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동 가는 길로 ‘삼청동 입구-삼청터널 지나’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길은 출·퇴근 시에는 교통체증이 심하다. 러시아워에는 더 빨리, 성북동에 가는 다른 길이 있다. ‘청와대 담 옆길-북악스카이웨이 타고’ 또는 ‘가회동 입구-성균관대 뒷문 지나’ 등이 그것인데, 이 두 길은 경치도 좋고 출퇴근 시간에도 그다지 붐비지 않는다.

잘 알려진 ‘삼청동 입구…’ 길을 택하는 것은 업종 대표주들로 투자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인덱스펀드투자’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남들이 잘 안가는 ‘청와대 담 옆길…’이나 ‘가회동 입구…’길을 택하는 것은 ‘가치투자’ 기법일 것이다.

인덱스펀드투자에서는 투자방법이 쉬운 만큼 시장평균 정도의 수익률에 만족해야 한다. 가치투자에서는 가치 있지만 싼 주식의 쉽지 않은 선택과 장기투자에 필수적인 인내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시장평균을 웃도는 수익률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지난 2년간 10여개의 사회책임투자펀드(SRI펀드)가 출시됐다. 이들 SRI펀드를 수익률에서 다른 펀드와 비교해 보는 언론 기사가 가끔 눈에 띈다. 할아버지 떡도 맛있어야 사먹는 것이 우리의 심정이다. SRI펀드가 표방하는 사회적 사명에는 찬성을 하면서도 수익률은 수익률대로 따져보고 싶은 것이다.

SRI펀드에 편입된 주식 종목들을 언뜻 살펴보면 대체로 삼성전자, 포스코, SK텔레콤, 국민은행 등 잘 알려진 업종 대표주들이 먼저 눈에 띈다. 이들 회사들이 정말 사회책임을 잘하는지는 별도로 따져보더라도, 이렇게 구성된 SRI펀드는 결국 유사 인덱스펀드가 돼 시장 평균을 넘는 수익률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가치투자자의 입장에서는 남들이 다들 쫓아다니는 여학생을 나도 같이 쫓아가 봤자 무슨 좋은 일이 생기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에서 기업경영이 해야 할 책무, 더 나아가 이러한 책무의 인식을 통해 장기적인 수익성장의 기반과 동력을 만들겠다는 사업전략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SRI펀드의 사회책임투자에서도 업종 대표주만이 아닌 이들 각 분야에서 숨겨진 투자기회를 찾아 투자한 뒤, 그 기회가 수익으로 실현될 때까지 기다리는 장기적인 가치투자적 접근법을 활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환경(E)분야의 경우, 대체에너지나 탄소배출권 시장에서 어느 기업이 유리한 사업기회를 가질 것인지 연구, 분석해볼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일부에서 이미 바이오에탄올연료, 태양에너지, 태양전지 등의 대체에너지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지배구조(G)분야에서는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경영관여(Engagement) 외에도, 기업분할·인수합병·지주회사 설립에 따르는 투자기회를 연구해볼 수 있다. 경영을 장악한 지배주주에게 부당한 내부거래 등의 시정을 요청하거나, 과도한 현금성 자산의 보유로 인한 자기자본수익률의 하락을 막기 위해 자사주매입을 요청하는 등의 경영 관여는 주주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가치투자 기회를 제공한다.

한편 사회(S)분야에서는 노사나 협력업체의 관계에서 어느 기업이 혁신적 진전을 이룰 것인지 살펴볼 수 있다. 노사관계의 진전은 수익의 개선으로, 협력업체 관계 개선은 공급망 관리를 통한 시장지배력(Franchise Value)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면, 여기에서도 가치투자의 기회를 찾아볼 수 있다.

SRI펀드들이 E·S·G분야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좋은 투자의 기회를 모색할 때 투자수익률도 좋아지고,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촉진하는 사회적 사명도 더 잘 실현된다. 요컨대 님도 보고 뽕도 더 많이 따자는 것이다.

[이철영 아크투자자문 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427호(07.10.24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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