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월25일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를 표방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실용주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그는 과거를 불문하고, 능력 제일주의에 기반하여 인재를 등용했다. 그리고 성과주의는 그의 통치철학이었다. 굶주림을 극복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던 시절에 막대한 사회 비용을 요구하는 민주적 절차는 사치에 불과했고, 성과(成果) 만능주의에 힘 입어 개발독재가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었다. 지금 그런 실용주의가 요구되는가, 그리고 가능한가.
실용주의, 그것은 흔히 미국의 정신으로 일컬어진다. 19세기 말 미국 철학을 대변했던 존 듀이(1859~1952)가 실용주의의 정신적 지주다. 그는 온갖 문제들로 가득 찬 현실에 주목하고, 교육과 과학은 그런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 그는 과거를 버리기보다 그것에서 얻어진 경험과 결과를 기반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상황에 걸맞게 창의적으로 수정,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한마디로 과거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데서 나오는 ‘안정’과 험난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곧 실용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과 성과의 중시는 거추장스러운 관습·예절·권위 등을 쉽게 무시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정권은 극단적인 실용주의를 내세운 면이 있다.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검찰, 법관 등이 모두 별것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증거해주었다. 미국의 실용주의 정신을 문학작품으로 투영했던, 존 듀이와 같은 시대를 산 소설가, 헨리 제임스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등이 유럽인들의 위선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행동과 지극히 단순하고 솔직한 자유주의적 미국인의 그것을 대비시키기도 했다.
이제 실용주의의 핵심은 현실적 문제 해결에, 그리고 지난날의 경험을 존중하는 기반 위에서 새로운 변화의 판을 짜는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그것은 이른바 개혁(reform)과 다르지 않다. 진정한 의미의 ‘리폼’은 기존의 ‘폼’을 재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실용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개혁은 사실상 리폼이라기보다 기존의 기반을 모두 바꾸려는 ‘혁명’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여당이 참여하는 대연정 발상,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란 미명의 취재제한 조치 등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는 아주 명확해진다. 먼저, 현실적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일은 가장 쉬운 것처럼 보인다. 경제 살리기, 일자리 만들기 등이 그에 해당될 것이다. 아마도 가장 어려운 것은 익숙한 과거의 경험을 존중하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곧 노무현 정권의 관행과 경험을 상당 부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과 만능주의에 물든 박정희식 실용주의 요구가 이미 팽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무현식 질질 끌기 내지 민주적 사회비용을 인정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노무현식 권위 타파와 좌파적 관용에 익숙해 있다. 그것을 전적으로 무시하려고 할 때 안정은 사라질 것이고, 그 결과 실용적 성과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독단주의 내지 절차 무시는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요소들이다. 지금 한국은 혁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이미 질적인 차원에서 사회적 분화와 다차원적 구조가 촘촘하게 엮여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안정과 변화를 균형있게, 그리고 정당한 절차 속에서 추구할 때만이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가 성공할 수 있다.
[[김학수 /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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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 그것은 흔히 미국의 정신으로 일컬어진다. 19세기 말 미국 철학을 대변했던 존 듀이(1859~1952)가 실용주의의 정신적 지주다. 그는 온갖 문제들로 가득 찬 현실에 주목하고, 교육과 과학은 그런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 그는 과거를 버리기보다 그것에서 얻어진 경험과 결과를 기반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상황에 걸맞게 창의적으로 수정,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한마디로 과거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데서 나오는 ‘안정’과 험난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곧 실용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과 성과의 중시는 거추장스러운 관습·예절·권위 등을 쉽게 무시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정권은 극단적인 실용주의를 내세운 면이 있다.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검찰, 법관 등이 모두 별것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증거해주었다. 미국의 실용주의 정신을 문학작품으로 투영했던, 존 듀이와 같은 시대를 산 소설가, 헨리 제임스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등이 유럽인들의 위선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행동과 지극히 단순하고 솔직한 자유주의적 미국인의 그것을 대비시키기도 했다.
이제 실용주의의 핵심은 현실적 문제 해결에, 그리고 지난날의 경험을 존중하는 기반 위에서 새로운 변화의 판을 짜는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그것은 이른바 개혁(reform)과 다르지 않다. 진정한 의미의 ‘리폼’은 기존의 ‘폼’을 재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실용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개혁은 사실상 리폼이라기보다 기존의 기반을 모두 바꾸려는 ‘혁명’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여당이 참여하는 대연정 발상,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란 미명의 취재제한 조치 등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는 아주 명확해진다. 먼저, 현실적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일은 가장 쉬운 것처럼 보인다. 경제 살리기, 일자리 만들기 등이 그에 해당될 것이다. 아마도 가장 어려운 것은 익숙한 과거의 경험을 존중하는 일일 것이다. 그것은 곧 노무현 정권의 관행과 경험을 상당 부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과 만능주의에 물든 박정희식 실용주의 요구가 이미 팽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무현식 질질 끌기 내지 민주적 사회비용을 인정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노무현식 권위 타파와 좌파적 관용에 익숙해 있다. 그것을 전적으로 무시하려고 할 때 안정은 사라질 것이고, 그 결과 실용적 성과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독단주의 내지 절차 무시는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요소들이다. 지금 한국은 혁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이미 질적인 차원에서 사회적 분화와 다차원적 구조가 촘촘하게 엮여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안정과 변화를 균형있게, 그리고 정당한 절차 속에서 추구할 때만이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가 성공할 수 있다.
[[김학수 /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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