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유레카

1995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박사과정에 다니던 이재웅은 돌연 귀국해 인터넷 업체 하나를 만든다. 초고속인터넷이 보급되기 이전이었고, 야후나 라이코스도 갓 등장한 시기였다. 다음에 어떤 세상이 오는지 두고 보라는 심정이었을까? 회사 이름은 다음커뮤니케이션이었다. 미래를 열고 여러 소리(多音)가 어우러지는 세상을 만들자는, 이름에 담긴 뜻은 이 회사의 기업이념이 됐다.

삼성에스디에스 사내 벤처로 뒤늦게 출발한 네이버에 1위 자리를 내줄 때까지 다음은 인터넷의 절대 군주였다. 그러나 여러 소리 담는다는 다음의 지향이 제대로 드러난 것은 아고라의 문을 열면서부터다. 다음이 깔아놓은 멍석 위에 사람들은 마실 나오듯 나와 북적댔다. 그들에겐 우물가였고 장터였다. 시시콜콜한 동네, 연예인 얘기에서 철학·문학·국가 시책까지 주제로 올라왔다. 사람들은 생각을 나누고 때론 치열하게 검증하고 반박하고 학습했다. 그리고 행동했다. 아고라는 어느덧 가장 웹2.0스러운 마당이 됐다. 식물마다 제각각이고 무질서해 보이는 꽃잎 수도, 앞의 두 숫자를 합한 수로 이뤄진 ‘피보나치 수열’의 질서를 이루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지적 생태계도 시끄러움 속에 태생적 질서를 품고 있다.

광장(다음)이 요즘 무차별 공격을 받느라 혼이 쏙 빠졌다. 검찰수사, 세무조사에 방통위의 게시글 삭제 결정에 이어 7일엔 광고 기업 불매운동에 발끈한 조·중·동의 보복성 기사 빼기 짬짜미까지. 집단지성의 마당은, 단숨에 철없는 아이들이 퍼뜨리는 괴담의 온상이 됐고, 순진하고 무지한 대중을 거리로 내모는 선전선동의 장으로 둔갑했다. 잘하면 다음 하나쯤에 재갈을 물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웹 세상은 그렇게 거칠게 길들기엔 이미 너무 깊고 넓다. “웹은 통제하려는 순간 재앙이 될 것이다.” 웹 창시자 팀 버너스리의 10년 전 경고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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