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갑수 기자]연 이틀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쇠고기 촛불집회에 10대 청소년들이 대거 참여했다. 보도에 따르면 토요일인 3일 참석자 2만여 명 중에서 70~80%가 10대 중고생이라고 한다. 실제로 동영상에 비치는 얼굴들은 대부분 10대 소녀 또는 소년들이었다. 이런 현상은 5000명 정도가 참여한 부산 집회도 마찬가지였다고 하니, 여기에는 뭔가 그럴 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어 보인다.
10대 청소년들이 길거리 시위에 대거 참여한 것은 처음 일이 아니다. 일찍이 3·1운동이나 광주학생의거 때에도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어느 세대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가깝게는 지난 2002년 미선·효순 양 사건 때도 10대 청소년들은 대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문제는 그들을 보는 한국 기성세대의 생각이 매우 경박하고 피상적이라는 데에 있다. 일제 때에도 기성세대들은 '학생 제군들은 일시적인 혈기를 가라앉히고 공부에 열중하라'는 식의 훈계를 늘어놓곤 했다. 2002년 미선·효순 양 사건 때에도 어른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이 정서적 충동을 이기지 못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경박하고 피상적인 반응은 이번에도 예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대중은 대통령을 탄핵하자고 외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수사학적 표현이지, 정말로 대중이 탄핵을 위한 절차를 밟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탄핵'이라는 말은 이명박 정권의 통치에 대한 대중의 거부를 담은 상징적 표현일 뿐이다. 대중은 마치 미국소를 먹으면 다 광우병에 걸릴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 대한 과학적 기술이 아니라, 답답한 현실에 대한 정서적 표출일 뿐이다.(진중권, 프레시안 '반이(反李) 좀 하면 안 되나?')
진중권은 10대들에게는 모 정당의 당원이기도 한 기성 정치인이자, 일면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대학의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분이 나서서 자기가 마치 대중의 대변자인양 '수사학적 표현'이다, '과학적 기술이 아니다', '정서적 표출일 뿐이다'라고 말하면 어느 10대가 이를 수긍하겠는가? 또한 미국 쇠고기 문제를 말하는데 어찌 미국을 거론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식으로 말하는지? 10대들이 보기에 진중권은 이미 먼 데 있는 기성세대일 따름이다.
이보다 더 고약한 것으로는 '연예인 충동론'이 있다.
이번 주 금요일과 토요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 중고생들이 많이 참석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전부는 아니겠지만 연예인 팬클럽의 격문이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 눈길을 끕니다. 동방신기, 신화, 슈퍼 주니어 등등…(오마이뉴스 E)
이는 마치 중고생들이 연예인의 선동에 넘어가서 청계광장에 나간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런 분석이야말로 전형적으로 신세대를 얕보는 데서 생긴다. 그들이 연예인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 세대인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누구의 영향을 많이 받는가? 10대가 보기에 어른들은 권력 있거나 돈 많은 사람이라면 무조건 존경하면서 알아서 기어들어가는 분들이다. 10대들은 그런 어른보다는 자기가 낫다고 얼마든지 확신할 수 있는 법이다.
게다가 그 연예인들이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쇠고기에 반대한 연예인들 자체가 10대들 아닌가? 한국의 기성세대 연예인들이 어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제대로 한 번 내본 적이라도 있는가? 기껏 해야 권력에 붙어 뭐라도 한 자리 해 보려고 넘보지 않았던가? 10대들이 보기에는 쇠고기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동방신기나 신화나 슈퍼주니어가 이미 한 자리 차지했거나 아니면 넘보고 있는 유인촌이나 김흥국보다 단연 나아 보이지 않겠는가?
반미 여부를 놓고 기성세대가 벌이는 호들갑들
가장 나쁜 것은 사태를 왜곡하는 어른들이다. 지난 2002년 미선·효순 양 때에도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반미선동분자들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했다. 그러자 진보인사들은 청소년들을 두둔한답시고 극구 "반미가 아니다"라고 했다. 정말 황당한 사람은 김문수 경기지사였는데, 그는 텔레비전에 나와 '미선·효순 양의 죽음은 좁은 도로와 낙후한 시설 때문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요컨대 미국 책임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영락없이 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한나라당과 <동아일보> 등은 이번 촛불집회를 예외 없이 '반미선동'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10대들이 보기에 물론 이것은 황당한 일이다. 그러나 서둘러 "반미가 아니다"라고 호들갑을 떠는 이른바 진보 어른들도 마뜩찮기는 마찬가지일 터이다.
어용언론의 전형을 보여주는 <동아일보>가 촛불시위를 '반미(美) 반이(李)'라고 불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반미는 아닌 것 같다. 시위 현장에서 반미 구호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반이'는 맞는 것 같다…. 쇠고기 문제는 탄핵의 사유로 거론된 것 중의 하나일 뿐, 시민의 분노는 정부 여당이 인수위 시절부터 해왔던 실정, 종종 사람을 어이없게 만드는 대통령 자신의 몰상식한 언행을 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위는 '반이'다. 그런데 '반이' 좀 하면 안 되나? (진중권, 프레시안 ‘반이 좀 하면 안 되나’)
진중권은 이번 촛불시위는 쇠고기 문제라기보다는 이명박 대통령 자신의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일면 맞는 말이다. 나 역시 진중권의 심정과 같은 편이다. 하지만 청계광장에 나간 10대들은 우리와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청계광장에서 행해진 10대들의 발언과 구호의 대부분은 쇠고기 문제에 집중되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이 자의적으로 즉 정치적으로 해석하여 말한다면 이것 역시 10대들의 진의를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것일 수도 있음을 헤아려야 한다.
이른바 진보인사들의 낡은 대미관
더욱이 10대들을 두둔해 준답시고 서둘러 '반이'는 맞는데 '반미'는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10대들이 보기에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지금 한국의 어른들은 '반미'라고 하면 '불순한 것' 아니면 '정의로운 것'으로 보는 두 패로 갈라져 있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옛날 극장에 가서 전투에서 미군이 이기면 박수를 치는 사회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그러다가 미국이 그리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분개하게 된 사람도 있다. 하지만 10대들은 '반미'라는 것에 우리처럼 경직된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안에 따라 미국이 잘못 할 때에는 반미도 하고 잘할 때에는 친미도 하겠다는 것이 요즘 10대들의 가치관이다. 이런 10대들의 유연한 자세는 어른들보다 현명해 보인다.
그렇기에 10대들은 진중권처럼 언제나 '반미'는 절대 아니고 '반이'는 맞는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10대들은 한국의 기성세대가 '반이는 괜찮은 것, 반미는 안 되는 것'이라는 흑백논리에 빠져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옛날 노무현이 "반미 좀 하면 안 되는가?"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런 노무현의 대미관은 요즘 10대들의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반면 진중권의 대미관은 전형적인 한국 기성세대의 대미관인 것 같다.
이번 촛불집회에 10대들이 대거 나선 것은 이명박 정권의 정책 때문이다. 진중권은 '대통령의 몰상식한 언행'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다소 감정적이며 주관적인 분석이다. 한국의 10대들은 이명박 정권의 정책들이 하나같이 자기들에게만 불리한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길거리로 나선 것이다.
단기이익만을 추구하는 이명박 정권
우리가 아는 대로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 경영인 출신이다. 이를 영어로 CEO라고도 하는 모양인데 아무튼 그는 기업의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이었다. 그런데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 오너들은 장기이익을 우선하는 반면 전문 경영인은 빨리 실적을 내어 주주의 인정을 받고 싶으니까 단기 이익을 추구한다.
문제는 장기이익과 단기이익이 충돌할 때 발생한다. 그런데 정말 능력 있는 경영인이라면 두 이익이 충돌할 때에 단기이익을 버린다. 이는 치과의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훌륭한 치과의사는 어지간해서는 환자의 이를 뽑지 않는다. 그래야 환자의 치아가 오래 보존되고 자기 영업도 장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돌팔이 의사는 걸핏하면 이를 뽑아 새로 해 넣으려고 한다. 물론 우선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청계광장에 10대들이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대들은 오랫동안 이 나라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장기이익을 추구하는 대통령을 원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단기이익에만 치중하는 돌팔이 같아 보이니까 거리로 나선 것이다.
10대들은 이명박 식으로 하면 기성세대에게는 일시적으로 좋을지 몰라도 자기들에게는 큰 손해거나 아니면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감을 잡았기 때문에 거리로 나선 것이다. 요컨대 10대들은 기성세대에게 이 나라의 장기 이익을 추구해 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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