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여파 및 엔캐리 청산 우려로 주식시장이 사흘째 폭락하고 엔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치솟고 있다. 한마디로 금융시장이 공황 상태에 빠졌다. 정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엔캐리의 영향이 극히 제한적이라며 진화에 나서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일각에서는 증시 대폭락 직전에 콜금리를 올린 통화당국의 단견을 탓하는가 하면,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질타하기도 한다. 하루에 수십조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불안심리에 휩싸여 무작정 투매 대열에 끼어들기보다는 당국이 공시하는 정보와 우리 경제의 현주소를 냉정히 따져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이번 글로벌 금융불안 사태는 우리 정책의 잘잘못과는 무관하다. 외환보유고나 유동성 등 기초체력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다.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에 편승한 투기성 머니게임이 미국의 주택경기 침체와 금리 상승에 발목을 잡히면서 촉발됐다. 그리고 최근의 순매도 공세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개도국 평균보다 10%포인트가량 높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보유 비율이 우리 금융시장의 충격 진폭을 더 키우고 있을 뿐이다.

이번 글로벌 금융불안 사태는 불확실성이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상당기간 지속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대형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들이 유동성 위기에 처할 때마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출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 금융시장을 휘감고 있는 막연한 불안심리는 자칫 손실만 키우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당국은 불안심리가 실물경제에 주름을 주지 않도록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세심하게 강구하기 바란다.

“맛있는 정보! 신선한 뉴스!”

- Copyrights ⓒ서울신문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겨레] 거침없이 치솟던 주가가 ‘서브프라임 충격’에 힘없이 무너지자,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무척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증권사들이 내놓았던 증시 전망이 장밋빛 낙관론 일색이었기 때문입니다.

되돌아 보면, 언론들도 마찬가지 잘못을 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겨레>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충격파가 밀려오기 전에,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의 실상과 영향을 독자 여러분께 미리 예고하지 못한 점을 자책하는 게 아닙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하지 못한 예측을 한국의 신문에 기대하는 것은 솔직히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증시 과열의 위험성을 경고해야 하는 언론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던 점은 크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사실 코스피지수가 2000을 돌파하기 전까지는 저희도 신중한 보도 태도를 견지하려 애썼습니다. 코스피지수가 불과 석달 새 500 가까이 오르며 2000에 육박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건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정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증시 과열 양상을 지적하고 투자자들에게 냉정해질 필요가 있음을 주문했습니다. 마이너스 대출을 받아 주식 투자에 나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증권사 신용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빚내서 투자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경고성 기사도 여러 차례 내보냈습니다. 주위에서 “<한겨레> 주식 기사를 읽으면 돈을 못 번다”는 농담 섞인 핀잔도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주가의 고속 질주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지난달 말 사상 처음으로 2000을 돌파했습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대세 상승’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희도 흔들렸습니다. 결국 ‘주가 2000 시대’를 평가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고, 위험에 대한 주의는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세상사 이치가 모두 그렇듯이, 주식 투자에도 양면이 있습니다. 고수익과 고위험입니다. ‘대박’을 낼 수도 있지만, ‘쪽박’을 찰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언론의 주가 보도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섣부른 주가 전망은 경계해야 할 대목입니다. 주가 예측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로 자주 인용되는 사례가 미국의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의 실험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2000년 펀드매니저와 원숭이를 대상으로 1년간 모의 투자 게임을 해보았습니다. 원숭이에게 다트를 던져 투자 종목을 고르게 한 뒤 펀드매니저들이 고른 종목과 수익률을 비교했는데, 원숭이가 이겼다고 합니다.

언론의 속성상 주가 전망을 아예 안 할 수는 없겠지만, 보도의 무게중심은 주식 투자의 위험성을 환기시키고 위험을 최소화하는 투자 자세 등을 알리는 데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주가가 급등할 때는 언론의 냉정한 자세가 더욱 요구됩니다. 주가가 급락할 때도 시장의 불안이 필요 이상으로 증폭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는 게 언론의 올바른 자세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우리 언론들의 보도 태도를 보면 정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를 때는 시장보다 더 흥분하고 떨어질 때는 더 야단법석을 떱니다. 이번뿐만 아니라, 1994년에도 그랬고 2000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충격이 얼마나 더 계속될지 지금으로선 정확히 판단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의 과정만으로도 증권사, 투자자, 언론 모두 교훈을 얻기에 충분하다는 점입니다.

안재승 경제 부문 편집장jsahn@hani.co.kr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발 신용경색 위기를 보면서 꼭 10년 전 우리나라의 경제위기와 비교하게 된다. 차이점은 많지만, 실물 부문의 부실이 은행의 불안을 일으키고 위기가 다시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산된다는 점이 흡사하다.

실물 부문의 부실은 우리나라의 경우 수익성이 급격히 하락한 기업 부문이었고, 미국의 경우는 과열됐던 주택시장의 침체와 위험한 모기지 채권시장에 과다하게 자금을 쏟아 부은 투자회사들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금융위기가 극단화하면서 자금줄이 완전히 끊기고 국가가 부도상태에 빠지는 지경까지 갔다. 반면, 이번 위기는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으나, 미국의 극단적 경제위기 위험성에 대한 우려는 별로 없다.

지난 주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재할인율 인하가 뉴욕증시의 급반등으로 이어진 것도 사태에 대한 투자자들의 생각이 우리나라 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나타낸다.

● 근본 차이는 '최종 대부자' 신뢰

오늘의 미국 경제가 당시 한국 경제보다 더 낫고 훌륭하기 때문일까. 사실 위기 이후 비판과 자기혐오의 홍수 속에서 기업의 무모한 설비투자, 은행의 불건전한 대출 관행, 기업과 정치권의 유착 등 한국경제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났다. 영미권의 논자들은 '아시아적 가치'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런 구조적 문제가 경제위기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 경제 역시 이런 식의 문제점이 없는 게 아니다. 한 해 수 조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월스트리트의 수많은 헤지펀드는 자기자본의 10배가 넘는 신용 레버리지(지렛대)를 물쓰듯 쓰고 있다.

당시 한국 부실기업들의 부채비율이 1,000%가 넘었다고 법석을 떨었지만, 오늘날 미국의 첨단 금융기업 역시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거시경제도 그렇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채무국일 뿐만 아니라, 최대의 경상수지ㆍ재정적자국이다. 따라서 어느 경제에나 있기 마련인 구조적 문제가 극단적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은 어딘지 어색하다.

금융불안이 우리나라에선 한 순간에 극단적 경제위기로 진화한 반면, 미국은 그럭저럭 연착륙(soft landing)을 점치게 되는 근본적 차이는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그 차이를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에 대한 시장의 믿음이라고 본다.

'최종 대부자'란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갚아야 할 자금을 정상적으로는 구하지 못하는 채무자들에게 최종적으로 긴급자금을 빌려줄 수 있는 주체를 말한다. 국가경제에서는 중앙은행이 보통 이 역할을 한다.

문제는 중앙은행까지 위험할 경우다.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서 천재지변이 없는 한 국채 발행을 통해 얼마든지 달러를 조달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유럽, 일본을 수족처럼 움직일 수도 있어 '최종 대부자'로서 거의 절대적 신뢰를 얻고 있다.

● 아시아 역내 협력체제 구축해야

반면, 경제위기 당시 우리나라에는 '최종 대부자'가 없었다. 마지막 순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전화를 빌미 삼아 일본마저 자금 지원을 거부하자, 끈 떨어진 연처럼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최종 대부자'에 대한 확신을 줄 수 없다면 언제라도 금융위기를 다시 겪을 수밖에 없다. 1997년 경제위기를 전후해 일본 주도로 아시아통화기금(AMF) 구상이 추진됐다가 무산됐지만, IMF와 달리 아시아시장의 안정을 위해 각국의 이해에 부응할 수 있는 역내의 '최종 대부자' 구축이 시급하다.

새로운 아시아의 협력틀에서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을 가다듬을 때다.

뉴욕=장인철특파원 icjang@hk.co.kr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아이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계속 피어 오르는 질긴 다년생화(花)’.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라는 명저를 남긴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금융위기를 이렇게 비유했다. 과거 수많은 쓰라린 실패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몰역사성을 꼬집은 말이다.

그에 의하면 시장이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지고, 신용을 남발할 때 위기는 시작된다. “광기 국면에서는 언제나 돈이 공짜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기 징후가 보이면 출입문이 닫히기 전에 빠져 나가려는 심리가 작용해 시장은 패닉에 빠지고, 주식 부동산등 자산의 거품이 붕괴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 2000년 이후 세계 금융시장은 저금리로 인해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흥청망청 돈잔치를 벌여왔다. 1980년 10조달러에 불과하던 금융자산은 2005년 140조달러로 불어났다. 첨단 금융기법을 활용한 파생상품 규모는 16년 만에 83배나 폭증했다. 헤지펀드 같은 투기자본은 이러한 자금을 무기로 전 세계 주식, 부동산, 외환 시장을 마음껏 휘젓고 다녔다.

유동성 과잉과 자산 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금융자본이 세계를 지배하는 ‘신 자본주의’ 시대가 열렸다는 낙관론에 묻혀버렸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이러한 광기의 부산물이다.

▲ 미국의 모기지 부실이 세계 금융시장의 패닉으로 번진 표면적 이유는 얽히고 설킨 파생금융 상품의 복잡성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은 복잡한 유동화 과정을 거쳐 수많은 파생상품으로 바뀐 뒤 전세계 투자자에게 배분됐기 때문에 누구도 정확한 피해 규모를 알 수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위기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본질적 이유는 금융의 기본인 위험(리스크) 평가를 외면한 금융회사의 탐욕이다. 파생상품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리스크 평가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 위험성을 알면서도 폭탄 돌리기 식으로 상품을 남발해온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근 금융자본주의 특집에서 “세계경제는 자유방임주의가 횡행하던 20세기 초와 상황이 흡사하다”며 “무한 자유경쟁의 끝은 제1차 세계대전, 대공황이었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향방은 아직도 예측불허이지만 금융자본주의의 한계와 문제를 드러낸 점은 분명하다.

한국 금융시장은 외부 변동성에 어느 나라보다 취약하다. 2,000이 넘던 주가지수는 이번 사태 이후 1,600대로까지 주저앉았다. 남의 일 보듯 한가로운 평가만 할 때가 아니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아이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한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경제지표는 장밋빛 일색이었다. 경기선행지수를 반영한다는 코스피지수 역시 2000포인트를 넘어 오는 연말엔 3000포인트도 가능하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최근 증시는 유례 없는 폭락장을 맞고 있다. 미국발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서 시작해 엔캐리 자금 청산 위험까지 더해져 환율도 불안하다.

국민 재테크라 불릴 만큼 열풍이었던 펀드 수익률 역시 급락했다. 경제부처 관계자나 증권사 애널리스트만 믿고 투자에 나선 사람들의 손해가 엄청나다고 한다.

주가를 알아맞히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불안 요소를 미리 파악해 국민에게 알리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며칠 전에는 경제부총리가 외환위기 같은 금융위기가 다시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바로 며칠 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경기를 낙관해 콜금리를 인상했다. 경제 주체들 역시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당국의 불확실한 전망이 금융시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듯하다. 금융위기를 경험한 우리 국민들은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알고 있다. 정부는 철저한 분석과 적절한 대응으로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최지현(인터넷 독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겨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민간 은행에 빌려주는 재할인율을 0.5%포인트 인하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빨리 진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조처로 미국과 유럽 증시가 반등하면서 금융시장은 어느 정도 제정신을 찾은 듯하다.

하지만 국제 금융시장이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연쇄적인 펀드 환매와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청산을 막는 응급처방만 나온 상태라고 봐야 할 것이다. 프랑스 비엔피파리바은행의 펀드 환매 중단처럼 다른 악재가 발생하면 언제든지 주가가 폭락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게다가 세계 각국은 최근 몇년 동안 유례없는 과잉 유동성으로 자산 가격의 거품이 부풀 대로 부푼 상황이다. 이번엔 부동산에서 문제가 터졌지만 다른 곳에서 비슷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가라앉는다 해도 자산가격의 거품이 터질 위험성은 상존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시장에서 신용경색 사태가 발생하면 실물경제와 상관없이 연쇄적인 충격을 주게 된다. 따라서 초기 진화가 중요하다. 미국, 유럽, 일본 중앙은행들이 지난 며칠 동안 수백조원을 금융시장에 쏟아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재할인율 인하로 발등의 불은 껐다고 하지만 그 정도에서 마무리될 수 있느냐는 미지수다. 사실 위기가 진정 국면에 들어선 것인지 아직 시작에 불과한 것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우리 정부와 중앙은행도 상당히 어려운 처지다. 사태의 근본 원인이 과잉 유동성으로 인한 것이란 점에서는 지속적으로 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태에서 돈줄을 죄면 오히려 위기를 부추길 수 있다. 장단기 대책을 적절하게 구사할 수밖에 없다.

주의해야 할 것은 때를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금융시장의 위기를 결코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정책 당국자들의 몇 마디 말로는 부족하다. 투자심리만 살아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단기 처방과 함께 헤지펀드 자금 철수와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청산, 이로 인한 원화가치 하락 및 440억달러의 외화대출 문제 등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중앙일보 이좌근]

지난주 국내 증시는 ‘공포’ 그 자체였다. 이틀 사이에 주가가 20% 가까이 하락했다. 지수 2000 시대를 연 지 불과 보름 만이다.

왜 갑자기 시장이 돌변했을까. 먼저 주가가 단기간에 너무 빨리 올랐다. 우리 증시는 전 세계적으로 올 들어 주가가 가장 많이 오른 시장 중 하나다. 4월부터 3개월 만에 600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다급해진 투자심리도 주가 폭락에 한몫했다. 2005년 2월 증시가 1000선을 다시 회복했을 때 그 심드렁했던 분위기를 잊을 수 없다. 이후 코스피지수가 1400까지 오르는 동안에도 개인들은 팔자로 일관했다. 그러다 1500선을 넘어서자 다급해졌다. 빚을 내 산 주식(신용매수 잔액)이 7조원을 넘기도 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우려를 표할 정도였다. 급하게 먹은 떡은 체하게 마련이다.

결정타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문제다.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하게 전개되면서 전 세계 증시를 흔들었다. 사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3500억 달러로, 미국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문제될 게 없는 수준이다.

문제는 불투명성이다. 고도화된 파생금융상품 기법을 활용해 신용 손실 위험을 분산시키는 과정에서 누가 얼마나 손실을 봤는지 아무도 모르게 됐다. 불안감이 커지면서 글로벌 증시가 동반 급락했다.

앞으로 우리 주식시장은 폭락의 위기를 벗어나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아니면 여기서 주저앉을까. 그 해답을 구하기 위해선 일단 우리 증시가 왜 급등했는지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 기업의 체질 개선과 수익성 증가다. 외환위기 이전 상장기업의 연간 이익 규모가 6조원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50조원으로 늘었다. 기업 실적이 좋아지면 주주가치(주가)는 당연히 올라간다.

시장 수급의 질도 개선됐다. 저금리가 정착되면서 저축에서 투자로 마인드가 바뀌기 시작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노후생활자금 마련을 위해 적극적으로 증시에 뛰어들었다. 반면 기업은 증자를 하지 않고 오히려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공급을 줄이고 있다. 수요는 많아지는데 공급이 줄면 물건 값은 오르게 마련이다.

이런 시장의 상승 동력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물론 단기적으로 국내증시는 글로벌 증시의 향방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 다행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지난 주말 재할인율을 0.5%포인트 내리면서 시장 심리를 안정시켰다. 아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태의 파장이 실물 부문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외국인의 매도세도 지수를 출렁이게 할 수 있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서만 5조7000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관련, 펀드의 ‘유동성 경색’에 대비해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팔자’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사태가 진정되면 무차별적인 매도세는 완화될 것이다. 결국 우리 증시의 대세 상승 기조는 유효하다. 다만 글로벌 증시에 따라 조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 투자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현금 비중을 일정 수준 유지해야 한다. 대세상승 국면에서의 조정장은 좋은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다. 현금이 없다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적립식 투자 방법도 대안이다. 이는 주가가 급등락하는 시기, 주식의 평균 매수 단가를 낮춰줄 수 있다. 또 언제 사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덜어 준다. 적립식은 직장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고액 투자자들에게도 필요한 투자 방법이다.

무엇보다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가 중요하다. 이제 시장은 개인이 맞서기에는 너무 복잡해졌다. 기관과 외국인을 상대로 개인이 이기기는 힘들다. 펀드에 가입한다는 것은 곧 개인이 기관투자가가 되는 것을 뜻한다. 대표적인 기관투자가인 자산운용사는 개인이 맡긴 돈을 대신 굴려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좌근 동부자산운용 운용본부장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journalist.asp

[감각있는 경제정보 조인스 구독신청 http://subscribe.joins.com]

[ⓒ 중앙일보 & Join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최인아 제일기획 전무
청년 실업률이 8%에 달하고 청년 실업자 수는 1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지옥 같은 고3 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입학해도 4년 후 또 한 번의 취업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능이 끝나면 바로 공무원 시험 준비에 돌입하는 것이 요즘 세태라 하던가.

그러나 취업이 어렵다고는 해도 매년 일정 수의 젊은이들이 학교와 가정의 품을 벗어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그간 나는 20년 넘게, 회사의 선배로서 신입사원들의 첫출발을 지켜봐 왔다. 그들은 한결같이 패기와 야망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지만, 출발선에 선 그들의 모습은 실은 비슷비슷해서 잘 분간이 되질 않고, 입사 후 얼마간은 성과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날한시에 같이 출발했지만 도달해 있는 지점은 더 이상 같지 않고 퍼포먼스(성과·실적) 에서도 우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처음엔 반짝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존재가 흐려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의 인물도 나온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재능일까. 노력일까. 아니 이런 도식적인 답 말고는 없는 것일까. 부모에게서 빈약한 재능을 물려받은 사람이나, 천재가 아닌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계속해서 퍼포먼스를 내게 하는 좀 더 생산적인 발견은 없는 것일까.

나는 ‘브랜드’에 주목한다. 브랜드라고 하면 우리는 애니콜이나 벤츠, 샤넬 같은 단어를 우선 떠올린다. 그러나 그런 것만이 브랜드는 아니다. 이름을 걸고 일하는 우리 각자가 다 브랜드다. 신입사원으로 출발해서 성장하고, 계속해서 ‘잘한다’ 소리를 들으며 오래도록 뛰어난 성과를 낸다는 것은 결국 자기 분야에서 파워 브랜드가 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기업이 브랜드 파워를 키우고 파워 브랜드가 되고자 애쓰는 것처럼, 개인이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로 평가받고 정상에 선다는 것은 곧 자기 이름 석 자를 그 분야의 파워 브랜드로 올려놓는 것과 같다. 생각해 보라. 사람들이 벤츠나 BMW 같은 명차를 선호하고 샤넬이나 구찌 같은 명품 브랜드에 열광하는 것이나, 몸이 아플 때 이름난 명의(名醫)를 찾고, 소중한 재산을 안심하고 맡길 이름난 펀드 매니저를 찾는 것이나, 실은 같은 현상인 것이다. 그 분야의 파워 브랜드가 누구인지를 찾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파워 브랜드는 그 브랜드만의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한다. 볼보는 안전, 스타벅스는 집과 직장 사이의 제3의 공간이라는 가치처럼 말이다. 이름을 걸고 일하는 개인 역시도 마찬가지다. 남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는 거다. 이래서 파워 브랜드는 소수에 국한되는 것이고, 그러므로 사람들은 더더욱 소수의 브랜드에 열광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파워 브랜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브랜드의 본질이 이렇기 때문에, 자신을 브랜드로 보게 되면 일을 대하는 태도도, 스스로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시장 전체에서 자신의 브랜드 파워는 어느 정도인지, 자신의 브랜드는 어떤 가치를 발생시키고 있는지 점검하게 된다. 이름 석 자에 걸린 신뢰를 지키려 애쓰게 되고, 긴 승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당장의 연봉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어야 계속 브랜드 파워를 쌓고 장차 그 분야의 파워 브랜드가 될지를 기준으로 놓고 일하게 되는 것이다.

라다 차다와 폴 허즈번드 같은 마케팅 컨설턴트는 우리나라와 아시아의 명품 브랜드 소비 열풍을 가리켜 럭스플로전이라고 했다. 럭셔리(Luxury·명품)와 익스플로전(Explosion·폭발)의 합성어로 ‘명품의 폭발’이란 뜻이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는 생각을 바꿔 볼 일이다. 그런 명품 브랜드를 소비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그런 브랜드가 되어 볼 일이다. 스스로를 명품 브랜드로, 파워 브랜드로 키워 볼 일이다. 더구나 지금은 평균 수명 80세의 시대다. 긴 승부를 걸어야 한다.


[최인아 제일기획 전무·광고 카피라이터 ]
[☞ 모바일 조선일보 바로가기] [☞ 조선일보 구독하기]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중앙일보 송재은] 최근 국제경제를 이야기할 때 중국이나 아시아 국가의 경상수지 흑자에는 관심이 많아도 석유수출국의 경상수지 흑자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그러나 지난해 한 해만 보더라도 이들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중국 및 아시아 신흥경제 흑자 총액의 두 배에 가까운 5700억 달러 이상이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경상수지 흑자가 이렇듯 막대하다는 얘기는 결국 석유수출국들의 해외순자산이나 외환보유액, 국제석유자본이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말이다.

최근의 국제석유자본 팽창은 더 말할 것도 없이 2002년 이후 고유가와 이에 따른 오일머니(석유수출수입)의 증가에서 주로 비롯된 것이다. 2002년 두바이유 기준 평균 유가가 배럴당 26달러일 당시 3000억 달러 수준이던 산유국들의 석유수출액은 지난해 평균 유가가 배럴당 62달러 가까이 상승함에 따라 약 9700억 달러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5년간 총 1조4000억 달러에 달하는 국제석유자본의 급격한 팽창에는 오일머니의 증가뿐 아니라 석유수출국들의 상품 및 서비스 수입 성향이 감소한 것도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기간 이들의 석유수출액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은 29%에서 60%까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1990년대에 저유가로 타격을 입었던 석유수출국들이 그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번 고유가 기간에는 소비 대신 저축에 신경을 쓰고 있고, 그렇게 모은 자금이 해외투자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석유수출국들의 GDP 대비 저축률은 지난 5년간 11%포인트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국내투자의 비중은 거의 변하지 않았고 해외투자를 의미하는 경상수지 흑자의 비중만 올라갔다.

현재의 고유가 기조가 상당기간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석유수출국들이 벌어들이고 있는 오일머니의 규모는 당분간 눈에 띄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이다. 또한 풍족한 오일머니가 공급되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 자금이 소비나 국내투자를 위한 수입 대신 해외투자에 쓰이는 비중은 더욱 커지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만큼 국제석유자본의 급격한 팽창이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이번 국제석유자본의 팽창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과거에는 아랍 산유국들이 미국이나 유럽의 은행에 예치하거나 또는 우량자산을 사들이는 등 극히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용했으나, 이제는 이들이 해외투자를 다양한 지역에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분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국제결제은행(BIS)은 국제석유자본의 운용 가운데 미국과 독일 금융시장 및 회원은행의 자료에 의해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석유수출국들이 투자 지역을 다변화하거나 역외금융센터의 이용을 늘리고 있고, 또 헤지펀드나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협(IIF)의 판단도 유사하다. 지난 5년간 5400억 달러 늘어난 걸프협력회의(GCC) 해외자산 가운데 주식에 대한 투자 비중이 38% 이상을 차지해 채권이나 은행예금 등 다른 자산에 대한 투자에 비해 주식 투자 비중이 높아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재투자한 부분을 고려하면, 아시아에만 600억 달러를 훨씬 상회하는 자금이 투자됐을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해 쿠웨이트투자청(KIA)이 중국공상은행(ICBC) 지분을 대량 매입한 일이나, 우리나라 증시에서 대부분 외국계 투자자들이 매도세를 보이는 가운데서도 아랍 산유국들은 매수세를 유지했던 일도 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과거에 유가가 오르면 우리는 아랍 산유국들에 대한 상품수출 및 건설수주를 늘리는 일에 집중했었다. 아직도 비중이나 규모 면에서 상당부분의 오일머니가 상품수입을 통해 해외로 환류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이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랍 산유국들의 해외투자 성향이 강해지고 더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오일머니 이용에 대한 우리의 관점도 바뀔 필요가 있다. 경상수지 흑자의 대부분이 미국 국채 등 안정적 달러화 자산을 중심으로 한 외환보유액 증가로 이어지는 중국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또 외자공급이 불충분하다고 할 수 없는 지금의 우리 상황에서는 과거의 산업자금 유치활동과는 다른 새로운 방안이 요구된다. 앞으로는 오일머니가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글로벌화에 유용한 금융자본이라는 시각에 기반을 두어야 할 것이다.

금융산업의 글로벌화라는 측면에서 국제석유자본에 접근하는 구체적인 방안의 하나로는 이슬람 금융에의 참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슬람 투자자들은 율법에 의해 인가받은 이슬람 금융상품에 대해 상당히 높은 충성도를 보이고 있으며, 그 규모는 총 45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슬람 금융은 원래 선진국 금융기관들에 의해 개발돼 런던 금융시장 등에서 거래돼 왔으나 최근에는 말레이시아나 바레인 등에서 해당 지역 종교적 배경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이들 국가는 자국 금융시장을 이슬람 금융허브로 육성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이 이러한 움직임을 활용해 이슬람 금융에 참여할 수 있다면, 이에 유입되는 중동 석유자본을 직접 운용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지도 축적 및 이슬람 친화적 이미지 구축을 통해 향후 중동 금융시장에서 활동하는 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이 정부 차원의 지원을 받으며 말레이시아에서 수억 달러 규모의 '이슬람 채권'을 발행하고, 내년 중동에서 채권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기를 놓친다면 미래에도 우리 경제의 중동 석유자본 이용은 글로벌 금융회사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형태가 된다는 인식 아래, 금융기관 간 정보교환과 공동연구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 및 정보수집 등에 대해 금융계와 정부가 상호 협력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송재은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journalist.asp

[감각있는 경제정보 조인스 구독신청 http://subscribe.joins.com]

[ⓒ 중앙일보 & Join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동아일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전개 과정은 교과서가 줄 수 없는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무엇보다 ‘스승’처럼 여겨 온 금융 선진국도 완벽하진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 점이 그렇다.

항상 시장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선진국 정부, 중앙은행, 최고의 투자가도 모두 초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골드만삭스, 베어스턴스, BNP파리바 등 세계 최고의 금융회사도 비틀거렸다.

전문가들도 원인과 해법을 놓고 “즉각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모럴 해저드를 불러온다” “책상물림인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판단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등 제각각이다.

하지만 최근 한 달간 파이낸셜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국 언론에 나타난 전문가들의 견해를 살펴보면 이번 사태와 관련해 공감대를 넓혀 가는 두 가지 메시지가 있다.

첫째, 금융시장이 한 번도 겪지 못한 종류의 불확실성에 패닉(공황)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서구 자본주의 300년 역사에서 금융시장의 급등락은 항상 있어 왔다. 하지만 별개의 시장이던 주식, 채권, 부동산, 통화시장이 지금처럼 긴밀하게 연결돼 한 곳의 내부 충격이 전체 금융시장으로 이처럼 빠르게 퍼져 나간 것은 처음이다. 금융 세계화, 헤지펀드의 과도한 차입도 이를 증폭시켰다.

둘째는 위험을 쪼개 나눠 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복합금융상품이 오히려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수 있으며 이를 통제하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선진국의 이런 깨달음은 우리에게 당혹스러운 신호를 준다. 외환위기 이후 ‘모범답안’으로 여기며 무조건 따라가던 선진국이 항해 도면도 없이 ‘금융 세계화’라는 미지의 바다를 항해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

스승의 한계를 발견한 지금, 스승을 바꿔야 할까. 하지만 세계화의 포기는 다시 뒤로 돌아가는 길이다. 컴퓨터 바이러스가 무서워 인터넷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유일한 대안은 스승의 한계를 알고 그를 뛰어넘는 길이다. 우선 스승과 어깨를 나란히 할 실력을 쌓는 것이 급하다.

외환위기 전 한국의 금융경쟁력은 참담했다. 리스크 분석 능력도 없이 복합금융상품을 덜컥 샀다 수백 억 원을 날린 증권사도 있었다. 경제 관료들은 국가 부도 직전까지 “한국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는 소리만 반복했다.

지난 10년간 금융 경쟁력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금융회사의 행태를 보면 갈 길이 멀다. 불과 보름 전까지 낙관론 일색인 보고서가 쏟아져 나왔다. 경험도 없이 신흥시장에 투자하는 해외투자 펀드도 불안하다. 은행과 보험사는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다.

정부도 마찬가지. 13일 금융 당국의 간부들이 모여 회의를 한 뒤 “한국은 별 피해가 없다”고 발표했지만 하루 만에 주가가 폭락했다. 시장의 불안을 가라앉히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사안에 대한 정부의 깊이 있는 이해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대목이다.

20일 주가 상승을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장의 마무리로 판단하면 오산이다. 선진국이 그들도 처음인 바닷길에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가며 어떤 교훈을 얻는지 지켜봐야 할 시간이다.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새로운 길이기에 우리에게도 동등한 기회의 문이 열려 있다.

이병기 경제부 차장 eye@donga.com

내 손안의 뉴스 동아 모바일 401 + 네이트, 매직n, ez-i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