 한다. 벨의 거리 연주나 박 회장의 보고서처럼 진짜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다. 특히 인터넷 시대에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일상에서 ‘가상’과 ‘가짜’의 구분도 애매하다.

이런 상황에서 진짜를 진짜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것을 비롯해 가시적인 성과나 재능은 기본일 테고, 그 위에 ‘뭔가’가 더해져야 한다. 그 ‘뭔가’는 전문가의 평가나 주위의 평판, 권위자의 의견, 작은 소문 등 셀 수 없이 많다. 벨의 거리 연주회도 ‘벨’이라는 이름이 사전에 알려졌다면 붐볐을 것이다.

우리의 앎은 외부의 ‘뭔가’에 기대지 않고서는 온존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한 것인지도 모른다. 현대인에게 가면이 필요한 이유도 자기 앎의 한계를 모르는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다.

문제는 그 ‘뭔가’가 보이지 않는 데다 누가 어떻게 더하느냐는 것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조작이나 거짓에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 ‘카더라 통신’이나 ‘뒷담화’의 파괴력을 보라. 객관적 진실과 주관적 평판이 부닥칠 때 평판에 더 기울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렇기에 ‘까막눈’을 면하는 게 갈수록 아득하게 느껴진다. 제대로 된 인식을 위해 관련 사안들을 모으고 나누고 의식도 가다듬어야 하지만, 그것은 사실상 ‘불신(不信)’을 전제로 한 것이다. 저절로 앎에 이르는 경지도 있다지만 그런 ‘도사’를 본 적은 없다.

결국 ‘아는 게 부족하다’고 고개 숙이는 게 낫다. 진짜와 가짜의 거리가 종이 한 장도 되지 않는 세상에서는…. 그나마 그게 덜 팍팍한 삶인 것 같다.

허엽 문화부 차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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