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박주현 기자]
"권력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제17대 대선이 끝난 지난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6년 넘게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이른바 'MB맨' 강승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대변인이 대통령을 만드는 비밀을 책으로 펴냈다. <대통령을 만든 마케팅 비밀 일곱가지>란 제목부터 눈길을 끌었다.
당시 이 당선인의 한나라당 경선캠프에서 미디어홍보단장, 대선캠프에서 커뮤니케이션팀장을 잇따라 맡으면서 자칭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소문난 강 부대변인은 이 책에서 대통령 만들기 비법을 '국민과의 소통'이라고 밝히면서 7가지 법칙을 소개했다.
권력은 커뮤니케이션에서 나온다?
'권력은 커뮤니케이션에서 나온다'는 제1법칙은 그중 눈여겨 볼만하다. 당내 경선과정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것임을 전제한 법칙이다. 그는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여론의 힘이었고, 결국 국민들과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정치마케팅의 첫 번째 법칙"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했던 대통령 만들기의 중요 키워드는 정책과 메시지를 바탕으로 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 즉 대선에서 중요시돼야 하는 것은 후보들의 정책이지만 이를 메시지로 만들어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과 석달도 안 돼 문제가 생겼다.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던 대통령의 국민과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에 비상벨이 울리고 만 것이다. 당시 강 부대변인이 최근 일련의 상황을 어떻게 진단할지 자뭇 궁금하다. '막말'과 '내지르기'에 능한 포퓰리즘적 커뮤니케이션을 제어하지 못한 때문이란 지적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강 부대변인이 당시 상존하는 가외변인을 미처 판단하지 못한 것일까. 그렇다면 가외변인들을 통제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그렇지 않고서야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커뮤니케이션에 비상등이 켜질리 없다. ‘권력은 커뮤니케이션에서 나온다’는 그의 주장은 '모순의 탈을 쓴 가짜 법칙'과도 같게 될 처지다.
보수와 진보진영이 바라보는 시선차가 궁금하다. 두 번의 선거를 치르면서 그 후유증을 견디지 못해 곧 폭발할 것 같던 ‘이념폭탄’의 뇌관을 기어이 건드리고 만 형국이어서 그렇다. '미국 쇠고기'가 주범이지만 '쇠고기 파문'을 바라보는 보수논객과 진보논객들의 공통분모가 있다. 그건 이명박식 통치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러나 주문하는 내용과 돌파구 방안은 전혀 다르다.
<조갑제닷컴> 보수지킴이들, 연일 날선 좌파공격
대표적 보수논객임을 자처하며 자신의 이름을 내세워 <조갑제닷컴>을 운영하고 있는 조갑제씨는 요즘 매우 바빠졌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연일 보수지킴이 글을 올리고 있다. 그 중 지난 2일 올린 ‘MBC에 항복한 이명박의 가짜 실용' 글에는 섬뜩한 표현이 가득하다.
'광기서린 선동방송에 무저항으로 일관'
'반국가적, 반헌법적, 반미적, 반언론적 MBC'
'범국민적 응징이 있어야 우리가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이 글을 통해 조씨는 <MBC>를 비하하면서도 <조선일보>를 추켜세웠다. "MBC의 반미적 광우병 선동에 이명박 정부가 무저항이다. 하도 답답했던 조선일보가 오늘 1면 머리기사, 사설, 칼럼을 통하여 MBC의 광우병 과장 보도를 비판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무능을 질타했다"며 그는 "'반미적 이념'으로 무장한 MBC의 악랄한 보도에 '이념 떠난 실용'이 비참하게 패배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국민들이 대선과 총선을 통하여 정치적으로 좌파를 거의 소멸시키고 공권력이란 칼을 이명박 정부에 확실하게 쥐어준 것은 MBC와 같은 언론으로 위장한 반국가적, 반헌법적, 반언론적 선동단체를 정상화시키고 사회 곳곳에 파고든 반헌법적 좌익세력을 몰아내라는 명령이었다"고까지 주장했다.
분을 삭이지 못했던지 그는 목소를 더욱 높였다. "반국가적, 반헌법적, 반미적, 반언론적 MBC에 대한 범국민적 응징이 있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며 거듭 MBC에 대한 사법 처리를 촉구했다. 다음날인 3일에 올린 그의 글은 더 흥미롭다. '김영삼의 길을 가는 이명박'이란 제목부터 수상쩍다.
그는 이 글에서 "이 대통령은 선택해야 한다. 친북청산인가, 좌파숙주의 길인가?"란 질문을 던졌다. 정치적으로 몰리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을 이념적으로 재무장시키려는 의도가 짙게 묻어난다.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는 노 정권 청산작업 대신에 정책발표만 일삼다가 물갈이의 타이밍을 놓쳤다. 국방, 통일, 외무, 정보부서엔 노무현 정권하의 요직자를 그대로 썼다. 감사원장은 김대중 사람인데 바꾸지 못하고 있다."
조갑제, "이 대통령은 김정일 편인가, 대한민국 편인가"
조 씨는 "이명박을 세력화한 보수애국단체를 멀리했기 때문에 자신의 지지층을 배신한 그는 현재로선 '좌파숙주'였던 김영삼의 길을 걷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이명박과 김영삼의 공통점은 보수이념이 약하다"는 그의 논리다. 과연 그럴까.
그러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파문이 대통령의 이념무시에서 온 결과라는 논거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조 씨는 그의 글 말미에서 심지어 이런 주문을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선택해야 한다. 김정일 편인가, 대한민국 편인가, 친북 청산인가, 좌파숙주의 길인가? 여기에 중립지대가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그는 실족할 것이다."
반강제적인 강요에 다름 아니다. 시계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듯, 그가 제시한 이분법적 유도질문은 조악하기 짝이 없다. <조갑제닷컴>은 조 씨 뿐만 아니라 기명으로 글을 올린 김성욱, 김영일, 조영환씨 등이 ‘보수지킴이’로 동참하고 있다.
‘선동은 사법처리해야’, ‘광우병 공포 선동한 좌파세력의 광기’, ‘촛불세력,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좌파선동기관 MBC편을 드는 자유선진당’ 등 보수논객들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매우 자신감을 얻은 듯하다. ‘좌파의 광기’라는 표현 등에서 프로파겐다(성동)적 냄새가 짙게 풍긴다.
잠잠하던 진보진영이 날을 세우고 있다. 보수에 맞서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가 최일선을 자청하고 나섰다. 평소 논쟁을 마다하지 않는 그답게 날렵한 입담과 예리한 필봉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진보논객답게 그는 대통령 통치철학에 문제가 있음을 통렬하게 일갈했다. 지난 1일 한 방송에 출연, 진보진영에 일격을 가했다. 네티즌들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움직임에 대해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철학 자체가 '삽질철학'이고 '날림철학'이어서 그렇다"고 표현했다.
그는 이날 <평화방송>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해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권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를 일주일 만에 뚝딱 해치워놓고서 속으론 공기 단축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작심한 듯 그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독설을 쏟아냈다.
"이명박 정부가 가장 잘 한 일은 건강보험 민영화하겠다고 했다가 그만 둔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아무 일도 안 할 때가 가장 잘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자신들의 무능을 인정하고, 머리가 모자라면 남의 말이라고 잘 들으라"고 힐난했다.
그는 이어 "청와대와 내각은 대한민국의 국가 두뇌인데 이 분들 하는 거 보면 대한민국의 두뇌가 광우병에 걸린 소 두뇌 같다"고 주변인들까지 비난했다. 그러더니 그는 그날 못 다한 쓴 소리를 글에 담아 쏟아냈다.
3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그의 날선 칼럼은 보수언론과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반이(反李) 좀 하면 안 되나?"란 제목의 그의 칼럼은 서두에서 보수언론인 <동아일보>를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진중권, “합리적 논의와 민주적 토론으로 발전해야”
그가 서두에서 '어용언론의 전형' 을 보여줬다고까지 표현한 점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는 "어용언론의 전형을 보여주는 <동아일보>가 촛불시위를 '반미반이'라 불렀다고 했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반미'는 아닌 것 같다"고 선을 긋기 시작했다.
'시위 현장에서 반미 구호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는 그는 수입 쇠고기 문제를 조목조목 거론했다.
"현 정권이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국민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안전성을 최대화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어떤 납득할 수 없는 이유에서 지난해까지 유지되어 왔던 자신의 입장을 180도로 뒤집고, 미국 측에 전면 개방에 동의해주었다. 대중의 분노는 여기서 비롯된다. 즉 당연히 자신을 지켜 주리라 믿었던 정부가 외려 자신들을 더 많은 위험에 노출시켰다는 데에 분노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 진 교수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정권이 이미 일을 저질러 버렸기 때문에, 재협상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날림 정권에서 날림으로 체결한 협정이니, 그 안에 빈틈은 없는지 꼼꼼히 검토하여, 하자가 발견되면 그것을 보완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끝내 문제의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진보논객들의 활동부재를 아쉬워하는 듯 했다. 그는 글 말미에서 "대중이 탄핵의 사유로 쇠고기 문제와 영어몰입교육, 대운하건설 등을 든 것은 대중들 스스로 이 점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 때문인지도 모른다"며 "그래서 분노는 쇠고기 문제를 넘어 다른 영역에서도 나타나는 병증을 진단하고 치유하기 위한 합리적 논의와 민주적 토론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갑제와 진중권.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두 논객의 논거와 주장은 평행선을 치달리고 있지만 공통 키워드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대통령의 언행과 통치이념을 쇠고기 문제에 접목시켜 각각 다르게 평가하고 분석해 냈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이념과 정치철학에 가장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화법에는 과연 문제가 없는 걸까. 이념과 현상을 논하기에 앞서 보다 진지한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누가 이 분야에 과연 총대를 멜 것인가.
강준만, "대통령, '막말'과 '내지르기'에 능하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가 예리하게 짚었다. <인물과 사상> 5월호에서 대통령 화법에 관한 통렬한 진단과 해부를 했다. ‘라면값 100원과 10배 남는 장사: 이명박의 '포퓰리즘 언어'를 해부한다’란 제목의 글에서다. 일차적으로 그는 포퓰리즘적인 화법을 지적했다.
"원래 인생의 밑바닥에서 일어나 대성한 사람은 '포퓰리즘 언어'를 구사하기 마련이다. '포퓰리즘 언어'의 가장 큰 특성은 '막말'과 '내지르기'다. 당연히 이명박은 '막말'과 '내지르기'에 능하다."
강 교수는 대선 전 사례들을 지적했다. 가령 “내가 하면 정부 예산에서 매년 20조 원은 남길 수 있을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말은 너무 자신감이 넘친 나머지 별다른 논증 없이도 한순간에 현 정부를 바보로 만들면서 청중들을 사로잡는 능력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다른 학자와 논객들의 주장을 들며 이명박 대통령을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에 비유했다. “손호철은 이명박에 대해 '시한폭탄'이라는 별명까지 붙였다”는 강 교수는 “'내지르기'를 즐겨 하다가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라는 말을 듣게 된 이명박이 노무현·이해찬의 막말을 자주 비판해왔다는 것도 흥미롭다”고 했다.
강 교수는 그러면서 이명박의 ‘시각주의 화법’에도 관심을 갖는다. 자신의 시각주의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즉 "박정희 대통령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있다. 그분은 경부고속도로나 거대 공업단지처럼 눈에 보이는 업적을 남겼다. 사람은 눈으로 보면 가장 확실하게 설득 당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의 청계천은 정몽준의 월드컵이었다. 청계천과 월드컵은 둘 다 시각주의 문화의 화려한 꽃이었다"고 주장하는 강 교수는 “이명박은 어법마저 시각주의 원리에 충실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끝내 "이명박의 적은 이명박 자신"이라고 결론을 던졌다.
전직 대통령과도 비교했다. “노무현의 경우에도 그랬지만, 이제 이명박의 최대 적(敵)은 바로 이명박 자신이다”며 “'포퓰리즘 언어'는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 자신의 함정을 파기 마련이다”고 강 교수는 진중하게 답을 내렸다. 많은 의미와 여운을 남긴 대목이다.
정치언어는 정치현실이긴 하지만, 궁극적인 현실은 아니라는 얘기와도 같다. ‘자신의 성공 신화의 포로 노릇을 청산하고 소통의 문을 활짝 여는 건 누구에게나 미덕’이라는 의미는 이명박 화법 중 가장 경계해야 할 덕목으로 꼽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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