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전칠기 분야 경기으뜸이 김길수씨는“나전칠기의 화려한 꽃을 반드시 다시 피우겠다”고 다짐했다.
주거문화 바뀌며 나전칠기 쇠퇴 아쉬워 전국 나전장인 80%가 남양주에 모여있어 공예촌 설립… 남양주 명소로 만들고 싶어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서는 공통된 느낌이 온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과 쉼 없이 연구하고 노력해온 땀방울이 느껴진다. 별로 말이 없다 하여도 말 속에 삶의 깊이가 들어있다. 지난해 나전칠기부문 경기으뜸이로 선정된 김길수(50) 남양주시공예인협회장에게서도 어김없이 그런 느낌이 묻어났다.

나전칠기란 얇게 간 조개껍데기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오려내어 기물의 겉면에 박아 넣어 장식하는 칠공예 장식기법의 하나로 한국에서는 흔히 '자개'라는 고유어로 불리기도 한다.

김 회장은 경기 으뜸이 뿐 아니라 우수관광기념품 공모전 대상, 경기 공예품 경진대회 특선, 경기기능대회 금상 등 수상경력이 화려하다. 특히 지난해 전국기능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일은 세간의 시선을 받을 만큼 남다른 실력을 인정받았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어룡마을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에서 그는 뿌연 먼지와 코를 자극하는 칠 냄새 속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전칠기의 황홀하리만큼 빛나는 자태는 이런 인고의 작업을 거쳐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35년 세월을 오직 나전칠기에 바쳐온 그는 "아직도 배가 고픕니다. 지금이 저에게는 시작입니다"라는 말로 나전칠기에 대한 그의 끝없는 열정을 나타내 보였다.
전북 고창이 고향인 그는 열다섯 어린 나이에 친지의 권유로 나전칠기에 입문하고 자개장롱 만드는 일부터 배워 나갔다고 했다. 1982년에 자신의 공장을 설립하고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때에는 메달박스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 후 일본에 건너가 오래된 건물의 내부를 모두 나전칠기로 장식하는 공사에도 참여하였는데 나전칠기는 화려한 외관뿐 아니라 방습, 방열, 전자파 차단효과까지 있어서 엘리베이터 문짝이라든지 김치 냉장고 외관, 휴대폰까지 쓰임새가 다양하다고 한다. 최근에는 원주시청과 양주시청에 나전벽화가 장식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자개장롱이 가구의 주류였던 시절도 있었는데 주거문화가 변하고 가구도 현대적인 것으로 바뀌어서 나전칠기가 많이 쇠퇴한 것이 아쉽다는 그는 실제로 나전칠기에 종사하던 많은 사람들이 생계 때문에 이 직업을 떠나갔다고 했다.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은 나전칠기를 오직 '천직'으로 생각하고 맥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로 전국의 80%의 나전장인들이 남양주시에 모여 있다고 한다. 그는 나전칠기 공예촌을 설립하려는 절실한 꿈을 가지고 있다. 소규모로 각자 흩어져 있는 우수한 나전장들을 모아 공예촌을 건립하여 회원들의 유능한 솜씨를 더 개발하고 발전시키고 싶다는 것이다. "나전칠기하면 남양주!"가 곧바로 떠오를 수 있도록 명소화하여 사람들에게 나전칠기의 우수성과 실용성을 알려 일상생활용품으로 사랑받을 수 있게 하고 싶다고 했다. 가격의 거품을 빼고 소비자에게 직거래할 수 있는 전시판매장과 나전칠기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학습장도 만들 계획이다.

이를 위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1999년 남양주시공예협동조합 창립을 선언하고 2000년5월에 발대식을 하고 이 일을 진행 중에 있다고 한다. 그는 학문적으로도 배워야겠다고 생각해서 지난해부터는 대학에서 전통공예부문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나전칠기장이의 위상을 높이고 장인으로서의 제대로 된 역할과 대우를 받고 싶다는 것이다. 때로는 장롱 하나 만드는 데 집 한 채 짓는 시간보다 더 걸릴 때도 있다고 하는데 쏟아 붓는 열정과 바치는 노력에 비해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가 쓰는 일상용품으로 손색이 없고 아름다운 나전칠기야말로 모든 공예의 꽃입니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네스코 문화유산에도 등재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는 나전칠기의 화려한 꽃을 다시 피우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노력과 정진을 거듭하고 있다.

그의 손을 보니 손톱이 갈라지고 상처가 있고 마디가 옹골지다. 최고가 되려는 열정으로 인고의 세월을 겪어낸 그의 삶을 그 손이 말없이 대변해 주고 있다. 투박하고 우직해 보이는 그 손으로 나전칠기의 화려한 꽃을 다시 피울 날을 기대해본다.


[글·사진=정현옥 리포터 junghyunok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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