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박물관이 생긴다.
서울시와 대한야구협회, 한국야구위원회(KBO) 등에 따르면 오는 2010년 서울 고척동에 건립할 예정인 하프돔 구장 안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 야구역사의 전시장인 야구박물관을 건립할 예정이다. 야구명예의 전당도 박물관 내에 설치된다.
한국야구는 1905년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에 의해 이 땅에 들어온지 100년이 넘었고, 1982년에 출범한 프로야구의 역사도 올해로 27년째를 맞았다. 야구역사가 이러할진대 그동안 변변한 기념관조차 없었다는 것은 자못 아쉬운 노릇이었다. 야구 초창기의 사료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은 물론 역사를 기록한 야구개설서조차 일본인의 손에 편찬된 < 조선야구사(1932년) > 가 고작인 현실을 감안할 때 때늦은 감이 있다. 자료의 유실과 흩어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가고 있는데다 원로 야구인들도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이 많다.
어찌됐든 야구박물관이 생기는 것은 야구계의 숙원을 푸는 일이다. 현재 야구관련 사료나 기념물 등은 KBO와 대한야구협회, 신생 센테니얼구단의 이광환 감독이 손수 만들어낸 제주도 서귀포시의 야구사설박물관 등에 분산 보관 돼 있으나 체계적인 분류, 정리가 제대로 안돼 있는 실정이다.
야구박물관은 고척동 하프돔 구장에 연면적 1000㎡(330평 가량) 규모로 알려져 있다. KBO와 대한야구협회는 야구계 관련 단체의 대표들로 동대문야구장 철거 대체운동장 건립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김동성 전 대한야구협회 부회장)를 꾸려 그동안 서울시와 야구장 협의를 해왔다.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인 김양경 일구회 회장은 " 당초 서울시에 박물관 건립을 위한 공간으로 500평을 요청했다. 일단 공간을 마련하고 연차적으로 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고 말했다. 대한야구협회 이상현 사무국장은 " 동대문야구장을 철거하는 자리에 들어서게 되는 동대문디자인 콤플렉스 안에 박물관 부지를 조성해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했으나 마땅한 공간이 없고 협소해 야구 기념물 정도만 설치하는 것으로 합의하는 대신 새 구장에 건립키로 한 것 " 이라고 설명했다.
KBO는 지난 2005년 야구도입 100주년 기념해에 야구박물관 건립에 따른 계획을 세우기는 했으나 공간 마련의 어려움 때문에 유야무야 된 바 있다.
미국의 쿠퍼스타운과 일본의 야구체육박물관
미국은 뉴욕주 중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 쿠퍼스타운에 1939년에 명예의 전당을 건립, 관광명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50여년의 미국야구 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이곳은 베이브 루스 등 메이저리그의 선수, 감독, 심판 등 280여명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돼 있다.
일본은 현재 도쿄돔 구장 1층에 야구체육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1959년 고라쿠엔구장 옆에 야구체육박물관(야구전당)을 지었다. 일본의 야구박물관은 '일본 프로야구의 대부'로 불리는 쇼리키 마쓰타로 전 요미우리신문사 사주가 1959년에 타계하기 전 '박물관을 지었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김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일화가 있다.
일본의 야구체육박물관은 그 후 1937년에 세운 고라쿠엔구장을 헐고 새로 지은 도쿄돔구장의 개장에 발맞춰 1988년 도쿄돔 안으로 옮겼고, 오늘에 이르렀다.
130여년의 일본야구 역사가 녹아 있는 야구체육박물관은 크게 일본을 포함한 세계 야구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야구의 역사관과 프로야구관, 야구전당으로 공간이 나뉘어져 있다.
야구체육박물관측은 국제대회 등이 열리면 시의에 알맞는 이벤트를 기획, 1991년 제1회 슈퍼게임이 열린 후 도쿄돔에서 홈런을 날렸던 김성한의 배트를 전시한 적도 있고, 2004년에는 퍼시픽리그 개막에 즈음해 삼성에서 지바롯데 마린스로 이적한 이승엽의 방망이를 전시하기도 했다.
그에 앞서 1989년에는 한국시리즈를 3연패한 해태 타이거즈의 유니폼과 기념사인공 등을 기획전시했다.
야구전당에는 경기표창자(경기인)와 특별표창자(야구 공로자)로 나뉘어 얼굴과 약력을 새긴 헌액동판이 걸려 있다. 헌액자 가운데는 일본프로야구 개인통산 최다안타(3085개) 기록 보유자인 재일교포 장훈(1990년 1월)을 비롯 400승의 주인공인 한국계 가네다 마사이치, 요미우리 종신명예감독인 나가시마 시게오가 1988년에 헌액됐고 868홈런 기록을 세운 왕정치(소프트 뱅크 호크스 감독)는 1994년에 헌액됐다.
박물관에 들어갈 한국야구 기념품은?
서울 역삼동 야구회관 1층 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야구기념물품은 3500여점으로 추산된다. 프로야구 초기의 각종 기념품이 총망라돼 있다. 구단별 유니폼과 각종 야구용품, 사인볼, 야구 관련 책자, 안내 팜플렛 등 인쇄물이 대종이다.
양해영 KBO 관리담당 부본부장에 따르면 " 2005년 야구도입 100주년을 기념해 우선 야구회관 2층에 기념관을 열려고 했으나 공간 협소 등으로 보류된 적이 있다 " 며 " 그 때 1차로 기념품을 분류, 정리해놓긴 했으나 앞으로 새 구장 안에 공간이 마련되면 보유 기념품의 사료적인 가치를 따져 선별 작업을 거쳐야 한다 " 고 말했다.
기념품 가운데는 프로야구 초기에 한국을 다녀간 일본의 왕정치와 나가시마 사인공, 역대 대통령 가운데 전두환, 김영삼, 노무현 씨의 사인공 등이 있다. 100주년 기념식 때 초청돼 온 질레트 가족이 기증한 기념품도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아시아의 철인'으로 불리며 1950~60년대 홈런왕으로 유명했던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 사령탑이었던 고 박현식 감독이 KBO에 기증한 자신의 홈런공 60여개이다. 2005년 8월20일에 타계한 박현식 감독은 1946년 인천 동산중 3년때 야구를 시작, 1968년 제일은행에서 은퇴할 때까지 112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 그가 직접 계산한 것이다.
박현식 감독은 선수생활 때 자신이 홈런을 날릴 때마다 홈런공을 일일이 회수, 자신의 사인은 물론 그 경기에서 함께 뛰었던 동료들의 사인을 받아 보관해 왔다. 딸의 결혼선물로 자신의 홈런공 3개를 주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자신의 홈런공에 애착을 보였다. 그는 타계하기 두세 달 전에 KBO 이상일본부장을 자택으로 불러 직적 박스에 꾸려놓은 야구관련 유품을 전달했다. 이상일 본부장에 따르면 그 안에는 자신의 홈런 사인공과 국가대표 시절 유니폼, 페넌트 등 소중한 기념품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살아 있는 역사의 공간으로
야구박물관은 어떻게 꾸며야할 것인가는 이제부터 야구계가 중지를 모아야할 부분이다. 서울시가 마련해줄 공간 자체가 야구계의 요청에 못미치는 좁은 공간이어서 야구전당과 전시관을 동시에 꾸리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야구전당은 앞으로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떤 인물을 어떤 절차를 거쳐 헌액할 것인가에 대한 방안이 전혀 서 있지 않은 상태이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헌액자 선정은 전미야구기자협회 가입회원으로 10년 이상 취재를 한 기자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된다. 선수 대상자는 메이저리그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선수로 은퇴한 지 5년에서 20년 사이가 자격요건이고, 유효투표의 75% 이상 획득을 해야한다.
메이저리그는 매년 여름 명예의 전당 헌액을 기념해 쿠퍼스타운에 인접한 더블데이 필드에서 빅리그 구단간 시범경기를 열어왔으나 최근 AP 등 외신보도에 따르면 올해 6월17일(한국시간) 시카고 컵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경기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일본 야구명예의 전당 헌액자는 경기자 표창자와 특별 표창자로 나누어 선발한다. 경기자 표창은 프로야구 담당 15년 이상 경험을 한 기자로 구성, 10인 이내의 연기명 투표와 유효투표의 75% 이상 득표자가 헌액 된다. 대상자는 현역 은퇴한 경기자(선수, 코치, 감독, 심판원) 출신 가운데 은퇴 후 5년이 경과하지 않았고, 선출 시점 때부터 거꾸로 계산해 16년 안에 현역으로 뛰었던 사람이다. 헌액 결정자는 그 해 올스타전에서 표창을 한다.
한국 야구역사의 온전한 복원도 큰 숙제거리이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것은 모든 자료가 KBO에 보관돼 있지만 특히 해방 이전 일제 치하의 자료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동안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1960년대 명유격수 출신인 하일 씨(한국스포츠사진연구소 소장)가 < 사진으로 본 한국야구 100년(1) > 을 펴내는 등 야구사 복원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나 온전한 복원에는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차제에 KBO와 대한야구협회 등 유관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야구사 되찾기 운동이라도 벌여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물관을 짓는다하더라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도 숙제이다. 박제된 것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야구 역사의 장, 생생한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홍윤표 OSEN 대기자
< 사진 맨 위 > 살아 있는 일본야구의 전설 장훈 씨가 1990년 1월 24일 야구전당 헌액이 결정된 직후 일본야구체육박물관에 헌액돼 있는 미즈하라 시게루의 동판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 사진 맨 아래 > 1989년 해태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 3연패를 한 직후 유니폼과 기념사인공이 전시돼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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