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짜고짜 창구 앞에 드러누워서 돈 물어내라고 야단입니다. 고객이 자필서명한 계약서를 보여줘도 막무가내예요. 은행에서 판 상품이 어떻게 원금이 깨질 수 있느냐면서요."

펀드 열풍이 불면서 은행에서 펀드를 가입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 됐다. 국내 펀드시장이 양적으로 크게 성장한 것은 맞지만 투자자 수준, 즉 펀드투자 매너도 개선됐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최근 한 은행에서 판매한 원유파생상품 펀드의 손실 논란은 투자위험을 충분히 인지하지 않고 '묻지마 투자'에 나선 투자자에게 경종을 울린다.

6개월 만에 원금이 반토막 날 위기에 처한 이 상품의 35쪽짜리 투자설명서를 보면 '원금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구가 눈에 잘 띄는 빨간색 글자로 8번이나 나온다. 마지막에는 이 내용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들었다며 고객이 자필 서명까지 한다. 이쯤 되면 원금손실 가능성을 몰랐다는 얘기는 감히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은행 창구에서는 고객이 원금을 보장하라고 떼를 쓰거나 직원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어떤 투자자는 손실을 은행과 자신이 절반씩 나눠 책임지자는 제안까지 했다고 한다.

IT 버블이 꺼지면서 주가가 폭락했던 2000년 초반, 증권사 창구에서 돌을 던지며 행패를 부리던 고객까지 있었다. 그러나 투자자 의식이 향상되면서 이제 증권사 창구에서는 원금 손실을 책임지라며 행패를 부리는 고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펀드 손실이 났다고 거칠게 항의하는 은행 고객은 여전히 '구석기 시대'를 살고 있다. 물론 은행의 불완전 판매 가능성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은행 상품은 원금이 보장된다'는 생각을 아직까지도 갖고 있는 투자자가 더 문제다. 예금과 펀드상품은 예금자 보호나 원금 보장과는 완전히 다르다.

펀드투자 매너의 기본은 실적배당 상품에 대한 투자책임이 투자자 본인에게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매너가 부족하거나 지킬 생각이 없다면 펀드투자는 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금융부 = 고재만 기자 zemani@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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