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10월이 되면 부산은 영화의 바다에 빠진다. 남포동에서부터 해운대까지 밤늦도록 영화를 즐기는 ‘폐인’들로 북적인다. 올해의 부산 국제영화제는 ‘경계를 넘어’라는 주제로 열려 19만여 명의 관객이 64개 나라에서 온 271편의 영화를 감상했다.

부산 국제영화제는 세계 3000여 개 영화제 중 ‘아시아 영화의 발견과 지원’이라는 브랜드로 이름난 영화제다. ‘007 네버다이’에 출연했던 양쯔충을 비롯해 해외 게스트들은 한결같이 아시아의 칸 영화제라고 칭찬한다. 사실 유네스코가 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펠리니 황금메달을 영화제로는 칸에 이어 두 번째로 받기도 했다. 불과 12년 만에 이런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거의 기적 같은 일이다. 열정적이고 유능한 집행부, 시민들의 참여와 호응, 그리고 한국 영화의 힘이 합쳐져 이룬 성과다.

짧은 역사지만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양적인 성장과 시장으로서의 가능성은 분명하다. 우선 규모나 외형은 이제 정점에 이른 것 같다. 1만 명이 넘는 국내외 게스트와 20만 명의 관객, 그리고 200여 편의 상영작 등은 영화제의 인력과 조직 수준으로 보아 한계다.

다음으로, 영화시장으로서의 성장 가능성도 충실해지고 있다. 2005년에는 아시아 영화 아카데미를 만들어 아시아의 청년 영화인들이 공동 작업을 할 수 있게 했고, 2006년에는 아시안 필름마켓을 만들어 아시아 영화가 세계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넓혔으며, 올해는 아시아 영화펀드를 구성해 감독과 제작자를 연결해 주는 환경을 만들었다. 배우들의 모임인 아시아 연기자 네트워크도 생겼다.  

문제는 이제 규모와 가능성에 더해 어떻게 내용을 충실히 채울 것인가다. 그러려면 먼저 부산 국제영화제가 과연 물량과 상업성의 할리우드식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올해의 테마처럼 영화의 경계나 틀을 넘는 독립영화나 젊은 감독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식으로 갈 것인지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제 부산이 정말 아시아 영화의 메카가 되려면 정체성을 선명히 하여 선택과 집중을 할 때다.

조광수 영산대 중국학과 교수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journalist.asp

[감각있는 경제정보 조인스 구독신청 http://subscribe.joins.com]

[ⓒ 중앙일보 & Join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