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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여, 출세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마케터가 되라. 마케팅이 여성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다가오고 있다. 삼성 LG GS 등 국내 굴지의 그룹에선 최근 선임된 마케팅 담당 여성 임원들이 발 빠르게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외국계 기업에선 마케팅으로 최고경영자(CEO)까지 올라간 사람도 나왔다.
앞으로의 기회도 무궁무진하다. 그 동안 남성들이 주도했던 마케팅 업무가 이제는 여성 친화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어를 만나 술 상무를 하는 것은 더 이상 마케터의 업무가 아니다.
최종 소비를 주도하는 여성 고객들의 니즈를 예민한 감수성을 동원해 발굴해내고 이를 상품 기획에서부터 생산·판매하는 전 과정에 반영하는 쪽으로 마케터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
소비를 주도하는 당사자로서, 다른 최종 소비자와 연대의식을 가질 수 있는 생각의 공유자로서 당신의 아이디어가 사업의 향방을 결정할 때가 된 것이다.
여의도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LG트윈타워 11층. 출장지인 일본에서 아침에 귀국한 최명화 LG전자 인사이트 마케팅팀 상무는 집에도 들리지 못하고 곧장 사무실로 출근했다.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 중국 남미 등 해외현지법인의 판매상황을 점검한 그녀는 직원들에게 새로운 업무를 지시했다. 수첩에 빡빡하게 적힌 스케줄을 점검한 그녀는 곧장 다음 회의를 챙기러 들어갔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최 상무님, 참 대단한 분입니다. 한 마디로 화끈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의욕이 넘칩니다.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힘이 날 정도입니다.”
최 상무는 지금 LG전자 전체의 마케팅 시스템을 전면 재구축하고 있다. 본사 뿐 아니라 해외현지법인의 시스템 구축까지 직접 챙기고 있다.
그녀의 입김은 판매에만 미치는 게 아니다. 현장에서 소비자들로부터 얻은 정보는 종합 분석과정을 거쳐 제품기획과 개발 홍보 전략을 수립하는 등 전 영역에 걸쳐 반영된다.
최 상무처럼 최근 주요 기업의 마케팅 부문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여성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LG전자에만도 또 한명의 전문가가 있다. 벤츠코리아에서 마케팅으로 이름을 날리다 지난 해 합류한 김예정 상무다. 김 상무는 현재 이 회사의 생활가전 부문인 DA사업본부의 DA마케팅전략팀장으로 보다 소비자들과 밀접한 부분에서 마케팅을 지휘하고 있다.
같은 그룹의 LG생활건강에는 이 회사에서 처음으로 임원이 된 송영희 상무가 화장품 마케팅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송 상무는 미국계 화장품 회사인 에스티 로더에서 년 300%씩 성장률을 올리며 활약하다 LG에 파격적인 조건으로 스카우트 돼 잇달아 히트를 쳤다.
지난 연말 중국으로 건너간 그녀는 기하급수적으로 커 가고 있는 현지 시장의 마케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삼성그룹에선 삼성전자의 이영희·심수옥 상무 삼성화재의 박현정 상무 제일기획의 최인아 전무 등이 활약하고 있다.
다국적 화장품업체인 로레알코리아에서 활약했던 이영희 상무는 병원이나 약국을 화장품 판매의 새로운 루트로 개척한 바 있다.
이 상무는 현재 무선제품 마케팅 담당 상무로 삼성전자의 휴대폰 해외마케팅을 총괄지휘하고 있다. 휴대폰 신상품 런칭에서부터 광고 판촉 등을 지휘하며 삼성전자가 이 부문에서 세계 2위 자리를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P&G에서 다년간 마케팅 전략을 수립했던 심수옥 상무는 글로벌 브랜드전략팀장으로 UCC를 이용한 온라인 마케팅을 전개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제일기획에 공채로 입사해 삼성그룹 최초의 여성임원이 된 최인아 전무는 카피라이터에서 출발해 각종 상을 휩쓸며 승승장구했고 현재는 제작본부장을 맡고 있다.
GS그룹에선 GS칼텍스가 지난 연말 처음으로 여성임원을 선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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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개발실장을 맡은 손은경 상무다. 서울대를 나와 스탠포드에서 정치학 석사를 한 그녀는 한국존슨에서 근무하다 지난 2006년 GS칼텍스로 옮긴 뒤 1년 만에 임원이 됐다. 손 상무는 정유사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기존의 보수적 마케팅을 버리고 보너스카드와 연계해 영화를 보여주고 월드비전과 나눔 행사를 여는 등 감성마케팅을 도입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태평양도 마케팅 부문에서 첫 여성 임원을 냈다. 소비자미용 연구소장인 박수경 상무가 그 주인공. 화장품 기업 특성상 여성 고객을 상대하고, 여성 직원이 많았지만 그 동안 최고 직급은 팀장이었다. 소비자학 박사인 박 상무가 이 벽을 깨 회사에선 여성들의 임원승진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케팅 부문에서 여성임원이 잇달아 나오고 활약도 크지만 국내기업 전체로 볼 때는 아직 시작단계다. 여성 마케터의 역할을 일찍 인식했던 외국사에선 이미 최고경영자 지위에 올랐거나 본사의 중책을 맡은 임원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행희 한국코닝 사장은 마케팅을 통해 최고경영자가 된 대표적 인물. 숙명여대 역사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코닝에서 근무하며 석사 박사를 딴 그녀는 마케팅 담당 이사와 상무를 거쳐 지난 2004년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녀는 특히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아시아에서 주목받을 10대 여성 기업인에 뽑히기도 했다.
국내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둬 본사나 아시아·태평양지역 담당 임원으로 발탁된 대표적 인물들로는 한국IBM의 박정화 전무와 영국 본사로 간 BAT코리아의 한승희 이사 등을 들 수 있다.
박정화 전무는 1982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입사해 한국IBM 최초의 여성 전무가 됐다.
또 e-비즈니스 컨설팅 사업팀장, 마케팅본부 상무 등을 거치며 올린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2007년엔 IBM 아시아태평양지역 시스템 테크놀로지 그룹(STG) 마케팅 담당 임원으로 선임됐다.
인텔코리아에선 권명숙 전무가 맹활약하고 있다. 1999년부터 인텔코리아의 마케팅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권 전무는 한국 PC제조업체들을 대상으로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과 펜티엄4 광고를 주도해 인텔의 인지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외에도 AIG생명의 정라경 상무(마케팅 담당)나 홍보 전문회사인 인컴브로더의 김성혜 수석부사장 등 외국사에는 마케팅으로 승승장구하는 여성들이 수두룩하다.
더 이상 술 상무가 아니다-바뀐 마케팅 패러다임
여성들이 최근 들어 마케팅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마케팅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엔 마케팅은 바이어를 접대하고 술 상무 노릇을 하는 등 몸으로 부딪치는 일로 인식됐다.
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의 바이어가 대부분 남자들이었고 이들을 상대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외영업 역시 직접 소비자를 상대하지 못하고 대형 거래처에 제품을 공급하는 게 대부분이어서 이런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 이 같은 거래 형태가 크게 바뀌고 있다. 판권을 쥐고 가격을 후려치는 대형 바이어가 이제는 경쟁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최명화 LG전자 상무는 “고객에 대한 정의가 변하고 있다”며 “‘누가 고객을 아느냐’가 마케팅의 핵심 키워드가 됐다”고 강조했다. 마케팅의 패러다임이 변해 “과거엔 베스트 바이어가 고객이었지만 지금은 엔드유저가 고객이다.
베스트 바이어는 엔드유저를 놓고 다투는 경쟁자로 해석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배재현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 마케팅에선 소비자행동을 주로 다루고 있다. 소비자들의 감성적인 니즈를 많이 다루는데 아무래도 여성들의 섬세함이 반영돼 남성들보다 잘 캐치하기 때문일 것이다”며 여성들이 마케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를 설명했다. 배 교수는 또 “과거 생산을 중시하던 기업들이 최근엔 브랜드나 광고 등 감성적인 능력을 중시하고 있어 여성에 대한 문호가 그만큼 넓어졌다”고 추이를 설명했다.
마케팅 교실엔 여학생 ‘와글와글’
전망이 좋아진 때문인지 마케팅을 배우려는 여학생들의 열기가 뜨겁다. 여성마케팅 전문업체인 더블유인사이츠의 김미경 대표는 “마케팅에서 여성의 필요성이 늘어가고 있었지만 그 동안은 여성인력 풀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6년 전부터 여성 마케팅 인력이 늘어나 활동도 왕성하고 결과도 좋다. 요즘에는 공부 잘하는 여학생들의 진출이 부쩍 늘어 경영학과 가 보면 절반이 여성이고 이들 가운데 80%는 마케팅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추이를 설명했다.
전통적으로 남학생이 우세를 보여 온 고려대 경영대에서도 마케팅 분야에서 만큼은 여학생들이 그다지 뒤지지 않는다.
고려대에 따르면 경영대 학부생 1815명 가운데 여학생은 494명(27.2%)으로 아직은 열세다. 그렇지만 마케팅 교실에서는 이 비율이 40%를 넘어선다는 게 담당 교수들의 설명이다.
마케팅을 전공하는 여학생 비율은 특히 대학원에 가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윤성아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대학원에서 마케팅을 전공하는 학생 가운데 80%이상이 여성이다”며 “소비자행동론을 비롯해 아무래도 소프트한 것들이 많아 다른 것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자들이 다루기 쉬워서 그런 듯하다”고 설명했다.
배재현 이대 교수도 “직업선택의 동기 측면에서도 상대적으로 다른 부문보다는 여성들이 더 선호되기 때문인지 최근 마케팅을 준비하는 여학생들이 크게 늘었다”며 “마케팅 공모전에도 참여하고 인턴십을 하면서 마케팅을 배우는 등 회사에서 할 일을 미리 익혀 입사에 성공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여성 마케터의 성공 요건 6가지 】
▶ 목표 의식을 갖고 공부하라
배재현 이화여대 교수는 “‘여자이기 때문에 마케팅에 맞다’는 피상적인 생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며, 목표의식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 능력과 취향이 자연스레 생기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기업들이 CRM(고객관계관리)이나 브랜드를 강조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보면 마케팅이 여성에게 맞는 일이기는 하지만 기업이 원하는 수준의 기본 지식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진짜 실력을 키워라
최명화 LG전자 상무는 실력은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아서 언젠가는 드러난다고 강조한다. 최 상무는 실력과 관련해 고객의 인사이트를 캐내 제품과 마케팅에 반영하는 능력, 브랜드 이미지를 갖추고 상품화해 성과를 내는 능력, 이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전문성을 키울 것을 요구했다.
한국IBM의 박정화 전무는 특히 자기가 맡은 분야의 전문가가 될 것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IT분야의 경우 전문적인 특성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지만 마케터가 기교만으로 대처하는 마케팅은 한계가 있는 만큼 상품이나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맨 땅에서 굴러라
당신은 마케팅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고객들을 상대로 멋지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프레젠테이션 자료들은 누가 나르나. 소비자 마인드를 분석하는 전문가라면 분석의 기초가 되는 소비자 정보는 어디서 구하나. 최명화 LG전자 상무는 “2~3년 정도의 세일즈 경험은 매우 귀중한 자산이다”고 강조한다. 소비자의 니즈를 찾아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김미경 더블유인사이츠 대표는 “밑바닥에서도 배울 것을 끄집어낼 수 있어야 진정한 마케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전화로 설득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아야 텔레마케터를 독려할 수 있고, 배추를 날라봐야 상하지 않게 나르는 법을 안다는 것.
▶ 네트워킹에 힘써라
신사업을 시작하거나 사업을 하던 중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났을 때 많은 여성들이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당황한다. 이럴 때 남자 직원은 “S그룹의 이 아무개가 그 분야의 전문가다”라고 답한다. 마케팅에선 서로 다른 것을 묶어줘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네트워킹이 약하면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워킹맘인 김 상무는 나름대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점심시간만큼은 반드시 밖에서 먹는 것. 점심 때 친구나 동종업계 관계자들과 어울리며 정보를 수집하고 교분을 넓히는 것이다.
▶ 아이 낳았다고 중단하지 말라
H그룹 입사 초기에 잘 나가던 김숙자씨는 지금 평범한 가정주부다. 아이를 낳은 뒤 한 해만 쉬려고 했으나 한 해가 지나자 자신감이 떨어져 직장 복귀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김미경 대표는 아기를 낳더라도 곧바로 복귀하라고 주문한다. 월급의 대부분을 보육비로 지출하더라도 투자라고 생각하라고 한다. 당장은 수입이 다 나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정도 지출은 충분히 감당할 정도가 된다는 것. 육아를 도와줄 시어머니가 있는 집을 택해 결혼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했다. 대신 회사에선 회사 일만, 집에서만 집안 일만 하도록 하라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 충성심을 보여라
상사들이 직원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충성심일 것이다. 김미경 대표는 많은 상사들이 여자는 ‘의리’가 없다는 말을 한다고 귀띔한다. 능력 좋은 사람이나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뽑을 수 있지만 그 회사를 잘 알고 또 충성심이 있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성공하려면 실력뿐 아니라 조직을 이해하고 인생을 바쳐 비전을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어느 정도 지나면 비전을 함께 할 수 있는지, 부하 다루는 능력은 어떤지 등을 중심으로 검증하게 되는데 여기서 밀려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진건 기자 / 사진 = 김성중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15호(08.02.18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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