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민간 은행에 빌려주는 재할인율을 0.5%포인트 인하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를 빨리 진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조처로 미국과 유럽 증시가 반등하면서 금융시장은 어느 정도 제정신을 찾은 듯하다.

하지만 국제 금융시장이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연쇄적인 펀드 환매와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청산을 막는 응급처방만 나온 상태라고 봐야 할 것이다. 프랑스 비엔피파리바은행의 펀드 환매 중단처럼 다른 악재가 발생하면 언제든지 주가가 폭락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게다가 세계 각국은 최근 몇년 동안 유례없는 과잉 유동성으로 자산 가격의 거품이 부풀 대로 부푼 상황이다. 이번엔 부동산에서 문제가 터졌지만 다른 곳에서 비슷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가라앉는다 해도 자산가격의 거품이 터질 위험성은 상존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시장에서 신용경색 사태가 발생하면 실물경제와 상관없이 연쇄적인 충격을 주게 된다. 따라서 초기 진화가 중요하다. 미국, 유럽, 일본 중앙은행들이 지난 며칠 동안 수백조원을 금융시장에 쏟아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재할인율 인하로 발등의 불은 껐다고 하지만 그 정도에서 마무리될 수 있느냐는 미지수다. 사실 위기가 진정 국면에 들어선 것인지 아직 시작에 불과한 것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우리 정부와 중앙은행도 상당히 어려운 처지다. 사태의 근본 원인이 과잉 유동성으로 인한 것이란 점에서는 지속적으로 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태에서 돈줄을 죄면 오히려 위기를 부추길 수 있다. 장단기 대책을 적절하게 구사할 수밖에 없다.

주의해야 할 것은 때를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금융시장의 위기를 결코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정책 당국자들의 몇 마디 말로는 부족하다. 투자심리만 살아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단기 처방과 함께 헤지펀드 자금 철수와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청산, 이로 인한 원화가치 하락 및 440억달러의 외화대출 문제 등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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