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작가정신·1만6000원

세계적 베스트셀러의 일러스트판
공모전 통해 뽑힌 화가 그림 곁들여
모험기에 새로운 영감·힘 불어넣어


“우린 콜럼버스처럼 항해하는 거야!” 1977년 6월21일, 아버지는 운영하던 동물원을 처분하고 이민을 선언한다. 그에 따라 어머니와 형, 그리고 파이(피신 몰리토 파텔)는 인도를 찾아서가 아니라, 인도를 떠나 캐나다로 머나먼 길을 나선다. 그러나 배는 나흘 만에 태평양 한가운데서 난파된다.

‘얼룩말, 오랑우탄, 점박이 하이에나, 벵골 호랑이, 구명보트 한 척, 바다 하나, 신 한 명.’ 배와 함께 가족들이 흔적 없이 사라진 망망대해에서 ‘열여섯 살 소년’ 파이가 정신을 차린 뒤 확인한 생존 목록이다. 표류 며칠 만에 하이에나가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잡아먹고, 그 하이에나는 벵골 호랑이에게 잡아먹힌다. ‘리처드 파커’, 기록원의 실수로 우리에서 탈출한 어미를 총으로 잡아 죽인 사냥꾼의 이름을 얻은 세 살배기 벵골 호랑이와 단둘이 남게 된 순간, 파이는 깨닫는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또 비유적으로도 같은 배에 타고 있었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터였다.”

구명보트에 실려 있던 비상식량까지 동이 나버리자 파이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혼자 남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낚시를 해 호랑이에게 먹이며 길들이기 시작한다. 고기 냄새조차 역겨워하던 채식주의자였던 파이 자신도 바다거북, 상어, 게, 날치, 가마우지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마침내 멕시코 해안에 닿아 227일간의 기록적인 표류기가 끝나는 순간, 파이는 또 한번 영원한 이별을 경험한다. “호랑이보다 훨씬 무서운 절망 속에서 나를 계속 살아 있게 해주었던” 리처드 파커는 모래사장에 내리자마자 정글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2002년 가장 권위 있는 영연방 문학상인 부커상 수상작이자 아마존닷컴 ‘올해 최고의 책’이라는 화려한 명성을 얻은 소설 〈파이 이야기〉는 2004년 국내 소개된 이래 15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다. 특히 동물과 교감하며 모든 신(비슈누·마호메트·예수·마리아)을 동시에 믿는 소년의 모험기이자 성장기를 담아 청소년 독후감 권장도서로 꾸준한 인기를 누려 왔다. 이번에 다시 나온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는 전세계 40개 나라에서 출간된 것을 기념하여 2005년 스코틀랜드·영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 등 4개국 언론사가 공동주관한 국제 일러스트레이트 공모전에서 뽑힌 작품을 담고 있다. 크로아티아 화가 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의 원색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삽화 40장이 글에 새로운 영감과 힘을 불어넣어 보는 맛을 더해준다.

작가 얀 마텔이 수천명의 지원자 중에서 그를 선택한 이유가 특히 인상적이다. 대부분의 독자나 화가들이 놓친 소설의 ‘비밀’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난 소설에서 한번도 파이에 대해 묘사한 적이 없다. …그래서 철저하게 파이의 시선과 느낌으로 묘사한 그의 그림에 애정을 갖게 됐다.” 실제로 삽화에는 파이의 손이나 발 같은 몸의 일부분만 보일 뿐이다.

이런 관점은 작가의 독특한 종교관을 상징하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캐나다 외교관의 아들로 스페인에서 태어나 알래스카·코스타리카·프랑스·멕시코 등을 돌며 자랐고 이란·터키·인도 등지를 순례했다는 마텔은 ‘힌두교인이자 기독교인·이슬람교도인 파이’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저는 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에요.”

다인종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야 할 우리 청소년들이 이 책에서 읽어내야 할 진정한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

그림 작가정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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