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물은 한 곳에 가둬두면 썩지만, 흐르게 하면 신선함을 유지해 사람들의 목마름을 해소한다. 돈은 물과 같다. 돈이 몰려드는 곳을 우리는 시장이라 부른다.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라 사회구성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게 마련인데, 이기적인 행동을 못하게 막는다면 돈은 그것을 피해 달아난다. 그러나 정부는 공동선(共同善)을 이룩한다는 명분으로 그런 이기적 행동에 제동을 걸려고 한다. 정부의 이런 손을 흔히 ‘규제’라 부른다. 사회주의는 체제 자체가 이걸 주(主) 임무로 삼는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이것도 모순임을 알 수 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에게 도움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게 바로 세상의 이치이고 시장의 원리인데, 그걸 막겠다고 정부가 나서니 잘살 수가 없는 것이다. 북한과 쿠바가 못사는 이유를 보면 이는 확연해진다. 시장을 활성화하려면 규제완화가 급선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자가 제 이익을 찾아 행동하도록 내버려두면 최고의 품질과 서비스를 가장 싼값으로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을 테니 이것이 선(善)이 아니고 무엇인가. 공생의 원리도 결국 이런 것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시장경제가 양극화의 주범이라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경제발전이 빈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공통된 견해다.

공생의 원리 구현하는 시장

공생의 원리가 시장의 영역에서만 통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의 세계, 문화예술의 영역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유권자에게 선택받으려면 그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자 하는 예술가는 대중이 아직 본 적이 없거나 경험한 적이 없는 참신한 미(美)의 세계를 보여주면서 그들의 감성을 자극해야 한다.

세상엔 두 가지의 공생이 존재한다. 하나는 동양인이 전통적으로 인식하고 지켜온,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소극적인 공생이다. 다른 하나는 나도 잘살고 남도 잘살게 하려는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공생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이 시대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유효하고 이 시대 사람들이 원하는 공생 방법일까. 오늘날 많은 사람이 추구하는 ‘행복한 삶’이란 적극적인 공생 노력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던가. 그렇다면 시장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또한 달라져야 할 것이다.

시장은 개인의 삶에 토대를 제공할 뿐 아니라 공생의 터전도 마련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국력 또한 시장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시장은 끊임없이 변한다. 거래되는 물자와 서비스가 변하고 가격도 변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장은 역동적이다. 그래서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근대경제학은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國富論)’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정부의 시장 개입에 반대했다. 그에 따르면, 모든 경제 주체가 건전한 사회제도하에서 사전 조정 없이 각자의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면 가격기구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국민경제는 질서가 잡히고 부(富)와 번영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견해는 자유방임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의 사상적 토대가 됐다. 이렇듯 자본주의는 돈과 물자, 인력이 물 흐르듯 흐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2007년 4월 두바이를 방문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예비 후보.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를 뿐 아니라 돌고 돈다. 생명의 기반이 되는 물의 순환은 바로 이 같은 물의 성질에 따른 것이다. 현실세계에서 순환은 타인과의 교류를 의미한다. 돈 또한 돌고 돌면서 부를 증진하고 가난을 퇴치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방은 자유와 다를 바 없다. 굳이 그 차이를 따진다면 자유는 내적인 자기표현, 개방은 외적 자기 표출쯤으로 바꿀 수 있으리라.

시장은 품질과 가격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작동되는데,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화폐로 표현한 것이 가격이다. 누구나 품질과 가격에 자신이 있다면 시장에 참가할 수 있다. 그게 시장 참가자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장은 한껏 열려 있다.

“세계도시가 아니라 세계 그 자체”

자유와 개방이야말로 경제발전과 인간의 삶의 질 향상에 필수적이란 사실을 두바이만큼 잘 보여주는 예도 없을 것이다. 20여 년 전, 동양과 서양을 잇는 걸프 만에 위치한 교통요지, 더 정확히 말하면 런던과 싱가포르의 꼭 중간지점에 있는 이 도시를 항로 관계로 우연히 지나친 적이 있다. 당시엔 너무나 한산해 이름마저 생소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몇 년 전, 파키스탄을 거쳐 이집트로 가는 길에 잠깐 들른 두바이는 몰라볼 정도로 변해 있었다. 그들 스스로 “이제 두바이는 세계도시가 아니라 세계 그 자체”라고 할 정도다.

공항부터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세계 각국의 명품이 화려한 진열장에서 빼어난 자태를 드러내고, 아랍 국가답지 않게 히잡을 쓴 아랍 여성이 남자와 함께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등을 훤히 드러낸 외국 여성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아랍 국가는 고유 종교인 이슬람을 지키기 위해 폐쇄적이라는 선입관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알고 보니 두바이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했던 것이다. 국적이나 종교, 언어에 대한 차별도 없앴다고 했다. 심지어 외국인에게 이슬람에선 금기하는 술과 돼지고기까지 팔고 있었으며, 신앙의 자유가 허용돼 각자의 예배 공간을 둘 수 있다고 했다.

물 흐르듯 돈이 흐르게 하겠다는 두바이의 개혁 전도사 셰이크 모하메드 국왕의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듯, 두바이는 전세계의 돈과 상품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 두바이를 북아프리카, 중동, 인도, 중앙아시아 일대의 금융, 무역, 비즈니스, 쇼핑, 관광, 컨벤션, 문화의 중심지로 키울 계획이다.

제한이 없기는 투자 및 외화 송금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게 빠지면 금융허브의 꿈이 어찌 이뤄지겠는가. 금융·외환 부문의 개방은 중동에 처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동(東)지중해의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레바논에서도 외화 소지가 자유롭고 어디서나 환전이 가능하다.

레바논의 이런 전통은 기원전 1200년경 한때 해상무역으로 번성했던 페니키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에서 만난 레바논 사람들은 대부분 쾌활하며 자신감에 넘쳤고 무엇보다도 개방적이었다. 그들은 국적이나 인종에 괘념치 않는 듯했다. 누군가는 필자에게 “우리는 무역에 능했던 페니키아인의 후예로서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다”라고 했다.

고대 문명이 모두 큰 강 유역에서 발생한 것은 비옥한 충적토가 있는 강 하류 지역이 정착과 농경의 적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변 지역은 원거리 교역에는 불리했다. 시장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확대되지 못해 그들이 필요한 것을 모두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도 점점 활기를 잃어갔다. 그래서 문명의 중심지가 모든 게 모이고 흩어지는 바다로 옮겨갔다. 그 첫 무대는 동지중해. 지금의 시리아 서부와 레바논 일대로 그 주인공이 바로 페니키아인이었다.

세금 면제, 학비 전액 무료

세계 금융의 메카인 맨해튼은 바위땅에 설립된 도시다.

약 300년간 존속한 페니키아 문명은 인류 최초의 해상상업 문명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이집트, 북아프리카 등지를 상대로 활발한 교역활동을 벌였다. 비록 중개무역이었지만 원거리 민족과의 효율적인 거래를 위해서는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소통 수단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종래의 메소포타미아 설형문자나 이집트 신성문자와는 질적으로 다른 표음문자를 창안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알파벳의 원형이라 불리는 ‘페니키아 알파벳’이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페니키아인은 한동안 지중해 무역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두바이에는 또 세금이 없다. 터키와 그리스가 남북으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는 키프로스도 외국 자본에 대해서는 세금을 면제한다. 세금이 없으니 돈이 모여드는 게 당연하다. ‘조세 천국(tax heaven)’이라 불리는 라이베리아나 케이만 제도, 버진 아일랜드, 버뮤다 등은 그 좋은 예다.

두바이가 있는 아랍에미리트는 정말 작은 나라이고, 1971년에야 독립했으니 신생국가나 다름없다. 국력은 영토의 크고 작음과 무관하다. 시장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물자와 사람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 문화 교류의 장이 되기도 하는데, 큰 시장을 가진 나라는 자연스레 강국이 된다. 그러므로 강국이라고 해서 반드시 영토가 넓은 나라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영토가 작고 인구가 적어도 강국이 될 수 있다. 이를 흔히 ‘강소국’이라 부른다.

기업이든 나라든 자기가 잘하지 못하거나 아예 불가능한 일에 대해서는 외부 전문업체에 맡기곤 하는데, 이를 아웃소싱이라 한다. 자금과 인력도 아웃소싱이 가능하다. 두바이는 부족한 자금을 아웃소싱하기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뿐 아니라 금융거래에서 세금과 규제를 모두 없앤 것이다(해외자본 유치 정책을 ‘open sky policy’라 부른다).

창의적 아이디어와 최신 관리 노하우는 선진국의 것을 빌려 쓴다. 명품 메이커, 세계적인 도시계획자, 금융전문가, 미술관 설계자 등을 초빙하거나 그들에게 운영 권한 일체를 넘기는 것이다. 이제 이 도시에는 80개나 되는 외국인 학교가 운영되고 있으며 어디서나 유럽인과 미국인, 인도인, 러시아인, 아랍인, 한국인, 중국인, 이란인, 베트남인, 필리핀인 등 세계 각국 사람을 두루 만나볼 수 있다.

두바이 경제는 석유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석유 매장량도 그리 많지 않아 조만간 동이 날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이 나라를 건국한 라시드 국왕은 이미 1966년(유전도 1966년에 발견됨)에 ‘비전 2010년’을 세워 “2011년에는 오일달러에 대한 경제의존도를 제로로 만들겠다”며 학교, 병원, 도로망 등 인프라 구축에 많은 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인재 육성만이 장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며 학비를 전액 무료로 하는 조치도 취했다.

‘없으면 있게 하라’

이러한 인재 육성 프로젝트는 요르단에서 먼저 시작됐다. 중동국가 중 몇 안 되는 비산유국인 요르단은 일찍이 교육에 투자해 쿠웨이트 등 걸프 산유국에 인력을 공급해 1970~80년대에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인 바 있다. 당시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는 주택 건설 사업이 붐을 이뤘는데, 우리 건설사들이 큰 구실을 했다. 지금 코트라(KOTRA)가 입주해 있는 암만의 ‘피라미드’ 빌딩은 쌍용건설이 지은 것이다.

모하메드 국왕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는 일이다. ‘비전 2020년’을 통해 그는 철저히 아버지 라시드 왕의 뜻을 따르고 있다. 천연자원이 아니라 사람이 가장 큰 자산이라 믿기 때문이지만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또 사람을 가려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 면담 약속을 받지 못한 사람이 그의 집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불쑥 나타나 면담을 청해도 만나준다고 할 정도다.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여러 사람에게 전하고 두바이에 관심을 갖게 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카리스마가 아니라 설득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평양의 리더십과 대조를 이룬다. 한쪽은 문을 활짝 열어놓고 세계를 상대로 경쟁함과 동시에 교류협력을 강화해 국력을 키우고, 내부적으로는 국민에게 자기가 제시한 길로 함께 가자며 국가를 번영시키려 한다. 다른 한쪽은 문을 걸어 잠그고 내부를 보여주는 것은 치부와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외국과의 교류를 삼가고 모든 문제를 자력으로 풀어가자며 국민을 힘들게 한다. 그리고 국가마저 빈궁으로 끌고 가고 있다. 다시 말해 ‘궁핍의 정치’를 통해 국민이 딴생각을 하지 못하고 입에 풀칠하는 일에만 신경 쓰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고도 과연 ‘인민민주공화국’이라 할 수 있을까.

두바이가 대외개방을 추진하면서 교류협력까지 강화하는 것은 필요한 자금과 물자, 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만은 결코 아니다. 외국과의 교류는 세계 속에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또 그들이 세계에 대해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지 판단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가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서비스함으로써 자신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으니 말이다.

아랍 지역은 지금은 석유가 생산되어 사정이 많이 나아졌지만 원래는 척박한 땅이라 살기 위해서 일찍이 장사를 하거나 무역업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중세기에 탄생한 유명한 이야기모음집 ‘아라비안나이트’에 등장하는 일등항해사 신밧드가 아랍에미리트 남쪽의 오만 출신이라는 사실은 이 점을 잘 말해준다. 또 이웃 사우디의 왕족 등 최고의 엘리트들은 언제든지 사막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중동지역을 여행하면서 확인했다.

암스테르담 본뜬 뉴욕

1년에 한 달씩 라마단(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단식)을 지키는 것이나 종종 사막 속에 텐트 가옥을 짓고 한동안 지내면서 양을 잡아 ‘캅사’라는 밥을 배불리 먹고 매 사냥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 좋은 예다. 매 사냥은 언뜻 보기에 사치의 극치를 달리는 것 같지만 인내와 신중함을 단련하는 훈련으로는 최고라고 한다. 그리하여 환경이 바뀌면 언제라도 거친 옷, 거친 음식으로 돌아갈 마음자세를 가다듬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사막에서 야성을 길러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두바이인들은 ‘없으면 있게 하라’를 모토로 삼았고, 두바이는 ‘무엇이든 가능한 땅’이 되었다. 덕분에 세계는 두바이가 이룩한 놀라운 성과에 주목하고 있다. 메마른 초원을 돌며 유목생활을 하는 베두인들에게 ‘세계 최초, 세계 최대, 세계 최고’라는 목표를 향해 노력하게 한 결과 황량한 사막이 세계 금융의 허브, 이색관광지, 명품 쇼핑장 등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런 야성에 개방성과 융통성이 덧붙여진 결과라 해야 할까. 그들은 사막이란 지형을 훌륭한 도시 공간으로 만들었다. 라시드 국왕은 해안 수로인 크리크(Creek)를 건설했고, 지금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7성(星)급의 부르주 알 아랍 호텔이 막바지 공사 중이다. 돛배 형상으로도 보이지만 원래는 사막의 꽃을 이슬람 건축에 접목한 것이다. 그 자체로도 놀랍지만 최종 높이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국가기밀이라는 것이다. 바다를 메워 그토록 높은 초고층 건물을 건설하려는 것도 ‘두바이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악조건을 무릅쓰고 악착같이 최고의 높이로 건설하려는 이유에 대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에펠탑 없는 파리를 누가 찾겠는가.” 부르주 알 아랍이 두바이의 랜드마크 구실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작은 나라지만 통은 무척 커 보인다.

또 앞바다에선 야자수 모양의 인공섬 ‘팜 아일랜드’와 세계지도 모양의 ‘더 월드’ 공사가 2010년 완공을 목표로 분주하다. 지형은 고정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런 것들을 보면 그게 아닌 것 같다. 지형을 바라보는 시각과 활용하는 기술, 그리고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그 형태는 말할 것도 없고 용도마저 달라질 수 있는 모양이다.

이런 예는 예전에도 더러 있었다. 바다보다 낮은 땅을 관개해 삶의 터전으로 바꾼 네덜란드인들이 우선 그러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겨난 암스테르담은 한때 세계를 상대로 한 무역항으로서 이름을 날렸다.

이런 암스테르담의 예에 따라 건설한 도시가 뉴욕의 맨해튼이다. 뉴욕의 옛 이름이 바로 뉴암스테르담이었으니까. 이제는 세계 금융의 메카가 된 맨해튼의 월가(Wall Street)는 옛날 성벽이 세워졌던 곳을 일컫는다.

통일비용 절감 방안

그런데 맨해튼의 토대는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바위로 되어 있다.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이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살지 않는 쓸모없는 땅이었다. 하지만 네덜란드가 이곳을 차지했을 때는 해상무역이 한창 빛을 발하던 시기라 오피스 공간이 절대 필요했다. 그런 오피스 빌딩을 건설하는 데 단단한 바위 지반이 안성맞춤이었으니 지금 그곳에 100층이 넘는 마천루가 서 있는 것이다. 초고층 빌딩이야말로 업무용으로는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하지 않는가.

누군가 말했듯이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도 바뀌고 사회도 바뀌고 국가도 바뀔 수 있다. 성경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자유와 개방!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개념일 것 같지만 최근 10년간 말은 번지르르하게 했을지는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그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서도 자유와 개방, 그리고 시장의 기능을 제대로 살릴 임무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동포이면서 특수한 관계에 있는 북한에 대해서도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일방적으로 제공하거나 지원하기보다는 그들이 스스로 그것들을 구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게 그들에게도 득이 될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도 그럴 것이고. 다시 말해 대북정책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해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을 자유화하고 개방으로 이끌수록 북한 주민의 삶의 질도 나아질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통일비용 절감에도 이바지할 터니 말이다.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 아이디어의 보물섬! 최신 아이디어 모여라! www.idea-club.com >

[신동아]

가히 ‘경제만능시대’인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후보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슬로건을 집요하게 내세워 당선됐다. 동창회 모임에서도 펀드 투자 이야기가 주요 화제다. 중학생 정도면 친구들끼리 “너희 아빠는 연봉이 얼마냐?”고 묻는다. 서점의 경제·경영 서적 코너는 남녀노소로 북적거린다.

대학에서도 경영학 과목은 인기가 최고다. 수강 인원이 제한돼 있어 인터넷 수강신청에 성공하려면 운수가 좋아야 한다. 경영학을 부전공, 복수전공하려는 대학생이 급증하고 있다. 최소한의 경제·경영학 지식이라도 알아야겠다고 작심한 학생이 수두룩하다. 이공계 전공 학생들도 경영학 강의실을 기웃거린다. 음악, 미술, 체육 등 예체능계 전공자들도 예술 경영, 스포츠 마케팅에 관심이 많다며 경영, 경제학 강의에 관심을 보인다.

고려대 철학과에서 있었던 일이다. 철학과 전공과목에서 줄줄이 A+ 학점을 받는 우수 학생이 늘었다. 지도교수는 “인문학이 위기를 맞았다지만 학생들이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니 그 진단이 잘못된 것 아닌가”하며 흐뭇해했다. 그러나 그 교수는 최우수 학생을 불러 격려하다 허탈감에 빠졌다. 학생으로부터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신청하려면 학점이 좋아야 하므로 철학 공부에 몰두했다”는 말을 들어서다.

직장인 서가에도 ‘맨큐의 경제학’

경제학의 바이블로 통하는 ‘맨큐의 경제학’을 쓴 하버드대 그레고리 맨큐 교수.

한국 대학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선진국 대학에서도 경영학 강좌와 경제학 기초 과목은 큰 인기를 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는 경제학원론 강의에 학생들이 몰려들어 40개 강좌를 개설했다. 호주 멜버른대 교직원은 경제학원론 기말고사의 응시생 1000여 명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대형 강당을 물색하느라 곤욕을 치른다.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맨큐의 경제학’은 전세계 경제학도에게 바이블처럼 읽힌다. 한국어는 물론 중국어, 체코어, 프랑스어, 독일어, 그루지아어, 러시아어, 인도네시아어, 일본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됐다. 1960년대에 선풍을 일으킨 ‘위대한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 교수의 저서 ‘이코노믹스’보다 ‘맨큐의 경제학’ 위력은 글로벌시대를 맞아 훨씬 센 영향력을 행사한다.

최근 대기업 임원 A씨는 건축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아들의 책상 위에 놓인 ‘맨큐의 경제학’(김경환·김종석 옮김, 교보문고)을 발견하고 놀랐다. 경제학 서적치고는 표지 디자인이 화려하기 때문이었다. 내용을 훑어보니 컬러 사진과 그래픽이 그득했다.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A씨는 요즘도 손때 묻은 ‘경제학원론’(조순 지음, 법문사)을 가끔 들춰본다. 청년 시절에 경제학에 대한 눈을 뜨게 해준 소중한 길라잡이였고 그 내용이 여전히 유용하기 때문이다. 1974년 당시 조순 서울대 교수가 저술한 이 책은 다양한 사례와 깔끔한 편집으로 출판되자마자 경제학 서적 분야를 평정했다. 그 후 20여 년간 유사 서적의 추종을 불허했다. 영어 참고서 분야에서 ‘성문종합영어’가 누린 지위와 비슷했다.

A씨는 34년 전에 출판된 그 책 초판과 맨큐 책을 나란히 놓고 비교했다. 세상이 크게 변했음을 실감했다. A씨도 ‘맨큐의 경제학’을 샀다. 아들 것은 3판이지만 자신의 것은 2007년 1월에 나온 4판짜리다. 회사 사무실에 갖다 놓고 틈틈이 읽는다. ‘맨큐의 경제학 연습문제 풀이’(김경환·김종석 옮김, 교보문고)도 사서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부터는 복습문제와 응용문제를 풀어 해답집과 비교하며 공부할 작정이다. A씨는 회사 직원 몇 명에게도 이 책을 선물로 줬다.

동아일보 경제부, 산업부 기자들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데 열중하는 편이다. 독서 동아리를 만들어 새벽 일찍 출근해 ‘맨큐의 경제학’을 공부했다. 집에서 각자 읽고 와서 토론하고 한국의 현실 문제와 연결시켜 해법을 찾았다. 1032쪽에 달하는 두툼한 이 책을 뗀 공력을 바탕으로 화폐금융 분야 전문서 ‘미쉬킨의 화폐와 금융’(이상규 옮김, 한티미디어)도 독파했다. 이 책 역시 802쪽이나 돼 기자들의 가방이 더욱 무거워졌다. 공부 동아리 모임에 꾸준히 참여한 이나연 기자는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 대한 기사를 작성할 때 독서 덕분에 큰 도움을 얻었다”고 말했다.

맨큐 교수의 저서가 경제학 입문서로 왕좌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그의 화려한 학력부터 눈길을 끈다. 프린스턴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경제학과에 몸담고 있으니…. 그는 소장 교수 시절부터 학생들을 지루하지 않게 잘 가르쳐 ‘베스트 티칭’ 상을 여러 번 받았다. 그의 강의를 정리한 노트가 다른 학교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그는 출판사로부터 거액의 선금을 받고 경제학 입문서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책이 나오자 경제학계와 언론계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경제 이론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풍부한 사례와 비유를 사용해 경제학 기본원리를 잘 설명했다”는 호평을 얻었다.

예컨대 임금 차별에 대해 설명할 때 농구선수 샤킬 오닐과 영화배우 짐 캐리가 고소득을 얻는 이유를 사례로 들었다.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가 1931년에 받은 연봉 8만달러는 요즘 선수의 연봉과 비교해서 많은 편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물가수준과 화폐가치를 설명한다.

한국어 번역판은 매끄럽게 잘 정리됐다. 여러 신문에서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며 문장력을 인정받은 김경환 서강대 교수와 김종석 홍익대 교수가 심혈을 기울여 번역한 결과인 듯하다. 공동 번역자는 처남 매부 사이인데다 프린스턴대 동문이기도 해서 호흡이 잘 맞았다. 잠시 강단을 떠나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자리에 앉아 있는 김종석 교수는 딱딱한 경제학 이론을 재미있게 풀이하는 것으로 이름났다. 그는 “교수 생활 초기부터 언젠가 좋은 경제학 입문서를 쓰리라고 마음먹었는데 맨큐 교수의 책을 보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맨큐에 도전하는 한국 토종

조순 전 서울시장이 쓴‘경제학원론’은 34년째 사랑받고 있다.

조순 교수의 ‘경제학원론’은 법문사에서 2000년까지 출판됐다. 그 후 율곡출판사로 판권이 넘어가 개정판이 나왔다. 초판이 나온 1974년 3월 저자는 서문에서 “다섯 수재 제자의 도움을 받았다”며 그들의 실명을 밝혔다.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다섯 수재는 모두 역량 있는 경제학자로 성장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경제수석으로 발탁된 김중수 박사와 노무현 정부 초기에 청와대 수석으로 활동했던 이정우 교수 등이 그들이다. 법문사에서 4판을 찍을 때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공저자로 참여했다.

법문사는 조순·정운찬 공저 ‘경제학원론’의 후속편을 마련했다. 책 제목도 똑 같은 ‘경제학원론’(이준구·이창용 지음, 법문사)이다. 이 책은 ‘맨큐의 경제학’에 자극 받아 저술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쓴 새로운 차원의 경제학 입문서가 필요하기도 했다. 이 책이 좋은 반응을 얻자 저자들은 ‘경제학 들어가기’(이준구·이창용 지음, 법문사)를 썼다. 경제원리를 더욱 쉽게 설명한 책이다. 저자인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창용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땄다. 학력으로도 맨큐 교수에게 뒤질 것 없다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저자들은 ‘경제학 들어가기’ 개정 2판 머리말에서 “외국 경제학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경제학자들이 얼마나 재미없는 책을 썼기에 그런 말이 나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외국의 사례를 들어 외국 사고방식에 맞는 방법으로 설명한 책은 어차피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저자들은 또 “그런데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는 뜻”이라면서 “이제는 외국 책으로 경제학에 입문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자유주의 강조한 입문서도 눈길

이준구·이창용 교수의 ‘경제학 들어가기’.

이 책은 실제로 재미있고, 한국인 사고방식에 맞게 집필됐다.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다. 토씨 하나도 적확하게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화려한 컬러 사진이나 세련된 그래픽은 맨큐 저서를 능가한다. 곳곳에 ‘생각해 봅시다’란 작은 박스형 글을 실어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경제원리를 쉽게 설명했다. 읽을거리 글로 ‘좋은 음식점을 고르는 방법’ ‘다이어트 열풍’ ‘놀아야 경기가 살아난다’ 등을 곁들였다. 흥미진진하게 읽다 보면 어느덧 경제원리를 깨우친다. ‘경제학 들어가기 연습문제와 해답’(이준구·이창용 지음, 법문사)이란 자습서를 옆에 놓고 보면 적잖은 도움을 얻는다. 제대로 책을 이해했는지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식(數式)을 써서 경제 이론을 주로 설명하는 경제학자 대부분은 문장력이 달리는 편이다. 문과 재능보다 이과 재능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고급 경제학 논문을 보면 글보다는 수식이 더 많다. 계량경제학 논문은 거의 수식으로만 이뤄져 수학 논문을 방불케 한다. 문장으로 쓰면 장황하게 서술해야 할 내용이 수식이나 그래프로는 일목요연하게 요약된다. 유려한 문장을 구사하는 경제학자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 정황이 이해되지 않는가.

연세대 상경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윤석범 명예교수와 김학은 교수는 문장가로 예우 받는 학자들이다. 두 교수 모두 역사, 종교, 철학, 문학 등 인문학에도 조예가 깊다. 윤 교수는 화가로도 활약한다. 시야가 넓고 상상력이 풍부한 학자임을 알 수 있다. 계량경제학을 전공한 윤 교수는 ‘경제사상의 흐름: 그 시대, 그 사람, 그 학설’(윤석범 지음, 세경사)이란 저서에서 절제된 문장의 진수를 보여줬다. 화폐금융론이 전공 분야인 김 교수는 ‘폰지게임과 베짓처방’(김학은 지음, 전통과 현대)에서 현란한 비유법을 구사했다.

호방한 성격의 이들 교수는 멋진 경제학 서적을 함께 쓰기로 의기투합했다. 그 첫 결실이 ‘새 거시경제학’(윤석범·김학은 지음, 세경사)이다. 이 책은 경제학의 흐름을 명료하게 설명했다. 계량 연구방식에 정통한 저자들의 서술 솜씨가 돋보인다. 경제학 이론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으므로 문장의 멋을 나타낼 여유는 없다.

“경제원리 활용해야 선진국 된다”

글솜씨가 좋은 윤석범·김학은 교수의 ‘새 거시경제학’과 ‘자유주의 경제학 입문’.

저자들은 ‘자유주의 경제학 입문’(윤석범·김학은 지음, 세경사)이라는 846쪽짜리 두툼한 책을 냈다. ‘자유주의’란 말이 붙은 이유는 머리말에 잘 나타나 있다. 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해서 경제를 발전시켜야 국민은 격앙가를 부르며 편안하게 산다는 논리다.

“국가는 여전히 영토를 벗어날 수 없지만 시장은 전세계를 영토로 삼고 있다. 교회가 전세계에 성경 하나를 들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듯이 시장은 상품 하나를 들고 전세계를 찾아간다. 전에는 국가와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한 국가가 선진 강국이 되었듯이 앞으로는 ‘국가와 시장’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는 국가와 국민이 선진강국이 될 것이다. 국가와 교회의 시절에는 신학이 중심이었듯이 국가와 시장의 시대에는 경제학이 중심이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인문학 소양을 충분히 발휘했다. 세계사 에피소드, 철학 이야기, 문학적 비유가 넘쳐난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 제국주의 마지막 단계에서 아프리카 식민지의 22개 코코아 대농장 중 4곳만이 배당금을 지불할 수 있었고, 58개 고무 대농장 가운데 8곳만이 배당금을 지불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미국의 시인 칼 샌드버그의 시도 인용됐다.

이 책은 오랜 세월의 숙성을 거쳐 탄생했다. 윤석범 교수는 소장 학자 시절부터 경제학 입문서를 저술하고 싶었으나 스승 최호진 교수의 저서가 있었기에 중복되는 책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 후 집필을 시도하려다 원로 스승 김상겸 교수가 입문서를 쓴다는 사실을 알고 또 포기했다. 윤 교수는 이 책의 맨 앞 페이지에 ‘고 김상겸 교수님을 추모하며’라고 썼다.

‘글로벌 시대의 경제학’(송병락 지음, 박영사)의 저자 프로필에 독자는 압도당하지 않아도 된다. 서울대 부총장을 지낸 경제학자라…. 책을 펼치기도 전에 “경제 전문용어가 수두룩해 골치 아픈 책이 아니겠는가”고 지레 겁을 먹는 사람이 상당수 아닐까.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경제를 이렇게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하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다. 술술 읽힌다 해서 건더기 없이 멀건 국물만 그득한 책이 아니다. 저자의 깊은 내공 덕분에 푸짐한 건더기가 곰삭았다.

피해야 할 책들

송병락 교수의 ‘글로벌 시대의 경제학’.

이 책의 특징은 이야기 형식으로 서술됐다는 점이다. 여느 경제학 서적과는 달리 수식과 도표가 거의 없다. 소설처럼 흥미롭게 읽다가 보면 책 내용에 공감해서 무릎을 치는 경우가 있으리라. 한국의 장래를 매우 밝게 전망하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저자는 경제학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더글러스 노스 교수는 경제학은 오락처럼 즐길 수 있는 것이고, 니시무라 가즈오 일본 교토대 교수는 일본인들이 21세기를 맞이하여 활력을 찾는 최선의 방법은 경제원리를 잘 공부하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기본 경제원리이다.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에 우리 기업과 산업, 나라의 경쟁력과 우리 생활수준을 세계 수준으로 높이는 길은 이런 경제원리를 잘 이해하고 잘 활용하는 것뿐이다.”

저자는 서울대 부총장 시절에 많은 외국 귀빈을 맞았다. 그들에게서 선물을 받고 뭘 답례로 줄까 고민하다 갓을 골랐다.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공식 모자가 바로 이것”이라 설명하며 뫼 산(山)자 모양의 대감 갓을 주자 모두들 대단히 좋아하더라는 것이다. 저자는 서울대 교육행정연수원이 초중고교 교장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연수강의에서 ‘최고 명강사’로 자주 뽑힌다. 이 강의를 직접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며 명강의를 듣는 것으로 갈음하면 되겠다.

경제학 교과서, 입문서는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 각 서적마다 특징이 다르다. 기피해야 할 책은 저자가 예닐곱 명이나 되는 대학교재이다. 이런 책은 주로 수강생이 의무 교재로 선택하도록 급조한 것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함량이 떨어진다. 또 공무원 수험서 비슷한 형식의 경제학 입문서도 피해야 한다. 표지만 번지르르하고 내용은 조악한 것이 대부분이다.



고승철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cheer@donga.com < 아이디어의 보물섬! 최신 아이디어 모여라! www.idea-club.com >

[신동아]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_ 김병종 지음

원색의 강렬한 화풍으로 사랑받는 김병종 화가가 환상과 결핍이 교차하는 라틴 세계로 떠났다. 쿠바 멕시코 브라질 칠레 페루로 이어지는 여정에서 그는 예술가의 눈으로 남미의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무용은 물론, 사회 전반을 살펴보았다. 에세이와 그림으로 구성된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헤밍웨이, 보르헤스, 파블로 네루다, 로맹 가리, 체 게바라, 에바 페론이 그의 붓끝에서 화려하게 피어났다. 반평생을 쿠바에 머물며 정신적 쿠바인으로 살아간 헤밍웨이, 환상문학의 꽃을 피워낸 신화적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궤적을 따라가는 맛이 이채롭다. 노동자의 춤에 불과하던 탱고를 세계화한 위대한 작곡가 피아졸라, 전세계에 쿠바음악 열풍을 불러일으킨 아프로 쿠반 재즈 그룹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감동적인 선율도 그의 화폭에 고스란히 담겼다.

남미 사람들의 삶에 대한 묘사는 실감난다. 푸른 나무, 밝은 태양, 맑은 하늘, 청옥빛 카리브해…, 이런 자연을 닮아 낙천적인 쿠바인들은 석양이 되면 골목에 끼리끼리 모여 연주하고 춤추는 데 거침이 없다. 아르헨티나로 가면 그의 글과 그림도 탱고 선율을 닮는다. “고단한 이민자들이 첫 짐을 풀었다는 푸르토 마데로 항. 적막하고 스산한 이 부두는 언젠가부터 원색의 옷이 입혀지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난다. 현란한 색깔들은 처음엔 풍경을 바꾸고, 마침내 ‘가난쯤이야’ 하고 말하듯 삶마저 바꾸어버린다. 무기력과 우울은 환희와 기쁨에 자리를 내준다.” 책을 읽고 나면 여행가방을 꾸려 떠나고 싶어진다. 랜덤하우스/ 288쪽/ 1만2000원

공부하다 죽어라 _ 현각 외 지음, 청아·류시화 옮김

푸른 눈의 외국인 출가 수행자들이 던지는 인생의 화두. 하버드·예일·코넬·소르본·제네바 대학 등 세계적인 명문대를 졸업한 서양의 젊은 지성 11명이 ‘낡은’ 세계관을 버리고 만난 깨달음의 세계관을 들려준다. 2003년 11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대전 자광사에서 매달 행한 ‘외국인 출가 수행자 초청 영어 법회’의 내용을 받아 적어 우리말로 옮겼다. 미지의 길에서 그들은 과연 무엇을 발견했는가? 현각 스님은 “나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그 어떤 종교를 믿든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다”라고 했고, 파나완사 스님은 “그 누구도 고귀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천하게 태어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행위에 따라 고귀하게도, 천하게도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화로운삶/ 352쪽/ 1만4000원

밤으로의 여행 _ 크리스토퍼 듀드니 지음, 연진희·채세진 옮김

밤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폭넓게 다룬 백과사전식 에세이. ‘나는 밤을 사랑한다. 신비한 여름밤, 밤이 찾아올 때 느끼던 흥분, 밤의 검은 광채’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매력적인 에세이는 ‘낮과 낮 사이에 낀 어둠의 시간’에 대해 흥미롭게 풀어낸다. 밤에 대한 천문학 생물학 생리학 의학 등 학문적 접근도 놀랍지만, 문학 영화 축제 신화 나이트클럽 불꽃놀이 등 문화적 차원의 해석도 풍부해 읽는 맛을 더한다. 독자는 이 책에서 수많은 예술가가 왜 그토록 밤을 찬양했는지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또 ‘나이트클럽이 생겨난 이유’ ‘불면증의 원인’ ‘미국 갱영화를 필름 누아르(noir, 검다는 뜻)라 부른 이유’ 등 밤과 관련된 일상의 궁금증도 풀 수 있다. 예원미디어/ 500쪽/ 1만8000원

미래에 관한 마지막 충고 _ 마티아스 호르크스 지음, 송휘재 옮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유행병처럼 주민들 사이에 만연하는 사회·문화적 현상을 가리키는 ‘얼라미즘(alarmism)’이란 말이 있다. 우리말로 기우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지금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권위 있는 미래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예스’라고 말한다. 극단화의 경향을 지닌 얼라미즘 때문에 우리 삶이 더욱 어리석고 일차원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 그는 또 세계화를 사악하게 보는 시각, 온난화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시각, 폭력의 증가와 문화 전쟁이 평화를 파괴할 것이라는 시각 등을 미래를 두렵게 느끼게 하는 빌미가 되는 ‘동화’라고 규정하면서 그런 시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마트비즈니스/ 352쪽/ 1만5000원

신은 위대하지 않다 _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2001년 벌어진 9·11 사건으로 종교의 배타성과 폭력성, 호전성, 반인간성, 반문명성에 대한 회의가 전세계 시민사회로 퍼져나갔다. 특히 팍스아메리카나의 기독교 복음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 앞에서 사람들은 신과 종교의 의미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있다.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는 이 책은 지난해 5월 출간 직후부터 전세계에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포린 폴리시’와 ‘프로스펙트’가 뽑은 ‘100인의 지식인’에도 든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경전의 원전, 문헌학과 해석학, 역사 등에 근거해 신중하고 지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특히 저자는 종교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신의 속성에서 찾아내고, 신의 자기모순을 파고들어 신과 함께라면 인간은 평화와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알마/ 440쪽/ 2만5000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 _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개인 도서관인 ‘고양이 빌딩’에서 책에 파묻혀 지내던 일본의 지성 다치바나 다카시가 2001년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로 한국에서 다카시 열풍을 불러일으킨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 고양이 빌딩에 책이 가득 차자 그는 인근에 집을 한 채 더 빌려 서고를 만들고 책읽기와 글쓰기에 매달렸다. ‘나는 이런 책을…’의 완결판인 이 책은 그런 그의 독서 기록이다.

저자는 무엇보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의 10년을 책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지적 체력단련기라고 표현한다. 대학 졸업 뒤 문예춘추사에 입사한 그는 자신의 독서 편향에 좌절하고,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다고 느끼자 ‘마음껏 책을 읽고 싶어’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에 다시 입학했다.

이후 그는 인간 지구 우주 예술 문명 신화 사랑 세계경제 등 전방위적인 영역에서 지혜를 건져 올렸다. 그의 독서평(2부)은 산만한 듯하면서도 하나하나가 독특한 여운을 안겨준다.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리히테르에 관한 평전인 ‘리히테르’, 세계 금융시장의 핵심을 파고든 ‘전 지구화하는 돈’, 예수 탄생 신화의 뒷얘기를 파헤친 ‘마리아’를 하나의 에세이에서 다룬 것이 한 예다.

독서평보다는 책과 자신의 성장 과정을 풀어놓은 1부가 훨씬 재미있다. 그의 삶과 독서론이 던지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무언가를 새로 안다는 것은 유익하고 흥미진진한 모험이라는 것. 그리고 그 모험길에 가장 강력한 무기는 책이라는 것. 청어람미디어/ 632쪽/ 2만3000원

임꺽정(4판) _ 홍명희 지음

한국 문학의 고전인 벽초 홍명희의 대하역사소설 4판이 출간됐다. 남북 분단 사상 최초로 남한 출판사가 북한과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은 작품으로, 어려운 용어나 생소한 낱말은 뜻풀이를 하고 박재동 화백의 그림을 곁들여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편집했다. 소설가 김훈이 쓴 ‘산성 칠장사 답사기’, 관련 논문과 인물 관계도, 김남일 주강현 등이 쓴 ‘임꺽정 백배 즐기기’ 같은 부록에 담긴 내용도 흥미롭다. 소설은 알다시피 백정 출신 도적 임꺽정의 활약을 통해 조선시대 민중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김훈은 ‘임꺽정’을 읽는 즐거움을 ‘페이지마다 넘쳐나는 신바람에 올라타서 글과 함께 출렁거리면서 흘러가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사계절/ 전 10권 각 300~500쪽/ 각권 1만800원

탐험의 시대 _ 마크 젠킨스 엮음, 안소연 옮김

인간은 왜 여행을 하는 걸까. 유목민들은 살기 위해 여행을 한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행을 한다. 무역업자들은 돈에 이끌려 여행을 한다. 제국주의자들과 군인들은 권력을 좇아 여행을 한다. 여행의 목적은 그래서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다만 여행의 동기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좀더 이전 시대 사람들은 그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여행길에 올랐다. 이 책은 그 호기심 해결의 기록이다. 1888년부터 1957년까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린 탐험과 여행에 관한 수천 편의 글 중에서 가려 뽑았다.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기자, 외교관 등 26인의 여행기다. 지호/ 376쪽/ 1만6000원

오즈의 프랑스 와인 어드벤처 _ 오즈 클라크 외 지음, 김보영 옮김

요즘엔 국내에서 값싸고 질 좋은 신대륙 와인들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와인의 본고장은 프랑스다. 평균적으로 프랑스는 전세계 와인 생산량의 19%를 차지하고 있으며, 와인 애호가들이 꼭 가보고 싶어하는 와이너리들이 즐비한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와인 비평가 가운데 한 명인 오즈 클라크가 자동차 애호가이면서 와인보다 맥주를 더 좋아하는 친구 제임스 메이와 프랑스 와인 기행을 떠났다. 오즈는 부르고뉴, 보르도, 프로방스, 론 등 주요 산지들을 돌며 친절하게 와인을 설명한다. 와인 용어, 테이스팅법, 에티켓, 레이블 읽는 법, 저장법, 추천 와인 등이 컬러 화보와 함께 잘 정리돼 있다. 와인과 어울리는 요리에 대한 음식궁합 이야기도 재미있다. 예담/ 284쪽/ 1만6000원

왕유 詩全集 _ 왕유 지음, 박삼수 역주

왕유는 중국 당나라 시대 시인으로 시선 이백, 시성 두보와 함께 3대 시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시뿐 아니라 음악과 그림에도 능해 남종문인화의 시조로도 알려져 있으며 독실한 불교신자이기도 했다. 그는 19세 때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길에 올랐지만 좌천, 아내와의 사별 등 굴곡진 삶을 보내다 나이 40에 자연에 은거했다. 이후 그는 시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정치적 이상을 토로하며, 현실 사회의 불합리성을 풍자했다. ‘한가로이 살아가는 이곳, 이름하여 우공곡(愚公谷)/ 어찌 번거로이 세속의 시시비비를 따지랴?’(‘농가’ 중에서)고 읊은 그의 넓은 마음을 왕유 연구의 권위자인 박삼수 울산대 교수의 주석으로 만끽할 수 있다. 현암사/ 912쪽/ 3만8000원

미코노미 _ 김태우 지음

제목 ‘미코노미’는 나(me)와 경제학(economy)을 합친 말이다. 미코노미란 웹을 통해 개인과 개인이 대화를 나누고 무한대의 정보를 공급받으며, 소규모 사업자가 미디어·금융·공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 등의 새로운 경제 흐름을 일컫는다. 이런 변화 탓에 과거에 수동적인 소비자였던 개인이 능동적인 공급자의 위치에 서게 됐다.

예컨대 책을 출판할 수 없었던 이들이 자기출판 사이트인 룰루(www.lulu.com)를 통해 책을 출판하고, 자기 음반 발매가 가능한 셀라밴드(www.sellaband.com)를 통해 음반을 발매한다. 또 단돈 수십만원이 없어서 사업을 할 수 없었던 제3세계 사업가들이 키바(www.kiva.org)에서 소액대출을 받아 창업에 성공하며, 위키피디아(www.wikipedia.org)에서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집필자로 참여한다.

흥미로운 일화는 끝도 없다. 미국의 고교생 세 명이 장난으로 다이어트 콜라에 멘토스를 넣고 분수를 만드는 3분짜리 동영상을 유투브에 올렸다. 이 동영상은 곧 유투브에서 인기를 누리며 불과 몇 달 만에 코카콜라에 1000만달러의 마케팅 효과를 가져다줬다.

참여와 공유, 개방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모습의 경제’(미코노미)가 우리 가슴을 떨리게 하고 있다. 쉽게 대화의 장으로 뛰어들 수 있게 하는 웹2.0, 어텐션(주목) 이코노미, 쓸모없는 것으로 여겼던 80%에 귀기울이는 롱테일(Long Tail)이라는 단어들이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미국 코넬대 석사 출신의 저자는 ‘풀타임 블로거’이자 ‘프리랜서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한빛미디어/ 292쪽/ 1만5000원

결단 _ 천천·쉬지엔 지음, 윤진 옮김

하루하루가 ‘결단’의 나날이다. 그러나 중요한 결단 앞에 서면 언제나 머뭇거리게 된다. 이 책은 그처럼 어려운 결단을 조금 더 쉽게 내릴 수 있는 방법론을 우화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한정된 먹이를 두고 약육강식의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초원에서 표범·사자·하이에나·영양 무리가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사투는 곧 현대인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주인공 표범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다섯 가지 결단의 법칙을 배우게 된다. 먼저 성공은 반성에서부터 시작된다. 둘째 강력한 자신감을 가져라. 셋째 나와 소통하는 모든 것을 소중히 여겨라. 넷째 자신만의 선물을 잘 가꿔라. 다섯째 우리의 수호천사는 바로 ‘나’ 자신이다. 1부 우화에 이어 2부에선 실천법을 자세히 정리했다. 미르북스/ 224쪽/ 1만원

2008 트렌드 키워드 _ 김민주 지음

최신 트렌드를 경제, 사회, 문화, 인물, 과학 등 분야별 키워드로 정리해 보여준다. 저자는 “트렌드는 먼지와 같다”라고 말한다. 주변에서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보고 들어도 이를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하고, 민감한 사람들만 그 기척을 감지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둔감한 사람들은 먼지가 뭉쳐서 방바닥에 굴러다녀야 알게 되지만, 그때가 되면 이미 늦다. 저자는 남보다 먼저 먼지를 파악하는 방법으로 키워드에 민감할 것을 권한다. 예컨대 물을 생산하고 유통하며 소비하는 과정에 관련된 기업에 투자하는 금융상품인 ‘물펀드’, 생체의 원리나 메커니즘을 이용해 공학적 난제를 푸는 자연모사공학 등 다양한 트렌드 키워드를 만날 수 있다. 미래의창/ 351쪽/ 1만2000원

하와이로 간 젊은 부자 성공 비밀 38 _ 히로 나카지마 지음, 송수영 옮김

27세에 10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해 34세에 은퇴하고 하와이로 떠난 젊은 부자 이야기다. 그는 생존 경쟁의 레이스에서 탈출한 뒤 네 가지 자유를 얻었다고 한다. 장소의 자유, 시간의 자유, 행동의 자유, 경제의 자유가 바로 그것.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저자는 목표를 향해 의식을 개혁하기 위한 부의 방정식을 만들었다. ‘Y(젊어서 은퇴한 뒤 남은 삶을 즐기며 자유롭게 사는 생활) = A(현재의 삶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력)x(자산)+c(콤플렉스)’가 그것. 즉 A가 크면 자산이 많지 않아도 ‘생존경쟁’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마케팅, 시장 개척, 파트너 관리법 등 실천 전략들을 제시한다. 밀리언하우스/ 208쪽/ 1만1000원

돈 버는 감성 _ 시마 노부히코 지음, 이왕돈·송진명 옮김

경제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21세기 전반, 적어도 앞으로 20년은 감성의 시대가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취재를 통해 알게 된 다양한 기업과 지역의 사례에서 바로 이 키워드를 길어 올렸다. 예컨대 오늘날의 소비자는 가격이나 양이 아니라 디자인, 센스, 안전, 건강, 청결, 환경 등 라이프스타일의 ‘감성’을 중요시한다는 것.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인구의 감소’ ‘고령화 시대’ ‘환경의 세기’ ‘웰빙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다. 부문별로 수많은 사례가 등장하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환경으로 자동차업계의 세계 제일을 추구하는 도요타자동차, 철의 도시에서 의료와 건강 도시로 탈바꿈한 미국 피츠버그 등이 그런 사례다. 젠북/ 344쪽/ 1만3000원

스시 이코노미 _ 사샤 아이센버그 지음, 김원옥 옮김

저널리스트 사샤 아이센버그가 2년간 5개 대륙 14개 국가를 돌며 ‘발로 쓴’ 이 책은 날생선의 무역 이야기에서 문화·역사·경제 이야기를 발라낸 논픽션이다. 팔딱이는 생선을 재빨리 저며 따끈한 밥 위에 얹어내는 즉석요리 ‘스시’가 글로벌 문화상품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스시는 사무라이 시대 후반기에 나타났지만 주로 길거리에서 팔리는 간식용 절임식품이었고, 선어(鮮魚) 상태로 요리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저자는 스시가 미국인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전세계적으로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일본인 정착촌 ‘리틀 도쿄’에 출장 간 일본 비즈니스맨들이 즐기는 것을 보고 업자들이 생선을 ‘상하지 않은 상태로’ 미 전역에 유통하면서 스시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담백한 스시가 다이어트 식품으로 소개돼 끈적끈적한 소스를 싫어하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았고, 마침내 고급음식으로 자리매김됐다. 이 과정에서 세계적인 스시 요리사 마쓰히사 노부유키가 큰 활약을 했고, 스시 체인의 국제화 버전인 ‘노부’도 탄생했다. 스시의 인기에 힘입어 아무도 먹으려 하지 않아 고양이 사료로 쓰이던 참치고기가 최고급 스시 요리 재료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 책은 스시를 소재로 글로벌 산업주의의 현재를 두루 이야기하고, 세계화의 단면을 입 안에서 음미케 한다. 미식가에게는 식도락의 의미를, 마케터에게는 시장 개척의 기회를, 일반 독자에게는 세계화의 효용과 가치를 한눈에 조망케 하는 ‘한 점의 스시’ 같은 책이다. 해냄/ 360쪽/ 1만5000원

아부지, 저희 집으로 가입시더 _ 윤문원 지음

각박한 세상 인심에 멍울진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가족 에세이. 먹을거리조차 부족하던 보릿고개 시절부터 21세기에 접어든 최근까지 어려움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은 가족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그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아버지, 아내를 여의고 시골에서 혼자 살아가는 노인, 호롱불 아래서 삯바느질로 자식들을 키운 어머니의 고단한 이야기 등 20여 편의 에세이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가족이란 언제나 함께하기에 그 소중한 의미를 잊고 사는 공기와 같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새로울 것은 없지만 새삼 ‘공기’의 소중함을 일깨우게 하는 힘이 있다. 밝은세상/ 224쪽/ 9800원

호모 엑스페르투스 _ 이한음 지음

‘실험하는 인간(Homo Expertus)’이라는 뜻의 제목처럼 이 책은 인류의 삶을 바꿔온 과학 실험에 대한 얘기를 갈무리했다. 뛰어난 과학번역가 겸 저술가인 저자는 과학의 최첨단을 이끈 실험에 대해 유려한 글솜씨로 풀어놓는다. 예컨대 호기심 많은 미시간대 데이비드 버스 박사는 ‘바람기에 대처하는 남녀의 자세’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밝힌다. 남성은 여성과 달리 2세가 자기 자식임을 100% 확인할 수 없으므로 여성의 성적 방종을 생물학적 위기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육체적 불륜을 더 참지 못한다. 하지만 반대로 여성은 안정적인 육아를 위해 정서적 불륜을 더 위험하게 생각한다. 과학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이성’이 아니라 ‘호기심’일 수 있음을 짐작케 하는 사례다. 효형출판/ 256쪽/ 1만2000원

이산 정조, 꿈의 도시 화성을 세우다 _ 김준혁 지음

저자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에 대한 학술연구를 담당해온 학예연구사이자 정조시대를 연구해온 소장 연구자다. 그런 그가 정조의 개인적 삶과 개혁정치, 화성에 대한 이야기를 쉬운 글로 풀어썼다. 더욱이 도시 경관에 대한 수준 높은 고민의 산물인 화성에 대한 이야기는 중심이 돼야 할 인간과 자연이 변방으로 밀려나고 그 자리를 물신주의가 차지하고 있는 세태를 비판하는 글로도 읽힌다. 정조의 위민사상과 그를 둘러싼 음모와 여인 등의 일화는 요즘 방영되고 있는 정조에 관한 TV 드라마 따라잡기에 좋다. 정조가 8일간의 화성행차를 결행한 이유는 사도세자를 참배하고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위해서가 아니었으며 거기엔 고도의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여유당/ 368쪽/ 1만5000원

세상을 바꾼 어리석은 생각들 _ 프리더 라욱스만 지음, 박원영 옮김

엉뚱한 생각 끝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필요 없는 기계와 계산법을 발명한 라이프니츠,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에 돌을 던진 사상가 루소,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혐오스러운 이미지를 그림에 담은 화가 고야 등 ‘어리석어 보이는 생각들’로 세상을 바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법학 박사인 저자는 이런 엉뚱한 인물들과 사건을 통해 ‘불필요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생각’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며 독자에게 생각의 자유를 향한 여행을 제안한다. 그런 여행을 통해 누구나 세상을 바꾸는 ‘선구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독일 언론은 이 책에 대해 ‘라욱스만의 편안한 지식여행은 언어적 장벽을 뛰어넘어 모든 이가 이해하기 쉽게 쓰였다’라고 평했다. 말글빛냄/ 243쪽/ 1만3800원



담당·정현상 기자 < 아이디어의 보물섬! 최신 아이디어 모여라! www.idea-club.com >

<앵커> 종합자산관리 전문회사 한경와우에셋이 설립후 처음으로 고객 대상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서브프라임 이후의 투자전략이 주제입니다.

보도에 김덕조기자입니다.

<기자>

우선 서브프라임 사태의 글로벌 확산은 대응 전략의 실패가 원인이라고 밝혔습니다.

<인터뷰> 한상춘 미래에셋투자연구소 부소장 "벤 버냉키 의장과 부시 행정부의 초기 대응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나 미래에셋 투자연구소는 당사자인 미국보다도 비정상적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등 아시아권 주가 하락폭이 컷다며 현 시점에서 알맞은 투자전략을 세우면 의외의 큰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비정상적인 것은 언젠가는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경제학의 균형이론에 근거한겁니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의 구체적인 투자전략으로 수출업종 그 중에서도 IT업종을 제시했습니다. 현 시점에서 주가가 과도하게 떨어진 국가와 업종의 편입비율이 높은 글로벌 적립식 펀드에 대한 관심도 주문했습니다.

한경와우에셋은 정기적인 재테크 세미나와 재무교육을 실시해 단순한 자산관리에서 벗어나 고객들이 금융시장을 이해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인터뷰> 김현철 한경와우에셋 대표이사

WOW-TV NEWS 김덕조입니다.

<빠르고, 쉽고, 싼 휴대폰 주가조회 숫자 '969'+NATE/ⓝ/ez-i>

<TV를 통한 관심종목 조회 및 주식매매 서비스(데이터방송)>

김덕조기자 djkim@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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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대우증권 리서치센터 독후감 발표회...작지만 신선한 시도]

"애널리스트는 주가, 기업, 미래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 진정한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겸손함을 지닐 수 있도록 교양과 안목을 지녀야 한다."

대우증권 홍성국 리서치센터장(상무)이 평소 센터 직원들에 강조하는 말이다. 홍 센터장은 "요즘 국내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은 인풋(input)이 없이 아웃풋(output)에 시달리고 있다"며 "시장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교양과 식견을 지닐 수 있도록 스스로 단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우증권 리서치센터는 이런 취지에 따라 지난 1월부터 센터내 직원들을 상대로 독후감 발표회를 갖고 있다. 매일 아침 100여명의 리서치센터 직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사원 1명씩 독후감을 발표하고 토론하고 있는 것.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회 전반에 걸친 주요 이슈들에 대한 정보도 나눈다. 독후감 발표 후에는 홍 센터장이 직접 나서 책이나 저자와 관련한 배경,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등에 대해 친철한 설명을 곁들인다.

처음에는 다소 반발도 있었다고 한다. "가뜩이나 힘든데 굳이 그래야 하나"는 불만이었던 것. 하지만 발표회에 참여하면 한달에 적어도 20권 이상을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고, 신선한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적극적인 참여로 바뀌었다고 한다.

발표하는 직원들의 경우 책의 내용을 짧게 요약하는 능력도 읽히고 이를 여러 사람 앞에서 효과적으로 발표하는 기술도 터득할 수 있어 좋다는 반응이다.

홍 센터장은 "일부러 주식과 직접 관련된 책을 되도록 선택하지 않는다"며 "폭넓은 교양과 사물인식 능력을 갖춰야 최고의 애널리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시장에서 애널리스트들은 지나치게 시장 자체에 경도돼 있는데, 폭넓은 자기 훈련 없이 에너지를 소진하는 풍토는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센터는 지금까지 독후감용으로 기후변화의 경제학, 네이버의 성공신화, 오일의 경제학, 나쁜 사마리아인, 웹 진화론 등을 다뤘다.

모바일로 보는 머니투데이 "5200 누르고 NATE/magicⓝ/ez-i"

이승제기자 open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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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부의 정책에도 적잖은 문제가 있었지만, 임기 내내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일부 고위 당국자들의 품위 없는 언행이었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개선하여 밝은 빛을 비추고자 했던 좋은 뜻도 품위 없는 언행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결국 정권을 넘겨주었다.

아직은 그리 길지 않은 헌정사를 가진 우리 사회에서 오늘 당장 품위 있는 정치를 기대한다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것처럼 성급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정치에서 조금이라도 품위를 찾고자 하는 것은, 품위 없는 정치가 대다수 사람들의 자존과 위상을 크게 훼손하여 자괴심마저 들게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타나는 상황을 보면 당분간 쉽게 치유될 것 같지도 않아 더욱 그러하다.

지난 정부에서 임명한 공기업 사장들의 퇴진 압박을 둘러싸고 설왕설래하는 모습도 그다지 품위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그들 중에는 능력이 출중하고 정책 측면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능력이 되지 않지만 정권의 전리품으로 자리를 꿰찬 사람도 있고, 현 정부의 정책 방향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난감하기로는 법이나 규정이 정한 임기제를 외형상 무너뜨릴 수 있어 법치주의 원칙과는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정부와 당사자 모두가 품위를 유지하면서 이 일을 원만히 처리하는 길은 문제의 인사들이 스스로 퇴진하든지 다시 신임을 묻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부합하는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인물은 자연스럽게 퇴출되도록 하는 것이다. 능력과 정책 기조에 문제가 없다면 임기를 보장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총선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자존심에 흠집을 낸 일도 적지 않다. 선거관리위원회가 하루 동안 고심한 끝에 인정하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해 정당으로 인정한, 특정인의 성씨를 빗댄 단체명부터 품위있는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그런 정당에 속한 인사들의 수준이나 품위에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런 이름의 정당으로 유권자들의 신임을 물어오는 상황에서 무슨 정치적 품위를 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나중에 한국의 정당사를 공부하는 후손들이 아마도 실소를 금하지 못할 것 같아 적잖이 걱정스럽다. 지금이라도 지향하는 이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당명을 정비하는 성의가 필요할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역구 선거를 보완하기 위한 비례대표제가 냉소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 당의 비례대표 당선자 가운데 허위 학력과 허위 경력, 나아가 전과까지 엄연한 후보들이 있어 검찰의 수사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 상황은 그 정당을 지지한 사람은 물론 일반 유권자들의 자존심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특별 당비’만 해도 정치자금법이 규정하지 않고 각 당의 당헌에 의거해온 만큼, 법적 근거를 확보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비례대표 후보와 정당 간에는 커다란 이해가 걸린 문제겠지만, 그런 점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볼썽사납다. 유권자를 우습게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인사들이 정당의 이름으로 국회의원 후보에 오를 수 있을까.

괜찮은 가정과 존경 받는 기업도 당대의 짧은 시간 안에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몇 세대에 걸친 절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기고 지느냐에 따라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의 구도가 좀처럼 개선될 것 같지 않은 우리의 정치가 높은 수준을 보이기까지에는 더욱 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나마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하기 위한 길은 가정과 학교 등에서 자식 세대들을 잘 가르치고 품위 있게 자라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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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왼쪽 두번째)한나라당 최고위원이 17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뉴타운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하종기자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17일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이 뉴타운과 관련해 한 말을 보고 논란이 있다”며 “오 시장은 일관되게 말했는데 뉴타운이라는 개념이 복잡해서 듣는 사람은 한다고 할 때도 있고 안 한다고 할 때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고 뉴타운 공방과 관련한 야당의 공격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뉴타운’공약에 대한 통합민주당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당내 서울 지역 당선자들을 중심으로 정면돌파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물건값이 올라가면 해결하는 방법은 공급을 늘리는 것 밖에 없고 행정규제로 묶으면 일시적 방편은 되지만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 경제학 교과서에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도심지를 재개발하는 게 경제적이라고 했는데 적절한 말이다. 신도시보다는 도심지를 재개발할 경우 방법이 재건축, 재개발, 뉴타운”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은 “서울 동작을 (총선) 후보로서 저의 경쟁이 되는 후보측이 한 번은 ‘뉴타운을 안한다고 한 것은 직무유기’라고 공식으로 말했고, 한 번은 ‘뉴타운을 한다고 하는 것은 관권선거’라고 했다”며 “최근 민주당 대표는 뉴타운 발언이 관권선거라고 했는데 발언이 모순된다. 같은 당도 반대되는 이야기를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안 한다고 하면 직무유기지, 한다고 하는 게 관권이 아니다”라며 “서울 어느 지역을 뉴타운으로 지정하면 집값이 오른다고 하는데, 뉴타운 때문에 집값이 오르는 게 아니고 노무현 대통령 때 주택거래를 동결시켜 가격 형성이 안 돼서 그렇다”고 말했다.

정 위원은 이와 관련 “여름에 횃불을 켜면 벌레가 많이 모이는데 횃불이 만든게 아니고 횃불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는 “가격을 안정시키려면 공급을 늘려야 하고, 도심지를 개발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라며 “언론에는 뉴타운을 공약한 게 스물 몇명이라고 나오는데, 다 선견지명이 있는 분”이라고 옹호했다.

앞서 신지호(서울 도봉갑) 당선자도 전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어떤 민주당 후보는 뉴타운 공약을 내걸어 부끄럽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뉴타운은 좀 잘 살아보자고 하는 지역 주민들의 간절한 염원이며, 여기에 부합하는 것은 굉장히 타당한 행위”라고 말했다.

양성욱기자 feelgood@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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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민주당 지도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 문제를 놓고 이견을 노출하고 있다.

김효석 원내대표는 17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나도 경제학을 하는 사람으로 개방론자”라면서 “FTA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 지금 처리하는게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고, 어떤게 국익에 도움이 되는 지에 대해 손학규 대표와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또 “손 대표는 이번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고 제 입장은 지금 처리하는 게 결코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라면서 “쇠고기 시장까지 개방하면서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라며 4월 임시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는데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글로벌 시장에서 개방은 적극적이어야 한다”면서 “그러나 스크린쿼터 등 한·미 FTA 협상의 4대 선결조건을 다 내줬고, 최근 쇠고기 협상을 보면 국내 식탁까지 위험하게 됐으며 오바마, 힐러리 등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들이 모두 FTA에 반대하고 있는데 미국이 처리 하지 않으면 어쩔 것이냐”며 이같이 주장했다.

오는 23∼24일 예정된 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 워크샵에서 의견을 모은 뒤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통해 이번 임시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안의 처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와관련, 손 대표는 지난 16일 언론인터뷰에서 “아직도 한·미 FTA 찬성이 당 정체성에 위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FTA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으며 미국과의 통상력을 높이고 세계와 경쟁하는 모습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말해 한·미 FTA 비준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거듭 피력했다.

한편, 김 원내대표는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움직임에 대해 “투기꾼은 시장에서 응징하도록 해야 하며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다”면서 “시장을 투명하게 하고 불공정한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에 대해서도 “대기업을 돕기 위해 법인세를 추가로 낮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법인세는 세계적으로 볼 때 높지 않다”면서 “일률적으로 낮추게 되면 혜택을 보는 것은 상위 0.1%가 되는 대기업”이라고 주장했다.

/rock@fnnews.com최승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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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소신과 철학 실현하는 역할해야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핵심은 기업들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어느 부처보다 관심이 집중된 곳이 바로 공정거래위원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말 그대로 기업 거래의 질서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곳으로 ‘경제 검찰’로 불린다. “재벌회장도 벌벌 떤다”는 기관이다. 이 자리에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경제 브레인인 백용호(52) 공정거래위원장이 앉았다.

백 위원장은 현 정권의 장관급 인사 중 최연소 인사로 눈길을 끌었다. 또한 이 대통령과 쌓아온 인연은 10년 세월이 넘는 측근 중 측근이다. 지난 10여 년간 이 대통령 곁에서 정치적인 파란을 함께 겪어왔고, 경제정책에 관한 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눈높이도 맞췄다. 이런 그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뢰는 각별하다. 다른 참모들과는 달리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인데다가 외유내강의 강인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과 접촉을 달가워하지 않는 스타일이어서 외부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그를 만나기 위해 한 달이라는 시간을 기다렸다. “업무 파악도 안 된 상태에서 인터뷰부터 하지 않겠다”는 입장 때문이었다. 기자와 만난 그는 소박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지만 꼼꼼함과 명석함이 내재된 강단(剛斷)을 읽을 수 있었다. 소문대로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인 것이 분명했다.

4월 초순의 따뜻한 봄날. 거리에는 개나리, 목련, 벚꽃 등 형형색색의 꽃들이 수줍은 듯 방긋거린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가 들어선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옛 기획예산처 청사의 뒷동산에도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이 요즘 가끔 오르는 작은 동산이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바쁜 업무 속에서 유일하게 잠시나마 숨을 돌리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이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앉자마자 공정거래위원회와 관련된 질문부터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실용 정부의 경제정책을 집행해가는 데 ‘무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공정거래위원회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궁금해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다(관련 일문일답은 박스 안에 있음).

공정위의 역할에 대한 그의 소신은 분명해 보였다. 이런 신념은 그가 오랜 세월 이 대통령과 경제관을 조율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경제 살리기라는 큰 숙제를 안고 정권을 잡은 실용 정부 내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 대통령이 그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는 각별하다. 지방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기업가 출신인 이 대통령이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을 뛰어넘고 엘리트로 성장한 그의 투지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백 위원장은 1956년 가옥이 몇 채 안 되는 충남 보령의 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장사를 해 근근이 먹고 살았지만 그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오랫동안 심장병을 앓던 어머니가 세상을 떴다. 그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몸져누운 어머니 대신 그와 동생을 돌본 사람은 할머니였다. 지금도 그는 할머니와 손을 잡고 아랫마을 장에 갔다가 하루 서너 대밖에 오가지 않는 버스를 놓쳐, 어둑어둑한 산길을 두려움에 떨며 오르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는 결혼한 고모가 있는 군산으로 갔다. 여기서 남성고등학교를 나왔다. 10대에 자취를 해야 하는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각오로 공부에 매진해 장학금을 받으며 졸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아버지는 그가 안정적인 공무원 자리인 동네 면서기나 경찰이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넓은 세상에 나가겠다는 결심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던 백 위원장은 대학 진학을 택했다. 마침 서울에 있는 중앙대학에서 전국의 우수한 학생을 선점하기 위해 내놓은 특차 전형에 합격해 학비는 물론 생활비 걱정 없이 대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는 1980년 정경대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것도 3년 6개월 만의 조기 졸업이었다. 곧바로 외환은행에 취직했지만 1년 2개월 만에 임철순 당시 중앙대 이사장의 권유로 은행을 그만두고 유학길에 올랐다. 우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전액 장학금으로 학비를 대겠다고 나선 것이다. 1982년 미국 뉴욕 주립대에 진학했고, 여기서도 우수 학생으로 장학금을 받았다. 그는 이런 인연 때문에 “살아오면서 학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주식 가격 결정에 관한 이론을 주제로 한 그의 박사논문은 뉴욕주립대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경제학 중에서도 금융 쪽에 치중해 공부한 것은 은행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이쪽 분야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은행을 중심으로 한 돈의 흐름과 증권을 중심으로 한 돈의 흐름이 어떻게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컸기 때문에 자연히 그쪽으로 공부를 해나간 것이다.

학문으로는 더할 수 없는 결과를 얻었지만 그의 청춘기는 오로지 공부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 유학 시절이다. 그는 “좀 더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관심이 가는 과목을 다양하게 수강하고 여행도 다녔으면 좋았겠다 싶다”고 했다. 1985년 12월 귀국한 그는 이듬해 3월 이화여대 교수가 됐다. 당시 백 위원장의 나이가 만 서른이었으니, 이화여대의 최연소 남자교수였다. 젊은 남자가 수많은 여대생 앞에 서 있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었을 터. 짓궂은 질문을 던져봤다. 어여쁜 여학생들 앞에서 제대로 강의가 되더냐고. 그는 “교단 높이가 10~15㎝ 정도에 불과하지만, 일단 그 위에 서 있으니까 선생이 되더라”고 웃음으로 답했다.

당시 소장파 학자로 개혁적 성향이 강했던 그는 1989년 창립한 경실련에 참여했다. 우리나라가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역대 최고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호황을 누렸지만 부동산 투기의 기승으로 아파트값과 땅값이 폭등하고, 차명계좌 개설 등을 통한 음성적 돈의 흐름이 횡행하자 뜻있는 경제학과 교수들이 뭉친 것이다. 백 위원장은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및 국제위원장을 맡으며 언론을 통해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다수의 성실한 사람에게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금융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가 절실했어요.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다른 분들과 함께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요. 김영삼 정부가 1993년 금융실명제를 전격 도입한 것은 우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건이었고, 경실련이 거둔 행복한 수확이기도 했어요.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국민이 정부정책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정보도 많이 알아야 해요. 경실련을 비롯한 초창기 시민단체가 이 역할을 함으로써 사회를 수평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확신합니다.”

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그는 대통령소속 자문기관인 21세기위원회(현 정책기획위원회) 정책개발위원장이었다. 그는 그러나 “당시 한국의 정치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갔고, 관료 사회 속에서 자문 역인 내가 의견을 강력히 전달할 수 있는 채널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가 자초한 IMF 외환위기의 수습을 떠안은 것은 김대중 정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이후 우리나라의 중추 기업을 과도하게 팔아버렸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금융 전문가인 백 위원장의 견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구멍난 배와 짐, 그리고 인간의 심리’로 이를 설명했다.

“항해를 하다가 배에 구멍이 나 물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짐을 버려야 해요. 그런데 막상 짐을 버리고 무사히 육지에 다다르면 버린 짐이 아깝게 생각되는 게 사람 마음이지요. 전 김대중 정부의 선택이 당시로선 최선이었고 불가피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게 김대중 정부에 정치적 부담이 되는 부메랑이 된 것도 사실이에요. 많은 기업이 매각되는 과정과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길거리에 나앉았잖아요. 그런데 노동자들이야말로 김대중 정부의 기반이었으니,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일이었겠어요. 어쩌면 김대중 정부의 숙명이라고 봅니다.”

그는 정치권의 제의로 19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서대문구에 출마했다가 국민회의 장재식 의원에게 패했다. 당시 신한국당은 젊은 피를 수혈하겠다며 홍준표, 맹형규, 이신범 등 새얼굴들을 대거 내세웠다. 정치에 뜻이 없었던 그는 마지막까지 출마를 고사하다가 막판에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21세기위원회 활동을 하고 라디오 진행은 물론 TV 출연이 잦으니까 당에서는 제가 꽤 정치적 성향이 있는 인물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결국 이대에 사표까지 쓰고 출마했는데 낙선하고 나니까 허망했죠. 두 달간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오기가 생겼어요. 이왕 나섰으니 제대로 뛰어들어보자 결심했지요. 지구당 위원장직을 그대로 갖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했어요.”

백 위원장이 이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도 이 즈음이다. 이 대통령은 종로에서 출마해 당선했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결국 국회의원직을 내놓고 낭인이 되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가장 어려웠던 이때 이 대통령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백 위원장이다. “전부터 이 대통령에게 호감이 있었기 때문에 도움이 되고 싶어 다가갔다”는 게 백 위원장의 설명. 당시는 모든 사람이 이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은 끝이라고 말하던 때다.

(위) 1996년 15대 총선 국회의원 후보자 연설을 하는 모습. (가운데) 2003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새 청사를 순시하는 모습. (아래) 2003년 7월 청계천 복원공사 기공식. “대한민국의 기업 풍토에서 어떻게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사람이 까다로운 정주영 회장에게 발탁돼 전문경영인으로 클 수 있었을까 궁금했어요. 그 캐릭터를 배우고 싶었지요. 실제 이 대통령은 배울 점이 많은 분이에요.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으로 전문경영인으로 성공한 게 아니라 기업인으로서 동물적 감각이 탁월하지요. 이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반납하고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자청해 이 대통령이 설립한 동아시아연구원 원장이 됐어요. 비상임으로 월급 없이 일했어요.”

그는 동아시아연구원장으로 일하면서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출마 당시 내세운 공약을 주도적으로 생산해냈다. 2002년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취임하자 그는 핵심 브레인으로서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이 됐다. 그는 재임 당시 박사급 연구원을 대거 영입함으로써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을 명실상부한 서울시의 싱크탱크로 만들었다. 청계천 개발, 대중교통 개편, 시민의광장 조성, 뉴타운 개발 등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일군 굵직굵직한 업적이 시정개발연구원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시정개발연구원장으로 일한 3년간 행복했어요. 다만 워낙 부지런한 시장 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육체적으로는 좀 힘들더라고요(웃음). 하루 5~6시간 마라톤 회의는 다반사였어요. 어떤 사람은 청계천 복원사업이 날림이었다고 비난하지만, 이 대통령은 벽돌 한 장 쌓는 일에도 한 치의 오차가 없도록 치밀하고 꼼꼼하게 챙기셨습니다.”

이 대통령이 시장 임기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대선전에 뛰어든 2006년 6월부터는 바른정책연구원(BPI) 원장으로 학계의 MB맨들을 규합해 대선공약을 개발하며 뒷받침했다. 바른정책연구원은 유우익 청와대 대통령실장이 이끈 국제정책연구원(GSI)과 함께 이 대통령의 양대 정책자문 그룹으로 꼽힌다. 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도 경제1분과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런 경력 때문에 그가 현 정권의 경제팀에 주요한 일을 맡을 것이라는 예측은 인수위 시절부터 나왔다.

요즘 백 위원장의 하루 일과는 매일 아침 5시30분에 시작된다. 30분간 독서를 하고, 15분간 스스로 개발했다는 요가동작과 명상을 한다. 그는 “명상할 때는 눈을 감고 전날을 반성하고 오늘을 어떻게 살지 계획한다”고 말했다.

문득 정치인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그의 처세에 대한 원칙은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그는 “살면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는 것이고, 내가 타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면 그 역시 내게 같은 감정을 갖는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선(善)으로, 내 탓으로 보는 습관을 가지려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공직을 맡기 전에는 가끔 혼자서 하는 산행(山行)을 즐겼다. 혼자 산에 오르며 바람소리, 새소리, 흙 냄새, 나무 냄새와 같은 자연의 감촉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럴 여유가 없어 아쉽단다. 그 대신 영화평론가인 아내 조혜정씨와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을 찾고 있다. 아내는 여운이 긴 작품성 있는 영화를, 그는 재미있게 보고 곧 잊을 수 있는 오락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건 두 사람이 똑같다.

공정위 업무를 무사히 마치고 다시 여유가 있는 시절이 찾아오면 아내와 영화관 데이트로 휴일도 없이 집을 비우는 남편의 미안함을 달래줄 생각이다.

“자율경쟁 깨는 반칙기업 잡아낼 겁니다”

대통령이 추구하는 경제정책의 기조를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어떻게 실현할 것입니까. “기본적으로 대통령은 시장주의자예요. 기업과 시장에 대해 확고한 철학을 갖고 계시죠. 공정위는 대통령의 소신과 철학을 실현하는 역할을 할 거예요. 시장은 정부가 개입을 중단한다고 해서 잘되는 게 아니에요. 질서가 있어야죠. 공정위는 자율경쟁 속에서 질서를 깨는 ‘반칙 기업’을 잡아내는 역할을 할 겁니다.”

취임 직후 주변에서는 백 위원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일단 경쟁정책을 집행한 경험이 없다는 점이 지적됐는데요. “그런 말은 선의의 우려라고 생각해요. 시장의 질서를 지키는 것은 시장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소신이 있으면 되는 거예요. 저는 금융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학교에서도 ‘시장과 정부’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계속 시장 관련 공부를 해왔어요. 또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제가 주로 연구한 것은 금융실명제라든가 소유 집중 문제 등 재벌 문제였지요. 오래전부터 그쪽 분야에 대한 지식기반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씀이에요.” (그는 1997년에 ‘알기 쉬운 돈의 경제학’(비봉출판사)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일반인들이 알기 쉽도록 돈의 흐름이 시장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자세히 설명해놓았다. 그 속에서 시장에 대한 그의 인식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그는 경제는 ‘흐름’이 막히지 않도록 하는 데 중점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취임 초에 나온 또 한 가지 우려는 공정한 경쟁을 통한 시장질서 유지라는 공정위 본연의 업무보다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등 대기업 규제를 푸는 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 공정위는 대통령 보고에서 대기업 출자제한을 완화한다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기업활동을 사전적으로 막는 행위는 마치 부모가 아이가 나쁜 짓을 할까봐 밖에 내보내지 않는 것과 같아요. 일단 나가도록 하되 잘못을 저지르면 혼을 내든가 교정하는 게 옳지요. 출자총액 제한제 완화는 그런 이치에요. 기업의 활동을 자유롭게 해주되, 잘못을 할 경우 시장의 감시자인 공정위가 사후적으로 징계에 나서는 것이지요. 우리 경제나 기업도 이제 그만큼 성숙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과도하게 재벌 위주로 가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기업이 잘 되면 기업가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에요. 기업에는 수많은 종업원이 있어요. 기업이 잘되는 것은 미래 우리 청소년들에게 일자리가 많아지는 일이지요. 따라서 기업과 사회를 분리해 바라보는 시각은 위험해요. 또 하나, 기업이 경쟁하는 것은 어떻게 좀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 더 많이 팔까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되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소비자를 위한 몸짓이 경쟁으로 나타나는 거지요. 기업이 경쟁하는 혜택은 소비자에게 간다는 얘기예요. 때문에 기업 친화적이라는 표현 대신 시장 친화적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중소기업 문제는 이렇게 생각해요. 상당수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하청 관계에 있잖습니까. 중소기업이 물건을 만들었는데 그 물건을 사다 쓸 대기업이 부도나면 중소기업도 망할 수밖에 없어요. 따라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相生)하는 거예요. 단, 불공정 거래에 대해서는 공정위가 철저히 감시하고 교정해야 하지요.”

검찰처럼, 공정위에도 강제조사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위원장의 생각은 어떤지요.

“지금은 강제조사권을 고려하지 않아요. 강제조사권보다 공정위 직원들이 훈련을 통해 전문성을 높임으로써 기업이나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하면서 효율적인 조사가 이뤄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약력 1980 중앙대 경제학과 졸업 1985 미국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1993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및 국제위원장 1994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 위원 1996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1998 동아시아연구원 원장 2002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원장 2005~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교수 2006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 2006 바른정책연구원 원장 2007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위원회 위원 2008. 3~ 제14대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글·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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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환경 개선위해 정치적 영향력 행사

이동 잦은 가난한 동네선 별다른 노력 안해

차별은 결국 합리적 선택의 결과

부자 동네, 가난한 동네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찰스 부스는 19세기말 런던의 부유한 지역과 가난한 지역을 등급을 매겨 지도에 표시하고 오늘의 현실과 비교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거의 예외없이 과거에 가난했던 지역은 지금도 가난했다. 지리와 역사는 운명이며 탈출할 수 없는 덫인가.

시시껄렁한 일상의 얘기에 경제학을 적용, 독자들을 매료시킨 경제학자 팀 하포드는 일상이 굴러가는게 부조리하고 불합리해 보여도 다 이유 있는 ,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라는 것을 방대한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부자동네가 더 안전하고 많은 혜택이 주어지고 있다면 가난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거기엔 뭔가 비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보다 정치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자신이 살았던 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 얘기를 들려주면서 부자들의 선택이 얼마나 합리적인가를 보여준다. 부자동네 사람들은 그곳에서 계속 살려는 경향이 있어 주변환경 개선에 관심이 많다. 정치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인센티브가 강하기 때문에 정치적 영향력도 큰 반면 가난한 동네 사람들은 이동이 잦아 개선해 달라고 싸우는게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라는 얘기다.

우리는 흔히 차별을 비합리적이라고 여기지만 실은 합리적이며 차별은 죄가 아님을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2003년 일단의 버지니아대 학생이 돈을 받고 실험에 참가했다. 고용주와 근로자로 나뉘었고 근로자그룹은 무작위로 자주색과 초록색을 부여받았다. 근로자는 교육을 위해 돈을 지출하면 테스트 점수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고용주는 교육을 잘 받은 근로자를 채용할 때마다 돈을 더 받게 된다.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첫번째 실험에선 고용주들은 시험결과만으로 채용을 결정했다. 그렇지만 두번째 실험에선 초록색 근로자들이 자주색보다 우연히 교육에 더 많이 투자한 첫번째 결과를 보고 고용주들은 점수가 낮더라도 초록색 근로자를 더 많이 채용하게 됐다. 그 다음엔 평균 채용률이 공개되자 초록색 근로자들은 교육에 더 투자를 한 반면 자주색 근로자들은 더 이상 교육에 투자하지 않게 됐다. ‘게으른 자주색’과 ‘성실한 초록색’이라는 편견이 생긴 게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에 근거한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셈이다.

브루킹스 연구소 로스 A. 해먼드의 시뮬레이션을 보면 아주 사소한 일, 개인의 합리적인 결정 하나가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준다. 컴퓨터는 매일 무작위로 사람들을 짝짓기 하고 이들에게 정직하게 살지, 부정직하게 살지 고르게 했다. 컴퓨터상엔 처음에는 이기적인 악한들이 가득하고 몇몇 정직한 시민이 그들 사이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보인다. 인센티브를 주어도 정직한 사람들은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반면 악한들은 상대가 호응할 것으로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다르게 인센티브를 고려, 행동하기 시작한다.다른 악한들도 정직하게 행동할까봐 두려워지면 자신들 역시 정직하게 행동하려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가령 정직한 사람들이 연대해 법적 조치를 취할 것 같은 인상을 줄 때에 효과를 나타낸다. 이런 변화가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다. 세상은 갑자기 정직이 최상의 정책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은 악한들로 가득찬다.

저자가 제시한 갖가지 사례들은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믿는 이들에게 위로를 주고 개인의 자유의지에 힘을 실어준다.

이윤미기자(mee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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