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희 은행연합회 자문위원ㆍ상무지난해 여름 엄습한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먹구름이 해를 넘겨 아직까지도 글로벌 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외환시장에서는 전후(戰後)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미국의 주도에 의한 세계 평화)의 한 축이었던 막강한 달러화가 이제는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심이 갈 정도로까지 가치가 하락했다. 이를 반영해 달러 표시 원유, 곡물, 원광석 등 주요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사상 최고가를 기록함으로써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본격적으로 악화된 이후 미국계 대형 투자은행들이 상각 처리한 금액을 보면 메릴린치 251억 달러, 씨티은행 218억 달러, 모건스탠리 108억 달러, BOA 68억 달러 등 그 어마어마한 손실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급격한 유동성 부족사태로 JP모건에 매각되는 베어스턴스(미국 5대 투자은행)의 경우에는 상각손실이 26억 달러로 그리 크지 않지만 이번 사태로 피해가 큰 헤지펀드 등에 대한 엑스포져와 유동성 관리의 실패 때문에 직격탄을 맞은 맞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반면 지난 2006년말 현재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잔액은 약 1조3000억 달러로 전체 모기지 대출 약 10조(전체 금융자산의 약 8%) 달러의 13% 정도로 추정된다. 전체 모기지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은 셈이다.
이렇게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미국 서브프라임의 일부 부실이 글로벌 금융과 더 나아가 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글로벌화한 국제 금융시장의 특징과 투자은행들의 리스크 관리 관행 등을 충분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21세기 글로벌 국제 금융시장은 국가 또는 지역 간의 자본이동이 자유로운 가운데 난해한 고등수학까지를 응용하는 금융공학(financial engineering)으로 무장된 시장이다.
이와 같은 첨단 금융시장을 배경으로 서브프라임 주택담보 대출은 차입자와 대출기관만 관련된 단순한 모기지형태의 대출상품(1차 시장)에 머물지 않았다. 최신 기법의 복잡한 증권화(securitization) 과정을 통해 MBS(모기지담보부증권), CDO(부채담보부증권), CDS(신용부도스왑) 등 다양한 형태의 파생상품으로 변모하면서 글로벌 국제 금융시장에서 상업ㆍ투자은행 보험사 헤지ㆍ뮤추얼펀드 연기금 등 대형 투자자들에게 인기 있는 투자상품(2차 시장)으로 등장한 것.
파생상품(derivatives)이란 그 상품의 가치가 일반적으로 기초자산이라고 불리는 다른 상품의 가치에 의하여 결정되는 상품이다. 따라서 기초자산의 가치가 부실화되면 관련 모든 파생상품의 가치가 파급과정을 통해 즉각적으로 부실화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여기에 미국의 모기지회사들은 지난 2000년대 초 이후 장기간에 걸쳐 미국 및 세계 경기가 호황을 보이는 동안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에 대한 심사를 소홀히 하면서 관련 기초자산이 부실화될 수 있는 위험을 방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제 투자자들 역시 관련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 과정에서 부실화 위험을 간과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지난 90년대 말 국제 외환위기시 아시아 금융기관들의 리스크 관리 소홀을 혹독하게 질타했는데 이번 서브프라임 부실화 과정을 살펴보면 그들도 똑 같은 잘못을 저질렀다.
과거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을 거쳐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로 재직한 테리 번햄(Terry Burnham)은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라는 저서에서 오늘날의 금융시장을 `예측할 수 없는 시장'으로 보고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냉정하게 판단하는 의사결정자이고 금융시장은 합리적'이라는 오래된 가설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석했다.
그리고 그는 비합리적인 시장 상황 하에서는 투자가 보다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는 어쩌면 미국의 투자은행들이 `리스크가 클수록 보수적 투자'라는 당연하고도 평범한 교훈을 잊고 투자를 집중한 데 대한 자업자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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