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유럽에는 베르사유 궁전, 피사의 사탑, 에펠탑 등 고전과 근대를 상징하는 건축물만 있는 게 아닙니다. 유럽의 건축미학은 1990년대 이후 새로운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파리를 시작으로 프라하, 노이스, 빈을 통해 건축의 미래를 내다보는 21세기 유럽 건축기행을 네 차례 연재합니다.
17세기 말 루이14세는 앵발리드를 건설하라 명했다. “짐이 그것을 원하노라.” 19세기 말 구스타브 에펠은 자신의 이름을 딴 탑을 세웠다. 역시 내심 ‘누가 뭐라든 내가 원해’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세기를 훌쩍 뛰어넘어 20세기 말, 프랑스 제5공화정 최초로 좌파인 사회당이 대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세계적인 중심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기념비적인 건축 사업, 즉 그랑 프로제(Grand Projet)에 착수한 미테랑 정부는 대대적인 사업을 다음과 같이 수식했다. “대중을 향해 열린, 엘리트주의 타파, 귀족문화에서 시민문화로의 전환.”
물, 공업적 수단에서 공공의 요소로
묵직하고 풍요롭게 흐르는 물가, 눈이 멈춘 곳에는 각각 특유의 역사를 가진 땅 위에 만들어진 세 개의 현대식 공원이 있다. 도시 안의 공업시설을 외부로 몰아내고 공공의 이름으로, 공공을 목적으로 한 거대한 계획, 공원. 그곳에서 물은 공업적 수단에서 공공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요소, 혹은 경관 산업의 요소로 치환되어 있다.
파리의 서쪽, 앙드레 시트로앵 공원 : 에밀 졸라 거리를 따라 미라보 다리로 간다. 앵발리드가 멀어지고 잠시 후 오른쪽으로 에펠탑이 따라오는 센강변에 가지처럼 딱 붙어 선 시트로엥 공원(Park Andre Citroen)이 나타난다. 드골이 사랑했던 자동차, 유명한 달걀 실험으로 회자되는 소시민들을 위했던 자동차, 역사상 최초로 애프터서비스를 실시했던 시트로앵. 공장을 허문 땅에는 무엇이든 들어앉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바스티유 오페라가 아닌 시트로앵 오페라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전체 23만㎡의 부지 중 센강변에 면하는 14만㎡를 공원에 할애했다.
1985년에 실시된 공모전에서 파리시가 요구한 설계조건은 ‘미적으로 파리가 프랑스와 외국에 미친 영향을 반영할 것’, ‘정원의 역사에 현대적인 트렌드를 대표할 수 있도록 할 것’, 그리고 ‘공원이 주변 거주자를 위한 장소’이면서 ‘현대 메트로폴리스의 다양한 요소를 통합시킬 것’이었다. 그리하여 공장이 있던 땅은 유리와 나무기둥으로 만든 대형 온실 두 개, 센강까지 펼쳐진 잔디밭과 수로, 다양한 신화를 배경으로 하는 작은 정원들과 온실들로 구성된 현대적인 도시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 산책을 하는 노부부가 한적한 공원의 수로를 따라 오후의 한때를 보내고 있다. 공간은 곳곳의 작은 통로로 도시와 이어지고 연장되어 고립감이나 단독감이 적다. 자연의 것들이 인공적으로 다듬어지고 인공적인 것들이 자연과 교합하면서 만들어 내는 이미지에는 규칙성과 균일성이라는 특질들과 연결된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기하와 수학이 지배하는 시각 속에서 즉각적인 기쁨을 맛보기는 어렵다. 유리온실에 갇힌 자연은 박물관의 유물처럼 전체의 질서에 순응하도록 강요되고 나 역시 스스로 질서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인다. 이곳의 질서에 편입되어 일정 시간 함께했을 때, 그들의 질서 속에서 나의 감정이 단순해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 평온이 온다. 그것이 시트로앵 최후의 애프터서비스라 느껴졌다.
포도주 레일이 남아있는 베르시 공원
파리의 동쪽 베르시 공원 : 미테랑 국립도서관의 매끈한 목조 계단에 서서 센강 건너를 바라본다. 왼쪽에 베르시 멀티 스타디움이, 중앙으로 넓게 녹지대가, 그리고 오른쪽에 베르시 빌라주(Bercy village)가 낮게 자리하고 있다. 베르시 구역은 원래 수백 년 동안 와인 무역의 중심지였다.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포도주 창고로 쓰였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의 확장으로 포도주 창고는 외곽으로 옮겨졌다. 녹지를 기본 울타리 삼아 포도주 창고라는 땅의 역사를 재현하는 베르시 공원에는 예전 포도주를 운반하던 레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주민들이 참여하여 가꾸는 작은 정원과 과수원이 있고, 그 사이사이 다양한 형태의 산책로가 있다. 포도주 세금 사무실은 정원 박물관이 되었고 술 창고는 베르시 빌라주라는 이름으로 카페나 상점, 박물관, 그리고 제빵 아카데미 등으로 쓰이고 있다.
공원을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벼운 운동복과 슬리퍼 차림의 파리지앵이다. 공원과 경계 없이 서 있는 주변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공원은 정원으로 열려 있다. 자신들의 앞마당에 나가듯 이곳을 찾고, 공원을 가로질러 센강변으로 간다. 주변 건물과 공원, 그리고 센강을 아우르는 막힘 없는 흐름은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다. 파리 사람들은 이곳을 20세기 마지막 공원, 파리의 미래라 말한다. 도시에 구현된 시골에서 미래를 희망한다.
파리의 북동쪽 - 라 빌레트 : 라 빌레트(La Villette)는 좀 멀다. 파리의 북동쪽, 더욱 북쪽에 가까운 끄트머리에 있다. 지하철을 타고 곧장 공원으로 내리는 대신 19구가 시작되는 스탈린그라드 광장에서부터 운하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파리의 동역 곁을 지나왔을 운하는 밋밋한 외관을 가진 소시민들의 주거지역인 19구의 정 중간을 흘러 라 빌레트 공원까지 이어지고, 관통하고 다시 흘러간다. 라 빌레트는 예부터 그런 운하를 운송수단으로 한 가축의 도살장이 있던 지역이었다. 개발 초기에는 새로운 도살장을 만들 계획이었으나 골조까지 공사가 된 상태에서 시민을 위한 복합 공원으로 급히 용도를 변경했다.
라 빌레트 공원은 작은 마을이라는 의미의 ‘빌레트’가 지칭하는 것처럼, 하나의 마을처럼 보인다. 약 30㏊의 터에 들어앉은 음악대학, 무용학교, 과학관, 전시실, 상점, 영화관, 문화공연장, 광장, 산책로, 정원 등은 가까이 있는 주택들과 함께 그야말로 작은 마을의 지도를 보여준다.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Bernard Tschumi)의 계획이 현상 설계에서 1등으로 당선됐을 때 프랑스 건축계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서른아홉의 젊은 건축가는 20세기의 인문 철학인 해체(Deconstructon)를 끌어들여 어떤 관습적인 것, 고착된 개념에 대한 거부로서 일단의 결정론과 목적론을 제거하는 새로운 관계 설정을 제안했던 것이다. “건축물과 그 내용, 용도 그리고 의미 사이에는 더 이상 일상적인 관계는 없다”고.
붉은 빛깔의 폴리가 상징하는 것은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선명한 붉은 빛깔의 폴리(Folie)가 조각품처럼 서 있다. 제각각 다른 형태의 폴리들은 주어진 기능이 없다. 구성주의의 형태와 가족적으로 닮아 있는 폴리는 정치적 성향이 제거된 채 흔적으로만 존재한다. 폴리는 사전적 의미로 광기, 터무니없는 짓, 열광 등을 의미한다. 26개의 각기 다른 형태의 폴리들은 (푸코가 광기의 역사에서 설명한) 21세기의 불합리성에 대한 일종의 광기적 논리를 상징하고 있다.
폴리는 사용자에 의해 수많은 의미를 가진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폴리의 의미는 변한다. 넓은 목초지를 유목하듯 걷다 보면 거울이 늘어서 있는 정원을 만나고 어디선가 전자음이 들려오는 우거진 숲길에 접어들기도 하고, 놀이기구를 타고, 폴리를 지나치고, 폴리에 오르고, 기억이 떠오르고,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폴리들은, 건축가가 의도한 건축적 의미를 상기하고 경험해 보고자 하는 ‘의미 부여자’들에게만 유효한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어떻게, 무엇으로 변화될지 모르는 폴리들이지만, 그것조차도 젊은 건축가가 의도한 폴리들의 운명이다. 무엇이든 어떻게든 좋다는 대담성, 혹은 자유방임.
류혜숙/자유기고가
‘짐이 원하여’ 숲을 세웠노라
파리 지도를 보면 동쪽에는 뱅센 숲, 서쪽에는 볼로뉴 숲, 남쪽에는 몽수리 공원, 그리고 북쪽에는 뷔트-쇼몽 공원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음을 느낀다. 실제 이 녹지대에 대한 최초의 계획은 볼로뉴 숲과 뱅센 숲을 연결하는 성채의 선을 따라 파리시를 완전히 에워싸는 형태였다. 제2제정 시대, 나폴레옹 3세는 자신의 서재에 커다란 파리 지도를 걸어 놓고 빨강, 파랑, 녹색으로 ‘짐이 원하는’ 도시를 계획했다. 그는 영국처럼 ‘짐의 나라’에도 나무와 관목이 우거진 거대하고 낭만적인 공원과 광장들을 원했다.
그것은 초기 도시 자본주의의 속도에 대한 반응이기도 했다. 노동인구의 과잉에 비례해 도시에는 빈곤과 비위생 같은 타락한 생활 여건이 늘어갔다. 이에 대한 반발로 낭만주의와 목가적 유토피아주의가 등장하기도 했다. 빈곤과 비위생에 대한 치유책으로서 청결과 공중보건이라는 실제적인 요구뿐 아니라, 문명에 대한 심리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사회적인 요구도 있었다. 이와 함께 ‘제국 정권의 영광’ 또는 ‘평화 조장’이라는 정치적 목적이 더해져 공공을 위한 원예가 등장한 것이다. 분명한 기준에 따라 설계된 공원들은 상류사회를 위한 여가 장소이자 시민 노동자들의 산책로로서 산과 계곡, 호수, 시내 등을 포함하는 디자인으로 손질되었다.
모든 시대는 각각의 내적인 성향에 따라 특정한 건축 분야를 발전시킨다. 예나 지금이나 어느 시대에나 숲을 들어내고 공장을 짓기도 하고 공장을 허물고 공원을 만들기도 한다. 공원이 어디에,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가,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은 그 시대 도시의 성향을 읽는 열쇳말이 틀림없다.
파리 공원 여행쪽지
열기구 타고 파리 감상
⊙
시트로앵 공원은 메트로 8호선 종점 발라르(Balard)역이나 10호선 자벨 앙드레 시트로앵(Javel Andre Citroen)역에서 내리면 된다.
열기구 몽골피에르(Montgolfiere)를 타고 지상 150m의 상공에서 파리를 둘러볼 수 있다. 8월에는 야외에서 영화를 상영한다.
⊙
베르시 공원은 메트로 14호선의 종점 비블리오테크(Bibliotheque)역에서 내려 톨비아크 다리를 건너거나 베르시 빌라주로 곧장 갈 수 있는 쿠르 생테밀리옹(Cour St-Emilion)역, 혹은 경기장 근처의 베르시(Bercy)역에 내려도 된다. 경기장 인근에 있는
프랑크 게리의 아메리칸 센터(2005년 시네마 프랑세즈로 리노베이션)도 꼭 들르자.
⊙
라 빌레트 공원은 메트로 7호선 포르트 드 라 빌레트(Porte de la Villette)역에서 내리면 과학관과 제오드가 있는 공원의 북쪽 입구, 메트로 5호선 포르트 드 팡탱(Porte de Pantin)역에서 내리면 음악도시와 무용학교가 있는 남쪽 입구다.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뢰도 1위' 믿을 수 있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