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한국에서 일어난 상황은 얼마나 극적이었던가. 집권 몇 달 만에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20%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전례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과 그의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의 내각은 대규모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는 수석비서관 7명 전원을 교체하고 한반도 대운하 같은 핵심 정책들을 단념해야 했다. 그는 또 정책 실패와 ‘소통 능력의 부족’에 대해서도 두번이나 사과해야만 했다. 지난 4월 방미에 많은 것을 걸었고, 동맹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던 그는 한·미동맹을 전임자보다 더 큰 위험에 노출시켰다. 그는 국내 문제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도록 도와달라고 미국에 간청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진척시키는 대신, 그는 오히려 노동단체와 종교계를 포함해 반대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그의 목표인 FTA 비준의 전망은 불투명해졌다. 지난해 12월의 사자(승리자)는 “일찍 찾아온 오리(조기 레임덕)”가 됐다.
잘못된 협상으로 동맹 되레 위축광우병과 인간한테서 나타나는 크로이츠펠트 야코브병 간의 관련성은 2000년 즈음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3년 이후 미국에선 소 3마리가 광우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을 나타냈다. 당시 한국은 다른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했다. 일본은 모든 소를 일일이 검사하기로 해 미국 정부를 대단히 불쾌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강한 압력 아래에 놓인 한국은 ‘자율적’ 규제 체계를 채택했다. 이 체계에서는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및 척수, 머리뼈 등 일부 부위의 수입이 금지된다. 그러나 맨처음 들어왔던 3대의 선적분에는 금지된 부위가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자율적’ 체계는 만족스럽지 않다. 게다가 광우병 소와 증상이 유사한 ‘일어서지 못하는 소(다우너소) 증상’은 아마도 수십만마리의 미국 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은 무역 분쟁의 요소가 되지 못하고 있다.
FTA 협상의 일부로 미국은 한국이 유지하고 있는 제한된 수준의 규제 조치마저 철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4월까지만 해도 협상은 답보상태였다. 한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4월17일 오후 6시쯤(워싱턴 시간) 민동석 농림수산식품부 차관보는 양측의 입장이 “멀리 동떨어져 있고”, 그 간극이 “너무 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튿날 오전 5시쯤 협상은 타결됐다. 한국이 굴복한 것이다. 어떻게 이 같은 변화가 있을 수 있었는지 그 논리는 확실하지 않다. 한국인들에게 이것은 고위급 수준의 정치적 결정으로 보였다. 이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의 골프 카트를 운전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숙박하기 위해 쇠고기 규제를 폐지하기로 결심했거나, 또는 미국 측에 FTA 비준을 서둘러달라고 설득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해석됐다.
결과적으로 5~6월 촛불집회의 규모는 커졌고 100만여명이 거리로 나온 6월10일 정점에 이르렀다. 한국 정부는 추가협상을 재개해 위기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미국은 4월의 협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한국인들의 신뢰가 회복되는 시점까지 민간 자율규제 체계로 돌아간다는 데 동의했다. 육류 수출업자들의 친절함을 믿어보자는 조치다. 이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인들의 의지를 존중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이 대통령이 미국에 굴종했다고 봤다. 이 대통령은 그가 몇주 전에 사과했던 바로 그 사람들의 허를 가차없이 찌른 것이다.
문제는 쇠고기뿐만 아니라 건강과 안전, 식품 위생, 그리고 책임있고 민주적인 통치에 관한 것이다. 식품의 불안전성은 곡물가격 상승과 재고량 감소, 기아 확산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심화되는 지구 식량위기의 맥락에서 보자면, 쇠고기 소비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가 아니라 현대판 귀족인 소수 엘리트들의 특권이다. 그들이 소비하는 육류 1㎏을 얻으려면 곡물 약 8㎏이 필요하다. 이 곡물을 생산하려면 상당한 양의 물이 투입된다. 한국인은 (또는 다른 사람들도) 토지와 용수, 노동력을 할애해 쇠고기 섭취에 대한 열정을 채우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그 같은 자격을 세계 경제에 요구할 권리가 없다. 만약 죽은 동물이 살아있는 동물의 사료로 재활용되는 나라가 세계 쇠고기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면 사람들은 자유무역의 원리 그 자체를 재고해야만 한다.
일본처럼 한국은 세계 식량시장이 가장 취약한 바로 그 순간에, 세계 식량시장에 의존하기로 선택했다. 이명박의 한국은 식량 수입 의존도가 74%에 이른다. 61%인 일본을 능가하는 수치다. 만약 쌀을 통계에서 제외한다면 한국의 의존도는 95%까지 올라간다. 식량의 대외의존도를 필연적으로 증가시킬 FTA에 매달리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명박이 워싱턴을 떠나자마자 미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포린 어페어스’에 글 한편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조심스럽게 호주·일본을 (한국과) 구별했다. 미국은 이들 국가와 함께 “강력하고 민주적인 동맹”을 즐기고 있다. 또 이들과 함께 미국은 “아시아와 그 너머에서” 그리고 “글로벌 파트너”인 한국에서, “우리의 가치들을 보증하고 확산시킬 수” 있었다. 라이스가 다른 범주 안에 한국을 떼어놓음으로써 무엇을 의미하려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라이스가 한국이 경험했던 “빈곤과 독재에서 민주주의와 번영으로 나아가는 인상적인 여정”에 관해 말했을 때 한국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민주주의와 번영”을 매우 많은 비용을 치러가며 그들 스스로 쟁취했다는 것을. 반면 미국은 독재정권의 주요한 지지자였으며 1980년 광주 시민들이 학살될 때 침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민들 ‘정치적 각성’ 계기 돼쇠고기 프리즘을 통해 한국인들은 현대의 핵심적 제도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민족주의의 한계들과 대면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5년마다 한 번씩 정치적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민생에 관한 핵심적 문제들에 관해 대중들의 의지가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증하지 못한다. 자본주의에서 시장에 대한 절대적 복종은 건강과 행복, 삶 그 자체의 희생을 의미한다. 민족주의에서 쇠고기 문제는 한국의 동맹이자 보호자에 비해 한국의 지위가 열등하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모순적이게도 이명박의 대단한 업적은 정치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한국 학생들이 시작한 자발적인 운동은 수천만명의 개인과 시민단체, 종교계, 노동단체들의 정신과 가슴을 흔들어놓았다. 사람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아고라(광장)’에서 소통하고 논의하는 신선한 노선들을 열어가면서 80년대 민주화투쟁을 상기시키는 정치적 각성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슬프게도 광우병 소동이 한국인들의 에너지를 빨아들일 때 북한은 기근 속으로 침몰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모습은 그들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가. 북한 주민들 대부분이 풀과 나무껍질을 먹을 때, 한국 대통령은 워싱턴 “친구”를 신뢰하면서 시민들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라고 설득하고 있는 이 상황이.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중요한 협상이 한국이 거의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전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개번 매코백/호주국립대 명예교수> <정리 | 최희진기자>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아이디어의 보물섬!
한국아이디어클럽(www.idea-clu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