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장기화될 전망이다. 부실 위험이 큰 주택담보대출이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과 부유층에 걸쳐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주택가격이 최고 수준이었던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2500여 개 금융기관의 고금리대출 규모가 1조5000억달러에 이른다. 전체 주택대출에서 차지하는 고금리대출 비율은 15% 선에서 30% 선으로 육박했다.

이와 같은 대출시장의 부실구조 아래 관련 금융기관의 부도나 펀드의 환매중단 사태가 나타날 경우 신용경색과 금융시장 불안의 반복은 불가피하다. 미국 금융시장이 간헐적으로 활동하는 활화산을 안고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셀 유에스에이(Sell USA)' 바람이 불고 있다. 달러화 가치가 계속 하락하자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던 미국의 통화, 주식, 채권 등에 대한 국제투자자들의 매각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지난 8월 한 달간 미국시장에서 유출된 순자산은 1630억달러나 된다. 종전 사상 최대 순유출액이던 2001년 3월 423억달러의 4배나 되는 수준이다.

이는 달러화가 10년 이래 최악의 약세를 보이며 나타나는 현상으로 달러 주도의 세계경제 질서(pax dollarium)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 경제로서는 보통 큰 염려가 아니다. 특히 한 달에 500억달러 이상의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 경제는 달러표시자산 매각이 어려워 적자를 메울 방법이 없다.

따라서 외국자본의 대규모 유출이 심화되면 정상적인 경제운영이 어렵게 된다. 이 경우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금리를 인상하면 관련 금융기관 부도가 증가해 서브프라임 사태는 더욱 불안한 상황으로 치닫는다.

즉 금융시장이 서브프라임 사태→셀 유에스에이→금리인상 압박→다시 서브프라임 사태 확산이라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러한 악순환은 실물 부문과 금융 부문을 동시에 침체시키는 구조적 함정이 될 수 있다. 이미 미국 경제는 주택경기가 침체하고 기업투자가 위축돼 고용이 4000명가량 감소하는 등 불안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과 주택대출시장 구조가 유사한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도 불안이 크다. 특히 부동산시장과 증권시장 동조현상이 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악화되면 우리 경제는 곧바로 영향을 받는다.

미국은 2000년 이후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연방기금금리를 1%까지 내리는 초저금리 정책을 폈다. 그러나 최근 국제수지 적자와 물가불안을 막기 위해 가파른 금리인상 정책을 펴 기준금리를 5.25%까지 올렸다. 그러자 대규모로 늘어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이 부실화되면서 금융시장에 불안의 회오리가 불어닥쳤다.

한국도 과거 수년간 경기활성화를 목표로 저금리정책을 폈다. 그러자 시중 유동성이 2000조원 가까이 되면서 부동산가격과 증권가격이 급상승했다. 작년 부동산가격은 상반기에 21%, 하반기에 10.8% 올랐다. 올 들어 주가는 35%나 올라 2000선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택과 증권 매입 등으로 국민들의 빚이 늘어 가계부채가 총 600조원 규모로 가구당 평균 3800만원에 이른다. 이런 상태에서 금융당국은 미국과 같이 금리인상 정책을 폈다. 그러자 건설경기가 죽고 주택시장이 위축되면서 가계 부문에 언제 연쇄부도가 나타날지 모르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판 서브프라임 위기가 자생적으로 구조화된 것이다. 미국은 서브프라임 사태를 87년과 98년의 금융위기와 유사한 사태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97년 겪은 금융위기를 다시 겪게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응책은 무엇인가. 정부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금리와 환율을 효과적으로 조정하여 선제적 방어를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엔캐리자금 등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을 막는 제도나 법적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더 나아가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을 서둘러 시장운영을 선진화해야 한다. 투자자들은 '묻지마 식' 뇌동매매를 지양하고 정석 장기투자를 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동산시장을 정상화해야 한다. 정부는 투기를 막는 대책으로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를 대폭 높이는 세금폭탄정책을 펴 부동산시장을 마비 상태로 만들었다. 경제에서 시장은 아무리 잘못된다 해도 죽은 것보다 산 것이 낫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중 한쪽이라도 풀어 경제의 중심부에 있는 부동산시장에서 거래가 살아나게 해야 한다. 그래야 대출금 상환이 이루어지고 가계부채가 줄어든다. 시장이 스스로 치유능력을 갖고 병을 고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더불어 기업 투자 관련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시중의 과잉유동성을 산업자금으로 흐르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경제성장 동력을 찾아야 국민소득이 늘고 빚이 줄어 경제흐름이 건전하게 된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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