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대기 시간비용이 더 들어 끄는 거죠

 밤에 신호등 작동을 멈추면 더 위험한 걸까요? 늦은 밤 한적한 거리를 지나다보면 가끔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고 그저 노란불만 깜빡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두운 밤중에 신호등을 꺼놓았으니 정말 위험천만한 상황인 것처럼 보입니다. 당장 경찰서에 가서 빨리 제대로 작동시켜 달라고 해야겠군요. 그러면 경찰관이 어떻게 대답할까요?

아마 경찰관의 대답은 "일부러 그렇게 해놓았으니 걱정마세요."일 겁니다. 한적한 밤거리에 신호등을 끈 것은 언뜻 보면 위험한 일이지만 경우에 따라 합리적인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교통질서를 지켜주는 신호등은 계속 작동되고 있어야 좋을 것 같지만 신호등은 우리에게 혜택만 주는 게 아니라 비용도 발생시키거든요. 그래서 신호등의 비용이 이익보다 더 클 때에는 굳이 작동시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신호등이 주는 비용?

그러면 신호등이 우리에게 주는 비용은 어떤 것일까요?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신호등을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매몰비용(본보 4월 8일자 38면 게재)이기 때문에 신호등 작동여부를 판단할 때는 감안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사람들이 신호를 지키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을 비용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신호대기 시간을 비용이라고 크게 인식하지 않습니다. 보통의 경우 사고를 방지하는 신호등의 이익이 신호대기를 위한 시간비용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기다리는 게 당연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밤거리에선 비용 > 이익

그러나 늦은 밤 사람이 거의 없는 거리에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사람들이 신호등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그래서 신호등이 있어도 교통사고를 방지하기 어렵고 그만큼 신호등이 주는 이익도 줄어듭니다. 둘째 사람들이 신호등을 잘 지킨다 하더라도 밤에는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비용이 낮보다 큰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신호등의 이익보다 비용이 더 커지게 되기 때문에 차라리 신호등을 작동시키지 않는 게 낫습니다.

구체적인 사례 살펴보면

금방 이해가 되지 않는다구요?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성격이 매우 신중한 영희와 성격이 아주 급한 철수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두 사람 모두 길을 건너려고 합니다. 당연히 신호를 기다리다가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들어오면 건너가겠지요.

그런데 밤중에는 둘의 행동이 달라집니다. 신중한 영희는 낮보다 주위를 많이 살피고 파란불이 들어와도 금방 길을 건너지 않습니다. 밤에는 자동차들이 더 빨리 달리기 마련이고 운전자가 신호나 사람을 잘못 볼 수도 있어 사고가 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격이 급한 철수는 어차피 파란불이라도 맘놓고 건너지 못하는데 일단 차만 없으면 빨리 건너가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위를 한번 쓱 살피고는 신호에 관계없이 급히 뛰어서 길을 건너버립니다.

차를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신중한 영희는 파란불(횡단보도는 빨간불)이라도 금방 횡단보도를 지나치지 않고 한참 주변을 살핍니다. 길을 건너려는 사람이 자신처럼 신중한지 아니면 철수처럼 성격이 급해서 그냥 뛰어들지 예측할 수 없거든요. 반면 성격이 급한 철수는 길을 건너는 사람도 없는데 마냥 신호를 기다리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고 사람만 보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한밤 중엔 무용지물

이 경우 많은 사람들은 교통신호를 어긴 철수를 비난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적한 밤거리에서 무조건 영희처럼 행동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늦은 밤에 이동하는 사람은 그만큼 급한 일이 있을 가능성이 크고 신호를 기다리는 몇 분도 큰 비용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합해보면 한밤 중에는 파란불이 켜져도 안심하지 못하는 영희같은 사람이 늘어나게 되고 반대로 빨간불에도 그냥 지나쳐 버리는 철수같은 사람도 늘어납니다. 한마디로 신호등이 있으나마나 한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결국 신호등의 이익은 줄어들고 비용만 커진 셈이지요. 이렇듯 당연히 지켜야 할 것 같은 규정이나 법이라도 언제 어디서나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법은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기 마련이고 그것이 바로 법의 비용이기 때문에 법이 가져오는 이익이 비용보다 더 큰지 항상 고민해 봐야 합니다.

최소비용으로 사회정의 달성

이렇게 사회의 법, 규정 등을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 해석하는 분야를 '법경제학'이라고 합니다. 법이 추구하는 '정의'와 희소한 자원을 가능한 합리적으로 활용하려는 경제학의 '효율성'을 함께 고려해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최대한 적은 비용으로 달성하려는 것입니다.

'법경제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더 해볼까요? 모든 사회에는 범죄가 존재하고 지도자들은 범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어떤 대통령 후보가 '범죄율을 0%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고 합시다. 귀가 솔깃한 이야기지만 이것은 실천되지 않는 공약(空約)에 머물 가능성이 높습니다. 범죄율이 0%가 되기 위해서는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교통 신호를 어기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하려면 경찰관이나 감시 카메라가 24시간동안 지키도록 하면 됩니다. 하지만 횡단보도가 한 두개도 아니고 그 모두를 일일이 감시하려면 도시 예산이 경찰관 봉급과 카메라 설치비로 다 사용돼야 할지도 모릅니다. 결국 무조건 범죄율을 낮출 것이 아니라 범죄로 사회가 부담해야하는 비용(불이익)과 범죄 방지를 위해 써야하는 비용을 합한 총비용을 가장 작게 되도록 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입니다.

절대 일어나선 안될 범죄

그런데 범법행위의 종류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 만큼 정말 한 건도 일어나지 말아야 할 범죄도 있습니다. 최근 뉴스에서 나오는 어린이에 대한 잔인한 범죄가 그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경찰관을 항상 배치해 놓기는 어렵습니다. 경찰이 신경써야 할 다른 일도 많으니까요. 대신 범죄에 대한 처벌 강도를 아주 높여서 범죄율을 낮출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범죄예방을 위한 비용을 범죄자 개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어린이 대상의 흉악범죄는 최소 무기징역' 이라는 법이 생긴다면 범죄자가 범법행위로 얻는 이익보다 체포되었을 때 감당해야할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섣불리 행동할 수 없게 됩니다.

정민수 한국은행 부산본부 조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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