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선진7개국(G7) 아웃리치 재무장관회의에 참석, 국부펀드(SWF)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국부펀드란 정부가 조성한 재원으로 외화자산을 조성,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과는 별도로 운영되는 투자기구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전 세계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헤지펀드 규모는 1조5000억∼2조달러로 추정된다.

그런데 지난 3월 기준으로 국부펀드를 통해 운용 가능한 자산 규모가 약 2조5000억달러로 추정된다니 국제 금융시장의 국부펀드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원래 국부펀드란 원유 등 정부 소유의 원자재 수출을 통해 축적된 정부의 재정자금을 불리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중동 산유국들의 국부펀드가 대표적이다. 국부펀드는 이런 의미에서 중앙은행이 보유하는 외환보유액과는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다르다.

중앙은행이 외환보유액을 가지고 있는 주된 목적은 외환위기 같은 위급한 경우 대외 지급을 보장함으로써 외환 및 금융시장의 안정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다. 따라서 단지 국제 금융시장에서 투자수익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외환보유액을 지나치게 많이 조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부분의 외환보유액은 언제라도 대외지급에 사용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국채 등 대체로 안전하고 유동성이 높은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원칙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특별국채를 발행, 조달한 위안화 자금으로 중앙은행이 보유한 1조40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 가운데 2000억달러의 자본금을 초기단계에서 확보하여 지난 9월 중국투자공사를 설립했다. 민간이 아닌 국가기관 주도로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에 전면적으로 나서게 되면서 자산운용 능력과 전략적 의도를 의심받으며 국제금융계의 관심과 견제를 함께 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동북아금융허브 육성이란 명분 아래 2005년 한국투자공사(KIC)를 설립했다. 그리고 현재 2500억달러를 웃도는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 가운데 이미 170억달러를 한국투자공사에 위탁 운용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한 돈으로 외환을 사들여 외환보유액을 조성한다. 그 결과 한국은행은 발행된 통화안정증권에 대해 올해만도 7조5000억원으로 추정되는 엄청난 이자를 물고 있다. 최근 지적되고 있는 한국은행의 적자 문제도 바로 외환보유액의 조성 비용과 관련이 있다. 그런만큼 외환보유액이 적정수준을 넘는다면 매각하는 것이 맞다.

정말 정부가 빚이라도 내서 국제금융 연습을 할 목적이라면 당당하게 국민의 동의와 국회의 승인을 받아서 국채를 발행, 재정자금을 조달하여 운영하면 된다.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을 가져다 한국투자공사에 맡겨서 국제 금융시장에서 운용케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마치 주식투자 능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 아버지가 투기를 좋아하는 무능한 이웃 사람들이 주식시장에 뛰어든다고 덩달아 빚을 내서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것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중국투자공사도 지난 5월 미리 30억달러를 투자해 매입한 사모투자펀드인 블랙스톤의 지분가격이 신규 상장 이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영향 때문에 벌써 3분의 1가량의 평가손실을 봤다고 한다.

한국은행의 독립성이 제도적으로는 이전보다 강화됐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통화정책의 운영 과정에서 아직도 정부 눈치를 보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외환보유액의 부실한 관리는 금융시장 불안, 한국은행의 적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세금 부담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융공기업인 한국투자공사가 한국은행이 비용을 들여 외환시장 안정을 목적으로 조성한 외환보유액을 쉽게 넘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금융은 근본적으로 정부나 정부기관이 아닌 민간의 영역이다. 다만 기왕 설립됐으니 스스로 투명하고 독립적인 운영과 자산운용 성과를 입증해 보이는 것만이 금융공기업 한국투자공사의 활로다.

[[최창규 / 명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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