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이병권]  24년 전 영국에서는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실험이 시도됐다.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대처 총리가 집권하면서 보수당 정부는 기존 노동당 정부가 수행한 사회복지 확대 정책을 과감히 수정했다. 그러면서 정부 재정 지출을 줄이되 사회적 효용성을 증대시키려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시도했다. 당시만 해도 영국에서는 정부 예산을 통한 일방적인 예술단체·예술가 지원 정책만 고집하던 분위기였다. 이에 따라 예술 지원정책은 ‘예술에 대한 안정적 지원 유지’라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지원방식의 비효율성, 예술계의 자생력 저하 및 기생력 증대라는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이런 가운데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대안으로 대처 정부가 제시한 것이 ‘뉴 파트너스(New Partners)’ 제도였다. 예술계에 대한 기업의 지원 금액에 비례해 정부가 매칭펀드를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도 도입 초기만 해도 과연 이 제도로 인해 기업의 예술계 지원 확대가 가능할지, 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이 제도는 해를 거듭할수록 매우 효율적인 문화예술 지원정책으로 평가받았다. 1984년 이후 22년간 매년 평균 정부 지원금이 50억원인 반면 기업 출연금 규모는 100억원을 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올 3월 영국을 방문했을 때 정부 위탁을 받아 이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영국메세나협회(Art & Business Counsil)의 콜린 트위디 사무총장은 물론 영국 정부 관계자들도 “이 사업은 영국에서 ‘기업과 예술의 만남’의 대표적 성공 사례”라고 자랑한 바 있다.

  최근 불거진 신정아·변양균씨 파문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제 막 활성화되기 시작한 기업들의 메세나 운동과 문화 마케팅이 축소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과 정부의 제도 운영 방법이다. 문화예술계에 대한 기업의 관심과 투자, 지원은 이제 시대적 흐름이다.

 기업들은 다가오는 CSR라운드(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국제 회의)에 적극 대응하는 한편 지속가능한 경영 차원에서도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영국의 뉴 파트너스 제도는 한국에도 도입돼 올해부터 ‘중소기업 예술지원 매칭펀드’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총 27개 중소기업을 예술단체와 결연시키면서 기업의 예술계 지원 활성화를 위한 획기적인 이정표로 평가되고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서 정부는 민간 재원 유입을 통해 자체 지출을 줄이고 예술지원 확대를 꾀하는 효과를 얻는다. 중소기업은 국민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예술계는 자체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예술활동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결국 이 제도는 정부·기업·예술계·국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선 우선 정부의 과감한 재정 지원이 있어야 한다. 올해 6억원에 불과한 정부의 매칭펀드 규모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기업들의 관심 확대에 힘입어 예술계 지원 방법·과정도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화돼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최근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생긴 무거운 숙제를 보다 기쁜 마음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병권 한국메세나협의회 사무처장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journalist.asp

[감각있는 경제정보 조인스 구독신청 http://subscribe.joins.com]

[ⓒ 중앙일보 & Join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