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분배는 뒷전으로 밀려 후유증 커질수도
물가희생·재정부족·재벌편향 등 비판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선거 운동 기간 중 제시한 공약들을 보면,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성장 우선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성장 우선주의란 한마디로 분배 문제는 나중으로 미루고 먼저 파이부터 최대한 키우자는 얘기다. ‘동반 성장’을 내세워 성장과 분배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보려 했던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방향과 크게 다른 것이다. 또 이 당선자는 ‘작은 정부, 자유로운 시장’이라는 경제정책 운용 틀을 통해 성장 우선주의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감세와 규제 완화가 당연히 핵심 정책 수단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 경제정책 방향은?=이 당선자의 성장 우선주의 철학은 그가 선거 운동 기간 내내 강조했던 ‘대한민국 747’ 공약에 잘 녹아 있다. 747이란 △연간 7% 경제 성장 △10년 안에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 △세계 7위 경제 대국 도약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하나로 묶은 것이다.
‘7% 성장론’은 현재 정부와 경제 전문가들이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4%대 중반으로 보고 있는 것에 비춰볼 때 성장 여력을 지금보다 2~3%포인트 더 끌어올리겠다는 얘기다. 이 당선자는 △시장 경제 질서 확립 △규제 완화 △인적 자본 확충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산성 증가 요인을 통해 이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5년 전 당선자 시절 주창한 ‘희망 효과 2%’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또 한반도 대운하 건설 같은 ‘눈에 보이는’ 대형 건설공사와 세금 인하 카드도 성장률 수치를 높일 수 있는 수단으로 제시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올 1분기부터 회복세를 보이던 국내 경기가 최근 국제 유가 급등과 서브프라임 사태 등 대외 변수들에 발목이 잡혀 주춤하고 있는 만큼, 경기 상승세에 다시 탄력이 붙을 수 있도록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팀장은 “예를 들어 감세 정책만 하더라도 정부에 집중돼 있는 소비 여력을 민간으로 옮겨줌으로써 경기 회복세가 힘을 받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안정 기조 흐트러질 수도=하지만 새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성장 드라이브 정책으로 나갈 경우 우리 경제가 큰 후유증을 앓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표적인 게 물가 부담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내년 경제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어느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기본 철학과 관계가 없이 경기 부양에 나설 수 있다고 본다”며 “다만 내년 경제 운용의 최대 과제는 물가 관리라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내년엔 총선이 예정돼 있어 성장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며 “자칫 정치 논리에 밀려 물가가 희생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성장 드라이브 정책은 금융시장에도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송태정 엘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몇년 동안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상당히 신장됐는데, 성장을 명분으로 무리한 경기 부양에 나선다면 거품을 키우고 통화정책의 투명성을 떨어뜨려 금융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감세정책도 마찬가지다. 오석태 한국씨티은행 경제분석팀장은 “감세를 내세우면서도 정작 세금을 줄이는 대신 정부 지출을 어떻게 줄일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부족하다”며 “레이건이나 부시 등 보수 정권 아래서 재정 구조가 망가진 사례들은 감세가 곧 성장을 이끈다는 일종의 ‘서프라이즈 경제학’의 허상을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 공정한 룰 훼손 말아야=이 당선자는 또 △금산분리 원칙 △출자총액제한제 △종합부동산세 등 참여정부의 핵심적인 규제 정책들을 상당 부분 풀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공약에서 알 수 있듯이, 규제 정책에 대한 이 당선자의 기본 철학은 ‘원칙적 허용·예외적 금지’이다. 참여정부가 견지해온 ‘원칙적 금지·예외적 허용’과는 정반대다. 이 당선자가 공약으로 제시한 ‘규제 일몰제’의 도입이 대표적인 예이다. 규제 일몰제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규제의 효력이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제도다. 또 이 당선자는 현재 13%(1억억 이하)~25%(1억원 초과)인 법인세율도 20% 앞팎으로 내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시장 질서를 바로 세우는 데 기여해 온 이들 정책이 대폭 완화될 경우 그 혜택은 재벌에만 돌아가고 시장 질서가 깨질 가능성이 높다.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거시적인 경기 활성화 문제와 미시적인 시장 규율 문제는 엄연히 다른 것으로, 둘을 혼동해서는 안된다”며 “금산분리나 부당 내부거래 금지, 담합 차단 등 외환위기 이후 시장 규율을 되찾기 위해 도입한 제도를 훼손하지 말고 유지하는 쪽으로 정책을 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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