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촛불시위가 열린 5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에서 만난‘ 전·의경 부모모임’강정숙 회장은“전·의경들의 신체적인 부상보다 마음의 상처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전·의경 부모 모임' 강정숙 회장
"아들 장례식 치를 준비하라는 등
어머니들에 끔찍한 욕설·협박도…
맞은 전·의경들 마음의 상처가 더 커
진압복 입으면 햄버거집서도 쫓겨나"5일 오후 7시쯤 강정숙(49) '전·의경부모모임' 회장은 회원 15명과 함께 서울 코리아나호텔 앞 태평로에서 서울경찰청 제2기동대 소속 전·의경들에게 빵과 음료수를 나눠주고 있었다. 비닐봉지에 담긴 빵과 음료수를 건넬 때마다 꼬박꼬박 "힘들지?"라고 묻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강 회장은 촛불시위가 폭력적 양상으로 변한 5월 말부터 지금까지 10여 차례 회원들과 시위 현장에 나와 도로 위에서 밤을 새웠다고 했다. 이날도 그는 회원 40여명과 함께 태평로·세종로·사직터널 일대를 오가며, 전·의경들에게 간식거리와 담배 등을 나눠주며 밤을 새웠다.
―언제부터 시위 현장에 나와서 전·의경들을 돌보고 있나?
"평화롭던 촛불집회는 5월 24일부터 폭력적인 시위로 변했다. 그래서 회원 60여명이 5월 31일 '저희 아이들이 다치지 않고 부모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권리는 주장하시되 평화적으로 집회를 해주십시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청계광장에 서 있었다.
동조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당신 같은 부모가 저런 아들을 낳는다'고 폭언을 하거나 멱살을 잡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때문에 우리 자식(전·의경)들이 또 출동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3시간 만에 중단하고, 경복궁쪽 동십자각 앞으로 갔다. 그곳 상황이 심각했다. 시위대와 맞서고 있는 전·의경부대 뒤쪽에 있었는데, 탈진해서 쓰러져 나오는 전·의경이 많았다. 내 손으로 직접 119 불러서 실려간 전·의경이 27명이었다. 그때 '아, 우리 모임에서 할 일은 이거구나' 싶었다. 그날 이후 큰 시위가 열릴 때마다 생수·초콜릿·담배를 준비해 나가서 전·의경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50~55세 사이 어머니들이 나와서 하루 날 새고 들어가면 이틀은 앓아 눕는다."
―군대에 입대한 다 큰 자식들을 너무 과보호하는 건 아닌가?
"육·해·공군에는 어머니회가 없다. 유독 전·의경 어머니회만 있는 것은 그만큼 전·의경들이 폭력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유모차부대' 어머니들은 두세 살 된 자녀에게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를 먹이고 싶지 않아서 시위에 나왔을 것이다. 전·의경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나도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 서명을 했다. '국민대책회의'에 가서 전·의경부모모임 회장이라고 밝히고 '당신들 활동엔 찬성한다. 하지만 시위를 하더라도 법적 테두리 내에서 제발 평화적으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유모차 어머니들이 2~3년 키운 자녀 걱정하듯, 우리는 20년 키운 자식 걱정하는 것이다."
―어머니들이 나오는 걸 전·의경들이 반기나?
"'위험한 곳에 왜 나오시냐'고 펄펄 뛴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기 아들이 배치돼 있는 곳으로는 잘 안 간다. '괜찮으냐'고 전화를 걸면 시위 현장에 출동해 있으면서도 '부대 휴무일이어서 쉬고 있다. 잘 먹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거짓말하는 자식들이 대부분이다. 한 회원의 아들은 2박3일 외박 나와서 집에서 잠만 자고 갔다고 했다. 나가서 친구를 만나도 '폭력경찰'이라고 욕만 먹으니…. 입 안이 헐어서 엄마가 해준 음식도 거의 못 먹고 물과 주스만 먹다가 갔다고 했다."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일은?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게시판 '아고라'에 내 사진과 전화번호가 떠다녔다. 내 휴대전화로 발신자 표시 없이 '×같은 년, 당신 같은 부모 밑에서 그런 자식 나왔지' '당신 아들 사진 찍히지 않게 조심해라' 같은 문자가 수십 건이 왔다.
한 어머니는 며칠 전 아들로 위장한 전화를 받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다짜고짜 '엄마, 선임이 내 머리를 때려서 뇌를 크게 다쳤어'라는 말이 들리더니, 갑자기 다른 사람이 전화기를 가로채 '5000만원이면 되겠어, 아니면 나를 꼭 영창으로 보내야 하겠어?'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누군데 내 아들을 때렸느냐'고 따졌더니 '아들 장례식 치를 줄 알라'고 욕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그 어머니가 그 길로 경찰서로 달려갔더니 아들은 얼굴과 다리를 다쳤다고 했다. 전경 아들을 두었다고 사기전화를 걸어서 이렇게까지 부모 가슴을 찢어놓는 사람들도 있다."
―시위 진압 중 다친 전·의경들을 직접 보았나?
5일 오후 강정숙 회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회원들이 촛불시위가 시작되기전 대기 중인 전·의경들에게 음료수와 간식을 나눠주고 있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6월 중순 경찰병원에 갔는데 220명이 입원해 있었다. 부대 근처 정형외과 다니며 치료하는 전·의경까지 합치면 400명이 넘는다. 하지만 신체적인 부상보다 더 걱정스러운 건 정신적인 상처다. 경찰병원 6~7층 정신병동에 가보면 병상이 꽉 차 있다. 매일 밤 시위대에 맞고 짓밟히는 악몽을 꾸는 환자도 있었다. 치료를 받고 부대에 복귀하면 또 시위현장에 나가야 하는 두려움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전·의경도 있었다."
―전·의경들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나?
"시위를 마치고 지나가는 시위대 중에는 인도에 앉아 있는 전·의경들을 향해 욕하고 침까지 뱉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눈물을 삼키며 전경들에게 '시위대가 하는 욕을 가슴에 담지 말고 제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고 부탁한다. 한 전경은 배가 고파서 진압복을 입은 채 햄버거 가게로 들어갔는데, '시민들에게 위화감을 주니 나가라'고 해서 쫓겨났다고 했다. 화장실을 가더라도 20~30명씩 모아서 간다. 진압복 입은 채로 혼자서는 어딜 못간다."
―그런 사람들이 많나?
"상상할 수 없이 독한 말과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 모 신문사 법무팀장이라는 사람은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이라는 타이틀로 한 인터넷매체에 '광기 어린 폭력을 행사한 전·의경들의 행동은 모든 국민들의 마음 속에 또렷이 새겨져 언제까지나 기억될 것이다. 폭력을 행사한 자들이 제대를 한 후 어디서 무엇을 하건 그들의 이마에 새겨진 주홍글씨는 결코 지워지지 않고 그들의 삶을 옥죌 것이다'는 글을 썼더라. 그 글을 잃고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그분에게 전화해서 '전·의경 부모도 매도한 것이다. 삭제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전혀 없다"고 했다. 전·의경이 그걸 보고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겠나. 몸의 상처는 치료하면 되지만 마음의 상처는 평생을 간다. 제대한 뒤 사회를 보는 눈이 어떨까, 그게 걱정이다."
―자신의 입장에 따라 언론 보도에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방송과 일부 신문은 시위대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전·의경들의 폭력 장면만 계속 방송하고 시위대의 폭력은 내보내지 않는다. '폭력진압' '과잉진압'은 언론이 만들어낸 말이다. 촛불집회는 비폭력이고 무언(無言)의 시위가 돼야 한다. 어느 나라에서 대통령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겠다는데 가만히 있겠나."
―왜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한 것 같나?
"처음 촛불집회는 평화적이었다. 인터넷 카페에서 주최했고 중·고등학생들이 많았다. 5월 24일 처음 시위대가 도로로 나왔는데, 그때는 특정 단체가 가담해서 주도한 날이다. 특정 단체가 '청와대로 가자'고 선동하면서 폭력적으로 변했다고 본다."
―정부의 잘못은 없나?
"정부는 원칙이 없었다. 처음부터 공권력에 대한 확고한 원칙을 국민들에게 알려주고 시위에 대응했더라면 이렇게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전의경부모모임(http://cafe.daum.net/ParentsPolice) 회원들과 이 모임을 이끄는 강정숙 회장을 만나보았습니다. 부모들은 한결같이 "평화적인 시위"를 주장했습니다 /조인원기자
전·의경 부모 모임
2005년 5월 민주노총 산하 울산 건설플랜트노조 시위대가 경찰에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폭력시위를 벌이자, 당시 전·의경 부모들이 인터넷상에서 만든 모임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카페를 개설하고 있으며, 전·의경 아들을 둔 부모 등 685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폭력시위 추방 사진전이나 캠페인을 벌이고, 시위 현장에 나가 전·의경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거나 다친 전·의경을 치료하는 일도 한다. 회원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2007년 5월부터 회장을 맡고 있는 강정숙씨는 경기도 안양에 사는 전업주부다. 그의 아들은 인천공항에서 전경으로 근무하다 지난 4월 제대했다.
연일 벌어지는 촛불집회를 지켜보면서 남몰래 가슴 졸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전·의경을 아들로 둔 부모들이다. 최근 촛불시위가 폭력성을 보이면서 전의경 부모들은 더 가슴을 졸이고 있다.
촛불집회 사상 최대 인파가 운집한 6월 10일,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을 염려한 전의경 부모들은 직접 ‘전의경 지키기’에 발벗고 나섰다. 이들은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여 평화집회를 촉구하는 한편 대기중인 전의경들에게 사탕과 물을 나눠주기도 했다.
전의경 부모모임 강정숙 대표는 " 전의경들도 여러분의 친구이고 자식이고 이웃이다. 제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국민으로서 평화시위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유다혜 기자 youda602@chosun.com
[안준호 기자 liba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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