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소희(29·여)씨는 아침마다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며 생각에 잠긴다. 멋 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는 김씨 옷장엔 유행에 맞춰 사 모은 옷이 가득하다. 그때그때 정리하고 버렸는데도 더 둘 데 없이 꽉 찬 옷장. 하지만 멋쟁이는 늘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또 쇼핑에 나선다. 패션은 이런 것이다. 신상품을 계속 내놓고, 사람들이 또 그걸 사고 싶게 만든다. 지난 유행이라고 해도 옷장 속에 있는 것은 해지지 않은 멀쩡한 것이다. 옷장 안 그 수많은 옷들은 다 어떻게 되나. 결국 버려진다.
버려진 옷이 요즘 새 옷으로 변신하고 있다. 수선해서 입는 수준이 아니다. ‘재활용 패션’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중이다. 소재는 주변에 버려진 모든 것이다. 사탕봉지부터 낡은 가죽소파, 쌀 가마 자루, 세일에 세일을 해도 팔리지 않은 청바지까지 다양하다. 새해엔 ‘환경을 생각하는 재활용 패션’ 아이템 하나쯤은 있어야 진정한 패셔니스타(패션 감각이 뛰어나고 심미안이 좋아 대중의 유행을 이끄는 사람)로 대접받을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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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 옷은 환경오염의 주범
태안 앞바다의 검은 기름만 환경 재앙이 아니다. 패션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환경에 위협이 되고 있다. ‘패스트 패션’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인 탓이다. 올해 상반기 국내에 문을 열 세계 최대의 패스트 패션 업체인 자라(ZARA)는 2주에 한 번 새 옷을 내놓는다. 유행에 민감하고 가격이 저렴한 대신 품질은 낮은 편이다.
이러다 보니 유행이 지나면 몇 번 입지 않았더라도 버려지기 일쑤다. 자원낭비, 쓰레기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가 버린 옷은 소각 처리된다. 합성섬유로 만든 저가 의류는 이산화탄소·다이옥신 같은 유해물질을 남기고 지구 온난화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패션’은 이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1월 더 타임스는 “녹색이 새로운 검정”이라고 선언했다. 검정은 패션에서 기본 중 기본이 되는 색. 녹색은 환경운동을 말한다. ‘환경운동’이 패션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음을 예견한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이 지난해 발표한 ‘잘 입고 있는지’라는 보고서 역시 “한해 1000조원대의 패션산업이 점점 환경을 의식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자연을 살리고, 지출은 줄여요
해외에서 먼저 시작된 환경패션은 국내에서도 서서히 주목받고 있다. 재활용품을 응용한 각종 소품을 팔고 있는 롯데백화점 에코숍이 대표적이다. 청바지·가방·니트·신발·문구류 등 없는 게 없을 정도다. 민미정(36) 숍매니저는 “번듯한 브랜드 매장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상품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며 “재활용품을 이용한 것이라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고 말했다.
재활용 패션의 진화도 인상적이다. 버려진 가죽 소파에서 가죽만 떼내 만든 백은 새것과 다름 없다. 재활용 청바지는 헌 옷을 이용한 것은 아니다. 생산업체에서 거듭된 세일을 통해서도 팔지 못해 폐기 처분될 청바지에 천 조각이나 자투리 가죽을 덧댔다. 모양새는 20만~30만원대 프리미엄 청바지와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가격은 10만원 아래다.
재활용 청바지를 구입한 이선영(23·여)씨는 “프리미엄 청바지처럼 공을 들였는데 가격은 싸다”며 “재활용이란 말에 조금 망설이기도 했지만 환경까지 생각하면서 멋을 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훌륭하다”고 했다.
유명 디자이너들도 환경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일례로 디자이너 송자인(35)씨는 남성용 트렌치 코트를 여성용 멜빵바지로 180도 바꿔놓았다. 안감은 바지로 응용했고, 위쪽은 조끼 느낌을 냈다. 송씨는 “리폼처럼 고쳐 입는 개념이 아니라 헌 옷, 버려진 옷이 원단처럼 새 옷의 소재가 되는 것”이라며 “패션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면서도 환경도 생각하는 1석2조의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서울 인사동에 지난해 2월 문을 연 ‘에코파티 메아리’엔 현수막으로 만든 3500원짜리 가방부터 재생지로 만든 1만원 안팎의 명함지갑까지 다양한 재활용 패션 용품이 팔리고 있다.
#패스트 패션 vs 슬로 패션
키워드는 환경패션의 지속성이다. 반짝 유행이 아닌 2008년 패션의 주요 트렌드로 자리 잡을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패션연구소 김정희 소장은 재활용 패션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이 환경패션을 새로운 패션으로 받아들일지 문제”라며 “한 번 입고 버리는 옷이 지구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도 커피 제조사가 농부들에게 원두값을 제대로 주고 산 것인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지금까진 감성이 패션의 변화를 이끌었다면 앞으로는 이성이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며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국내 소비자도 의식 있는 소비를 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디자이너 송자인씨도 “맛볼 만큼 맛본 패스트 패션보다 공들인 정성, 손때 묻은 정감을 선호하는 슬로 패션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웰빙’이 의미하는 ‘잘 먹고 잘 사는 법’뿐만 아니라 ‘잘 입는 법’에도 신경 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글=강승민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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