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0월 19일. 이날은 월요일이었다. 주말을 쉰 월가 참여자들은 새로운 기대로 한 주를 시작하려 했다. 이전까지 주식시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던 터라 추가 상승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내 공포 속에 빠져 들었다. 주가가 흘러내리더니 다우지수가 하루 만에 22.6% 떨어지는 폭락장이 연출됐다.

시장참여자들은 이날을 '블랙먼데이'로 불렀고 이후 폭락장의 대명사가 됐다. 이날 폭락한 장세는 이후 주가가 36% 추가 하락하는 큰 조정을 거쳐야 했다. 주가가 다시 폭락장 사태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는 무려 24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날로부터 정확히 20년 뒤인 지난 10월 19일. 이날은 한 주를 마감하는 날이었다. 큰 일 없이 무사히 '블랙먼데이' 20주년을 기대하던 투자자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다우지수가 하루 만에 2.6% 이상 하락하는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19일은 20년 전 블랙먼데이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닮은 점이 많아 일찍부터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최근 장세는 87년처럼 강세장이 5년 동안 지속됐고 다소 지친 듯한 모습을 나타나고 있었다. 특히 대규모 무역적자로 인해 달러화가 약세를 보인 것도 최근 상황과 너무 흡사했다.

당시 미국은 심각한 무역적자로 고민이 많았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상품이 물밀듯이 몰려와 무역적자를 확대시켰다. 최근 상황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중국 제품을 중심으로 아시아 상품이 미국시장을 파고들었다.

87년에는 대형 바이아웃(차입매수) 기업들이 주요 기업들을 인수하며 왕성한 식욕을 과시했다. 올해는 대규모 사모펀드 등이 대형 인수ㆍ합병을 성사시키며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이로 인해 두 해 모두 대출시장은 급기야 붕괴에 직면하게 됐다.

컴퓨터시스템을 동원한 정교한 투자기법이 유행한 것도 닮았다. 많은 전문가들은 컴퓨터에 의한 과학적인 투자가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으로 믿었지만 87년이나 2007년 모두 허사였다.

이 같은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두 해 사이에는 분명 다른 점도 많다. 20년 전에는 주가가 너무 급격히 많이 올랐으나 올해는 상대적으로 점진적으로 상승했다. 87년 들어 8월 고점까지 다우지수는 43%나 올랐지만 올해 다우지수는 고점까지 14% 정도 오른데 그쳤다.

게다가 주식에 대한 거래 수준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S&P500 기업들은 지난 1년 동안 역사적으로 평균 수준이라 할 수 있는 이익의 16배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서 거래됐다. 20년 전에는 주가수익비율이 20배에 달했다.

금리정책에 대한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자세도 다르다. 87년 연준은 인플레이션과 싸우느라 금리를 계속 올렸고 신용상황은 갈수록 악화됐다. 하지만 지금 연준은 금리를 인하하며 시장에 즉각 개입했다.

이 때문에 많은 투자자들은 블랙먼데이 20주년을 맞아 주식시장이 어느 정도 하락하더라도 놀라지 않고 다시 반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낙관적인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19일 주식시장이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인 결정적인 계기는 기업들의 실적부진이었다. 유가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오르고 경기침체 가능성에 대한 염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에다 탄탄한 기업실적은 이들 악재를 뛰어넘을 수 있는 호재로 인식됐다. 기대했던 기업 실적이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자 투자자들의 실망이 컸다.

사실 그동안 미 증권시장에서는 낙관론이 주가를 지탱해왔다. 주택경기 부진 등으로 인해 경기침체 염려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사상 최고치 행진을 지속했다. 여전히 풍부한 유동성과 견조한 기업실적 기대,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 등의 재료가 있었지만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낙관론이 가장 큰 힘이 됐다.

주식시장이 다시 상승하게 될지 아니면 추가로 약세를 보일지는 아무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증권시장을 둘러싼 주변 여건은 증시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뉴욕 = 위정환 특파원 sunnywi@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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