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올 약 200만개 1조시장 전망…어떻게 만들어지나“300 앞에서 좌회전 하세요.” “전방 100 앞 시속 70㎞ 제한구역입니다. 속도를 줄여주세요.”
자동차를 타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접해본 것이 내비게이션이다. 길 안내는 물론 과속방지턱, 들러볼 만한 명소 등을 알려주는 ‘친절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비게이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가끔은 지름길을 두고도 큰 도로 위주로 안내해주는 탓에 멀리 돌아가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운전자들에게 내비게이션은 이제 없어선 안될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1997년쯤 국내에 첫 선을 보이기 시작한 내비게이션은 2000~2003년 사이 본격 보급돼 현재 자동차 서너대 중 한대 꼴로 장착되어 있을 정도다. 내비게이션은 한마디로 위성항법장치(GPS)가 내장돼 차량 위치를 자동으로 표시해주는 장치다. 지상 2만㎞ 궤도상에 떠 있는 24개 인공위성이 발사하는 전파를 지상에서 받아 삼각 측량 방식으로 차량 내부에 장착한 모니터에 현재의 차량 위치와 목적지까지의 최단거리 등을 표시해준다.
내비게이션은 크게 단말기와 지도로 구성된다. 이중 지도가 얼마나 정확하고, 얼마나 빠르게 업그레이드 되느냐가 내비게이션 기능의 핵심이다. 단말기는 주로 휴대용 멀티미디어 재생기(PMP)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다. 내비게이션 업체 중에는 지도와 단말기를 함께 만드는 곳도 있고, 단말기나 지도만 만들고 나머지는 외부에서 공급받는 곳도 있다.
지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내비게이션 지도는 국립지리정보원 산하 대한측량협회가 제작하는 종이 원도(原圖)와 수치 지형도를 밑그림으로 해 제작된다. 이들 지도에는 지형과 도로의 윤곽만 나타나 있고, 평면 지도이다보니 실제 거리나 모습과는 다른 경우가 많아 내비게이션 지도로 그대로 쓰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 지도는 5년에 한 번 꼴로 업데이트 되기 때문에 최신 지도를 제공하기 위해선 현장조사가 필수다.
내비게이션 지도 제작 업체는 원도를 받아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이용해 도로 종류, 제한 속도, 신호, 차선, 표지판, 회전 방향, 가드레일 형태 등의 상세한 정보를 표시한 뒤 이를 다시 대한측량협회에 심사를 요청, 승인을 받은 뒤 내비게이션에 넣어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도는 보통 한달에서 두달 주기로 업그레이드 된다. 도로의 너비, 신호체계, 회전 허용, 속도감지 카메라, 과속 방지턱, 스쿨존 등 변경된 도로와 주변지역정보(POI·point of interest)를 반영하기 위해서다.
ㄱ업체 관계자는 “주로 스트리트(street·거리) 개념으로 지역을 구분하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주요 지표가 중요해, 동네에 24시간 편의점 하나만 생겨도 지도에 바로 반영하지 않으면 소비자들 원성이 나온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전화번호부에 등록된 정보,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업체 정보는 빠짐없이 반영한다. 한 해에 평균 30% 정도의 도로 정보가 업데이트 대상이 된다.
특히 바뀐 지역 정보를 찾아내는 것은 100% 사람의 발품이 드는 일이다. 19세기에 김정호가 전국 방방곡곡을 걸어다니며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듯 지도에 나와있지 않은 길을 직접 가보는 식이다. 각 업체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보통 전국의 광역시·도마다 배정된 실사팀이 움직이고 있다.
실사팀은 보통 2인1조로 다니며 한 사람은 운전을 맡고 다른 한 사람은 육안으로 새로 지은 건물이 있는지, 도로가 넓혀졌는지, 새로 만들어진 스쿨존이 있는지 등을 체크해 지도에 그려넣는다.
실사팀의 차량에는 DGPS라는 정밀한 위치측량장치가 장착돼 있어 위치측정 정확도가 오차범위 1 수준까지 낮아진다. 또 차량에 달린 카메라는 1초에 3장씩 사진을 찍어 도로 사정과 주변 건물 등의 정보를 컴퓨터에 기록한다. 실사팀 차량은 시속 20~30㎞ 정도로 천천히 움직이면서 각종 정보를 일일이 입력한다. 이들의 하루 주행 거리는 보통 지방은 300~400㎞, 수도권은 250㎞ 정도. 자동차 기름값만도 엄청난 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자지도 하나에는 약 4000만건의 위치정보가 들어있다고 한다.
파인드라이브 장재호 차장은 “내비게이션 지도는 밑그림 위에 주요 POI와 주소, 위치, 도로 등 여러 정보가 취합된 뒤 사용자들에게는 한 장으로 통합돼 보여주는 것”이라며 “지도에 ‘경향신문사’를 표시하기 위해 어디에 위치하는지, 가는 길이 어떤 형태인지, 좌회전·우회전이 되는지, 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등을 사람들이 일일이 다니며 그려온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도 “경쟁사 지도와 차별화하기 위해선 더 정확한 지도를 제공하는 게 포인트”라며 “표시하고 지나가면 없어지고 금세 새 길이 생기는 일이 허다해 빠른 업그레이드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도 제작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랜드마크를 구별해 표시해주는 일이다. 보통 사거리에 있는 건물이 랜드마크로 많이 활용된다. 좌회전이나 우회전 지점에선 ‘OO주유소를 끼고 우회전하세요’ 식으로 운전자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과 가장 가깝게 표현해주려 하고 있다. 여기엔 운전자들의 제보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인터넷에 온라인 커뮤니티를 개설해 놓고 사용자들의 의견과 평가를 제작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엠앤소프트는 자사 지도인 ‘맵피’와 ‘지니’ 사용자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맵피마을과 지니타운을 운영, 회원이 내놓은 아이디어를 신기능으로 구현하고 지도를 수정할 때에도 요긴하게 쓴다. 누락된 정보나 오류를 고치기 위해 회사가 사용자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답글을 받아 반영할 때도 있다. 다만 “집앞에 약국이 생겼는데 지도에 넣어달라”는 등의 민원도 많은데, 이처럼 저마다 랜드마크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추려내는 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지도도 콘텐츠다.내비게이션에 들어가는 지도는 그 자체가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위치기반 광고 서비스에서 쓰임새가 크다. 팅크웨어 박상덕 팀장은 “미국의 웹 지도인 맵퀘스트는 한달 방문자가 4500만명에 이르는 등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내고 있다”며 “지도를 기반으로 다양한 생활정보를 공급함으로써 부가적인 수익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구글 맵에 대항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영국 온라인 지도 서비스업체인 멀티맵을 인수한 것이나 세계 1위 휴대전화 업체인 노키아가 지난해 10월 지도회사 나브텍을 81억달러(7조3000억원)에 인수한 것도 ‘지도산업’의 이같은 잠재성을 내다본 결정이다. 국내 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전자지도에 맛집 안내, 친구 찾기, 대중교통 정보 등의 기능을 접목시켜 부가수익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또 각 업체들은 특화된 콘텐츠를 선보이며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파인드라이브iQ는 ‘아틀란’ 지도에 전국 250여 골프장의 홀 지도를 담았다. 각 골프장의 코스, 페어웨이, 그린, 워터헤저드, 티존 등의 위치를 자세히 넣어 코스를 미리 파악하거나 골프 칠 때에 휴대하면서 방향 조절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150개 주요 산의 등산로와 약수터 등의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팅크웨어의 ‘아이나비’는 낚시 전문 잡지와 콘텐츠 제공 계약을 맺고 전국 낚시터의 위치와 전화번호 등의 정보를 담았으며, 엠앤소프트는 최근 국립공원관리공단과 협정을 맺고 19개 국립공원의 야영장과 휴게소, 주차장, 폭포, 절, 해수욕장 등 정보를 제공키로 했다. SK에너지의 ‘엔나비’는 교통사고 같은 갑작스러운 사고가 발생해 정체나 통제중인 도로가 발생하면 이러한 정보를 전달해 우회도로를 안내하는 한편 아파트 단지 내 도로 및 각종 운동장의 형태까지 지도에 표현해 정밀도를 높였다.
최근 들어 내비게이션 업계의 화두는 도로상황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3차원(3D) 전자지도다. 3D 지도는 고가도로나 지하도가 있어 복잡한 교차로 등을 쉽게 보여주는 장점이 있다. 팅크웨어가 최근 3D 지도인 ‘아이나비3D’를 공개한 데 이어 엠앤소프트, 파인디지털, 시터스 등도 3D 지도를 출시할 계획이다. 아이나비의 3D 지도는 주행중인 도로와 건물, 다리 등 주변환경을 사실적인 3차원 입체영상으로 표현해 운전자가 시각적으로 더욱 편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편의점, 주유소 등 교통지표로서 인식이 가능한 건물과 지하철 출입구 표시기둥 등도 실제와 유사하게 그려넣었고, 강물이나 구름 등 계절·시간의 변화에 따른 배경화면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올해 30~40% 성장 전망 현재 내비게이션 보급률에 대한 통계는 기관마다 들쭉날쭉이다. 다만 지난해 말 현재 1600만대 이상의 차량이 등록됐고 이중 내비게이션 누적 보급대수는 450~500만대 정도라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팔려나간 내비게이션은 150만개가량으로, 약 6000억원어치에 달한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30~40% 성장한 200만개(약 1조원) 정도가 판매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국내 내비게이션 시장에선 70여개 업체가 경쟁하고 있는데 팅크웨어, 엠앤소프트 등 5~6개 업체가 전체 시장의 80~90%를 차지하고 있다. 1~2년 전부터 LG전자, 삼성전자, SK에너지 등 대기업들이 막강한 자본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내비게이션 시장에 진출했으나 일찍이 시장을 선점해온 중소 전문업체들의 시장 경쟁력을 넘지 못하고 있다.
내비게이션의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단말기의 경우 초기엔 개인용휴대단말기(PDA)에 전자지도를 탑재하는 형식으로 판매되다 1999년쯤부터 내비게이션 전용 단말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단말기 시장은 어느 한 업체, 한 모델이 시장을 주도하기보다는 판매 시점에 맞는 제품을 어느 업체에서 적기에 내놓느냐에 따라 시장 판도가 바뀐다고 한다. 초기엔 자동차 전문 제조업체들이 고가의 제품을 출시했으나 2006년쯤부터는 PMP, MP3플레이어 업체들이 내비게이션 단말기 생산에 적극 뛰어들었다. 최근엔 아예 자동차 생산 단계에서 내비게이션을 내부에 설치해 판매하는 ‘인대시(In-dash)’형이 과거 300만원에 달하던 설치 비용을 100만원 이하로 낮추면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도시장에는 팅크웨어의 ‘아이나비’, 엠앤소프트의 ‘맵피’와 ‘지니’, 파인디지털의 ‘아틀란’, 시터스의 ‘루센’, SK에너지의 ‘엔나비’ 등이 있다.
〈 이주영기자 young78@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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